신앙 고백/투병일기-2011년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김레지나 2011. 11. 8. 17:27

오늘 복음말씀이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7-10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7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8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이렇게 말하여라.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미사 중에 윤신부님께서 복음말씀 대로 겸손을 살아가신 마리안 수녀님과 마가레트 수녀님의 일화를 들려주셨다.

울보 엉터리 레지나는 또 훌쩍 훌쩍 울었다. 주님께 부끄럽고 죄송하기 짝이 없었다.

그동안 마음고생했던 일들 대개는

두 분 수녀님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명심해야겠다.

어떤 이와의 관계에서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든

문제가 생기고 섭섭한 마음이 생길 때마다

그저 주님께 "저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기쁘게 아뢸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비우고 비워야겠다.

그것이 내가 나를 위로하고 사랑하는 최고의 방법이기도 하다.

 

<※ 요즘 저는 1차 항암 때보다는 몸도 마음도 조금 더 편하게 지냅니다. ^^ 기도해주신 분들 덕입니다.

고맙습니다.

적당히 먹고, 기운이 나면 집에서 왔다리 갔다리 운동하면서 묵주기도 자비기도 등을 하고,

미사 가고, 잠도 자고, 끙끙 앓아 눕기도 하고,,,,..ㅎㅎ 매일 같습니다.

글 쓸 여력은 아직 없네요. 블로그에 소식 자주 못 남겨도 너무 걱정하시는 마세요.>

 

소록도 떠난 천사 마리안 수녀와 마가레트 수녀

43년 묵었던 방문 앞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 우리말로 써 있어
2011년 06월 08일 (수) 07:17:29 최명삼 c122103@paran.com

지금 소록도는 슬픔에 빠져 있다고 아녜스 란 세례명을 가진 분이 편지를 써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에서 43년 동안 한센병 환자를 보살펴 온 외국인 수녀 2명이 편지 한통을 남기고 떠났다는 것이다.

소록도 주민들은 이별의 슬픔을 감추지 못한 채 일손을 놓고 성당에서 열흘 넘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다고 했다.

43년동안 소록도에서 평생을 환자와 함께 살아온 마리안(향년 71세)수녀, 마가레트(향년 70세) 수녀가 조용히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떠난 것은 지난달 21일이었다고 했다.

마리안 수녀는 1959년에, 마가레트 수녀는 1962년 소록도에 첫발을 디뎠다.

두 수녀는 장갑을 끼지도 않고 상처에 약을 발라줬다. 또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장애교정 수술을 해 주고 한센인 자녀를 위해 영아원을 운영하는 등 보육과 자활정착 사업에 헌신했다.

정부는 이들의 선행을 뒤늦게 알고 1972년 국민포장,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이 두 수녀는‘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란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다.

이들 편지에는“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우리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다”고 적혀 있었다.

   
 
  ⓒ 최명삼  
 

이들은 또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이 편지로 용서를 빈다”고도 적혀 있었다.

43년간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한 마가레트 수녀와 마리안 수녀, 오스트리아 간호학교를 나온 두 수녀는 소록도 병원이 간호사를 원한다는 소식이 소속 수녀회에 전해지자 1962년과 66년 차례로 소록도에 왔다.

환자들이 말리는데도 약을 꼼꼼히 발라야 한다며 장갑도 끼지 않고 상처를 만져주고 어느 때는 죽도 쑤고 과자도 구워 들고 마을을 돌았다.

그리고 전라도 사투리에 한글까지 깨우친 두 수녀를 이곳 사람들은 ‘할매’라고 불렀다.

꽃다운 20대는 수천 환자의 손과 발로 살아가며 일흔 할머니가 됐다. 숨어 어루만지는 손의 기적과 주님 외엔 누구에게도 얼굴을 알리지 않는 베품이 참 베품임을 믿었던 두 사람은 상이나 인터뷰를 번번이 물리쳤다.

10여년전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은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섬까지 찾아와서야 줄 수 있었다.

병원 측이 마련한 회갑잔치마저“기도하러 간다”며 피했다. 두 수녀는 본국 수녀회가 보내오는 생활비까지 환자들 우유와 간식비, 그리고 성한 몸이 돼 떠나는 사람들의 노자돈으로 나눠줬다.

두 수녀의 귀향길엔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해진 가방 한개만 들려 있었다고 했다.

외로운 섬, 상처받은 사람들을 반세기 가깝게 위로한 두 수녀님의 사랑의 향기는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에 날려 어두운 곳을 밝히고 추운 세상을 덥혀 주리라고 믿는다.

" 이제는 70세가 된 마리안 수녀 "

"처음 갔을 때 환자가 6,000명이었어요. 아이들도 200명쯤 되었고, 약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치료해 주려면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 두 분은 팔을 걷어붙이고, 환자들을 직접 치료하기 시작한 것이 40년이 된 것이다.

할 일은 지천이었고, 돌봐야 할 사람은 끝이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40년의 숨은 봉사... 이렇게 정성을 쏟은 소록도는 이제 많이 좋아져서, 환자도 600명 정도로 크게 줄었다고 한다.

그 두 수녀는 누군가에게 알려질 까봐, 요란한 송별식이 될까봐 조용히 떠났다.

두 분은 배를 타고 소록도를 떠나던 날, 멀어 지는 섬과 사람들을 멀리서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했다.

20대부터 40년을 살았던 소록도였기에, 소록도가 그녀들에게는 고향과 같았기에, 이제 가시는 고향, 오스트리아는 오히려 낯선 땅처럼 느껴진 고국.

3평 남짓 방 한 칸에 살면서 방을 온통 한국의 장식품으로 꾸며놓고 오늘도 '소록도의 꿈'을 꾼다고 했다.

그 두 수녀가 묵었던 방문 앞에는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 마음에 평생 담아두었던 말이 한국말로 써 있었다.

지금도 우리 집, 우리 병원 다 생각나요. 바다는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지...

하지만 괜찮아요. 마음은 소록도에 두고 왔으니까요!" 라는 말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고 적은 편지는 과연 인간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절실이 느끼게 했다.

김명호(56) 소록도 주민자치회장은“주민에게 온갖 사랑을 베푼 두 수녀님은 살아있는 성모 마리아였다”며“작별인사도 없이 섬을 떠난 두 수녀님 때문에 섬이 슬픔에 잠겨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두 수녀의 이야기는 또 있다.

어느 여름, 나이 든 수녀님과 젊은 수녀 두 분이 서울 명동에서 서울역까지 걸어 가고 있었다. 그녀들이 가는 도중에 만난 걸인은 6명, 구걸하며 손을 내미는 걸인에게 나이 든 수녀님은 손가방에 있는 동전 한닢까지 다 내 주었다. 이를 본 젊은 수녀는 갈 길이 불안했는지 “차비까지 다 주시면 어떡하세요.”걱정했다. 그러나 나이든 수년님은 태연히“ 이 성한 두다리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며 “걸어서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 사람들보다 행복하다” 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