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간 연이어 시험을 치르고 난 뒤 약간 무겁게 느껴지는 몸을 이끌고 이 곳 로마에서 교회법을 공부하는 신부들의 모임에 나가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갔다. 75번 버스 종점에 있는 조그만 공터는 보라색 봄꽃들과 봄햇살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쳐났다.
멍하니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정말 ‘콩알’만 한 어린 놈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엉성한 폼으로 엄마가 앉아 있는 벤치와 건너편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사이에서 열심히 달리기를 하고 있던 그 놈은 엄마가 ‘이리와’하고 부르면 얼른 달려와서 엄마가 내미는 부드러운 모짜렐라 치즈 한 입을 베어 먹고는 다시 뛰어다녔다.
그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니까 엄마는 아이가 뛰노는 것을 미소 가득 머금고 유심히 지켜보다가 아이의 오물거림이 끝나면 ‘이리와’하고 부르고 그러면 아이는 얼른 엄마한테 달려와서 그 앙증맞은 입을 한 없이 벌려서 ‘앙’하고 한 입 베어 물고는 오물오물거리며 다시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그런 세상 이쁜 놈이 어디 또 있을까?
먹는 것은 아이인데 행복하기로는 오히려 엄마가 더 행복해 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엄마와 아이의 신비 가득한 사랑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는 동안 어느새 내 몸의 피곤함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는 ‘저렇게 이쁜 엄마를 만나 저런 세상 이쁜 놈을 낳아 키우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하는 부러움이 마음 속에 퍼져가면서 나까지도 너무 행복해져 저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그 콩알만 한 놈이 뛰어다니던 공터에는 또 한 사내가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술에 몽땅 취해 벤치 하나를 다 차지한 채 큰 대자로 누워 자고 있었다. 저렇게 자다가 일어나서는 몇 푼 동냥을 하여 술을 사 마시고 또 어디선가 쓰러져 자는 일상을 되풀이하고 있을 그 사내를 걸인을 보고 있노라니 참으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 사내에게도 누구든지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을 가져다 줬던 콩알만 했던 시절이 있었을텐데......
그 걸인과 꼬마의 모습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엄마는 뛰놀고 있는 아이에게 적당한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해 줄 부드러운 모짜렐라를 먹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하느님이 그렇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이 필요할 때 ‘이리와’하고 불러주시는 분이시고 우리의 영혼이 이 세상을 지나는 동안 꼭 필요한 당신의 ‘말씀’을 우리가 먹어주는 것만으로 스스로 행복해 하시는 분이시다.
뛰놀던 아이가 엄마를 행복하게 한 행위의 전부라고는 오로지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서 ‘먹어주는 일’ 뿐이었듯이 우리 역시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분이 부르실 때 달려가서 그 분의 말씀을 ‘먹어주는 일’뿐이다.
하느님께서 부르실 때 얼른 달려가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받아먹지 않고 세상이 들려주는 소리에만 귀 기울여 사는 사람의 영혼은 시도 때도 없이 술에 절어 잠에 빠져있는 사람들처럼 세상에 중독된 채 점점 더 깊은 잠에 빠져들어간다.
깨어있는 사람으로 한 생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들 영혼의 허기와 목마름을 채워주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먹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지금 어딘지 모르는 낯선 곳 벤치에 쓰러져 자고 있는 영혼을 향해 하느님께서 어머니의 음성으로 그들을 부르고 계신다.
"이리와"
하느님이 주시는 말씀을 먹고 그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을 행복하게 하는 ‘콩알만한 그리스도인’으로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자신이 처한 모든 문제를 꿰뚫는 말씀 한 마디를 찾고 그 말씀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보자.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마태4,4)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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