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동이 트기 전, 근처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에 미사를 드리러 집을 나섰다. 가능한 한 천천히 새벽길을 걷는 동안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참 행복하다’는 것이다.
어머니 품과 같은 대지와 함께 깨어나 아버지 태양의 기운을 받으며 천천히 하루를 시작하는 이 여유로운 충만감을 앞서는 쾌락이 있다면 모를까 결코 하루 중의 이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
오랜 순례의 인생길을 걸어오는 동안 많이 늙고 병들고 지친 할머니들과 말씀과 성체를 나누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항상 내게 삶에 대한 더욱 진지한 접근과 반성을 요구한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어떻게 살아야 더 풍요롭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참다운 한 인간으로 또한 한 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잘 사는 것’에 대한 존재적 차원의 질문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자아에 대한 깊은 인식으로부터 생겨나는 자기 정체성대로 살아가는 것, 결국 자기가 믿고 있는 바, 자기가 생각 하는 바, 그리고 자기가 알고 있는 바가 삶의 여정 안에서 충실하고도 충분히 표현되는 삶을 나는 ‘잘 사는 삶’이라고 부르겠다. 많이 가진 부자를 보고 ‘잘 산다’라고 하는 흔한 우리들 표현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잘 살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가 무엇을 믿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그리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을 확실히 알고 있는 지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되겠다.
자신에 대한 참으로 깊은 성찰과 인식을 통해 어느 점에 다다랐을 때,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양심의 소리를 듣게 된다. 거기에 까지 다다른 자기 정체성은 타인의 정체성과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다. 결코 이기적인 동기로 자신의 정체성을 실현할 수는 없다.
혹 진실로 깊은 성찰을 통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완전한 양심’, 그러니까 ‘나의 정체성’과 내가 속한 공동체의 정체성이 심각하게 대립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그가 그 공동체를 떠나야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자기가 참으로 믿고 생각하고 알고 있는 바대로 살아가기가 힘든 어떤 공동체가 있다면, 자기의 양심과 믿음에 반대되는 삶을 요구하는 공동체에 자기가 속해 있다면 그런 공동체로부터 떠날 용기와 각오 또한 ‘잘 사는 삶’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나와 내 가족이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자본주의적 사고는 나의 믿음과 이론에 맞지 않지만, 아예 자본주의의 틀을 벗어나 산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냥 안주하고 있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잘 살기’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그는 적어도 끊임없이 스스로의 믿음과 이론에 따르는 거부와 반항의 의사라도 표현해야 한다.
잘 산다는 것은 이렇듯 내면의 정신세계가 외면의 삶을 통해 조화롭게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외면의 삶이 내면의 정신세계를 잘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잘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은 또 결코 아니다.
진정으로 잘 살기를 원하는 사람만이 잘 살 수 있다. 치열한 자기반성과 성찰, 그리고 행동 없이 그리스도교 신자로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일일지 모른다.
나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뜻을 믿는다. 나는 믿음 안에서 생각하고, 생각한 바대로 말하고, 말한 바대로 실천하며 살아가고 싶다.
“제도를 따라 봉헌물과 희생제물을 바치지만 그것이 예배하는 사람의 양심을 완전하게 해 주지는 못합니다.”(히브9,9) “형제 여러분, 끝으로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고상한 것과 옳은 것과 순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과 덕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들을 마음속에 품으십시오. 그리고 나에게서 배운 것과 받은 것과 들은 것과 본 것을 실행하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필립4,8-9)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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