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르따 뽀르떼제라는 로마에서 유명한 시장이 있다. 매주 일요일마다 서는 장인데 정말 어느 노랫말처험 ‘있을 건 다 있구요 없는 건 없답니다’는 로마의 명물중의 하나이다.
가끔 주일미사를 마치고 나면 워낙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기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그곳에 찾아가곤 했는데 오늘은 정말 그곳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곳에 발을 들여 놓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한국관광객 일행을 만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별 할일도 없고 그 분들 뒤를 이것 저것 구경하면서 따랐더니 아니나 다를까 벌써 소매치기들이 따라 붙어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그만 해! 이 분들 다 내 친구들이야.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어쩔 줄 몰라 하는 한국 관광객들 중에 갑자기 한 사람이 끼어들어서 이탈리아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인 듯한 사람이 이탈리아 말로 화를 내면서 그만 두라고 하자 그 집시들도 바로 목표를 잘못 잡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떠나갔다.
그 분들에게 정말 주의를 기울일 것을 부탁드리고 또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돌아다니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앞으로 끼어들면서 내 앞 길을 막더니 무슨 물건을 사는 척 한다. 그러더니 또 다른 한 사람은 내 옆으로 바짝 붙어서 구경하는 척을 하고 있고......
한 푼도 안 가지고 그냥 구경나온 내 길을 막고 물건 값을 물어보는 사람의 눈을 뻔히 쳐다보며 빙긋 웃는 얼굴로 ‘야, 나는 여기 로마에 살어. 나는 한 푼도 없어’라고 말하고 옆에 붙은 놈을 쳐다봤더니 그 놈의 손은 벌써 내 잠바 윗주머니에 반쯤 들어와 있었다.
직접 도둑맞은 건 하나도 없지만 얼마나 기분이 우울하다 못해 슬퍼지는지......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갑자기 다 도둑놈처럼 보이는 그 곳에서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어 집으로 향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붐비는 길목에서 또 어떤 한심한 놈이 내 가방을 열고 있었다. 열어봤자 돈 될 건 하나도 없는 내 가방을......
집에 돌아와서 오후 내내 기분이 너무 불편하고 우울했다. 도대체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선하신 하느님의 실재와 하느님 나라가 가까왔다는 주님의 복음선포 내용을 어디서 어떻게 생생하게 체험하며 확인할 수 있을지.....
날이 저물었다. 주일 저녁 6시 15분. 함께 살아가고 있는 교황청 외방선교회 신부님들과 모여서 성시간을 보내는데 그 전례 안에서 하루 동안의 아픔, 슬픔, 고통, 그리고 사람에 대한 실망이 한꺼번에 다 사라져갔다.
이미 자신들의 젊음을 아시아에서, 아프리카에서 또는 남미의 선교지에서 다 불사른 할아버지 선교사들이 그 옛날 신학교에 살던 때를 기억하며 한 자리에 모여 라틴말로 성체찬미를 노래하는 가운데 서 있는 그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를 다시 감동으로 끝을 내기에 충분했다.
교회의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천상의 하느님 나라를 선취하고 있는 듯한 평화와 행복감을 교회의 전례 안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커다란 은총이다.
할아버지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다들 느꼈을 사람과 상황에 대한 절망과 그것에 대한 극복의 과정이 시공간을 뛰어 넘어 오늘 저녁의 전례에서 생생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약간 어설프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운 화음의 성체찬미가로서 피어나는 그 분들의 선교사제로서의 한 생은 당신들의 뒤를 이어갈 젊은 선교사의 영혼에 더 없는 희망과 감동을 안겨주는 선물이었다.
선교사제로 살아간다는 것이 행복한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악이 실재하는 세상을 향해 하느님 나라가 가까웠다는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언제든지 오늘 낮에 겪은 일들 처럼 절망에 빠질만한 일들 투성이겠으나, 그래도 언제나 세상과 사람, 그리고 도래할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땅끝까지 전하라는 주님의 명을 받들어 한 생을 살았던 그 수많은 주님의 용사들의 삶이 짧은 나의 한 생을 통해 영원으로 이어져 갈 것이다.
그리하여 설혹 악이 너무나 우세한 세상이라서 과연 하느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세워질 수 있을지 의심하지 말 것!
만약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사람 사는 세상은 원래 이렇게 돌아가는거다라는 절망 대신 이 세상을 향한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많은 이들의 선과 희망의 노력들을 더욱 민감하게 느끼고 바라볼 수 있다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들 가까이에 와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낄 테니까......
하루 동안의 시간에 지상과 천상의 시간을 동시에 보낸 듯하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지상의 시간을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던져졌다는 것을 잊지 않고 싶다. 도래할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할 시간과 공간은 항상 바로 지금, 그리고 여기라는 시공간의 연장일 뿐 다른 곳은 있을 수 없다.
“ ‘아버지,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소서.’ 그때에 하늘에서 ‘내가 이미 내 영광을 드러냈고 앞으로도 드러내리라’하는 음성이 들려왔다.”(요한12,28)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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