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가방의 지퍼가 열려 있어 확인해 봤더니 누군가 휴대폰 충전기가 꼭 필요했는지 가방 속에 있던 충전기를 훔쳐 갔다. 충전기가 없으면 휴대폰을 쓸 수가 없는 일이니 할 수 없이 충전기를 구입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휴대폰을 훔쳐 갔다.
디지털 카메라의 메모리 카드 용량이 부족해서 여러가지로 불편을 겪던 차에 큰 마음을 먹고 새로운 메모리 카드 하나를 구입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카메라를 도난 당했다.
컴퓨터 프린터가 없어서 프린트를 할 일이 있으면 다른 신부님 방에 가서 부탁을 하곤 했는데 그 일도 반복되다 보니 신부님들 인상도 점점 굳어져 가고 불편하기도 해서 프린터를 구입했더니 이번에는 노트북 컴퓨터를 도둑 맞았다.
지금 내 앞에는 휴대폰 충전기, 카메라의 메모리 카드, 그리고 프린터가 놓여 있다. 전부 본체를 잃어 버린 주변기기들이다. 말 그대로 주변기기들은 '주변'기기라서 본체가 없으면 아무 쓸데가 없는 것들이다.
허탈한 마음 한 가운데 살며시 기쁜 소식이 들려 온다. "나는 포도나무요 여러분들은 가지입니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나를 떠나서는 여러분들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요한 15,5)
주님이 포도나무 본체라면 우리는 지체들이고 지체들은 본체를 떠나서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말라 비틀어져 사람들이 주워다가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항상 본체를 떠나지 않고 본체에 꼭 붙어서 그분으로부터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영혼의 수분과 영양분을 받어 먹으며 살다가 언젠가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날이 있기를 바라고 원한다.
주인(본체)을 잃어버리고 아무 할 일이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어 방 한구석에 방치되어 있는 물건들을 바라 보면서 내 주님만큼은 어떤 상황에서도 도둑 맞지 않게 꼭 붙들고 살아야 겠다는 다짐이 나를 다시 웃을 수 있는 여유로 이끌어 준다.
누구 혹시 휴대폰 충전기나 메모리 카드 필요한 사람 없을까?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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