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허윤석 신부님

싫습니다. - + 마태오. 21,28-32

김레지나 2011. 9. 28. 14:12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8-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28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29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30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31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싫습니다!”

 

 

삶에 있어서

 

대부분 내가 하는 것은 싫은 것이다.

 

 

주일 저녁때 내일 출근 할 것을 생각하면 우울하다.

 

 

싫기 때문이다.

 

 

학생도 학교 가기 싫어한다.

 

 

그럼 우리의 기도와 성서묵상은 싫은 것인가?

 

 

중요한 것은

 

 이 싫다는 말을 한사람이

 

이 말을 들은 사람과의 관계다.

 

 

 바로 부자지간이다.

 

 

아들과 아버지 사이인 것이다.

 

 

 결국 아들은 가겠습니다. 아버지!하고 대답한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 아들을 결국 변화되었고 변화시킨 무엇이 있었다.

 

 

성경에는 그 변화의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

 

 이것을 알아듣는 것이 백미이다.

 

 

내가 월요일

 

직장이나 학교에 가기 싫을 때

 

내자신이 아닌 하느님 아버지께 투정해 보자!

 

 

그럼 이런 말씀을 주시리라! 함께 하자고!

 

 

우리는 미사때

 

사제가 성체를 들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되어!라고 기도하는 것을 들었다.

 

 

여기에 답이있다.

 

 

우리는

 

 이제 어렵고 싫은 시간을

 

나 홀로 걷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통하여 함께

 

그리고 그 안에서 그리고 하나되어 하는 것!

 

 

이러한 인식이 바로 성령인식이다.

 

 

결국 싫은 것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싫은 사람이나 해애할 일에 대한 거부가 아닌

 

 누구와 함께 누구를 통해 그리고 누구안에서

 

 그리고 누구와 하나되는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바로 그 누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