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최 강 신부님

첫사랑을 배신하다

김레지나 2011. 9. 24. 17:05

첫사랑을 배신하다

 

 

    “사라앙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며언~~~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오~~~”.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를 식혀주는 비가 오늘처럼 주룩주룩 내리는 날, 사선으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멍하니 바라보며 구성지게 꺾어가면서 이 노래를 부르다보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첫사랑이 생각납니다.

 

    사랑에 대한 개개인의 추억과 경험에 따라 사랑에 대한 생각도 천차만별이겠지만, 가슴시리도록 아팠던 제 첫사랑을 바탕으로 한 사랑에 대한 저의 느낌은 미치도록 함께 있고 싶은 마음입니다. 기쁨도 슬픔도 함께 겪으면서 모든 것을 나누어 가지고 싶은 마음입니다. 떨어져 있으면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두려움입니다.

 

    제가 5살 때로 기억됩니다. 저는 제 옆집에 사는 ‘공주’를 참 좋아했었습니다. 공주가 그 아이의 본명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예뻤는지 사람들은 모두 그 아이를 공주라고 불렀고, 저는 동화 속에나 등장하는 공주가 제 옆집에 살고 있다는 것이 다만 신기하고 행복했을 뿐이었습니다.

 

    저 역시 사람들을 따라서 그 애를 공주라고 불렀고, 나중에 크면 꼭 공주랑 결혼할거라고 일찌감치 부모님께 허락을 구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누나들, 형이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저는 하루 중의 대부분의 시간을 제 또래의 다른 남자 아이들로부터 공주를 지키는데 할애해야만 했습니다. 미인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정성과 선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저는 일찍 깨달은 셈입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제 어머니께서 옆집의 공주를 불러주시고는 커다란 야외 욕조에 둘을 벌거벗긴 채로 풍덩 집어넣어주셨습니다. 맘마 미아! 야외 욕조에 물을 채워달라고 그토록 애원하며 조르는데도 물을 아껴 써야 한다며 가뭄에 콩 나듯이 어쩌다 한 번 물을 채워주시던 ‘엄마’가 그 날은 제가 조르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물을 채우시고 그 속에 풍덩 넣어주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나의 공주와 함께! 그것도 벌거벗은 채로 크크큭! 세상이 다 제 것 같았습니다. 더운 여름날, 수영장처럼 크게 느껴지는 야외 욕조에서 물장구를 치고 놀 수 있다는 그 기쁨, 재미, 행복, 희열... 등등. 그것도 공주랑 함께! 재클린 케네디를 차지한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가 살아온다 해도 그런 호사를 누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의 삶은 아마 그런 기분으로 영원히 사는 것이겠지요.

 

    무더운 여름날 공주와 함께 물장구를 치며 한참을 정신없이 놀던 제게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어머니의 기운이 집안 전체에서 느껴지지가 않았어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부리나케 욕조를 빠져나와 온 집안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어머니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치사한 엄마, 공주까지 불러다가 나를 물놀이에 정신없도록 만들어 놓고 혼자 나가시다니...” 다른 생각을 더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틀림없이 저를 떼어놓고 시장에 가시려고 기차를 타러 역에 가셨을 것입니다.

 

    저는 물놀이를 하던 그 원초적인 자연의 모습 그대로 세상이 떠나가라 울면서 10분쯤 걸리는 기차역을 향해 뛰었습니다. 저 쪽에서 기차가 플랫포옴을 향해 다가올수록 제 울음소리는 기차의 화통소리를 능가할 정도로 더욱 커졌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듣지 못해도 어머니들은 당신 아이의 울음소리를 기가 막히게 듣습니다.

 

    그 날, 어머니는 결국 기차에 오르시지 못했고, 기차 안의 사람들이 벌거벗은 채 ‘앙앙’ 울고 있는 저를 보고 웃어댔습니다. 지금의 제 나이보다도 훨씬 어렸던 40년 전의 젊은 어머니는 너무 창피한 나머지 얼굴이 붉어지면서 저의 등짝을 때렸습니다. 등짝이 엄마의 얼굴처럼 붉게 변하도록 맞아도 저는 엄마랑 함께 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어머니가 이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 세상을 다 얻은 듯 기고만장했지만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는 짧은 시간들은 저에게는 죽음이나 다름없었지요. 저는 어머니와 ‘함께 있는’ 생명의 시간을 위하여 그렇게 좋아했던 공주까지 포기했어야만 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날 공주가 느꼈을 황당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치사한 녀석, 그렇게 나 좋다고 따라다닐 때는 언제고 자기 엄마가 눈에 안 뵈니까 나를 그렇게 헌신짝처럼 버려? 넌 끝났어!!!”

 

    지금도 가끔 그때의 추억을 되살리면서 이제는 주님과 ‘함께 있는’ 생명의 순간들을 영원토록 이어가기 위해 어린 시절의 공주처럼 좋고 사랑스러운 많은 것들을 버려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세상의 모든 좋다는 것들을 다 버리고라도 스승이신 주님과 하나가 되어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그 순간들이 제게는 참 생명의 순간들이 될 것입니다.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말씀하시듯, 주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 나무의 가지입니다.(요한15,5) 누구든지 주님을 떠나지 않고 또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있다’면 그들은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어머니이신 대지에 뿌리를 깊이 박고 당신의 생명가지들인 우리를 향해서 힘차게 수액을 뽑아 보내주시는 우리들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주님께 대한 우리들의 진정한 사랑은 주님과 함께 있고 싶은 너무나도 간절한 마음이고 주님을 떠나면 살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기 위해서는 포도나무의 가지가 생명의 수액을 열심히 취해서 점점 더 굵고 강한 가지로 변해 가듯이, 우리들 역시 영성의 수액이라 할 수 있는 주님의 말씀을 취해서 내 것으로, 내 삶으로 변화시켜가는 생명활동을 쉬지 않고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말씀’을 더욱 생생하게 들으며 언제나 깨어있기 위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평상시 분주히 생명의 수액을 취하지 않은 가지는 가벼운 폭풍우에도 꺾여 버리듯이 평상시에 열심히 기도하지 않고 열심히 말씀에 심취해 있지 않으면 인생의 가벼운 고통에도 생명의 주님을 떠나 다른 곳을 헤매게 됩니다.

 

    그러나 단순히 주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수액을 열심히 취하기는 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농부이신 아버지께서 쳐내버릴 것입니다. 새가 한 쪽의 날개로 날지 못하듯이, 한 방향의 노를 젓는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원을 맴돌고 있듯이 기도만으로, 단순히 주님과 함께 있다는 느낌만으로는 더욱 깊은 주님과의 일치를 향해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 가지는 그 나무 자체의 운명과 온전히 하나가 됩니다. 주님이라는 나무와 함께 있는 우리들이 맺어야 할 열매는 무엇일까요? 주님의 전 생애와 가르침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는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 않고 행동으로 구체적인 사랑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구체적인 행동으로 사랑을 살아갈 때 우리는 주님과 ‘함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1요한 3, 18-19)

 

    기도와 행동으로 우리는 주님과 함께 있을 수 있으며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은 세상 어느 것보다 함께 있고 싶은 그 분을 사랑한다는 고백이며, 그 분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몸짓은 그 분의 운명에 나의 운명을 결합시키겠다는 의지입니다.

 

    저는 더 사랑하는 어머니와 함께 있기 위하여 첫사랑 공주를 배신해야만 했던 쓰라린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더 사랑하는 어머니와 함께 있기 위하여 공주를 버리고 벌거벗은 채 어머니를 향해 달려 간 경험이 있습니다. 공주에게는 심각한 배신행위가 되었을 그 때의 그 결단과 행동을 되살려 이제 저는 다시 한 번 세상의 모든 좋다는 것들을 다 내려놓고 더 좋고, 더 사랑스러운 주님과 함께 하고자 멀리 떠나갑니다.

 

    새로운 여행길에서 만나게 될 인연들과 부딪히게 될 새로운 도전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차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포도나무이신 주님과 온전히 하나 되는 더욱 굻고 강한 주님의 가지가 되어 선교사제로서의 제 삶의 작은 열매를 맺기 소원입니다. 주님께서 저와 항상 동행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 신부 

                   

'강론 말씀 (가나다순) > 최 강 신부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얌 장수   (0) 2011.09.24
참새의 하루   (0) 2011.09.24
☆★☆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0) 2011.09.03
존재 자체가 얼마나 큰 은총인지  (0) 2011.09.03
양이 꽃을 먹었을까?  (0) 2011.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