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와의 전쟁
이 곳 밀라노에서 내가 지내고 있는 집 앞으로는 우뢰와 같은 소리를 내며 굴러가는 궤도전차 트람이 지나는 길이 있어 가뜩이나 소리에 민감한 나로서는 지옥이 따로 없다고 느껴질 지경이다.
특히 모두들 휴가를 떠나고 텅비어 있는 요즘 한 밤중이 되면 그 소리는 더욱 크게 전해져 집 앞은 몽고메리와 롬멜이 부활하여 한 바탕 전차전을 벌이는 북아프리카의 전장이 되어 버린다.
한국에 있는 누나와 전화 통화를 하던 중에 아주 쉽게 이 소리를 극복할 비법을 전수받았다.
"어때, 잘 지내?"
"잘 지내긴요. 이 소리 안들려요? 전차 소리때문에 잠을 못자서 아주 죽을 지경이예요. 밤마다 전장에 있는 기분이라니까요.....투덜 투덜...."
"바닷가에서 잠이 든 적이 있었는데 파도소리가 크게 들려오는데도 아무 거슬림없이 아주 잘 잔적이 있거든? 전차 소리를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여봐. 소리는 리듬이 있거든......"
전화를 끊고 나서 곧바로 밖에 나가 그 전차에 몸을 실었다. 전차는 밀라노의 명물인 두오모 성당을 지나 종점까지 참 많은 사람들을 싣고 천천히,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전차 안에는 이탈리아인, 중국인, 아랍인 등이 타고 있었는데 아무도 나처럼 전차소리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는듯 했다. 돌아오는 길에 두오모 성당 앞에서 내려 광장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마시는데 내 집과 상당히 떨어진 그 곳을 달리는 전차소리는 꽤 낭만적으로 들려왔다.
모든 것이 속도에 미친듯 빠름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이렇듯 천천히 지나는 전차는 과연 어릴 적 집 앞을 지나던 증기 기관차를 보는 듯 편안하기까지 했다.
내 집과 떨어진 곳의 전차소리와 내 집 앞의 전차소리...... 같은 소리가 이렇듯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들리는 대로 듣지 못하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내 탓 아닐까?
우리는 이렇듯 '나'에 씌워 '너'를 보고 듣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집에 있을 때에도, 두오모 성당 광장에 앉아 있을 때에도 지나가는 전차들 안에는 전차의 소음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단지 그 편리함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 밤에는 드디어 치열한 전차전쟁이 막을 내리게 될 것 같다. 나의 승리도, 롬멜의 승리도 그렇다고 몽고메리의 승리도 아닌, 이 늦은 밤에도 운전석에 앉아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운전기사와 그와 함께 늦은 밤 가족들을 찾아 들어가는 작은 사람들의 승리로......
나는 이제 방 안에서도 그들과 함께 전차를 타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날 것이다. 아련히 멀어져 가는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를 벗어 던지고 하느님과 세상을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는 그 때를 꿈꾸면서 끝없이 끝없이......Z Z Z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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