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지 나는 이별에 대해서는 전혀 익숙해 지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겉으로는 선교사제로 불림 받은 사람으로서 아무렇지도 않게 맘 먹을때 마다 불쑥 불쑥 이별을 고하고 떠나갈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이려 애쓰지만 사실은 전혀 그게 아닌 것 같다.
이유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오죽하면 서품때 평생 사제 삶의 모토로 정한 말씀이 '떠나라'였을까?
오늘은 그 동안 아주 가깝게 지내왔던 인도 출신의 스테파노 신부와 마지막 저녁을 함께 했다.
그가 성서를 공부하고 있는 관계로 다음 학기부터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성서 대학으로 학업의 자리를 옮겨가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나 또한 다음 학기 부터는 살 곳을 바꿔야하니 이래 저래 힘든 이별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집 근처의 중국 식당에서 오랫동안 인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가만히보니 이 스테파노 신부 역시 나만큼이나 정든 사람들과의 이별에 익숙하지 못한듯 했다. 아니 나보도 더한 사람이었나?
식사하는 내내 '인도에 정말 찾아갈께, 그때 보자구'하면서 나는 웃고 있었지만 그는 또 다시 이스라엘이라는 곳에서 시작될 낯선 세계에서의 생활이 조금은 짜증나는 듯한 표정으로 '그게 언제쯤될까?'하면서 속상해 했다.
그가 말했다. "최신부, 우리 인도사람들이 말할 때는 눈빛과 표정으로 말을 해. 그래서 상대방이 말할 때 우리들은 꼭 상대방의 눈을 잘 보면서 그가 입으로 쏟아내는 단어들보다 더 중요한 정보들을 얻지.
인도사람들의 절대 다수는 극빈층이라고 할 수 있어. 그들은 정말 너무나 가난하게 살어. 그들 앞에서 가톨릭 사제, 수도자들의 청빈서원은 오히려 사치스러운 예식처럼 느껴질 정도니까......
난 최신부가 꼭 내 나라에 한 번 와줬으면 좋겠어. 그래서 내가 내나라, 내 땅에서 그 순수한 백성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약속하는 거지?
최신부, 넌 내가 외국 생활에서 만난 외국신부들 중에 가장 진실한 눈빛으로 나를 친구라고 불러준 사람이었어. 널 잊지 못할거야......"
그때 처음으로 스테파노 신부의 커다란 눈을(약간 가무잡잡한 피부의 인도사람들 눈은 정말 크고 뚜렷하다)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가 말하는 진실한 사람의 눈빛은 나에게가 아니라 오히려 그 곳에 있었다.
"그래, 스테파노 신부, 그만 일어나서 좀 걸을까?"
집을 향해 걸으면서 나는 벌써 할 말이 하나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항상 이런 순간에 나는 할 말을 잊어버리는 것이 문제다. 익숙해지면 좀 나을줄 알았는데......
별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는데 벌써 집에 도착해 버렸다. 깊은 포옹과 함께 서로의 건강과 선한 사제 생활을 위해 기도하고는 헤어졌다.
왜 아까 스테파노가 자기 나라 방문을 약속하느냐고 되물었을때 아무 말도 못하고 다른 말로 얼버무렸을까?
왜 헤어지기 전에 인도의 연락처와 이메일 주소를 묻지 않았을까?
왜 미리 준비해간 몇 푼 안되는 여비를 끝내 전해 주지 못하고 호주머니 속에서만 만지작 거렸을까?
늦은 시간이지만 다시 방문을 두드려야 할까? 아니면 편지를 쓸까?
"아... 이별은 싫어. 추억의 그림자가 너무 많아."...... 이 노래 제목이 뭐였더라?
"다닐 때 돈주머니도 식량자루도 신도 지니지 말 것이며 누구와 인사하느라고 가던 길을 멈추지도 마십시요.(루가 10, 4)"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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