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 읽은 '성웅 이순신' 전기는 나로 하여금 항상 영웅으로 존재하기를 꿈꾸게 만들었다.
죽어가면서까지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말을 흉내내면서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키웠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때였던가... '엄마없는 하늘아래'라는 영화를 교실 칸막이를 튼
시골 초등학교 강당에서 단체 관람하던 날, 영화 보는 내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나에게 나는 내 스스로 깜짝 놀랐다. 곁에 앉아있는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강당 밖으로 뛰쳐나와 저 쪽 한구석에서 엉엉 울면서 나는 '영웅이 될 사람이 이러면 안되는 거잖아'하면서
아무리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허사였다.
한참을 울고 앉아 있는데 저쪽에서 담임선생님이 다가오고 계셨다.
나는 '엄마같은 선생님이 내 어깨를 다독거려주시면서 위로해주시겠지'하는 기대를 가졌었던 것 같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놈의 자식, 이름은 최강이면서 고작 영화보면서 울기나 하고... 고추떼서 여자애들한테나 줘버려라."
그 날 이후, 나는 눈물 흘리는 것을 잊어버렸다. 내 언어와 행동은 점점 거칠어져 갔고 제법 세상에서 요구하는
'진짜 싸나이'로서의 면모를 키워갔다.
무슨 일에서든지 지기 싫었고 어느 공동체에서든지 항상 내 이름처럼 강하고 잘 나가는 영웅으로 행세했다.
하지만 나 혼자 잘난 거짓 영웅에게도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이 있었고,
크시고 크신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처럼 부족한 죄인인 나는 이제 사제가 되었다.
서품식때 부복을 하고 있는 동안 나는 또 한번 주위의 동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소리죽여가며 울었다.
이번에는 밖으로 뛰쳐 나갈 수도 없었다.
당시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대했던 메시아는 마땅히 로마제국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영웅이었어야만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상에 오실때부터 하늘의 군대를 이끌고 구름을 타고 오는 영웅이 아니었다.
너무나 가난하게 이 땅에 오셨으며, 세상에 머리 둘 곳 조차 없었고, 그의 최후는 오히려 비참하기까지 했다.
항상 영웅의 화려한 삶을 추구하면서 살아온 내가 이제는 그런 비참한 예수를 평생의 모델로
삼고 가난한 이웃들과 온전히 일치하는 삶을 당신께 봉헌하겠다고 결심하며 땅바닥에 엎드려 있을때
나는 초등학교 4학년때 잃어버린 한 없는 눈물을 다시 흘리기 시작했다.
결코 억울해서 그런것이 아니었다. 그 동안 허황된 영웅의 삶을 추구하면서 다른 이들의 눈에게 눈물을 짓게 한 죄들이 떠올라서 울었고,
이제야 다시 진정한 영웅의 삶을 찾았고 진정한 나를 찾았다는 기쁨때문에 울었다.
요즘은 가끔씩 고마움, 감격, 그리움, 서러움 등의 갖가지 이유로 눈물을 흘린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그냥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눈물을 흘린다.
라자로의 죽음 앞에서 그 토록 서럽게 통곡했던 예수님을 떠올리며 나 역시 타인의 불행 앞에서 그 토록 서럽게 통곡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이제는 이순신 장군 같은 영웅이 되고 싶지 않다.
고아와 과부, 창녀와 세리, 봉사와 절름발이들과 함께 아파하면서, 웃으면서
그냥 조용히 그 분의 흉내를 열심히 내면서 살다가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
사실 지금 이 시간에도 내 주위에는 수많은 진정한 영웅들이 존재하기에
나와 너, 그리고 이 세상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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