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반영억 신부님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김레지나 2011. 6. 26. 14:12

2011년 624일 금요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
(루가 1,57-66.80 )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모태에서부터 이사야를 부르시고 이름을 지어 주셨다. 예언자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우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다시 일으키신다(제1독서).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이자 신약의 시대를 여는 선구자이다. 그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며 주님의 길을 성실히 준비한다(제2독서). 엘리사벳은 요한을 낳는다. 비록 즈카르야의 친척 가운데에는 요한이라는 이름이 없지만 주님의 천사가 일러 준 대로 요한이라고 불렀다. 그러자 즈카르야는 입이 풀려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인간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구원의 역사를 열어 가신다는 뜻이다(복음).

 

오늘의 묵상

 

‘요한’이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불쌍히 여기신다.’라는 뜻입니다. 그 의미대로 세례자 요한은 수많은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세상을 구원하러 오시는 주님께 인도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사람들이 “당신은 엘리야이시오?” 하고 물으면, “아니오.”라고 대답합니다. 또 “그러면 오실 그분이시오?” 하고 물어도 마찬가지로 “아니오.”라고 대답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신원을 묻는 사람들에게 당당히 대답합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요한 1,23). 그러면서 그는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 1,26-27)라고 자신을 낮춥니다. 요한은 주님의 길을 닦고 준비하는 주님의 종의 자세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종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주님과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자신을 낮출 줄 압니다. 오랜 시간 동안 숱한 유혹을 다 견디어 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 속에 머무를 줄 알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그 삶에서 ‘믿음의 향기’가 납니다. 세례자 요한은 한평생 그 믿음의 향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그 향기를 주셨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은혜로움을 보여 주신다

  -반영억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많이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메시아의 길을 세례자 요한을 통하여 예비하셨습니다. 이 시간 세례자 요한의 삶에 대해 묵상 하는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은 어머니 엘리사벳은 물론 모든 친지와 이웃들에게 커다란 기쁨이었습니다. 모든 새 생명의 탄생이 기쁨이기도 하지만 아기를 낳지 못한다고 여겨지던 여인에게서 그것도 돌계집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늙은 여인에게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기쁨을 가지고 이웃들과 친척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의 이름을 짓게 되는데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름을 짓게 됩니다. 그 이름이 요한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성을 바꿔버린 것입니다. 우리 표현대로 하면 돌림자를 따야 하는데 돌림자를 따지 않고 엉뚱한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친척들은 조상의 이름을 물려주려고 했지만 아기의 부모는 하느님께서 주신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사실 이 이름을 정하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즈카르야, 엘리자벳 부부는 열심히 경건하게 지내는 사람이었는데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제들이 관례에 따라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분향을 하게 되는데 즈가르야가 분향할 사람으로 뽑혔습니다. 분향하고 있는 동안에 천사가 나타나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 하느님께서 네 간구를 들어주셨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터이니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겠지만 많은 사람이 그의 탄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는 주님 보시기에 큰 인물이 되겠기 때문이다.(루카1,13-15)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즈카르야는 저는 늙은이 입니다.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무엇을 보고 그런 일을 믿으라는 말입니까?(루카1,18)하고 천사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간구를 들어주었다고 했는데도 그 말을 의심하여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눈에 보이는 표징을 구했습니다. 이 불신 때문에 그는 천사의 말이 이루어질 때까지 말을 할 수 없는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인간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은총을 말릴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기왕이면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느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결국 즈카르야는 하느님께서 주신 이름 요한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였을 때 입이 열렸습니다. 좀 더 일찍 철이 났으면 좋았을 뻔 했습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은혜로우심을 보여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이름의 의미를 새겨들어야 합니다. 사실 요한을 통하여 하느님의 은혜로움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세례는 회개를 위한 것이지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이 곧 오신다고 말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의 세례에로 인도되었고 그의 능력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그가 혹 메시아기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관심을 돌리게 하였고 심지어는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몇몇 추종자들을 예수님의 첫 제자가 되도록 보내기까지 하였습니다. 메시아 예수님께 대한 그의 태도는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3,30)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한 모든 일은 다만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그는 겸손의 사람입니다. 

요즘세상은 줄서기를 잘해야 하고 자기에게 줄을 세우려 합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자기의 인기가 오르면 오를수록 그 초점을 예수님께로 향하였습니다. 주님은 바로 오늘도 요한과 같은 사람을 통하여 하느님의 은혜로움이 세상에 전해지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보다 앞서 온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요한을 지적하시면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위대한 인물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말씀다음에 덧붙인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미소한 자라도 그 사람보다 더 위대하다.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의 정체성을 확실히 안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분수를 알고 주제파악을 확실히 하여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각자 자기의 위치를 알고 거기에 알맞은 삶을 살아야하겠습니다. 그리하면 하느님의 나라에서 위대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