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이수철 신부님

사랑과 지혜, 그리고 자유 -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김레지나 2011. 2. 26. 21:30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2.13 연중 제6주일

집회15,15-20 1코린2,6-10 마태5,17-37

 

 

 

 

 

"사랑과 지혜, 그리고 자유"

 

 

 

사랑은 우리의 모두입니다.

사랑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살게 하는 힘입니다.

만병의 근원 역시 사랑 결핍에서 시작되며 만병통치약 또한 사랑뿐입니다.

태양과 같은 사랑의 빛이 사라지면 내면은 캄캄한 절망의 어둠입니다.

사랑해서 생명의 사람입니다.

사랑, 생명, 사람이 서로 하나로 연결되었음을 봅니다.

항구한 사랑이 제일입니다.

사랑의 끈 놓치면 죽음입니다.

항구히 노력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며칠 전 써놓은 ‘성소(聖召)는 이런 것’이란 글을 나눕니다.

산책 때 마다 안아보는 아름드리 푸른 솔과

또 얼마 전 외출했다가 물끄러미 바라본 한강을 생각하며 쓴 글입니다.

 

 

 

몇 살이나 되었을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산책 때 마다

꼭 안아보는

아름드리 푸른 솔

지날 때 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유유히 흐르는 한강(漢江)

성소(聖召)는

이런 것

몇 살이나 되었을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온갖 시련과 고난 중에도

늘 한결같은 아름드리 푸른 솔과 유유히 흐르는 한강은

모두 항구한 인내의 사랑을 상징합니다.

성소는 이런 것입니다.

항구한 사랑의 인내 있어 궁극의 승리자입니다.

 

 

사랑의 모범은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평생 배우고 따라야 할

영원한 사랑의 스승이자 주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정의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다.’입니다.

사랑할 때 부수적인 문자의 율법을 넘어 본질을 직시합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길은

곧이곧대로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사랑의 노력을 통해서입니다.

율법을 지키는데 전념할수록

따라붙는 완벽주의의 영적교만에 사람은 실종되고 율법만 남을 수 있습니다.

율법이나 계명들 결국은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으로 이들을 지켜야만 이들에 매이지 않습니다.

사실 하느님을 사랑하면

저절로 율법들을 지키며 사랑의 본질 깊이에 도달해 자유로워집니다.

율법을 둘로 요약하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둘로 요약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넘어

형제를 미워하거나 성을 내는 것 역시 살인임을 깨닫습니다.

근본적인 마음의 뿌리에서 살인의 원인이 될 성을 내는 마음부터 정화합니다.

이게 진정한 회개입니다.

회개할 때 회복되는 순수한 마음에 사랑입니다.

 

간음 역시 음욕을 품고 바라볼 때 이미 간음한 것이라 말씀하시며

역시 마음 뿌리부터 회개로 정화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아예 맹세는 하지 말라하시니

우리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말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랑의 관상이 깊어질수록 율법이나 계명의 문자를 넘어

하느님 사랑의 본질을 직시합니다.

마음 원천에서부터 정화하여

더욱 순수한 사랑으로 이웃을 대하게 됩니다.

저절로 간접적 살인의 미움이나 분노도,

음욕을 품고 바라보는 눈길도 사라집니다.

사랑과 진실은 함께 갑니다.

사랑할수록 진실해져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할 것은 ‘아니요.’하며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뿐

군더더기 변명이나 핑계를 대지 않습니다.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입니다.

역시 사랑과 지혜는 함께 갑니다.

 

사랑과 지혜의 정점에서 만나는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님은 감추어져 있던 하느님의 신비로운 지혜입니다.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떠한 눈도 본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 떠오른 적이 없는 지혜를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우리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이 지혜를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할 때

성령을 통하여 계시되는 지혜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입십니다.

사랑할 때 지혜자체이신 주님을 만나

지혜로운 삶에 올바른 분별의 선택입니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있다.

  그분께서 네 앞에 물과 불을 놓으셨으니,

  손을 뻗어 원하는 대로 선택하여라.

  사람 앞에는 생명과 죽음이 있으니,

  어느 것이나 바라는 대로 받으리라.”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은 행복합니다.

영성생활은 어렵지 않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면 됩니다.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며

계명을 지킬 때 저절로 지혜로운 삶, 자유로운 삶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지혜는 위대하니

그분께서는 능력이 넘치시고 모든 것을 보십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지혜롭게 주님을, 계명을, 생명을, 사랑을, 희망을 선택할 때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입니다.

언젠가 거기에서가 아닌 오늘 지금 여기서

주님을, 생명을 선택하여 행복하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이

진정 지혜로운 삶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지혜이시며, 자유이십니다.

 

사랑과 지혜, 자유가 하나로 연결됩니다.

바로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랑이자 하느님의 지혜요, 하느님의 자유이십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서 환히 들어나는

하느님의 사랑과 지혜, 자유로움입니다.

사랑할수록 본질을 직시하는 지혜에 저절로 뒤따르는 자유로운 삶입니다.

좋으신 주님은 이 거룩한 주님의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부족한 사랑을 도와주시어,

푸른 솔 같은 항구한 사랑의 삶을,

유유히 흐르는 강 같은 자유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화답송 시편 119장 1-2절 말씀으로 강론을 끝맺습니다.

 

“행복하여라,

  온전한 길을 걷는 사람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그분의 법을 따르는 사람들,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찾는 사람들!”

 

행복은 멀지 있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서 주님을 사랑하여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살 때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