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2.14 월요일
성 치릴로 수도자(827-869)와 성 메토디오 주교(815-885) 기념일
창세4,1-15.25 마르8,11-13
"과정에 충실한 삶"
오늘 창세기 1독서 내용은
오늘날도 여전히 현실성을 띠는 참으로 인간적인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독서 중 다음 대목이 중요한 묵상감입니다.
“카인은 땅의 소출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아벨은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바쳤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
그래서 카인은 몹시 화를 내며 얼굴을 떨어뜨렸다.”
카인의 처신에 따라 상황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하느님이고 인간은 인간입니다.
열쇄는 하느님께 달려있습니다.
‘어떻게 처신하느냐?’ 카인 앞에 주어진 과제였습니다.
하느님의 입장에서 많이 생각했어야 할 카인입니다.
카인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왜 아벨의 제물은 굽어보시고 카인의 제물은 굽어보시지 않았는지
아무리 물어도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하느님 마음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하여 카인의 아벨에 대한 질투와
도대체 납득할 수 없는 하느님께 대한 분노로 타오르는 마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에 기름을 붓는 듯한 주님의 다음 말씀입니다.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고, 어찌하여 얼굴을 떨어뜨리느냐?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주님의 이 말씀이 답입니다.
카인이 진정하여 이 말씀을 받아들였다면
아벨을 살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보시는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충실입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결과가 어떠하든 하느님께 맡기고
자신에게 주어진 과정에 충실하면서 자신을 지켰어야 하는 건데
카인은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질투와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종종 겪는 일이 아닙니까?
최선을 다했는데 왜 이런 결과를 주셨는지 하느님을 원망하는 마음,
그대로 카인 같은 마음입니다.
최선을 다한 과정이라면 어떤 결과든
하느님께 맡기고 받아들이는 게 깊은 신뢰의 믿음입니다.
바로 카인에게 이런 믿음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이런 믿음의 시련을 통과하지 못하고
질투와 분노의 유혹에 넘어가 동생 아벨을 살해한 카인입니다.
아담과 하와 부부의 죄가 유전됨을 봅니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아담을 찾는 물음과 흡사합니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하느님께 대한 반항심 가득한 참 무책임한 카인의 대답입니다.
이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 하와처럼
카인도 정주의 땅에서 쫓겨나 떠돌이 신세가 됩니다.
아담, 하와 부부의 심정도 참 착잡했을 것입니다.
이어 자비하신 하느님은 카인의 안전보장을 위해 표를 찍어 주시고,
아담에게는 죽인 아벨 대신 셋을 주시어 위로와 힘이 되어 주십니다.
하느님은 이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배려해 주시어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살게 하십니다.
하느님이 아니라 카인이 문제였듯이
복음 역시 주님이 문제가 아니라 바리사이들이 문제였음을 봅니다.
주님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미 들어난 표징만으로도 넘치는 데
믿음의 눈이 없어 이들을 보지 못하는 자에게는
아무리 다른 표징을 보여줘도 믿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다음 깊은 탄식의 말씀이 이해됩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믿음의 눈이 없는 세대와는 아무리 논쟁해도 해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주님은 미련 없이 이들을 떠나십니다.
결국 오늘 말씀은 오늘의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문제는 주님에게, 또 타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반응하는 나에게 있습니다.
부단히 하느님의 뜻을 찾으면서 결과는 하느님께 맡기고
과정에 충실할 때 모든 것은 잘 될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 중
우리 믿음의 눈을 활짝 열어 주시어
오늘도 하늘나라 표징들 가득한 세상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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