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2.16 연중 제6주간 수요일
창세8,6-13.20-22 마르8,22-26
"개안(開眼)의 여정"
매일미사 책에 소개된
헬렌켈러의 ‘내가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이란 시가 감동적입니다.
헬렌켈러는 한 살 때 심한 열병으로
청각과 시각을 영구히 잃은 중증 장애인이었으나
앤 설리반 선생님은 지극 정성의 사랑으로
그를 정상인 못지않게 성장시켰습니다.
“첫째 날
나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나를 가치 있는 삶으로 이끌어 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 가겠다.
손으로 더듬어 알 수 있었던 선생님의 얼굴을 한 참 동안 바라보며
그녀의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겠다.
그러고는 밖으로 나가 나무와 꽃들 그리고 노을을 바라보고 싶다.”
새삼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습니다.
몸의 눈만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의 눈도 있습니다.
육안의 시력은 세월과 더불어 약해져서 돋보기를 쓰게 되지만
심안의 시력은 세월과 더불어 좋아져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심안의 시력은 갈수록 좋아집니까?
육의 탄생에 이은 영의 탄생이 세례입니다.
세례를 통해 드디어 마음의 눈이 열렸습니다.
보이는 것들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마음의 눈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오늘 복음 중
예수님의 맹인 치유나
창세기에서 노아가 홍수 과정 중 구원 받은 이야기 역시
세례의 상징(a symbol of baptism)이었습니다.
복음의 맹인이 상징하는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마음의 눈이 먼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마음의 눈이 먼 철부지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주님의 은총으로 눈이 열린 맹인은
바로 세례로 마음의 눈이 열린 우리를 상징합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 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똑똑히 보게 됩니다.
맹인이 눈이 열렸을 때 본 얼굴은 오매불망 그리던 주님의 얼굴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세례로 마음의 눈이 열렸을 때 보는,
모든 성인들이 보고 싶어 했던 주님의 얼굴입니다.
헬렌켈러가 보고 싶어 했던 설리번 선생은 바로 주님의 얼굴을 상징합니다.
매일 미사 중 우리들은 심안의 시력이 회복되어
열린 마음의 눈으로 주님을 봅니다.
창세기에서 홍수 중에 주님의 은총으로 구원 받은 노아가
새롭게 시작하는 과정은 그대로 세례로 새로 태어난 우리들을 상징합니다.
“노아는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들 가운데에서 번제물을 골라
그 제단 위에서 바쳤다.”
세례로 새로 태어난 우리들은 노아처럼
매일 성무일도와 미사의 공동전례를 통해
성전의 제단에 자신을 봉헌함으로 새로 시작합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마음의 눈은 활짝 열리고 심안의 시력은 더욱 좋아집니다.
우리 수도여정은 물론 믿는 이들의 여정 역시
한 번의 세례로 끝난 개안이 아니라
끊임없이 마음의 눈 열려가는 개안의 여정입니다.
냉담하지 않을 때 갈수록 깊어지고 넓어지는 마음에, 마음의 눈입니다.
노아의 정성스런 봉헌 제물에 감동하신 주님의 말씀이 의미심장합니다.
악이 만연된 세상을 보시고 사람들을 지어내신 것을 후회하시고
세상의 모든 것을 홍수로 쓸어버리신 하느님께서
자신이 행위가 지나쳤던 것을 반성하시며 마음 깊이 다짐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생물도 파멸하지 않으리라.”
하느님은 사람의 현실에 눈높이를 맞추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신 후,
악한 뜻을 품기 마련인 사람을
예측 가능한 반복적인 자연의 순환 속에 살게 하심으로
그의 삶을 규제하십니다.
외적 자연의 리듬이나 일과표에 따른 삶이
사람의 마음을 잡아 주고 안정과 평화를 주기 때문입니다.
“땅이 있는 한,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으리라.”
자연 리듬에 따라 반복의 삶의 충실하다 보면
질서 있는 삶에 악한 마음도 정화되고 내적 삶도 더욱 깊어져
마음의 눈의 시력도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미사은총으로
우리 마음의 눈을 열어주시고 심안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시어
매일 새 하늘과 새 땅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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