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생님이 예고도 없이
밤 10시에 집을 찾아오신 적이 있다.
다음날까지 보고해야할 계획서를 만드는 일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혼자서 일주일 넘게 해보려 하셨는데, 도저히 안된다고 하시면서
초안도 없이 개요만 말씀하시면서 부탁하셨다.
마감이 임박한,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을 부탁하려고
밤에 찾아오는 손님은 환대받지 못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내 기분은 반대였다.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상황이 더 어려웠으면 더 기뻐했을 것이다.
그 선생님께 받은 사랑을 갚을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그런 일에 서투른 것에 감사했고
선생님이 나를 그만큼 편하게 부탁할 상대로 여겨줘서 감사했고
선생님이 밤중에 어려운 시간에 찾아와준 것도 감사했고
내가 도와드릴 능력이 있어서 감사했다.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계획서를 만들면서
그런 기회를 만들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우리가 하는 일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고
그 사랑에 보답할 상황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신이 나고 기쁠 것이다.
하느님을 위한 일을 할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겸손한 마음으로 깨어있을 수 있기를 두려운 마음으로 청해야겠다.
2.
관계 속에는 꼭 놓치지 않아야 할 타이밍이 있다.
내 한결같은 사랑을 받은 어떤 이가
여러가지 일로 힘들어 마음이 괴롭다는 내 하소연을 듣고
십자가상 예수님께 군중들이 했음직한 대꾸를 했다.
그는 일 년에 하루나 이틀 있을까 말까한 드문 기회를 놓친 것이다.
나는 하느님을 위해서 그를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내 섭섭함과 서러움은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하느님께 기도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때에, 하느님이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와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한 일을 기억하신다면 용서해주시라고.
살면서 그와 내가 사랑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라고.
내가 놓친 무수한 사랑의 기회들로 인해 아파하셨을 하느님의 마음을
위로할 기회라 여기고 ‘기쁘게’ 슬퍼하기로 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타이밍을 놓치는 법이 없으시다.
자잘한 일들을 맡겨서 자꾸 가라앉으려는 내 마음을
붙잡아 일으켜 세워주셨다.
- 2011.1.19. 엉터리 레지나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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