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세례자 요한은 어리둥절했습니다. 위대하신 그 메시아께서 자신에게 직접 세례를 받으러 오셨으니 말입니다.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마태 3,15)
주님께서 명하신 ‘모든 의로움’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저 말씀으로 이해를 도우며, 결국 그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요한처럼, 우리는 막상 닥친 현실들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지나고 나서야 “아하!”하고 그때 왜 그랬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때’를 알기란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고통의 때에, 절망의 때에, 좌절의 때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으로 맞서 나간다면, 언젠가 주님의 타이밍을 늦게나마 깨닫고 감사할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미국의 전설적 테니스 챔피언으로 유명한 아서 애쉬(Arthur Ashe)는 메이저 테니스 대회에서 최초로 우승한 흑인 남성입니다. 1960년대 당시 버지니아주에서는 ”흑인은 테니스를 칠 수 없다“는 것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도 애쉬는 경비원의 아들로 태어난 흑인이었지만, 1968년 US오픈, 1970년 호주 오픈에서 우승했고, 1968년과 75년엔 세계 랭킹 1위를 차지하여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가 되었습니다.
1979년 심장질환으로 테니스 선수에서 은퇴한 그는, 테니스 코치, 방송해설자, 그리고 흑인들과 빈곤층 어린이를 위한 인권운동가, 자선사업가로 더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1990년 그는, 83년에 심장수술 때 받은 수혈로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되어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전보다 더 열정적으로 사회활동에 나섰습니다.
누군가가 그에게 “애쉬, 하느님은 당신에게 왜 그렇게 무서운 질병을 주었을까요? 그분이 원망스럽지 않습니까?”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들었을 때 나는 ‘왜 나에게?’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죽음에 대해서도 ‘왜 나에게?’라고 묻지 않겠습니다. 나의 고통에 대해서 ‘하필이면 왜 나에게?’라고 묻는다면, 내가 받은 은총에 대해서도 ‘왜 나에게?’라고 물어야 할 것입니다.”
1993년 50세의 나이로 그가 세상을 떠나자, 뉴스 앵커조차 그의 죽음을 전하면서 눈물을 흘렸고,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진정한 미국인의 영웅을 잃었다.’며 그를 애도했습니다.
그가 남긴 말 가운데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위대함을 성취하기 위하여, 당신이 있는 곳에서 시작하십시오. 당신이 가진 것을 사용하십시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십시오.‘ (인터넷 사이트 ’남산편지‘참조)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 저희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명 앞에서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겠습니다.
주님, 저희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와 고통에 처해서도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하신 주님의 말씀을 위로로 여기겠습니다.
주님, 그리하면 언젠가 ‘아, 그 때 그것이 노다지였구나!’라고 무릎을 칠 날이 반드시 올 것을 믿습니다. 아멘!
<이상 차동엽 신부님의 ‘신나는 복음묵상’ 2011년 1월 9일 복음묵상 책자에서 옮겼습니다. >
========================================
다음은 레지나의 수다입니다.
아침에 “왜 저한테만 좋은 것 주세요?”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미사 가는 차 안에서 차동엽 신부님의 복음묵상 테잎을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딱 같은 주제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애쉬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못 쓰는 글 써보려고 낑낑대지 않고 어영부영 지나쳤을 텐데, 글 쓰라고 등 떼밀린 것 같아서 하는 수 없이 횡설수설이라도 해볼까 합니다.
“왜 저한테만 좋은 것 주세요?”
마리아 언니는 아주 열심한 기도꾼이십니다. 언니와 하느님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언니의 사랑을 느끼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10여쯤 전에 마리아 언니의 아들이 중학생일 때의 일입니다.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는 아들을 위해 마리아 언니는 매일 새벽 5시에 집 근처 언덕에 올라가서 아들을 위해 한 시간씩 묵주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솔길을 왔다 갔다 하면서 기도하고 있는데, 말씀이 들렸습니다.
“육신의 병이 아니라 영혼의 병이 더 중요한데, 너는 왜 단식하지 않느냐?”
마리아 언니는 깜짝 놀라서 그 날부터 내리 사흘을 물만 먹고 단식을 했습니다. 매 달 첫 주에 사흘씩, 일 년 넘게 단식을 하며 기도를 하던 어느 날, 언니는 아들이 여전히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언니는 속이 상할 대로 상해서 거실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예수님께 항의했습니다.
“예수님, 어떤 사람은 단식기도 한 번만 해도 들어주시면서 왜 저는 일 년도 넘게 기도 했는데 안 들어주세요?”
언니의 마음속에 떠오른 답은
‘아, 내가 내 자식만을 위해서 기도했구나. 내 자식만을 위한 이기적인 기도였구나. 내 아들보다 더 망가지고 병든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겠구나. 내 기도가 헛되지는 않고 더 급한 다른 곳에 쓰였겠구나.’였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마리아 언니는 더 열심히 기도하게 되었고, 하느님을 알고자 하는 열망으로 더 열심히 영성서적을 읽었고, 하느님과 더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언니는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된 계기가 되어 준 아들에게 고마워하십니다.
언니의 아들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마리아 언니는 뜨거운 사랑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시느라고 바쁘십니다. 언니의 기도는 공을 쌓기 위해서나 이기적인 안위를 위한 기도보다 저만치 올라서 있습니다. 언니는 기도해야 할 일, 기도해줘야 할 사람을 ‘찾아서’,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면서 사랑과 연민이 담긴 기도를 하십니다.
마리아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제가 한심한 소리를 했습니다.
“예수님도 참, 생애 처음으로 건네는 말씀이 ‘너는 왜 단식하지 않느냐?’라니, 섭섭하지 않으셨어요? ‘사랑한다.’라든가 ‘너는 내 사람이다.’라든가 뭐 그런 황홀한 말씀도 해주실 수 있잖아요? 단식하라고 명령을 하셨으면 좀 일찍 들어주시든가...곧 들어주실 것처럼 시키기까지 하셨으면서....”
언니가 웃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사람들이 하느님께 절대 묻지 않는 말이 뭔 줄 알아? ‘왜 저한테만 좋은 것을 주세요?’라고 해.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하느님한테 금방 따지잖아. ‘왜 다른 사람들한테는 좋은 걸 주시면서 저한테는 안 주세요?’라고. 그러면서 좋은 것,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왜 자기한테만 주느냐고 묻지는 않는다는 거지.”
저는 대꾸할 말이 사실 없었지만 고집스럽게 한 마디 했습니다.
“하여간 예수님이 짓궂게 구실 때가 많은 건 사실이잖아요.”
저도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압니다. 하느님께서는 영원 속에서 보면 늘 우리 모두에게 가장 좋도록 섭리하신다는 것을요.
“하느님, 당신의 생각들이 제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것들을 다 합치면 얼마나 웅장합니까?”(시편 139,17)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2베드 3,9)
하느님께 우리에게만 좋은 것을 달라고 떼쓰고 싶고 다른 사람이 가진 좋은 것들에 대해 불평하고 싶을 때에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를 먼저 드리고 우리가 누리는 것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하느님, 저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저한테만 좋은 것을 주세요? 누구누구가 이러이러한 일로 힘들어하는 줄 아시잖아요? 그들에게도 은총 베풀어주세요. 원하시면 저를 좀 더 힘들게 하셔도 좋아요. 그들을 위한 봉헌이 될 수 있다면요. 대신 바라는 게 있어요. 하느님의 생각들이 저한테 얼마나 어려운 줄 아시지요? 제가 좀 더 성숙한 사랑을 하게 되어 모든 이들의 구원을 바라시는 하느님의 큰 그림을 헤아리고 감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세요. 기다려주시고 가르쳐주실 거지요? 아멘. ”
2011년 1월 13일 엉터리 레지나 씀
'강론 말씀 (가나다순) > 차동엽 신부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진주를 샀다. (0) | 2011.07.22 |
---|---|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사랑의 방주'에 태우셨으니 - 엉터리 레지나 (0) | 2011.06.28 |
'회색'이라고 말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아픔 (0) | 2011.01.10 |
'믿는 이'가 되라. (0) | 2011.01.04 |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0) | 2011.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