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송봉모 신부님

[스크랩] 5. 사소한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3)

김레지나 2011. 1. 12. 23:22

5. 사소한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3)

 

 (4) 상처의 텃밭을 제거하라

 

우리 안에는 어떤 모토가 있다.

'나는 완벽해야 한다.' '나는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된다.'

'내 사전에 2등은 있을 수 없다.'

이런 것들을 모토로 삼는 마음은 사소한 상처를 낳는 텃밭이다.

'상처를 낳는 텃밭'이란 상처받을 소지를 이미 자신 안에 갖고 있다는 소리다.

누군가가 또는 어떤 상황이 그 텃밭을 건드리면 상처를 받는다.

 

몇 년 전 프랑스의 유명한 요리사 베르나르 루아조가 엽총으로 자살했다.

그가 얼마나 유명한 요리사였던지 프랑스 텔레비젼 방송국들이

정규 뉴스 시간에 일제히 그의 죽음을 보도했다.

며칠 후에는 그의 생애에 대한 특집 다큐멘터리도 방영되었다.

그가 자살한 동기는 경영하던 식당이 프랑스 내 모든 식당의 등급을 매기는 평가기관으로부터 리본 하나만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27년간 그가 경영하던 식당은 늘 최고의 등급인 리본 세 개를 받았는데

자살하기 바로 전 해에 두 등급이나 아래인 리본 하나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수치심을 이기지 못한 베르나르 루아조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그는 '내 인생에 이등이란 있을 수 없다. 오직 일등만 있을 뿐이다.'

텃밭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 식당의 등급이 두 개나 떨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으면서 그동안 쌓아온 부와 명예를 뒤로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가 조금이라도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인정할 수 있었다면?

아무리 솜씨가 좋다 하더라도 언제나 정상에 있을 수는 없다.

'베르나르 루아조는 오히려 지난 27년간 프랑스 최고 요리사로 군림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어야 한다. 어떤 요리사가 무려 27년간이나 최정상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겠는가? 나이 들어 비록 리본 한 개의 요리사로 떨어졌을지라도 평생 최고 요리사로 살아온 자신의 경륜과 솜씨로 봉사하며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리본 두 개를 잃었다 해서 인생 전체를 포기했던 것이다. 결국 그의 마음 속에는 자기 외에 아무도 없었다.'

 

어떤 사람이 자기는 늘 명강의를 해서 청중을 감동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엄청난 상처의 텃밭을 갖고 다니는 것이다.

어떻게 매번 모든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신도 아닌 인간이, 아니 신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주님도 나자렛 회당에서 말 한번 잘못해 매맞아 죽을 뻔한 적도 있지 않았던가!

주님께서 그랬다면 하물며 누가 매번 명강의, 명강론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누가 강론을 하든 듣는 사람들은 다 자기 처지와 문제 안에서

자기 나름대로 듣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해도 전혀 감동이 없을 수 있는 법인데,

별 얘기도 아닌 것을 하면서도 '나는 언제나 좋은 강론, 훌륭한 강의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상처의 텃밭을 안고 다니는 것이다.

강론 때마다 상처를 입겠다는 것이다.

 

드 멜로 신부는 "반대자들의 갖은 비방이나 공격보다도 옹호자들의 열광 때문에 진리가 더 큰 몸살을 앓는다."고 하였다.

이 말은 순전히 '나는 명강론가여야한다.'는 상처의 텃밭을 갖고 다니는 사람이 명성에 연연하면서 진리를 왜곡시킴을 가리키는 말이다.

 

상처의 텃밭은 여러 가지가 있고, 개인마다 그 모습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상처의 텃밭은 '나는 인정받아야 한다'

'나는 사랑받아야 한다.' 라는 기대일 것이다.

이런 사람을 주위에서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고 사랑해 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받을 상처가 얼마나 클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인정해 주지 않고 사랑해 주지 않는 사람들은 다 나쁜 놈,

못된 놈이 될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속한 모임에 10명이 있다면

그 중 6명은 무조건 우리를 싫어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유가 없이 무조건 나를 거부하고 적대시한다는 것이다.

'이유가 없이 무조건' 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이유가 있다.

곧 무의식의 그림자 때문이다.

 

우리가 받은 사소한 상처를 보자.

그 바닥에는 상처의 텃밭이 있다.

이 상처의 텃밭 덕분에 우리는 늘 같은 상처를 받으면서 힘겹게 살아 간다.

늘 같은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상처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이다.

통상 우리가 받는 상처들은 어느 정도 미리 결정되어 있다.

우리가 속상하고 심란해지는 것은 다 외부에 그 원인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외부에 있다기보다 우리 안에 있는 경우가 많다.

외부는 재료만 제공할 뿐이다.

존 포웰은 "어느 누구도 우리 감정의 직접적 원인이 될 수는 없다.

다만 우리의 감정을 건드릴 뿐이다."고 말한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심란하게 반응하는데 다른 사람은 조금도 영향받지 않는다면,

그 심란함의 원인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드러낸다.

문제의 씨앗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내 상처의 텃밭에 있음을 가리킨다.

 

다섯째, 사소한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자기 존중심이 없는 이들은 쉽게 자기 자신을 비하하고 단죄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무가치한 존재, 실패한 존재로 간주해 버려 쉽게 상처를 받는다.

 

자기 비하와 자기 단죄는 파괴적이고, 병적이고, 비그리스도교적이다.

헨리 나웬은 그의 저서 [사랑받는 자의 삶]에서 현대인의 가장 큰 함정은

성공. 인기. 힘이 아니라 자기 비하라고 말한다.

 

"우리 스스로가 가치 없고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 믿게 될 때 성공이나 인기나 힘은 쉽게 매력적인 해결책으로 다가올 것이다. 진정한 덫은 자기 비하이다. 자기 비하는 영성생활의 가장 큰 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받는 자'란 거룩한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있는 가장 큰 적은 자기 비하이다.

영성가들은 자기 비하를 악마의 운동장이라 부른다.

악마는 여러가지 무기를 써서 우리의 영혼을 파괴시키려 애를 쓰는데,

그 무기들은 인간을 두려워하게 만듦, 분노와 악심을 품게 함,

걱정과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함, 자기를 비하시키게 만듦 등이다.

이런 것들은 다 강력한 무기들인데 이 중에서도

인간 영혼에 치명타를 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자기 스스로를 비하하고단죄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영성가들은, 악마들은 자기 존경과 자신감이 부족한 영혼들에게

구미를 가장 많이 느낀다고 말한다.

실상 마귀들렸다는 사람들을 보면 자긍심이 없고 자신감이 결여된 사람들이 많다.

 

친밀한 인간관계 안에서, 특히 부부 중 누군가가 건강한 자기 사랑과 자기 존경을 갖고 있지 않으면 본인이 많은 상처를 받을 뿐만 아니라 부부관계까지 악화되고 만다.

 

결혼한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문제는

건강한 자기 사랑과 존경이 적다는 점이다.

우리 주변에는 자녀와 남편을 위해서 늘 수고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는 희생적인 여성들이 많다.

우리는 이러한 여성들을 좋은 어머니, 좋은 아내,

곧 듣기 좋은 말로 현모양처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런 여성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자기 존경, 자기 사랑이 거의 없다.

이러한 여성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어쩌다 시간을 좀 갖거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게 되면 뭔가 불안해하고 죄스러움을 느낀다.

 

가족을 위해 자기를 전혀 돌보지 않는 여성의 희생적 사랑을 받는 자녀와 남편은

과연 건강한 사람들일까?

아닐 것이다. 자기 존중감이 없고 자신에 대해 사랑을 베풀 줄 모르는 여성은

이기적인 아이들과 자기 중심적인 남편을 만들 뿐이다.

그런 어머니, 그런 아내의 희생적인 돌봄을 받는 자녀나 아이들은,

그런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 싶다.

한편 시간이 가면서, 자녀들과 남편의 돌봄과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이런 현모양처형

여성은 이용만 당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출처 : 퍼렁별나라공쥬님의 블로그
글쓴이 : 찬미예수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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