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책에서 옮긴 글

보너스 행복으로 가득찬 삶 - 장영희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중에

김레지나 2010. 11. 15. 19:43
내가 행복의 교훈을 배운 잊지 못할 그날(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올 기적’ 중에서)

사람들이 내게 언제 행복을 느끼느냐고 물으면 나는 ‘화장실에 갈 때, 음식을 먹을 때, 걸어 다닐 때’라고 답한다. 유치하기 짝이 없고 동물적인 답변 아니냐고 반문들을 하지만, 내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내게 ‘잊지 못할 그날’은 3년 전 11월 4일 고등학교 3학년 때이다. 수능시험 보기 바로 이틀 전이었다. 방과 후에 교실에서 친구들과 공부를 하고 있는데 수위 아저씨가 뛰어 들어오면서 외치셨다. “너희 반 친구 둘이 학교 앞에서 트럭에 치여서 병원에 실려 갔다!”

우리는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명수와 병호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응급실에 누워 있었다. 머리를 크게 다친 병호는 숨을 쉬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생명이 위태롭다고 했다. 병호는 곧 수술실로 옮겨졌고, 친구들과 나는 거의 기절 상태이신 병호 어머니와 함께 수술이 잘되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빌었다. ‘정말 하느님이 계시다면 병호를 꼭 살려 주세요. 제가 수능시험을 아주 못 봐서 대학에 떨어져도 좋으니 내 친구 병호를 살려 주세요.’ 당시 그것은 내가 친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희생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의사 선생님이 나오셨다. 아무 말도 안 하셨지만, 표정이 병호의 죽음을 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바로 그때,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던 명수가 깨어나서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화장실 가고 싶어! 오줌 마렵다고!”

나는 친구의 삶과 죽음을 동시에 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서 숨을 멈추었고 또 한 사람은 살아서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명수야, 축하한다. 깨어나서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큰 축복이고 행운이다.’

그렇게 나는 친구를 보냈다. 그리고 그날 이후 행복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이 세상에서 숨 쉬고, 배고플 때 밥을 먹을 수 있고, 화장실에 갈 수 있고, 내 발로 학교에 다닐 수 있고, 내 눈으로 하늘을 쳐다볼 수 있고, 작지만 예쁜 교정을 보고, 그냥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굳게 믿는다.

그러니까 가끔씩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자 친구와 데이트하고, 친구들과 운동하고, 조카들과 놀고, 그런 행복들은 순전히 보너스인데, 내 삶은 그런 보너스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