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전삼용 신부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김레지나 2010. 5. 1. 18:41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부활 4주간 금요일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미국을 방문하고 계셨습니다. 한 여인이 마더 데레사를 찾아와 하소연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의 삶은 너무 권태롭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겠어요.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어요.”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대답하고 인도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있는 곳에 오면 제가 진정한 삶을 드릴게요. 죽기 전에 한 번 꼭 방문해 주세요.”

그 여인은 인도로 갔고 마더 데레사와 함께 고통 받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하루 종일 일하였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다 보니 그 여인에게 다시 삶의 의욕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제가 있는 곳에 오시면 삶을 드리겠다.’는 의미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길을 아는 사람만이 길을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또한 길을 아는 사람은 자신이 아는 길에 자신감이 있습니다. 자신이 그 길을 이미 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도 공자님도 세상의 많은 위인들이 이 길을 찾으려 수없는 수련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찾은 길로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외에 세상 어떤 누구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한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길을 찾으려고 했지만 ‘자신이 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외에 어떤 누구도 하늘로부터 내려온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이르는 길을 놓으셨는데 하늘로부터 내려온 이 외에는 하늘까지 이르는 길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친구 신부님과 함께 바티칸 성당 꾸뽈라(성당 위 둥근 돔)에 올라갔다 내려왔습니다. 꾸뽈라 안에 계단이 뱅글뱅글 있어서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고대 바벨사람들은 하늘까지 이르는 탑을 쌓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만한 생각이었습니다. 땅에서부터 시작해서는 절대 하늘까지 다다를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하늘로부터 사다리를 내가 있는 곳까지 내려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을 잇는 길을 만드시는 방법은 바로 세상 육체를 취함으로써 가능했습니다. 하늘에 계셨던 하느님으로서 땅까지 이르시기 위해 땅의 육체를 취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시기에 부정한 육체를 취하실 수 없어 태초부터 마련하신 성모님의 순결한 육체를 취하셨습니다.

성모님은 한 인간으로서 하늘까지 닿을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육체를 드림으로써 하느님을 당신 품 안에 품으시고 하느님과 한 몸이 되셨습니다. 유한했던 육체에 무한이 들어오셨고 죽어야할 운명 안에 영원한 생명이 들어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과 한 몸이 됨으로써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시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입니다.

 

야곱은 베델에서 꿈에 이 신비를 보게 됩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다리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 사다리를 통해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봅니다. 당연히 그 사다리가 닿았던 땅을 거룩하게 축성합니다. 그 땅이 바로 성모님이고 지금의 제대입니다.

우리는 이 신비를 매일 성체를 영하면서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영원하신 육체를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우리가 당신 영원성에 참여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길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은 하느님과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과 한 몸을 이루심으로써 그 길을 만드셨고 인간은 하느님과 일치하면서 그 길을 따라 올라가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당신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어떤 누구도 당신을 통하지 않고서는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이고 당신을 통한다는 말은 당신과 한 몸이 된다는 뜻입니다. 한 몸이 된다는 뜻은 성체만 영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까지도 일치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짧은 묵상>>

얼마 전에 ‘신데렐라 언니’라는 드라마를 처음 부분만 조금 볼 수 있었습니다. 문근영은 어머니와 함께 사는데 어머니는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나지 못해 이리 저리 옮겨 다니는 신세였습니다. 문근영은 이런 어머니가 싫어서 기회가 되면 혼자 도망치려고 합니다.

문근영 어머니는 어떤 기회로 부자 홀아비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와 혼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딸을 데려오라고 전에 살던 집으로 사람들을 보냅니다. 그 사람들은 중간에 도망치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잡아서 문근영을 데려옵니다. 집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는 문근영을 어머니는 간신히 설득시킵니다.

만약 어머니에 대한 믿음이 조금도 없었다면 그는 새 아버지가 있는 큰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결혼도 딸을 위해 희생하며 하는 것임을 믿게 하고, 또 앞으로는 결코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 결국 그들은 함께 새 집에서 살게 됩니다.

물론 아주 세속적인 내용이지만 오늘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 적지 않은 도움을 줍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성자께서는 당신 죽음으로 마리아를 낳고 또 그를 통해 교회를 낳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왔고 그리스도와 한 몸입니다. 아버지는 당신 뜻에 순종하는 아들을 사랑하여 아들에게 무엇이든 다 주고 싶습니다. 아드님은 부활하셔서 아버지께 돌아가 교회를 위한 하느님나라의 자리를 마련하십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아버지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기에 성자의 후손들인 교회를 위한 자리를 내어주십니다. 그리고는 당신의 대리자들을 사람들에게 보내십니다. 그러나 그 대리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그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결국 그리스도의 파견자들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들을 따라서 성자께서 마련해놓으신 영원한 거처로 들어갈 수 있고 그 파견자들을 믿지 않고, 그래서 결국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수난과 죽음으로 거처를 마련해 놓으셨고 우리를 초대하고 계신 것인데, 결국 그 곳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분과 그 분이 파견하신 이들을 믿고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걱정 하지 말고 당신을 믿고 따르도록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