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4주간 수요일 - 무지개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들 중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형제들에게 질투를 받았습니다.
주책없는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해 줍니다. 자신이 묶은 곡식 단에 형들이 묶은 곡식 단이 절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형들은 돌아버릴 지경이었지만 요셉은 이것으로 멈추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해와 달과 별 열하나가 절을 하더란 것입니다. 이 꿈엔 아버지 야곱까지도 화를 냅니다. 자기까지 요셉에게 절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형들은 요셉을 죽일 작정을 하고 그를 구덩이에 쳐 넣습니다. 그러나 피만은 보지 않기로 합의를 하고 이집트로 가는 상인들에게 요셉을 팔아넘깁니다.
요셉은 나름대로 잘 풀려 파라오의 경호 대장 보디발의 심복이 되어 집안일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아내가 그를 유혹하자 그는 그것을 뿌리쳤고 그 아내의 계략으로 또 감옥에 갇히고 맙니다.
그러나 새옹지마라 했듯이 요셉은 감옥에서 파라오 신하의 꿈을 해석해 주어서 결국 파라오의 꿈까지 해석해주고 온 이집트의 재정담당자가 됩니다.
마침 온 땅에 기근이 들어 요셉과 그의 형제들까지 굶어죽게 생겼었지만 다행히 요셉이 그들을 이집트로 내려오게 하여 좋은 땅에 살게 해줍니다. 요셉이 아니었다면 그 기근에 요셉의 가족들이 남아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요셉의 삶을 통하여 당신의 계획을 드러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이 요셉의 삶 하나하나를 보면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면 처음부터 요셉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기근으로부터 구하려는 하느님의 계획이 들어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물방울 하나하나를 보면 잘 모르지만 멀리 떨어져서 보면 무지개로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물방울들은 하늘을 떠다니며 태양빛을 통과시킵니다. 그 통과된 태양빛은 커다랗고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듭니다.
하느님도 우리 하나하나를 통해 당신의 커다란 구원계획을 완성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방울이 투명하지 않아 태양빛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무지개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우리 각자도 주님의 뜻을 여과 없이 살아내지 못하면 그 분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요셉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뜻을 조건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모든 것은 주님의 은총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당장은 죽음의 고통과 같은 것이지만 하느님의 커다란 계획안에 있음을 확신하고 조용히 받아들입니다.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하늘에다가도 사람들에게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자신을 비워 투명하게 당신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을 통해 당신의 뜻을 실현합니다. 당신의 뜻이란 바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요셉의 고통을 통해 온 이스라엘 사람이 구원되었듯이 주님의 뜻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통해 세상에 은총과 구원을 내려주십니다.
사실 구약의 요셉은 신약의 예수님의 모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당신의 뜻을 버리고 온전히 아버지의 뜻을 따라 투명한 유리처럼 아버지를 보이게 하시는 분인 것입니다. 따라서 아버지는 아들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인류에게 은총과 구원을 선사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라고 하지만 이내 자신의 그림자를 걷고 투명해지며,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하며 당신을 온전히 봉헌합니다. 이렇게 아버지는 아들을 통해서 당신 구원계획을 온전히 이루실 수 있으셨습니다.
성모님 또한 당신 자신을 생각하시지 않고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하시며 아들과 함께 자신들에겐 합당하지 않은 고난을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살다가 겪게 되는 어려움들이 세상에 은총을 주시기 위한 하느님의 큰 계획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하느님의 계획보다는 내 계획이 더 크게 나의 삶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하며 우리를 구원의 희생 제물로 봉헌해 드려야겠습니다.
<<짧은 묵상>>
어렸을 때 형이 잘못해서 넘어지며 내 머리가 땅에 부딪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억울해서 많이 울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친구들도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형과 친구들은 계속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제는 머리가 아프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창피해서 그대로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어나기 창피해서 일부러 계속 우는 척을 하였습니다. 위로하던 형과 친구들이 위로하다 지쳐서 일부러 우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고 다시 밖으로 놀러 나갔습니다. 저는 혼자 일어나 앉아 밖에도 나가고 싶고 함께 놀고도 싶었지만 창피함에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팠으면서 이제는 괜찮냐고 놀릴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괜히 생고집을 부릴 때가 있습니다. 유다 또한 예수님께 많은 교육을 받아서 회개만 한다면 자신이 구원받을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싫어서 자살을 택합니다. 천사가 되어야 행복한 것을 알면서도 마귀가 되는 것을 택한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당신이 심판자이심을 인정하시면서도 당신은 심판하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완전한 긍정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누구든 원하면 다 구원해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그런 완전한 긍정에도 불구하고 지옥으로 향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바로 우리 고집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주님의 말씀을 어기며 산다면 언젠가 큰 고집을 부리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판단하는 것에서부터, 십일조를 안 내는 것에서부터, 험담하는 것에서부터 하나하나 고집을 버려나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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