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전삼용 신부님

주는 건 다 받아라

김레지나 2010. 4. 11. 17:46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성주간 목요일 - 주는 건 다 받아라!

 

  

 

보좌 신부를 할 때 대축일 미사 복사 서느라고 고생한 복사들에게 맛있는 것 사먹으라고 돈을 좀 듬뿍 주었습니다.

다음 날 미사에 그들이 저에게 다가오더니 그 돈을 다시 내미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돈을 받아서는 안 되겠다고 자기들끼리 상의하고 다시 가져온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편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호의에 대해 마음이 상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염치없이 남의 것만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보다야 정중하게 거절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러나 받지 않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큰 사랑입니다. 어쩌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주기 싫어서 나도 아예 받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잘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잘 줄줄도 압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는 사랑을 받아야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라온 사람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많은 수가 건전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이라는 것은 이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들이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줄 사랑도 지니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사실 남의 사랑과 호의를 거절하다보면 어느새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도 거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십니다.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 당시 노예들이나 하는 일이었는데 주님이며 스승이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겸손이고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랑을 보여주실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아버지께로부터 그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아시고...”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모든 것’을 주셨다면 정말 당신 이름을 제외하고는 하느님으로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주신 것입니다. 즉, 사랑 자체인 성령님을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껜 사랑이 전부입니다.

예수님조차도 아버지로부터 오는 사랑을 거부하시지 않고 모두 받으셨기에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보여주시기 위해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십니다. 이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의 에너지를 제자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낮아질 힘이 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사랑으로 제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셨듯이 제자들에게도 당신이 하신 일을 그대로 되풀이할 것을 명하십니다. 사랑은 낮아짐입니다. 당신의 사랑을 모범으로 모든 사람 앞에 낮아지라는 명령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사랑을 거부하려고 합니다. 즉, 그의 발을 씻으려하는 예수님의 호의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어찌 보면 겸손해보이지만 실상은 사랑을 받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주는 것이 어려운 것 같지만 사실은 사랑을 받는 것도 부담스러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이 받은 사랑을 나누어주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면 사람들은 물론 예수님조차 사랑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사랑을 거부하셨다면, 성모님이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셨다면 아무 것도 이루어 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베드로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주 조금의 거부도 없이 받아들여야 완전한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완전히 정화시키려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전해주시는 방법은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너희들은 이미 내가 말한 말씀을 통해서 깨끗해졌다.”(요한 15,3)

말씀은 가장 더러운 부분인 발을 제외하고는 우리 모든 몸을 정화시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은 제자들의 가장 더러운 발까지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사랑은 하나의 낮아짐과 희생이지만 그 희생은 상대를 깨끗한 성령의 궁전으로 만듭니다. 이것이 성사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들에게도 당신의 말씀으로 깨끗하여지기를 원하시고 우리 발을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으로 정화되기를 거부한다면 결국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처럼 우리는 예수님과 어떤 사랑의 몫도 나누어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먼저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 자신을 정화합시다. 그래야 우리가 성령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 때서야 다른 이들에게도 말씀과 사랑을 전할 수 있습니다. 주는 것은 다 받아야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다른 이에게 사랑이든, 말씀이든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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