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월요일 - 발에서 머리로
제가 신학생 때는 교황님 미사에 참석할 기회가 많았었습니다. 교황님이 주례하시는 미사에서 독서도 해 보았습니다. 당시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셨는데 얼마나 소박하시던지 저를 쓰다듬어 주시고 발음도 정확하시지 않은 상태에서 무어라 말씀하셨었습니다. 저는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다음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감히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고 여쭈어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높으신 분이라 손을 잡고 반지에 입맞춤해야 하는데 입이 반지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그냥 입맞춤하는 시늉만 하였습니다.
이런 기억도 있는 터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을 존경하는데 가장 존경하는 모습은 바로 세족례를 하시던 중 당신이 씻어주시던 사람의 발에 입맞춤을 하는 장면입니다. 교황님이 한 신자의 발에 무릎을 꿇고 입맞춤하는 모습은 우리가 배우고 있는 성경과 교리의 종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한 것을 너희도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낮아짐이란 사랑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마리아라는 한 여자가 예수님의 발에 비싼 순 나르드 향유를 바르고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드립니다. 우리는 라자로와 마르타, 또 마리아가 베타니아의 부잣집 한 형제들임을 압니다 (요한 11,1-2). 그러나 그 마리아가 마리아 막달레나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여기서 상징을 볼 수 있어야합니다. 향유는 예수님의 발에 부어졌고 그 향유를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림으로써 마리아의 머리까지 향으로 적셔지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님을 상징하고 사랑을 상징합니다. 발은 인간의 가장 더럽고 천한 부분입니다. 대신 머리는 가장 고결한 부분입니다. 마리아가 자신의 머리를 예수님의 발에 대는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과 같은 겸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 겸손하게 머리를 숙여 그 분의 발에 머리를 댈 때 성령님께서 우리 머리 위로 흘러들어와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는 교훈입니다. 절대 머리끼리 맞대거나 발끼리 맞대어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발에 머리를 대야 하는 것입니다.
베텔에서 야곱이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의 사다리가 하늘과 땅을 이어주고 있었고 하늘과 땅 사이에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인간은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땅에서 났으니 땅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땅도 인간 때문에 함께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하느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는 것처럼 죄의 땅이 아닌 깨끗한 하늘에만 머무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죄의 땅으로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분이 계셨으니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분이지만 동시에 육체를 취하신 인간이시기 때문에 땅에도 계신 것입니다.
따라서 야곱이 본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는 바로 그리스도 자신을 상징합니다. 그 분을 통해 성령의 은총이 세상에 내려오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베고 잤던 돌에 기름을 붓고 제단을 세웁니다. 바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야곱의 머리에 성령님이 임하신 것입니다.
야곱은 꿈에서 깨어나 ‘참말 야훼께서 여기 계셨는데도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 하며 그 곳을 곧 ‘하느님의 집’ (성전, 베텔)이라 이름 짓습니다.
십자가 위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내린 피와 물이 그리스도의 몸을 타고 발로 흘러 땅에 떨어져 땅이 정화되고 성령으로 충만해지게 된 것처럼 그리스도의 발 밑에 있는 누구나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라자로의 집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마리아의 언니 마르타는 예수님을 대접할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으나 마리아만은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그 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마르타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예수님의 발치에서 그 분의 말씀을 듣는 것, 그 것이 내 안에 성령으로 가득 차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유일한 스승으로 모시고 그 분으로부터 배우고 그 분이 산 것처럼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자신의 몸에도 배이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처음으로 발현했던 마리아 막달레나가 라자로의 동생 마리아라는 결정적 근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같은 사람임을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마리아 막달레나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예수님께 “랍뿌니!”, 즉 ‘선생님’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추상적인 무엇이 아닙니다. 그 분을 스승님으로 삼고 배우고 그 분이 산 것처럼 살려고 하는 아주 구체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도 읽거나 공부하지 않고 미사도 주일미사만 간신히 하고 성체 밑에 자주 앉아 있으려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분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은총을 받으려면 오늘의 마리아처럼 그 분의 발에 우리 머리를 대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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