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5주간 금요일 - 겉만 겸손한 사람
제가 사제가 되기로 한 것은 25세 이후인데, 그 전에 대학 다닐 때 신부님이 되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사제가 될 생각이 하나도 없었음에도 그렇게 청하는 분께, “저는 그럴 자격이 안 됩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럴 자격이 안 된다’는 말이 얼핏 들으면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말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낮추는 말이 아니고 사제가 되기 싫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제가 되어 신자들에게 성당에서 봉사를 하라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이 “저는 그럴 능력이 안 돼요.”입니다. 물론 정말 능력이 안 된다고 느껴서 그렇게 대답하기도 하겠지만 많은 경우는 “하기 싫어요.”라는 말을 그렇게 돌려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거부하면서도 사실은 자신을 낮추는 모습을 보입니다. 저는 그런 대답이 나오면 으레 “그런 것이라면 상관없어요. 어차피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요. 주님께서 어떤 일을 위해 부르신다면 합당한 능력도 주실 거예요. 능력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어쩌면 참 좋은 일입니다.”하며 응수합니다.
그러면 실제적인 이유들을 대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없어서요.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아서요. 아는 것이 없어서요. ...” 저는 이런 말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그것이 큰 이유가 되지 않음을 설명합니다. 정말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어가서 보면 봉사를 하지 못할 이유를 지닌 사람은 5%도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무엇을 거절하면서도 자신이 겸손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참 겸손은 받아들이는 능력이지 거부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한 사람은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하며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겸손이지 ‘감히 내가 어떻게?’라고 하며 거부하는 것이 겸손이 아닙니다. 만약 성모님께서, “제가 어떻게 하느님의 어머니가 돼요, 말도 안 돼요!”했더라면 성자의 강생도 구원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겸손은 받아들이기 위해서 자신을 비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이 사랑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한다고 하면서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그분을 돌로 치려고합니다.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예수님은 성경 구절을 들어 당신의 말씀을 정당화합니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다 해서,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성경에는 정말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이들을 모두 신, 즉 ‘하느님’이라 불렀습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의 말씀, 즉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됨으로써 그 분의 신성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하느님이 될 수는 없지만 인간은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하느님의 영원성에 참여하고 그렇게 영원한 신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니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이고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만약 성체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다면, “예수님이 사신 것처럼 살아야지요.”라고 신자에게 말하면 “제가 감히 어떻게 예수님처럼... 전 예수님이 될 수 없어요.”라고 겸손하게 대답합니다. 우리는 이 말이 이젠 주님처럼 살기를 원치 않는 마음에서 나오는 교만임을 알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심판해서는 안 되지만 굳이 판단하려면 그 사람의 겸손으로 판단하라고 배웠습니다. 우리들은 사람들 앞에서 겸손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만 속은 안 그런데 겉으로만 겸손한 모습을 보이고 본인도 그것이 겸손이라고 믿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오늘 사람이 신이 될 수 없다고 믿었던 겉으로만 겸손했던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겸손한 척 하려해도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주님의 뜻이라고 하셨던, “매사에 감사하십시오. 항상 기도하십시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것들은 참으로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입니다. 겸손하면서 불만이 많을 수 없고 겸손하면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으며 겸손하면서 기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았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겸손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항상 불만족이고 기도도 안 하고 우울하기만 하면 겉보다는 먼저 자신의 본질에 신경 써야 할 것입니다. 사람 흉내만 내는 원숭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말과 행동도 겸손해야 하지만 진정 본질이 겸손한 모습인지 살필 줄 알아야겠습니다.
'강론 말씀 (가나다순) > 전삼용 신부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도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0) | 2010.04.11 |
---|---|
나는 들으려고 하는가? - 악한 사람도 예언한다. (0) | 2010.04.11 |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0) | 2010.03.25 |
깨달음과 자유 (0) | 2010.03.25 |
내가 '나'가 되는 길 (0) | 2010.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