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전삼용 신부님

교만과 판단

김레지나 2010. 3. 25. 22:48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순 5주간 월요일 - 교만과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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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유형검사, MBTI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성격 유형검사는 내 자신의 성격이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즉, 내성적인지 외향적인지, 직관적인지 통합적인지, 수동적인지 적극적인지 등의 유형을 나누고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학교나 수도원 등에서도 이 검사를 하지만 어떤 때는 이런 검사가 사람을 그렇게 판단해버리게 만드는 위험성도 있습니다. 즉, 윗사람이 그 결과를 보고, ‘재는 내향적이고 소극적이어서 대인관계도 좋지 않아!’라고 판단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검사의 본질적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것입니다.

성격유형검사는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즉, 전문가들에 의하면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한 예로, 사람들에게 해운대를 한 번 설명해보라고 하면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한 번 이상 갔던 사람들은 대충 설명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탈리아 해변도시인 바리를 설명하라고 하면 그 곳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은 좀처럼 어떤지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 해운대와 비슷하게 해변이 있을 것은 짐작이 가지만 구체적으로 어떤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자기가 경험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내면입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사람을 이해하려하지 말고 ‘인정’하라고 합니다. 나와 같지 않음을 ‘인정’할 때 ‘저 사람은 왜 저래?’라는 말은 나올 수 없다고 합니다. 인정하면 ‘내가 이렇듯, 그 사람은 저런 것입니다.’ 인정하면 모든 사람이 하는 행동이 “그럴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네 자신을 알라.”, 즉, “네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라.”라고 하는 무지의 지(無知의 知)가 여기에서도 적용됩니다. 나도 나를 잘 모르듯이 상대도 어떤 사람인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우리가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사람의 기준으로 심판하지만,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다.”라고 하시며 자신들의 기준으로 심판하는 사람들을 질책하시는 것입니다. 완전하신 그리스도도 심판하시지 않는데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심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심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느님까지도 자신들의 기준으로 심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은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고 증언합니다. 예부터 두 사람 이상의 증언이 있어야 어떤 주장이 유효하다는 율법이 있었습니다. 오늘 수산나가 나오는 제 1독서에서도 노인 두 명이 함께 수산나를 모함했기 때문에 수산나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유다인들은 예수님 자신이 자기 자신을 증언한다고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행위는 세 분이신 하느님이 동시에 행하시는 행위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증언하셔도 두 분이 함께 증언하시는 것이기에 유효하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잘 들여다보지 못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지금 하시는 하느님 삼위일체의 신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들이 남을 심판하는 버릇이 없었더라면 적어도 사람이 되신 하느님까지 심판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남을 심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쟤 왜 저래?”라는 말을 많이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남을 완전히 이해하고 심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겸손한 마음으로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을 합니다.

한 때는 베드로도 그리스도께서 당신 죽음을 예고하실 때,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하느님의 일을 판단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베드로가 사람의 기준으로 당신을 판단한다고 하시며, 그것이 바로 ‘사탄’이라고 꾸짖으십니다.

내가 남을 판단하지 않는데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남을 판단하고 미워하는 것은 교만해진 내가 이웃을 나의 잣대로 심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모든 사람을 “그럴 수도 있을 거야!”하며 이해하지만 교만한 사람은 이렇게 자기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하느님까지도 판단하게 되고 “하느님이 그러실 수 있나?”라고 따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도 예수님까지도 자신들의 잣대로 심판하였던 바리사이들이 되지 않기 위해서 겸손한 마음으로 누구도 판단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지니도록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