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책에서 옮긴 글

토마스 머튼의 칠층산에서 - 어떻게 성인이 된다는 건가?

김레지나 2008. 12. 7. 19:32

『칠층산』중에서 - 어떻게 성인이 된다는 건가?

                    - 토마스 머튼 지음, 정진석 옮김, 바오로딸 출판사, p300


내 영혼에 관해서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시간은, 그 해 봄 락스와 내가 6번로를 산책하던 어느 날이었다. 도로는 지하철 공사로 온통 파헤쳐져 흙더미가 양편으로 높이 쌓였도 주의 표시로 빨간등이 켜져 있어서 우리는 불이 꺼진 작은 상점들 처마 밑을 골라가면서 길을 걸어 그리니치 빌리지를 향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걸으면서 무엇에 관해서 토론하였는지 잊어버렸지만 이야기 끝에 락스가 느닷없이 나를 향해 돌아서면서 질문을 했다.

 “좌우간 자넨 무엇이 되겠다는 건가?”

 나느 솔직히 말해서 「타임스」잡지의 뒷부분에 게재되는 서평 난의 유명한 작가 토머스 머턴이 되고 싶다든다, 혹은 신생활 사회문화 개발 연구소의 초급 영어 보조강사 토마스 머턴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차마 그럴 수는 없어서 영적인 면으로 비약시켜 어물쩡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모르겠는 걸, 글쎄, 훌륭한 가톨릭 신자가 되고 싶다고 해두지.”

 “훌륭한 가톨릭 신자가 되겠다는 건 무슨 뜻인가?”

 뜻밖의 질문에 어물어물 설명하자니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심사숙고해서 대답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여지없이 폭로되고 말았다.

 락스가 다시 다그쳤다.

 “자네 말은 자네가 성인이 되겠다는 말로 들리는군”

성인이라니! 나는 딴 세상 이야기 같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어떻게 성인이 된다는 건가?”

 “원함으로써.”

락스는 간단히 대답했다.

 “난 성인이 될 수 없어.”

나는 다시 강조했다.

 “난 성인이 될 수 없단 말이야!”

현실과 비현실 - 내 죄에 대한 자각, 꼭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며 꼭 도달해야 할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그릇된 겸손, 또한 대죄를 피함으로써 영혼을 구하기만 하면 된다는, 바꾸어 말하면 죄와 집착을 끊어버리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비겁 - 이 뒤얽혀져서 어찌해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락스가 다시 말했다.

“성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성인이 되기를 원하는 것뿐이야. 자네가 하느님께 동의만 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자네를 창조했을 때 원하셨던 그 모습으로 만드신다는 것을 자네는 믿지 않나? 자네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원하는 것뿐이야.”

 성토마스 아퀴나스도 락스와 같은 말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복음’을 이해한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명백한 것이다. 락스와 헤어지고 나서 그 말에 관하여 곰곰이 생각해보니, 과연 옳은 말이었다.

 다음날 나는 마크 반 도렌 교수를 찾아갔다.

 “락스는 사람이 성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것뿐이라고 합니다.”

 “물론이지요.”

 마크 교수도 간단하게 대답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나보다 훨씬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었고 나보다 더 잘 하느님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그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어째서 그다지도 느리고, 그다지도 뒤죽박죽이고, 그다지도 갈팡질팡하며 불안정했던가?

 나는 큰 맘 먹고 「십자가의 성요한」의 전집 첫 권을 사서 페리 가에 있는 내 방에 앉아서 여기 저기 연필로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그러나 내가 성인이 되는 데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내가 밑줄을 친 이 구절들은 그 내용이 빛나게 눈부신 것인데도 내게는 너무나 단순하게 느껴져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욕구로 비뚤어진 내 복잡성에 비해 너무나 적나라하고 이중성과 타협이 전혀 없었다. 그래도 내가 이 구절들을 막연하게나마 최대의 존경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할 수 있었음은 천만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