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6일
머리가 어정쩡하게 길어서 헤어롤로 띄워보지만 얼마 안가서 다시 딱 붙어서 보기 흉했다. 게다가 먹는 항암제 부작용으로 부분적으로 탈모가 다시 시작되어서 그렇지 않아도 머리숱이 적고 가는데, 이마 윗부분은 머리카락이 다시 빠져버렸고, 머리 윗부분도 헐렁해져서 속이 상했다. 고심 끝에 십수년 만에 파마를 해보기로 결정했다. 늘 생머리 단발이었는데, 아직은 짧은 머리카락을 파마했다가 할머니처럼 될까 걱정되었지만 더 흉해지면 가발을 다시 둘러쓰고 다니면 되려니 하고 미용실에 갔다.
두피에 파마약이 닿지 않게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머리를 말고 앉아 있었는데, 텔레비전에서 수년전에 봤던 석회화증을 앓는 남자의 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방영하였다. 재방송인 것 같았다. 나는 반가워서 말했다. “어머, 저 분 아직도 살아있었네요. 저도 좀 듣게 텔레비전 소리 좀 키워주세요.” 마지막 부분인 것 같았다. 거울로 비치는 텔레비전 화면으로는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그분 어머님의 회갑잔치 준비를 위해서 선물사러 나간 모양이었다. 나무 막대기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린 몸으로 힘들게 걷다가 지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친구한테 안겨서 아파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시인은 보통사람은 5분 걸리는 거리를 두 시간만에 걸어서 어머니의 옷을 선물로 준비했다. 동네 아주머니들까지 초대해서 조촐한 회갑상을 차려 두고 어머니 품에 안겨 우는 그 시인의 모습을 보고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작년에 내가 수술받고 퇴원해서 동생집에 잠시 있으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시 비슷한 것을 썼었다. 그 시인의 엄마에 관한 시도 썼었다. 그래서 그분들 모습을 텔레비젼에서 다시 보게 되니 더욱 반가웠다. 수술 후에 팔도 못 움직이고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었을 때였지만 내 고통은 온 몸이 굳어 움직일 수도 없는 그 시인의 고통에 비할 바 못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날 수 년 전에 봤던 그 시인에 관한 방송내용이 기억났었다.
눈썹문신
오래 전 텔레비전에서
온 몸에 돌이 생기는 이상한 병을 앓는,
혼자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고통 속에서도
시를 쓴다는 남자가 나왔다.
석회화증이래나 뭐래나?
끔찍하게 힘든 병만큼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시인이 오직 믿고 의지하는
그 훌륭한 엄마의 눈썹문신이었다.
그 엄마에게도 일상의 즐거움이 있을 수 있나?
삶이 힘들기만 할 텐데...
눈썹문신하고 싶은 마음의 여유가 있을까?
나는 오늘에야 알 것 같다.
병원 지하에서 엄마가 사준
병아리 아플리케가 예쁜
꽃분홍색 티셔츠를 처음 꺼내 입고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조금 비싸서 많이 망설였지만
사길 참 잘 했다.
아직 수술 부위의 철침도 빼지 않은
암환자 같아 보이지도 않고
참 좋다
이런 여유가 기적이다.
나보다 더 힘들 남자 시인에게도
힘든 십자가를 진 그 엄마에게도
눈썹문신이 기적이다.
내 예쁜 티셔츠가 기적이다.
나는 미용실 의자에 앉아서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하느님께 기도했다. “하느님, 저 고통은 또 무엇입니까? 저는 잘 모르겠어요. 여전히 모르겠어요. 당신께서 영원 속에서 눈물을 닦아주시겠지만.... 마음이 너무 아파요.”
미용사언니가 불쑥 한마디 했다.
“세상에, 저런 몸으로 어떻게 살까? 저런 사람들은 전생에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길래 저렇게 태어났을까?”
나는 그 언니의 말에 깜짝 놀랐다. 작년부터 가족과 친지들에게 들어오던 환자나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미용사 언니의 말은 사실이 아닌 말이니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무심함에 다시 조금 놀랐다.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들으면 아무렇지도 않을 말도 한참 정신적으로 힘들 때는 억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니까 운동을 좀 많이 했어야지.”, “냉담을 오래 해서 벌 받은 거야.”, “ 내 주위에 무슨 일 해보겠다고 지나친 욕심 부리던 사람들은 다들 암 걸려서 죽더라.”, “ 누구 누구도 암에 걸렸다던데.. 그 사람 승진하려고 기를 쓰더니만 결국 그리 되고 말았지.”, “저런, 너 속으로 말못할 스트레스 받을 일이 있었냐?”, “욕심이 많아서 암에 걸린 거야.”"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라구."
나는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서 나만큼 몸이 약한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렸을 적부터 병치레를 많이 했다. 그 때문에 암에 걸린 것이지 내가 세상을 남들보다 욕심부렸거나, 비관적이어서 아프게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암환자들이 우울하거나 스트레스가 많았거나 욕심이 많았을 거라는 선입관을 갖고 있다. 그런 선입관이 너무나 확고부동해서 그런 말들을 환자 앞에서 하면서 조심스러워하지도 않는다.
나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마음 아파서 눈물을 글썽이다가 미용사 언니의 말에 그만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아이, 참. 죄가 많아서 저렇게 사는 것 아니예요.”
그렇다고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은 분한테 길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미용사 언니는 그제서야 내가 암환자라는 것을 의식했는지 말을 얼버무렸다.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우리가 죄를 아주 많이 짓고 살면 다음 생에 저렇게 태어날까 무섭다는 거지...”
미용사 언니가 나한테 미안해 할 것 같아서 나는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한 두 번 들어본 말도 아니고, 이 모든 것 하느님께서 다 헤아려주시면 아무래도 괜찮다.
“사랑하는 주님, 저에게도 어려운 고통의 신비가,, 당신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어렵겠어요? 당신께서는 그 지극한 가치를 추구하시지만. 그 가치를 모른다고 해서 혼내시는 분은 아니지요. 제대로 모른다고 나무라지 않으실 것도 알아요. 하지만 주님, 주님은 참 이해하기 힘든 분이시라는 것 알고 계시지요?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사실이잖아요. 제가 당신 사랑에 대해 이해한 만큼이라도 제대로 알리고 싶어요. 티끌처럼 보잘 것 없는 제 작은 노력이라도 보태고 싶어요. 도와주실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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