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들의 능동적 미사참례를 위한 강의록1)
목 차
I. 전례헌장에 나타난 신자들의 능동적 미사참례
1.1. 능동적 참례의 당위성
1.2. 능동적 참례의 구현
1.3. 능동적 참례의 증진방안
II. 신자들의 능동적 미사참례
2.1. 잘 알고(scienter) 참여
2.2. 의식적(conscie) 참여
2.3. 경건한(pia) 참여
2.4. 내적 외적으로 능동적(actuosam internam et externam) 참여
2.5. 온전하고 완전한(plena) 참여
2.6. 효과적인(fructuose) 참여
I. 전례헌장에 나타난 신자들의 능동적 미사참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이 담고 있는 전례의 능동적 참여에 관한 중요한 교의를 살펴보되, 이를 신자들의 능동적 미사참례에 있어서 ‘필요성’, ‘구현’ 그리고 ‘증진방안’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1.1. 전례헌장에 나타난 신자들의 능동적 미사참례의 필요성
1) 능동적 참여는 인간성화와 하느님 찬양을 위해 필수적이다 - 전례의 능동적 참여는 인간성화와 하느님 찬양의 완전한 효과를 위해 필요하다. “전례에서 인간성화와 하느님 찬양이 가장 커다란 효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완전한 효과를 거두려면, 신자들은 올바른 정신 자세로 자기 마음을 목소리에 맞추어, 천상은총을 헛되이 받지 않도록(참조. 2고린 6,1) 은총에 협력하여 전례를 잘 알고 전례에 능동적으로 또 효과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2)
2) 능동적 참여는 신자들에게 그리스도교 정신을 제공하는 샘이다 - 전례의 능동적 참여는 신자들에게 그리스도 정신을 제공하는 반드시 필요한 샘이다. 즉, “온 백성의 완전하고 능동적 참여는 신자들이 거기에서 실제로 그리스도 정신을 길어 올리는 첫째 샘이며 또 반드시 필요한 샘이다.”3)
3) 능동적 참여는 전례자체의 본질에서 요구된다 - 전례의 능동적 참여는 전례 자체의 본질에서 요구된다. “어머니인 교회는 모든 신자가 전례 거행에 의식적이고 능동적이고 완전한 참여를 하도록 인도되기를 간절히 바라는데, 그러한 참여는 전례 자체의 본질에서 요구되는 것이다.”4) “예식이 그 고유한 본질에 따라 많은 신자들의 참석과 능동적인 참여와 더불어 공동 거행으로 이루어질 때마다, 될 수 있는 대로, 이 공동 거행이 개별적이고 거의 사적인 거행보다 낫다는 것을 강조하여야 한다. 그것은 특히 미사 거행과 성사 집전에 해당된다.”5)
1.2. 전례헌장에 나타난 신자들의 능동적 미사참례의 구현
1) 능동적 참여의 권리와 의무는 세례성사의 힘 -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세례성사의 힘으로 전례의 능동적 참여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선택된 민족, 왕의 사제, 거룩한 겨레,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인(1베드 2,9; 참조. 2,4-5) 그리스도인은 세례의 힘으로 전례 거행에 의식적이고 능동적이고 완전한 참여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6)
2) 신자들은 각기 다른 모양으로 능동적으로 참여 - 각자는 위계와 임무 등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으로 참여한다. 전례행위는 교회의 몸 전체에 관련되고, 각 지체는 위계와 임무와 실제 참여의 차이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으로 관여하기에, 교역자든 신자든 누구나 각자 자기 임무를 수행하며 예식의 성격과 전례 규범에 따라 자기에게 딸린 모든 부분을 또 그것만을 하여야 한다.7)
3) 미사의 각 부분에 충실한 것이 능동적 참여 - 능동적 참여의 증진을 위하여 미사의 각 부분을 중시해야 한다. 능동적 참여를 증진하도록, 백성의 환호, 응답, 시편 기도, 따름 노래, 성가와 함께 행동이나 동작과 자세를 중시하여야 한다. 또한 거룩한 침묵도 제때에 지켜야 한다. 모든 신자 집단은 자기 고유 부분에서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8)
II. 신자들의 능동적 미사참례
신자들의 미사참례에 대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은 ‘능동적 참여’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이것은 신자들의 전례에 대한 참여의 다양한 측면을 대표하여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신자들의 참여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전례헌장’을 통해 살펴보면 ‘능동적으로’(actuose) 이외에도 11항의 ‘잘 알고’(scienter), ‘효과적으로’(fructuose); 14항의 ‘의식적’ (consciam), ‘완전한’(plenam); 19항의 ‘내적 외적으로 능동적으로’(actuosam internam et externam); 21항의 ‘온전히’(plena); 48항의 ‘의식적으로’(conscie), 경건하게’(pie); 50항의 ‘경건하고’(pia) 등의 형용사로 또는 부사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지금부터 이들 어휘를 중심으로 미사참례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2.1. 잘 알고(scienter) 참여
‘전례헌장’은 전례에서, “이렇게 완전한 효과를 거두려면… 천상은총을 헛되이 받지 않도록 은총에 협력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거룩한 목자들은… 신자들이 잘 알고(scienter) 능동적으로 또 효과적으로 전례에 참여하도록 돌보아야 한다.”(11항)라고 말하면서 여러 가지 신자들의 참여자세 중에서 ‘잘 알고’(scienter)를 맨 앞에 제시하여, 사목자들이 신자들에게 갖추도록 돌보아야 할 첫 번째 참여자세로 내세우고 있다.
미사전례에 잘 알고 참례한다는 것은 지금 거행되는 전례를 이해하고 전례에 참여한다는 것을 말한다. 미사참례를 놓고 생각해 볼 때 미사전례에 대해 ‘잘 알고 참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전례’, ‘표징’, ‘성사일반’, ‘성체성사’, ‘미사’, ‘미사의 각 부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이들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2.1.1. 전례에 대한 이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에 따르면, “전례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전례 안에서 인간의 성화가 감각적인 표징을 통하여 드러나고 각기 그 고유한 방법으로 실현되며, 그리스도의 신비체, 곧 머리와 지체들이 완전한 공적 예배를 드린다.”(7항ㄹ). 또한 전례의 종말론적 성격에 대해서도 이해하여야 한다. 역시 ‘전례헌장’에 의하면, “우리는 이 지상의 전례에 참여하며 나그네들인 우리가 걸어 나아가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에서 거행되는 천상전례를 미리 맛본다. 그 곳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지성소와 참다운 성막의 사제로서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참조. 묵시 21,2; 골로 3,1; 히브 8,2)… 구세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으로 나타나시고 우리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때까지(참조. 필립 3,20; 골로 3,4), 우리는 그분을 기다린다.”(8항).9) 그러면 이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몇 개의 항목으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자.
(1) “전례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이다.”(전례헌장 7장).
인간을 구원하고 하느님께 완전한 영광을 드리는 전례는, 이미 구약 백성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위업으로 준비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수난과 부활의 파스카 신비를 통하여 성취되었고, 우리의 구원사업을 완수하신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는 오늘날 전례를 통하여 ‘기념되고 재현되고 현재화’(anamnesis)된다(참조. 전례헌장 5항).
이천년 전 그리스도의 파스카 제사에서 집전자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이셨고, 교회가 지금 이곳에서(hic et nunc) 거행하는 전례에서도 이를 집전하는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고 안 계시는데 어떻게 지금 이곳에서 거행되는 전례의 집전자이실 수 있으실까? 그것은 지상에 있는 당신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도구로 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결국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의 수행으로 이루어지되,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의 도구의 역할을 수행하는 서품된 사제들의 협력을 통하여 성령의 활동 안에서 전례회중이 모인 자리에서 거행된다(참조. 전례헌장 7장; 교회헌장 28항).
사제들은 “자기 봉사 직무의 단계에서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의(참조. 1디모 2,5) 임무에 참여하며,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 성찬의 예배 또는 집회에서 자기의 거룩한 임무를 최대한으로 수행한다. 거기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행동하고, 그리스도의 신비를 선포하며, 신자들의 예물을 그들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희생제물과 결합시키고, 신약의 유일한 희생제사를, 곧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깨끗한 제물로 성부께 단 한 번 바치신 희생제사를(참조. 히브 9,11-28)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참조. 1고린 11,26) 미사의 희생 제사 안에서 재현하고 봉헌한다.”(교회헌장 28항).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전례에 다양한 양식으로 현존하시지만 “당신 친히 그 때에 십자가에서 바치셨던 희생 제사를 지금 사제들의 집전으로 봉헌하고 계시는 그분께서”10) “집전자의 인격 안에 현존하시고… 누가 세례를 줄 때에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다. 당신 말씀 안에 현존하시어, 교회에서 성서를 읽을 때에 당신 친히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례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이다.”(전례헌장 7장).
(2) 전례의 목적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과 성화(전례의 하강차원),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완전한 흠숭과 찬미(전례의 상승차원)를 실현하는 것이다(참조. 전례헌장 5항, 7항).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의 수행으로 바쳐진 십자가상의 희생제사를 통하여 온 인류는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었다. 이 십자가상의 희생제사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희생제물로 봉헌하는 가장 완전한 제사였으므로,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찬미와 감사와 흠숭의 제사가 되었고, 또한 이 제사를 통하여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온전한 용서와 성화와 축복이 베풀어졌다.
그러므로 파스카의 신비를 기념하고 현재화하는 전례에서 하느님께 대한 흠숭과 찬미 및 인간에 대한 구원과 성화도 또한 ‘재현되고 기념되고 현재화’(anamnesis)되는 것이다.
(3) 전례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주요하게 그리고 그분의 지체인 교회가 함께 참여하여 이루는 그리스도 신비체 전체의 업적이다(참조. 전례헌장 7장).
이렇게 그리스도의 신비체 전체에 의해 이루어지는 전례거행은 특수한 사정 때문에 전례법의 테두리 안에서 허용된 개인이 홀로 거행하는 전례거행의 방식11)보다 사제와 전례회중이 함께 모여 거행하는 전례거행의 방식에서 더 잘 드러난다. 이렇게 함께 모여서 거행하는 전례거행에서, 세례성사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신자들의 보편사제직) 신자들이 대다수를 이루는 전례회중은 주교가 집전하는 성찬례에 함께 할 때 각 지역의 개별 교회(Ecclesia particularis)의 가시적인 표지가 되고,12) 또 거기에 함께 참여하는 성품성사로 서품된 주교와 사제들은(사제들의 직무사제직)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내는 가시적인 표지가 된다.
성찬례의 예물기도에 앞서 바치는 전례회중의 응답기도는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함께 모인 전례회중이 다함께 예물을 봉헌한다는 것을 잘 드러내고 있다.13) 그래서, “전례는 사적인 행위가 아니라 ‘일치의 성사’인 교회, 곧 주교 아래 질서 있게 모인 거룩한 백성인 교회의 예식 거행이다.”(전례헌장 26항) 즉, 전례는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의 수행으로 이루어지는 교회의 공적 예식거행이다.
(4) 전례를 통하여 인간의 성화가 감각적인 표징을 통하여 드러나고 실현된다(참조. 전례헌장 7항). 즉, 전례는 구원을 효과적으로 의미하고 실재화하는 표징과 가르침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의 삶에서 표징과 상징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육체적이며 동시에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물질적인 표징과 상징을 통해서 영적인 실재를 표현하고 인식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1146항). 하느님께서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언어와 몸짓, 동작을 통한 표징과 상징을 필요로 하며, 인간이 하느님과 관계를 이루는 데에도 이런 것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참조. 가톨릭교회교리서 1146항).
‘눈높이 교육’이라는 말이 한때 유행하였다. 이것은 선생님께서 유치원생 혹은 초등학생과 눈을 마주보면서 공부를 가르치는 방식으로, 어른들이 위에서 내려보고 어린아이들이 위를 쳐다보는 대화방식을 지양하고, 동등한 눈높이에서 서로 묻고 대답하고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이렇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키나 성장환경이나 언어의 장벽 등을 뛰어 넘어야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듯이 하느님께서도 우리 사람들이 당신의 마음을, 당신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씀을 건네시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때가 찼을 때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게 하셨다(참조. 갈라 4,4). 원래 하느님 아버지의 영원한 품속에 계시던 ‘말씀’은 우리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더 잘 깨닫게 하시려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신 것이다.
강생하신 말씀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시 유다인들에게 당신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 물질적 표징이나 상징적 행위를 사용하여 가르치시기도 하시고 병을 고쳐 주시기도 하였다. 또한 예수님은 여러 가지 표징을 전례에서 사용하도록 제정하시고 그것을 사용하도록 명령하셨다.
원래 표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 꽃을 선물하면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모나 스승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눈에 드러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표징을 예수님께서 선택하시고 전례에서 사용하도록 제정하심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은총과 축복이 눈에 보이는 표징을 통해 전달되도록 하셨다(참조. DH 1639). 특히 일곱 가지 성사가 그러하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거행하는 전례에서 표징을 사용하여,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을 표현하고 실제로 현존하게 하며, 하늘의 영광을 예시하고 미리 누리게 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1152항). 또한 전례에 나타나는 창조(빛, 물, 불)와, 인간 생활(씻음, 기름 바름, 빵을 나눔)과, 구원의 역사(파스카 예식) 등에 관계되는 표징과 상징들이 사용되는데, 이들 우주의 요소들과 인간적인 예식들과 하느님을 기념하는 행위들은, 신앙의 세계에 들어와 성령의 힘을 받아, 그리스도의 구원과 성화 행위를 우리에게 드러내 주고 실현해 주는 감각적 표징이 된다(참조. 전례헌장 7항; 가톨릭교회교리서 1189항).
(5) 천상전례와 지상전례는 단 하나의 전례이다(참조. 전례헌장 8항).
사도로부터 이어오며, 하나요,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는 세 가지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 그 구성원으로 한다. 그 첫 번째 집단은 바로 이 지상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하고,14) 두 번째 집단은 이 세상을 떠나 천상에서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행복에 참여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하며,15) 세 번째 집단은 죽어서 이미 이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 천상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스스로를 정화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한다.16) 이 세 가지 집단의 구성원들이 모두 모여 단 하나의 교회를 이루듯이, 이 세 가지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행하는 전례 역시 단 하나의 전례를 이루게 되지만, 연옥에서 단련 받고 있는 사람들은 능동적으로 공로를 쌓는 활동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전례에서도 다른 집단의 전례에서 제공되는 은총을 수용할 수 있을 뿐이다.17) 그래서 세 집단이 전례와 다같이 관련되어 있지만, 능동적으로 전례에 함께 할 수 있는 집단은 지상에서 전례에 참례하는 경우와 천상에서 전례에 참여하는 경우 두 가지뿐이다. 그리고 지상전례와 천상전례는 단 하나의 교회에서 행해지는 단 하나의 전례를 구성하게 된다.
모든 성인들의 통공(communio sanctorum)에 의하여 각 집단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집단에 속한 이들을 위해서 기도를 드리고 또 전례를 통한 은총을 내려주시도록 하느님께 청할 수 있다. 다만, 연옥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말한 것처럼 수동적인 상태에 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기도와 전례에 의한 은총을 받을 수는 있어도 다른 이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는 없다.18) 다만, 이들이 정화의 시기를 마치고 천상의 영원한 전례에 참석하게 된다면 이들은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천상전례에서 기도할 것이다.
천상전례와 지상전례는 단 하나의 전례를 이루기 때문에, 이 지상에서 전례에 참례한다는 것은 결국 천상의 전례와 같은 전례에 참석하게 되는 것이다. 이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천상전례는 하느님을 마주 뵈오며 그분께 찬미와 영광과 찬양을 드리게 될 것이지만, 지상전례는 아직 하느님의 “참 모습을”(1요한 3,2) “얼굴을 맞대고”(1고린 13,12) 뵈옵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표징을 통해서 전례를 거행하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지상의 전례에 참여하며 나그네들인 우리가 걸어 나아가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에서 거행되는 천상전례를 미리 맛본다.”(전례헌장 8항; 참조. 교회헌장 50항).
(6) 전례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교회의 시간을 결정하고 형성한다.
오순절 날 성령의 강림으로 교회가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고, 성령강림은 교회의 시대를 시작하게 하였다(참조. 사도 2,1-47). 이 교회의 시대에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오실 때까지”(1고린 11,26) 당신 교회의 전례를 통하여 당신의 구원 활동을 보여주시고, 현존하게 하고, 행하신다.19)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나서(참조. 마태 3,13-17; 마르 1,9-11; 루가 3,21-22), 사막에서 40일간 유혹을 당하신 후에(참조. 마태 4,1-11; 마르 1,12-13; 루가 4,1-13), 당신의 공적 삶을 시작하셨는데, 이 때 그분은 “하늘나라가 다가온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고 선포하셨다(참조. 마태 4,12-17; 마르 1,14-15; 루가 4,14-15).예수님께서는 병자와 마귀 들린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직접 병자들을 고쳐주시고(참조. 마태 4,24; 8,17; 마르 2,17.41; 5,34; 7,32-36; 9,23; 루가 6,19; 요한 9,6) 마귀들을 쫓아주셨다(참조. 마태 8,26-33; 9,33; 마르 5,15; 루가 8,29). 또한 사람의 아들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음을 보여주시고 죄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참조. 마르 2,1-12; 마태 9,2-8; 요한 1,29).
또한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고, 병자를 치유하고, 마귀를 �아내고, 죄를 용서하는 그리스도의 이러한 사명들을 당신이 직접 수행하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명이 교회를 통하여 지속될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위임하셨으니, 열 두 제자들의 파견(참조. 마태 10,1-15; 마르 3,13-19; 루가 6,12-16) 그리고 일흔 두 명의 제자들의 파견(참조. 루가 10,1-12)에서 이를 살펴 볼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성부의 영원한 품으로 돌아가실 것을 알고 교회가 당신의 이러한 사명을 계승하여 “주님께 다시 오실 때까지”(1고린 11,26) 계속 수행할 것을 원하셨는데, 우리는 이것을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면서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고린 11,25)라고 명령하심에서, 부활하신 후 성령을 제자들에게 주시며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라고 말씀하심에서, 승천하시면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9-20)라고 명령하심에서 알 수 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서 전례를 거행하면서, “구세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으로 나타나시고 우리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그분을 기다린다”(참조. 필립 3,20; 골로 3,4).20) 그러므로 전례를 거행하면서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성령과 함께 “오소서. 주 예수님!”(묵시 22,17.20)하며 외치는 것이다.
(7) 전례는 교회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참조. 전례헌장 10항, 가톨릭교회교리서 1074항).
교회의 모든 사도직 활동의 목적은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교회에 모여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기념하는 성찬례를 거행하고 거기에서 영원한 생명의 빵을 나누어 먹는 것이기 때문에(참조. 전례헌장 10항), 전례는 교회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고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 된다(참조. 전례헌장 10항). 전례에서 특히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성찬례(미사)를 통하여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전례회중으로 모여 “한마음 한 몸”21)을 이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룩하신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기억하게 되고, 하느님 아버지께 찬미와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성화가 이루어진다.
분명히 “전례가 교회 활동의 전부는 아니다.”(전례헌장 9항) 왜냐하면, 사람들이 먼저 복음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야 하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먼저 아직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선교사들을 파견하여, 참 하느님과 그분이 이 세상에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자신의 인생길에서 그 분을 영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예언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한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것을 잘 지키며 믿음과 사랑의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을 잘 영위해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참조. 전례헌장 9항).22)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분명히 전례가 교회 활동의 전부는 아니지만(참조. 전례헌장 9항), 신자들과 비신자들을 향한 교회의 모든 활동은 전례를 향하고 전례에서 그 힘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례는 교회의 모든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전례헌장 10항). 그리고 전례는 사제요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 분의 신비체이고 지체인 교회가 함께 행하는 활동이므로 탁월하게 거룩한 행위이고, 그 효과는 교회의 다른 어떠한 행위와 같은 정도로 비교될 수 없는 것이다(참조. 전례헌장 7장).
(8) 전례는 삼위일체적이다. 그리스도교 전례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업적이다.
하느님의 자기계시나 성화의 은총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강차원은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a Patre per Christum in Spiritu Santo) 이루어지며,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흠숭을 드리는 상승차원은 ‘하느님 아버지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ad Patrem per Christum in Spiritu Sancto) 이루어진다.23)
상승차원과 하강차원을 설명하는 이 문장에서 하느님 아버지에 대해 전치사 ‘-로부터’(a), ‘-께’(ad)가 사용되어 하느님 아버지께서 계시를 포함한 모든 구원경륜의 출발점임과 동시에 찬양을 포함한 모든 전례의 종착점임이 잘 드러나고 있다. 하느님은 항상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의 온갖 영적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총의 출발점이요(참조 에페 1,3; 2고린 1,3), 또한 창조와 구원의 온갖 영적 축복의 원천이기에 찬미를 받으시고 흠숭을 받으셔야 할 감사와 찬미의 종착점이 되신다(참조. 가톨릭교회교리서 1110항).
한편 그리스도에 대해 전치사 ‘-를 통하여’(per)가 사용되었는데, 상승차원과 하강차원 모두에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중개자로서 작용하시는 그리스도의 대사제적 중재임무가 잘 드러나고 있다. “성부 오른편에 앉으신”(마르 16,19)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시며(참조. 1디모 2,5; 히브 12,24), 하늘 성전의 대사제이시고(참조. 히브 8,1-2), 영원히 우리를 위해 간구해 주시는 분이시다(참조. 로마 8,34; 1요한 2,1; 히브 7,25).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또 “그분의 중개를 통하여”(골로 3,16-17; 참조. 에페 5,19-20) 하느님께 감사드리라고 하였다.24)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당신의 사제적 중개를 수행하시기 위해서 전례 행위 안에 현존하시며, 집전자의 인격 안에 현존하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역동적으로 현존하고 계시는 것이다.25)
그리고 성령에 대해 전치사 ‘-안에서’(in)가 사용되었는데, 상승차원과 하강차원 모두가 “성령의 힘으로”(참조. 미사통상문, 감사기도 2양식) 이루어진다는 것을 잘 드러낸다.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부어주신 선물이며(참조. 사도 2,32-33), 성령의 지도와 영적 충동으로 교회는 아버지께 기도드리고(참조. 로마 8,26-27), 찬양 드리고 예배드리며(참조. 에페 5,18-20; 골로 3,16-17), 예수를 주님이라 고백하고(참조. 1고린 12,3; 필립 2,11), 그분의 재림을 기다리며 그분을 부른다(참조. 1고린 11,26; 16,12; 묵시 22,17.20).26) 이런 이유로 전례는 항상 성령의 힘으로 함께 모인(참조. 성무일도 지침 8항) 교회의 기도가 되며, 전례 안에서 성령청원기도(epiclesis)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전례의 삼위일체적 성격은 미사의 시작예식에서 성호경에 뒤따라 배치된, 고린토 후서 13장 13절의 본문을 이용한, 사제의 인사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에서 잘 드러난다.27)
(9) 전례는 세례의 힘으로 전례 행위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의무와 권리를 동시에 가진 하느님의 모든 백성에게 속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으므로 여기에서는 간단하게 소개하기로 한다.
우선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례의 힘으로 전례 거행에 의식적이고 능동적이고 완전한 참여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28) 그런데 “전례에서 인간성화와 하느님 찬양이 가장 커다란 효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완전한 효과를 거두려면, 신자들은 올바른 정신 자세로 자기 마음을 목소리에 맞추어, 천상은총을 헛되이 받지 않도록(참조. 2고린 6,1) 은총에 협력하여 전례를 잘 알고 전례에 능동적으로 또 효과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29) 더 나아가 전례의 능동적 참여는 신자들에게 그리스도 정신을 제공하는 반드시 필요한 샘이다.30) 또한 전례의 능동적 “참여는 전례 자체의 본질에서 요구되는 것이다.”31)
이렇게 전례의 능동적 참여가 전례 자체의 본질에서 요구되는 것이라면, 전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였으며(참조. 마태 18,20), 또한 성령의 힘으로 함께 모여(참조. 성무일도 지침 8항) 전례를 거행하는 하느님의 백성, 즉 교회에 속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10) 전례는 생활 안에서 이웃 사랑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영적예배의 차원을 동반한다.
전례에서 하느님께 우리가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것이 상승차원이고, 하느님의 구원과 은총이 우리에게 내려오는 것을 하강차원이라고 한다면, 전례의 은총을 생활 속에서 이웃 사랑으로 실천하여 우리의 삶 자체로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이 되도록 하는 것을 수평차원이라고 한다. 전례의 수평차원은 흔히 영적예배로 알려져 있다. 올바른 전례거행이 되려면, 전례집회 안에서 거행되는 전례는 일상의 삶에서 실천하는 영적제사의 전례적 표현이 되어야 한다(참조. 가톨릭교회교리서 1397항, 2100항).
구약의 예언자들은 예배거행에 있어서 내적정결의 필요성(참조. 아모 5,21-25), 계약에 충실할 필요성(참조. 1사무 15,22; 호세 6,6; 미가 6,8; 예레 7,22-23), 이웃사랑을 실천할 필요성(참조. 이사 1,10-20)을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다. 영적예배는 올바른 영혼으로(참조. 집회 35,1- 10), 회개하는 마음으로(참조. 시편 40장; 50장) 행해지는 것이며,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과의 연대성 및 사회정의와 연결되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이다(참조. 신명 10,12-13; 이사 29,13; 58,6-11; 아모 5,21-24). 예수님께서도 다음과 같이 호세아 예언자의 말을 상기시키신다: “내가 바라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자선이다”(호세 6,6; 마태 9,13; 12,7).32)
신약의 예배인 전례는 이제 더 중대한 이유로 영적예배이다. 전례는 성령의 활동으로 하느님의 백성 안에서 성장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영으로 참된”(참조. 요한 4,7-26) 예배이기 때문이다.33) 신약의 유일하고 완전한 제사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그리고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온전히 바치신 십자가의 희생제사이다(참조. 히브 9,13-14). 그러므로 예수님의 희생 제사와 일치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 제물로 봉헌할 수 있다.34)
“평신도들은 그리스도께 봉헌되고 성령으로 도유된 사람들로서 놀랍게도 언제나 그들 안에서 성령의 더욱 풍부한 열매를 맺도록 부름을 받고 또 가르침을 받는다. 그들의 모든 일, 기도, 사도직 활동, 부부 생활, 가정 생활, 일상 노동, 심신의 휴식은, 성령 안에서 행하며 더구나 생활의 어려움을 인내로이 참아 받는다면, 그 모든 일을 하고 더욱이 삶의 괴로움을 꿋꿋이 견뎌 낸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영적인 제물이 되고(참조. 1베드 2,5), 성찬례 거행 때에 주님의 몸과 함께 정성되이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된다. 또한 이와 같이 평신도들은 어디에서나 거룩하게 살아가는 경배자로서 바로 이 세상을 하느님께 봉헌한다.”35)
결론적으로, “그리스도교 예배는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공동체가, 그리스도께 대해 가지는 자신의 존재론적 연관성을, 성령의 힘으로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켜 - 신앙과 사랑 속에서 - 하느님 아버지께 합당한 영적 예배가 되도록 표현하는, 내적이고 외적인 행위이다.”36)
2.1.2. 표징에 대한 이해
전례와 성사와 준성사에 대해서, “전례 안에서 인간의 성화가 감각적인 표징을 통하여 드러나고 실현된다.”(전례헌장 7항ㄹ, 59항, 77항)라고 하고, “성사는 인간의 성화와 그리스도 몸의 건설, 그리고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를 지향하며 교육에도 기여하는 표징”(전례헌장 59항ㄱ)이라고 하며, 또한 “준성사는 어느 정도 성사들을 모방하여 특히 영적 효력을 교회의 간청으로 얻고 이를 표시하는 거룩한 표징들”(전례헌장 60항)이라고 하기에, 표징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에서 전례에 대해 살펴보는 기회에 표징에 대해 이미 설명하기는 하였지만, ‘전례헌장’에 의하면, “가시적 표징들은 거룩한 전례에서 볼 수 없는 신적사물을 표시하고자 그리스도께서 또는 교회가 선택하여 사용하는 것이다.”(전례헌장 33항ㄴ) 전례에서 그리스도와 성령께서는 교회의 성사적 표징을 통하여 성화 활동을 하신다. 그리스도께서 또는 교회가 선택하여 사용하는 교회의 거룩한 표징들은 물질세계와 사회생활의 풍부한 모든 표징과 상징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을 정화하고 수용한다. 이러한 신약의 표징들, 즉 교회의 시대에 전례 안에서 사용되는 표징(signum)들은 구약의 예표(typos)와 형상들을 완성하는 본표(anti-typos)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을 상징하고 실제로 현존하게 하는 성사가 되며(sacramentum), 미래에 우리가 보게 될 하늘의 영광을 미리 맛보게 하고(praegustare) 예시한다(참조. 가톨릭교회교리서 1152항; 전례헌장 33항).37)
그리고 이러한 표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사와 준성사 등의 전례거행 안에서 사용되는 여러 가지 구체적인 표징들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38)
2.1.3. 성사에 대한 일반적 이해39)
트렌토 공의회(Concilium Tridentinum, 1545-1563)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430)의 견해를 받아들여 성사에 대해 정의하기를 “거룩한 것의 표징이며, 보이지 않는 은총의 보이는 형태”라고 정의한다(참조. DH 1693항).40) 이 노선을 계승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Concilium Vaticanum Ⅱ, 1962-1965)의 ‘전례헌장’은 “성사는 말씀과 사물로 신앙을 기르고 굳건하게 하고 드러낸다… 성사는 참으로 은총을 가져다주며, 그 집전은 신자들이 그 은총을 알차게 받고 하느님을 바로 예배하며 사랑을 실천하도록 매우 잘 준비시켜 준다.”(전례헌장 59항ㄱ)고 정의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가톨릭교회교리서’에서도 잘 설명되어 있다. 즉, “성사들은 우리 인간이 감지할 수 있고 다가갈 수 있는 표징(말씀과 행위)이다. 성사는 그리스도의 행위와 성령의 힘으로 그것들이 가리키는 은총을 실제로 이루어 준다.”41)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어 성령을 당신의 신비체인 교회에 부어 주시는 그리스도께서 이제는 당신의 은총을 나누어 주고자 세우신 성사들을 통하여 일하신다.”(가톨릭교회교리서 1084항) “일곱 가지 성사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은총을 펼치시는 표지이며 도구들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774항; 참조. 1116항) 그러므로 “성사와 준성사의 전례는 잘 준비된 신자들에게 생활의 거의 모든 사건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 신비에서 흘러나오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화되게 한다.”(전례헌장 61항)
결국 “성사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교회에 맡기신 은총의 유효한 표징들로서, 이 표징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베풀어진다. 성사 거행의 가시적인 예식은 각 성사에 고유한 은총을 나타내며 이를 실현한다. 성사는 합당한 마음가짐으로 받는 사람들에게서 열매를 맺는다.”(가톨릭교회교리서 1131항)
결론적으로 “성사는 인간의 성화와 그리스도 몸의 건설, 그리고 하느님께 드리는 경배를 지향하며, 표징들로서 교육에도 기여한다. 성사는 신앙을 전제할 뿐 아니라 말씀과 사물로 신앙을 기르고 굳건하게 하고 드러낸다. 그래서 신앙의 성사들이라고 한다.”42)
2.1.4. 미사(성체성사)에 대한 이해
성체성사를 부르는 여러 가지 이름들 - 성찬례 혹은 감사제(Eucharistia: gratiarum actio ad Deum), 주님의 만찬(Dominica Cena; 참조. cena nuptiarum Agni), 빵 쪼갬(Fractio panis), 성찬 모임(Eucharistica congregatio: synaxis), 거룩한 희생제사(Sanctum Sacrificium), 미사성제(Sanctum Sacrificium Missae), 찬미의 제사(Hostia laudis), 신령한 제사(spiritalis hostia), 깨끗하고 거룩한 제물(oblatio munda et sancta), 하느님의 거룩한 전례(Sancta et divina liturgia), 거룩한 신비(sanctorum mysteriorum), 지극히 거룩한 성사(Sanctissimo Sacramento), 친교 혹은 영성체(Communio), 천사들의 양식(panis angelorum), 하늘의 양식(panis de caelo), 불사약(pharmacum immortalitatis), 노자성체(viaticum), 거룩한 미사(Sancta Missa) - 에서 이 성사의 무한한 풍요로움이 나타난다.43)
“우리 구세주께서는 팔리시던 그 밤에 최후 만찬에서 당신 몸과 피의 성찬의 희생제사를 제정하셨다. 이는 다시 오실 때까지 십자가의 희생제사를 세세에 영속화하고, 또한 그 때까지 사랑하는 신부인 교회에 당신 죽음과 부활의 기념제를 맡기시려는 것이었다. 이 제사는 자비의 성사이고 일치의 표징이고 사랑의 끈이며, 그 안에서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어, 마음을 은총으로 가득 채우고 우리가 미래 영광의 보증을 받는 파스카 잔치이다.”44) ‘전례헌장’ 47항의 이 진술에는 미사의 주요한 두 가지 성격, 즉 ‘희생제사적’ 성격과 ‘잔치적’ 성격이 잘 나타나 있다.
1) 성찬례의 희생제사적 성격 - 먼저 희생제사(sacrificium)적 성격에서 성찬례는, ① 성부께 드리는 감사와 찬미의 제사, ② 그리스도와 그 몸(교회)의 희생을 기념하는 제사, ③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현존을 실현하는 제사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1358항).
① 성부께 드리는 감사와 찬미의 제사: 성찬례(eucharistia)는 성부께 드리는 감사의 제사, 즉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와, 창조와 구속과 성화로 이루어 주신 모든 것에 대한 ‘감사의 제사’(sacrificium in actionem gratiarum)이다. 또한 성찬례는 교회가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찬미의 제사’(sacrificium laudis)이다.45)
② 그리스도와 그 몸(교회)의 희생을 기념하는 제사: 성찬례(eucharistia)는 그리스도의 파스카의 기념제(memoriale)로, 그분의 몸인 교회의 전례 안에서 그분의 유일한 ‘십자가의 희생제사’(sacrificium crucis)를 재현하고 현재화하고(anamnesis) 성사적으로 봉헌하고, 그 결과를 실제로 적용시키기 때문에 또한 희생 제사이다. 사실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희생 제사와 교회가 바치는 성찬례의 희생 제사는 동일한 제사이기 때문에 교회의 성찬례도 또한 ‘속죄의 제사’(sacrificium propitiatorium)이다.46)
③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힘으로 실현하는 그리스도의 현존: 성찬례에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하는 실체변화(transsubstantiatio)를 통하여,47) ‘온전한 그리스도’(totus Christus)께서 ‘참으로, 실재적으로 그리고 실체적으로’(vere, realiter et substantialiter) 현존하게 된다.48) 그리스도께서는 성체가 축성되는 순간부터, 성체의 형상이 존속하는 동안 계속 그 안에 현존하신다.49) 우리는 주님께 대한 흠숭의 표시로 무릎을 꿇거나 깊이 몸을 숙여 절함으로써(성체공경),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현존하신다는 믿음을 표현한다.50)
2) 성찬례의 파스카 잔치적 성격 - 그리고 ‘파스카 잔치’(Convivium Paschale)적 성격에서 성찬례는,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거룩한 친교의 잔치이다. 성찬례를 거행하기 위하여 교회가 그 둘레에 모이는 제단은 한 신비가 지닌 두 가지 측면, 곧 주님께서 희생되신 제단과 주님의 식탁을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화해를 위해 바쳐진 제물로서, 그리고 우리에게 주시는 천상 음식으로서 당신 신자들의 모임 가운데 현존해 계시는 것이다. 전례는 수많은 기도들에서 이러한 희생 제사와 영성체의 불가분적 관계를 표현한다.51)
2.1.5. 미사의 각 부분에 대한 이해
미사의 중심은 말씀전례와 성찬전례 두 부분이다. 이 두 부분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단 하나의 예배행위를 이룬다. 이렇게 미사에서 하느님 말씀과 그리스도 몸의 식탁이 마련되어 신자들이 가르침과 양식을 얻는다. 그밖에 시작예식과 마침예식이 처음과 끝에 덧붙여져 있다.52) 그러면 지금부터 시작예식, 말씀전례, 성찬전례, 마침전례의 각 부분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자.
(1) 시작예식: 시작예식은 말씀전례에 앞서 거행하는 예식이다. 시작과 이끎과 준비의 성격을 지닌 시작예식의 각 구성요소들은, 한 곳에 모인 신자들이 일치를 이루어, 말씀전례에서 선포되는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듣고, 성찬전례에 합당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미리 자신을 준비하게 도와준다(참조. 미사지침 46항).
- 입당행렬과 입당성가: 회중이 모인 다음 주례사제는 부제와 봉사자들과 함께 입당행렬을 한다. 이 때 입당성가(입당송)을 노래한다. 이 노래는 전례거행을 시작하고, 함께 모인 이들의 일치를 강화하며, 전례시기와 축제의 신비로 회중의 마음을 이끌며, 회중도 사제와 봉사자들의 행렬에 참여하게 한다(참조. 미사지침 47항, 120항, 172항).
- 제대인사와 분향: 입당행렬이 제대에 이르면 제대에 인사를 드리고 경우에 따라 향을 피운다(참조. 미사지침 49항, 277항).
- 성호경과 인사: 입당성가가 끝나면 십자표지로 성호를 긋는다. 이어 사제는 인사하며 모인 회중에 주님의 현존을 알린다. 이 인사와 화답으로 전례회중을 이룬 교회의 신비가 드러난다(참조. 미사지침 50항).
- 권고와 참회식 및 자비송 혹은 성수예절: 회중에게 인사가 끝나면 사제나 다른 적합한 봉사자는 짤막한 말로 그 날 미사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참조. 미사지침 31항, 48항, 50항, 105항, 128항). 그 다음에 사제는 참회 행위에 회중을 초대한다(참조. 미사지침 51항). 참회 행위에서 이미 자비송을 바치지 않았다면, 참회 행위 다음 항상 자비송을 바친다(참조. 미사지침 52항). 주일 특히 파스카시기의 주일에 참회식과 자비송을 대신 세례를 기념하여 물을 축복하여 뿌리는 성수 예절을 할 수 있다(참조. 미사지침 51항).
- 대영광송: 대림시기와 사순시기 밖의 모든 주일, 축일과 대축일, 그리고 성대하게 지내는 특별한 전례거행 때에는 대영광송을 바친다. 대영광송은 성령 안에 모인 교회가 아버지와 어린양께 찬양과 간청을 드리는 고귀한 찬미의 노래이다(참조. 미사지침 53항).
- 본기도: 사제의 초대에 따라 사제와 회중은 잠시 침묵 중에 기도한다. 이 침묵 중에 회중은 사제와 함께 자신이 하느님 앞에 있음을 깨닫고 간청할 내용을 마음속으로 기도드린다. 그리고 사제는 해당 전례거행의 성격이 표현되는 본기도를 바치고(참조. 미사지침 54항), 회중은 청원에 함께 참여하고 아멘으로 환호하여 그 기도를 자신의 기도로 만든다(참조. 미사지침 127항).
(2) 말씀전례: 말씀전례는 성경독서들과 그 사이의 노래들로 이루어진 중심부분과 이 중심부분을 발전시키고 끝맺는 부분인 강론, 신경, 보편지향기도로 구성되어 있다.
- 성서독서(1,2독서, 복음)와 침묵: 독서를 통하여 회중에게 하느님 말씀의 식탁이 마련되고 성서의 보고가 열린다. 독서는 잘 준비한 독서자가 주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마음으로 봉독하며, 회중은 믿음과 감사의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한다(참조. 미사지침 29항, 57항, 59항). 말씀전례 전, 그리고 첫째 독서 다음과 둘째 독서 다음, 그리고 강론 후에 짧은 침묵의 순간을 갖는다. 이 순간에 회중은 성령으로 힘을 얻어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것을 묵상하여 마음으로 깨닫고 기도를 통한 응답을 준비한다(참조. 독서지침 28항; 미사지침 45항, 56항).
- 화답송 및 부속가: 1독서에 따르는 화답송은 선포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을 촉진하는 것으로 전례적으로도 사목적으로도 큰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참조. 미사지침 61항). 파스카 주일과 성령강림 주일에는 의무적으로 그 이외의 경우에는 선택적으로 2독서 후에 제시된 부속가를 바친다.53) 부속가는 마치 2독서의 화답송과 같은 역할을 한다(참조. 미사지침 64항).54)
- 복음환호송: 복음 선포 전 회중은 ‘알렐루야’ 혹은 ‘복음 전 노래’로 복음 선포에서 자신들에게 말씀하실 주님을 환영하고 찬양하며 그분께 대한 믿음을 고백한다(참조. 미사지침 62항).
- 강론: 선포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더욱 충만한 이해와 생활의 실천을 위해 가능한 한 강론을 하는 것이 좋다(참조. 미사지침 29항). 강론은 그리스도교 삶을 성장시키므로, 성서독서의 내용 또는 미사통상문이나 그 날 미사의 고유 전례문 등을 바탕으로 두어야 한다(참조. 미사지침 65항). 강론 다음에는 적절하게 짧은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참조. 미사지침 66항).
- 신경: 신경은 회중이 성서독서에서 선포되고 강론에서 설명된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하도록 도와주고, 성찬례 거행을 시작하기 전에 위대한 신앙의 신비를 기억하고 고백하는데 도움을 준다. 신경은 주일과 대축일 혹은 특별한 전례거행에서 바친다(참조. 미사지침 67항, 68항).
- 보편지향기도: 보편지향기도는 전례회중이 믿음으로 받아들인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하고 세례 때 받은 자신의 사제직을 수행하면서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이다(참조. 미사지침 69항).
(3) 성찬전례: 그리스도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파스카 제사와 잔치를 제정하시고 교회 안에서 십자가의 제사가 언제나 계속되도록 하셨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동에 맞추어 성찬전례의 순서를 다음과 같이 정해 놓았다: ① 그리스도께서 손에 드셨던 재료인 빵과 포도주를 제대로 가져가는 예물준비, ② 구원업적 전체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예물을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는 감사기도, ③ 빵의 나눔과 영성체를 통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영성체 예식(참조. 미사지침 72항).
- 예물준비: 예물준비는 제대준비, 빵과 포도주 봉헌, 신자들의 헌금, 예물준비기도, 사제의 손 씻음, 예물기도의 순으로 진행한다(참조. 미사지침 73항).
- 감사기도: 감사기도의 구조를 본문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① 대화와 감사송, ② 환호 ‘거룩하시도다.’, ③ 연결기도, ④ 축성성령청원, ⑤ 성찬제정과 축성문, ⑥ 환호 ‘신앙의 신비여!’, ⑦ 기념, ⑧ 봉헌, ⑨ 일치성령청원, ⑩ 전구, ⑪ 마침 영광송, ⑫ 아멘 등이다(참조. 미사지침 79항).55) 이들 감사기도의 구성요소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자.
① 대화와 감사송: 사제가 회중 전체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고 구원업적 전체, 곧 창조, 구속, 성화에 대해서 감사드리고 또는 그날과 축일과 시기에 해당하는 특별한 신비에 대해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 감사드리는 부분이다(참조. 미사지침 79항ㄱ; 가톨릭교회교리서 1352항).
② 환호 ‘거룩하시도다.’: 회중 전체가 하늘의 천사들과 성인들의 천상교회와 결합하여 끊임없는 찬미를 드리는 노래이다(참조. 미사지침 79항ㄴ; 가톨릭교회교리서 1352항).
③ 연결기도: ‘거룩하시도다.’와 ‘성찬제정과 축성문’을 연결시키는 기능을 가진 부분을 편의상 연결기도라고 부른다.
④ 축성성령청원: 교회는, 성부께서 성령(또는 성부의 강복하시는 능력56))을 사람들이 바친 빵과 포도주 위에 보내시어, 그 능력으로 빵과 포도주가 축성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도록 청한다(참조. 미사지침 79항ㄷ; 가톨릭교회교리서 1353).57)
⑤ 성찬제정과 축성문: 성찬제정과 축성문은 예수님의 최후만찬 때 성체성사를 제정하심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감사기도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의 힘과 성령의 권능이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당신의 몸과 피, 곧 단 한 번 영원히 십자가 위에서 바쳐진 당신의 희생 제물을 성사적으로 현존하게 한다(참조. 미사지침 79항, 라; 가톨릭교회교리서 1353항).
⑥ 환호 ‘신앙의 신비여!’: 성찬제정과 축성문 부분에서 이루어진 성체성혈 축성의 신비에 환호하며 참여하게 된다.
⑦ 기념: 교회는 사도들을 통하여 주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명령을 이행하며 그분을 기억한다. 특히 그분의 복된 수난과 영광스러운 부활과 하늘에 오르심과 영광스러운 재림을 기억한다(참조. 미사지침 79항, 마; 가톨릭교회교리서 1354항).
⑧ 봉헌: 교회는 이 기념제로써, 우리를 성부와 화해시키려고 자신을 흠 없는 제물로 봉헌하신 성자를 성령 안에서 성부께 드린다(참조. 미사지침 79항, 바; 가톨릭교회교리서 1354항). 교회는 신자들이 또한 자신도 바치는 것을 배우기를 바란다.58)
⑨ 일치성령청원: 영성체를 통해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하느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상호 간에 일치를 이루어 오직 한마음 한몸이 되게 하며, 구원에 참여하도록 하는데, 이를 위해 일치와 구원의 원천이신 성령을 청한다(참조. 미사지침 59항, 라; 가톨릭교회교리서 1353항).
⑩ 전구: 전구에서 하늘과 땅의 온 교회가 하나가 되는 친교 안에서 성찬례를 거행하고 있음이 표현된다. 또한 교회는, 교회의 목자인 교황과 교구 주교와 사제단과 부제들 더 나아가 온 세상의 모든 주교와 이루는 친교 안에서,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하여 기도한다(참조. 미사지침 59항, 사; 가톨릭교회교리서 1354항).
⑪ 마침 영광송: 이 기도는 사제가 감사기도 전체를 마무리하면서 하느님께 바치는 찬양을 표현한다.
⑫ 아멘: 사제가 바친 ‘마침 영광송’에 대해 회중은 환호 ‘아멘’으로 확인하고 마감한다.
- 영성체 예식: 성찬례 거행은 파스카 잔치이므로, 신자들은 주님의 몸과 피를 영신의 양식으로 받아 모시는 것이 마땅하다. 영성체 예식은 주님의 기도, 평화예식, 빵 쪼갬, 하느님의 어린 양, 사제의 영성체 전 기도, 영성체 및 영성체송, 감사침묵기도, 영성체 후 기도로 구성되어 있다.
(4) 마침예식: 주례사제가 집회를 마치는 예식으로, 공지사항, 인사, 마침 강복, 파견, 제대인사, 퇴장행렬과 마침성가로 구성되어 있다(참조. 미사지침 90항)
2.2. 의식적(conscie) 참여
‘전례헌장’은 “어머니인 교회는 모든 신자가 전례 거행에 ‘의식적이고’(consciam) 능동적이고 완전한 참여를 하도록 인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한 참여는 전례 자체의 본질에서 요구되는 것이다.”(전례헌장 14장)라고 말하면서, 전례 자체에서 요구되는 참여 가운데 으뜸으로 의식적 참여를 내세우고 있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이 신앙의 신비에 마치 국외자나 말 없는 구경꾼처럼 끼여 있지 않고, 예식과 기도를 통하여 이 신비를 잘 이해하고 거룩한 행위에 ‘의식적으로’(conscie) 경건하게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깊은 관심과 배려를 기울인다.”(전례헌장 48항)라고 말하면서 신자들이 전례에 의식적으로 참여하도록 관심을 가지고 배려해야 하는 교회의 사명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라틴어 어휘 ‘conscius,-a,-um’(형용사), ‘conscie’(부사)는 “잘 아는”, “의식적”, “죄책감을 느끼는” 등의 세 가지 의미를 나타낸다.59) 이들 중 한국어판 ‘공의회문헌’에서 채택한 “의식적”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意識的: 스스로 그런 줄 알면서 일부러 하는 모양. 고의적(故意的). (예) ~ 행위. 무의식적.”으로 적혀있다.60)
그렇다면 ‘의식적’(conscie) 참여란, 무의식적 참여가 아니라 의식이 깨어 있는 참여이고, 무관심한 참여가 아니라 관심을 갖는 참여이고, 졸음이나 잠에 빠지는 참여가 아니라 잠을 깬 청명한 정신의 참여이고, 건성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하여 참여하는 것이고, 반복적이어서 습관적인 참여가 아니라 마치 단 한번뿐인 것처럼 새로운 마음으로 전례에 참여하는 것이다.
2.3. 경건한(pia) 참여
‘전례헌장’은, “교회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이 신앙의 신비에 마치 국외자나 말 없는 구경꾼처럼 끼여 있지 않고, 예식과 기도를 통하여 이 신비를 잘 이해하고 거룩한 행위에 의식적으로 ‘경건하게’(pie)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깊은 관심과 배려를 기울인다.”(전례헌장 48항)라고 말하며, 교회는 투철한 사명감으로 신자들이 전례에 경건하게 참여하도록 관심을 가지고 배려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또한 ‘전례헌장’은, “미사 통상문은 각 부분의 고유한 본질과 상호 연관성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또한 신자들의 ‘경건하고’(pia) 능동적인 참여가 더 쉽게 이루어지도록 개정되어야 한다.”(전례헌장 50항)라고 말하며, 신자들의 경건한 참여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른 전례문 개정 특히 미사통상문의 개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라틴어 어휘 ‘pius,-a,-um’(형용사), ‘pie’(부사)는 “효성스러운”, “우애 깊은”, “애국심이 강한”, “경건한”, “신심 깊은”, “자애로운”, “상냥한” 등의 다양한 의미를 나타낸다.61) 이들 중 한국어판 ‘공의회문헌’에서 채택한 “경건한”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敬虔: 공경하는 마음으로 깊이 삼가고 조심함.”이라고 적혀있다.62)
그렇다면 ‘경건한’(pia) 참여란, 공경심 없는 참여가 아니라 공경심을 갖춘 참여이고, 얼렁뚱땅 덜렁덜렁 이루어지는 참여가 아니라 깊이 삼가고 조심스럽게 이루어지는 참여를 말한다. 전례에서 주례자로서 교회 및 함께 모인 공동체의 이름으로 기도를 바치는 사제 또한 자신의 봉사 직무를 더욱 열심하고 경건하게(pietate) 수행하기 위하여 사적으로 기도를 바치며 스스로를 가지런하게 정돈하여야 한다(참조. 미사지침 33항). 전례 전문가 또는 예절 담당자는 거룩한 봉사자들과 평신도들이 아름답고 질서 정연하게 또 경건하게(pietate) 임무를 수행하도록 조정하는 임무를 맡는다(참조. 미사지침 106항).63)
2.4. 내적 외적으로 능동적(actuosam internam et externam) 참여
‘전례헌장’은, “영혼의 목자들은 부지런히 또 꾸준히 신자들의 전례 교육에 힘써…‘내적 외적으로 능동적으로’(actuosam internam et externam) 참여하게 하여야 한다.”(전례헌장 19항)라고 하면서,64) 이러한 “능동적 참여를 증진하도록, 백성의 환호, 응답, 시편 기도, 따름 노래, 성가와 함께 행동이나 동작과 자세를 중시하여야 한다. 또한 거룩한 침묵도 제때에 지켜야 한다.”(전례헌장 30항)라고 말한다. 그러면 회중들의 능동적 참여를 이루는 요소들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2.4.1. 환호, 응답
“미사 거행은 본성상 공동체 행위라는 특성을 지니므로65) 집전자와 모인 신자들 사이의 대화 및 환호는 매우 중요하다.66) 이 대화와 환호는 미사가 공동체의 거행임을 외적으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사제와 백성의 일치를 이루고 촉진시키기 때문이다.”(미사지침 34항) “사제의 인사와 기도에 응하는 신자들의 환호와 화답은 그들의 능동적 참여를 한층 더 강화한다.”67)
막상 처음에 교회에 들어갈 때 사람들은 그저 개개인이 모인 떼거리에 불과할 뿐이다.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함께 모이지만, 정신적으로도 함께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뜻과 마음이 하나가 되고 모두가 공동체임을 자각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같이 기도하거나 노래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이렇게 함으로써 문자 그대로 하나의 목소리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68)
2.4.2. 노래와 성가
“사도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한 자리에 모이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함께 노래하라고 권고한다(골로 3, 16 참조). 노래는 마음의 기쁨을 드러내는 표지이기 때문이다(사도 2, 46 참조).”69) 그러므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노래를 부르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이다.”70) 또 “성가는 두 배의 기도이다.”71)라고 훌륭하게 표현한다(참조. 미사지침 39항; 가톨릭교회교리서 1156항).
노래와 음악은 전례 행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들을 선용하는 기준은 기도의 아름다운 표현, 회중 전원의 일치된 참여와 전례 거행의 장엄함에 있다. 이처럼 노래와 음악은 하느님의 영광과 신자들의 성화라고 하는 전례적 언어와 행위의 궁극 목적에 이바지한다.72)
2.4.3. 회중에게 속한 전례문
“모인 회중 전체에게 해당되는 부분으로서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드러내고 증진시키는데 매우 유익한 다른 부분은 특히 참회 행위, 신앙 고백, 보편지향기도 및 주님의 기도 등이다.”73) 이미 앞에서 환호/응답, 노래/성가에 대해 다루었으므로,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회중에게 속한 전례문은 미사에서 노래/성가로 바치는 부분도 아니고, 환호/응답으로 바치는 부분도 아닌 것으로, 통상적으로 전례회중 전체가 함께 낭송하는 형식으로 바치는 부분을 말한다. 이러한 부분도 전례회중이 마음을 모아 바치는 것이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드러내고 증진시키는데 매우 유익하다.
2.4.4. 동작과 자세
모든 이들의 동작(몸동작: 입당 행렬, 복음전 행렬, 봉헌 행렬, 영성체행렬, 퇴장 행렬; 손동작: 합장, 팔을 벌림, 십자성호, 가슴을 침)과 자세(섬, 앉음, 무릎 꿇음, 절)는 거행 전체가 기품 있고 고상하며 간결하게 수행되는데 기여해야 한다. 모든 참여자들이 지켜야 할 통일된 자세는 거룩한 전례에 모인 그리스도교 공동체 구성원의 일치의 표지이다. 이는 참석자들의 마음과 정감을 표현해 주는 동시에 그것을 길러준다. 행위와 행렬들은 각 동작에 대한 규범에 따라 품위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74)
2.4.5. 침묵
“거룩한 침묵 또한 거행의 한 부분으로서 제 때에 지켜져야 한다.75) 침묵의 성격은 각 거행에서 그 침묵이 시행되는 순간에 따라 다르다. 참회 행위와 각 기도의 초대 다음의 침묵은 자기 내면을 성찰하는데 도움이 되고, 독서와 강론 후의 침묵은 들은 것에 대해 잠깐 묵상하는데 도움을 주며, 영성체 후에 하는 침묵은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바치도록 이끌어 준다. 거행에 앞서 이미 성당, 제의실(secretario) 그리고 주위에서 침묵을 지키는 것이 권장된다. 이렇게 모두 곧 시작될 거룩한 예식을 경건하고 합당하게 거행하도록 마음을 준비한다.”76)
2.5. 온전하고 완전한(plena) 참여
‘전례헌장’은, “어머니인 교회는 모든 신자가 전례 거행에 의식적이고 능동적이고 ‘완전한’(plenam) 참여를 하도록 인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한 참여는 전례 자체의 본질에서 요구되는 것이다 … 그리스도인은 세례의 힘으로 그 참여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전례헌장 14항; 참조. 미사지침 18항)라고 말하면서, 완전한 참여는 전례 자체의 본질에서 요구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권리와 의무라고 설명한다. 또한 ‘전례헌장’은, “거룩한 어머니인 교회는 그리스도교 백성이 거룩한 전례에서 풍성한 은총을 더욱 확실히 받도록 전례 자체의 전면 쇄신을 적극 추진하고자 한다 … 그리스도교 백성이 될 수 있는 대로 그것들을 쉽게 깨닫고, 공동체 고유의 전례 거행에 ‘온전히’(plena)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온전한 참여를 돕는 방향으로 전례 자체의 쇄신, 즉 전례문과 예식의 쇄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천명한다.
라틴어 어휘 ‘plenus,-a,-um’(형용사), ‘pleniter’(부사)는 “가득한”, “충만한”, “배부른”, “충분한”, “완전한”, “온전한”, “풍부한”, “힘찬”, “장성한” 등의 다양한 의미를 나타낸다.77) 이들 중 한국어판 ‘공의회문헌’에서 채택한 “완전한”, “온전한”에 해당하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完全: 부족함이 없음. 결점이 없음. 불완전.”, “穩全: 흠결이 없이 완전함. (예) ~함을 얻다 / ~하게 보관하다.”라고 적혀있다.78)
그렇다면, ‘완전한/온전한’(plena) 참여란, 부족함이 없는 충분한 참여이고, 결점이나 흠결이 있는 참여가 아니라 결점이 없는 참여를 말한다. 미사에 완전하게 참여한다는 것은, 습관적으로 미사에 늦게 오는 것과 다른 일에 바쁘다고 미사 도중에 서둘러 자리를 뜨는 것을 지양하고, 미사가 시작하기 전에 충분한 시간여유를 가지고 미사 거행장소에 도착해서 미사를 준비하고 또 미사가 마칠 때까지 그곳에서 공동체와 함께하는 것을 완전한 참여라고 할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전례헌장’은 “사제의 영성체 후에 신자들이 같은 희생 제사에서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더욱 완전한’(perfectior) 미사 참여는 크게 권장된다.”(전례헌장 55항)라고 말한다.79) 또한 ‘미사지침’은 “성가대 자리는… 성가대원들이 맡은 임무를 쉽게 수행하고 편리하게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 미사에 완전하게(plena) 참여할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미사지침 312항)라고 말함으로써, 영성체에 참여하는 것이 미사전례에 대한 완전한 참여라고 설명한다.80) 결론적으로, ‘완전한’(pia) 참여란, 첫째로, 미사의 처음부터 마침까지 전례거행에 참여하는 것을 말하며, 둘째로, 서양에서 영성체를 안 하고 미사에만 참석하여 주일의무를 지키는 교우들이 늘어나면서, 성체를 모시는 미사 참여를 완전한 참여로 제시한다.
영성체의 슬픈 퇴조 현상은 아마도 동방 교회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은데 문제를 일으킨 것은 성사이신 하느님(예수 그리스도)이 성부이신 하느님과 전적으로 동등하지는 않다고 믿는 아리우스의 이단적 교설 때문이었다. 성자는 영원으로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또 성부께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께서 진짜 하느님은 아니라는 주장이 나왔다. 교회는 당연히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그 주장을 단죄했다. 그러나 아리우스주의는 공식적으로는 생명이 끊겼지만 굴복하지는 않는 이단들 중의 하나가 되어, 놀랄 만큼 많은 추종자들을 끌어당겼고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여러 세기 동안 존속했다. 이런 이유로 가톨릭 신학자들과 설교자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특별한 강조점을 두어야 했다. 그러나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고 예견할 수도 없었지만 실제로 초래된 결과는 신자들이 하느님이신 그리스도의 그 큰 위엄에 대한 경외감으로 너무 압도되어 그분을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전 세대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형제이시라는 것과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로서 다가가기 쉬운 분이시라는 사실에 대한 기쁨에 찬 인식의 결과, 그토록 가득한 신뢰로 그분의 몸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게 했었으나, 이제 그분이 지닌 신적인 위엄에 대한 경외감으로 대체되어, 신자들이 존경심 때문에 그분과 거리를 유지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태도는 또한 서방교회에도 파급되어 신자들이 점점 더 드물게 성체를 모시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1215년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는 누구나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성체를 모셔야 한다는 것을 의무로 규정짓기에까지 이렀다. 초기와는 이 얼마나 대조적인가! 트렌토 공의회 이후에는 사정이 다소 개선되었다가 17세기에는 존경에 찬 경외심을 지나치게 독려하는 얀세니즘이라는 또 하나의 이단의 영향으로 영성체는 다시금 퇴조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두 극단, 즉 존경심의 결여와 그 지나친 강조를 피해야 한다. 신자들이 영성체 바로 전에 함께 말하게 되어있는 본문은 그러한 올바른 균형을 잡아준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참조. 마태 8,8)81)
2.6. 효과적인(fructuose) 참여
‘전례헌장’은 전례에서, “이렇게 완전한 효과를 거두려면… 천상은총을 헛되이 받지 않도록 은총에 협력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거룩한 목자들은… 신자들이 잘 알고 능동적으로 또 효과적으로(fructuose) 전례에 참여하도록 돌보아야 한다.”(전례헌장 11항)라고 말하면서 사목자들이 신자들에게 갖추도록 하여야할 중요한 참여자세 가운데 하나로 이 효과적 참여를 말하고 있다.82)
라틴어 어휘 ‘fructuosus,-a,-um’(형용사), ‘fructuose’(부사)는 “결실이 많은”, “비옥한”, “효과적인”, “유익한” 등의 다양한 의미를 나타낸다.83) 이들 중 한국어판 ‘공의회문헌’에서 채택한 “효과적인”에 해당하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效果的: 효과가 있는 모양. (예) ~ 방법”이고, 여기에서 “효과”는, “效果: 보람이 있는 결과”이다.84)
그렇다면, ‘효과적인’(fructuose) 참여란, 무위로 끝나버리는 참여가 아니라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참여이고, 아무런 효과가 없는 참여가 아니라 뚜렷한 효과를 내는 참여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미사지침’은, “하느님의 백성은… 근원적으로 거룩하지만 성찬 신비에 의식적이고 능동적이고 ‘효과적으로’(fructuosam) 참여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그 거룩함을 완성시켜간다.”(미사지침 5항; 참조. 전례헌장 11항)고 말하면서 효과적 참여가 그리스도교 신자의 성화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된다고 설명한다. ‘미사지침’은 또한 “주교는 사제와 부제 및 평신도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항상 전례 예식과 본문의 본연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여 능동적이고 ‘결실 있는’(fructuosam) 성찬례 거행에 참여하도록 마음을 써야 한다.”(미사지침 22항)라고 하고 “긴 독서 또는 짧은 독서를 선택할 때는 독서의 ‘결실’(fructu)과 함께 독서를 듣는 신자들의 능력을 고려해야 한다. 신자들의 본문에 대한 이해 능력은 본문을 설명하는 강론으로 보충된다.”(미사지침 360항)라고 하며 “사제는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효과적으로’(fructuose) 받아 모시기 위해 조용한 기도로 준비한다. 신자들도 침묵 가운데 기도하면서 같은 준비를 한다.”(미사지침 84항)라고 말함으로써, 효과적 참여를 수행하는 세부적인 방법으로 ① 전례 예식과 본문의 본연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 ② 독서 본문에 대해 이해하고 강론으로 도움을 받는 것, ③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는 것 등을 제시한다. 전례 예식과 본문에 대한 이해는 이미 ‘잘 알고’(scienter) 참여하기에서 살펴보았으므로, 여기서는 말씀전례의 효과와 영성체의 효과에 대해 살펴보자.
말씀전례의 효과는 말씀전례를 통한 열매 맺기라고 부를 수 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성사는 합당한 마음으로 받는 사람들에게서 ‘열매를 맺는다’(fructum ferunt).”(1131항)라고 말하며 성사에 있어서 열매 맺기에 대해 말한다. 이를 말씀전례에 적용해 본다면, 말씀전례의 독서들 본문과 화답송, 복음전 노래 등의 성가, 강론 등을 통하여 들려오는 하느님의 말씀, 기도, 가사 등에 비추어 개인의 삶을 조명해 보고, 그 말씀과 본문에서 위로를 얻으며, 생활개선의 결심을 하고, 이웃사랑을 실천하겠다는 결심을 가진다면 이것을 말씀전례의 열매 맺기라고 말할 것이다.
영성체가 이루는 효과는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모시는 거룩한 영성체는 주님과 이루는 친교를 증대시키며, 소죄를 용서해 주고, 대죄에서 보호해 준다. 성체를 모시는 사람과 그리스도 사이에 사랑의 유대가 굳건해지므로, 영성체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일치도 강화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1416항)85)
나가는 말
지금까지 ‘신자들의 미사참례’라는 주제를 다음과 같이 살펴보았다.
I장 ‘전례헌장에 나타난 신자들의 능동적 미사참례’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에 나타난 전례의 능동적 참여에 관한 중요한 교의를 살펴보았다.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는 ‘인간성화와 하느님 찬양의 완전한 효과를 위해’, ‘전례자체의 본질에서 요구되기에’ 그리고 ‘신자들에게 그리스도교 정신을 제공하는 샘이기에’ 필요하다. 그리고 능동적 참여는 ‘그 권리와 의무가 세례성사의 힘에서 나오며’, ‘신자들은 각기 다른 모양으로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미사의 각 부분에 충실한 것이 능동적 참여’를 구현하는 것임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이런 능동적 참여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예식서의 개정 단계부터 능동적 참여를 고려해야 하고’, ‘신자들의 전례교육을 받도록 배려하고’, ‘성직자들도 전례의 스승이 되도록 교육하여’ 능동적 참여를 촉진시킨다.
II장에서는 ‘신자들의 미사참례’를 ‘잘 알고(scienter) 참여’, ‘의식적(conscie) 참여’, ‘경건한(pia) 참여’, ‘내적 외적으로 능동적(actuosam internam et externam) 참여’, ‘온전하고 완전한(plena) 참여’ 그리고 ‘효과적인(fructuose) 참여’로 나누어 세부적으로 살펴보았다. 세부적으로 ‘잘 알고(scienter) 참여’는 전례, 표징, 성사, 미사(성체성사), 미사의 각 부분 등에 대해 이해하고 참여하는 것이다. ‘의식적(conscie) 참여’는 의식, 관심, 정성, 청명한 정신, 새로운 마음 등을 갖춘 참여이다. ‘경건한(pia) 참여’는 공경심을 갖추어, 깊이 삼가고 조심스럽게 이루어지는 참여이다. ‘내적 외적으로 능동적(actuosam internam et externam) 참여’는 환호/응답, 노래와 성가, 회중의 전례문, 동작과 자세, 침묵 등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참여이다. ‘온전하고 완전한(plena) 참여’는 일차적으로 지각하거나 일찍 자리를 뜨지 않는 참여를 말하고, 더나가 ‘온전하고 완전한(plena) 참여’는 영성체까지 나아가는 참여를 말한다. 끝으로 ‘효과적인(fructuose) 참여’는 일차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이나 응답 기도나 성가를 통하여 거기에 자신의 삶을 비추어, 그 말씀이나 기도나 가사에서 위로를 얻으며, 생활개선의 결심을 하고, 이웃사랑의 결심을 하는 것을 말하고, 더 나아가 ‘효과적인(fructuose) 참여’는 영성체의 효과(참조. 가톨릭교회교리서 1416항)를 내는 참여를 말한다.
전례행위는 “교회의 몸 전체에 관련되고 그 몸을 드러내며 영향을 끼친다. 교회의 각 지체는 위계와 임무와 실제 참여의 차이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으로 관여한다.”(전례헌장 26ㄴ항: 가톨릭교회교리서 1140항) 그리고 “전례 거행에서는 누구나 교역자든 신자든 각자 자기 임무를 수행하며 예식의 성격과 전례 규범에 따라 자기에게 딸린 모든 부분을 또 그것만을 하여야 한다.”(전례헌장 28항: 가톨릭교회교리서 1144항) 그래서 신자들의 보편 사제직을 수행하는 다른 특별한 직무들이 있는데, 성품성사로 축성되지 않는 복사, 독서자, 해설자, 성가대, 예물봉헌자, 성체분배자 등의 전례 봉사 직무들은 전례 전통과 사목적 필요에 따라 주교가 정한다(참조. 전례헌장 29항: 가톨릭교회교리서 1143항, 1348항). 그러나 또한 “‘아멘’으로 참여를 표현하는 전체 회중은 각자 나름대로 전례 거행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1348항) 그리고 바로 이때 “온 회중은 모든 사람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으로 하나 되어’ 각자의 임무에 따라 ‘전례거행자’(liturgus)가 된다.”(가톨릭교회교리서 1144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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