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다보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다.(마태오 16,23)
성경을 읽으면서 깊이 묵상하지 않으면 얼른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고 믿는 제자에게 하는 표현 치고는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수난을 앞두고 있는데도, 여전히 세상의 기준에 따라서만 생각하는, 영적으로 미숙한 제자를 어떻게든 깨우쳐보려는 예수님의 깊고 안타까운 사랑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이라는 말을 들은 베드로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예수님을 사랑하는 베드로로서는 당장은 무안하고 속상하고 억울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왜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그 순간의 베드로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자신을 사탄이라고까지 부른 이유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 때서야 예수님의 고뇌와 사랑을 이해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을 테고, 진심에서 우러난 감사를 드렸겠지요.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제 자신을 반성해보았습니다. 적극적으로 사랑해주고 변호해 주어야할 일을 귀찮아서, 비난 받을까봐 적당히 모르는 척하거나 동조했던 적은 없었는지 성찰해보았습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우쭐해하면서 정작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충분히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이웃에게 관심을 갖는데 게으르지는 않았는지...... 제 마음 속에서 셀 수 없이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탄의 승리를 헤아려봅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드니, 제가 죄에 빠진 순간에 예수님께서‘사탄아 물러가라’라고 말씀해주셨다면 정말 좋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말씀을 들었다면 부족하기만 한 제가 오히려 예수님께 마음을 돌려버렸을 것도 같습니다.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부르셨던 예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묵상하면서, 제가 그 동안 참 무던히도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생각이 드니 눈물부터 납니다. 제 마음 속에서 아파하고 계셨을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도록 애써야겠습니다. 사탄을 멀리하는 일은 매 순간 순간 제 의지로 결정할 일입니다. 제 마음 속에서 매 순간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시면 예수님의 꾸짖음에 대해 감사는 커녕 예수님께 대한 원망만 자리 잡게 되겠지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곰곰이 새기고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 기다림의 자세와 성찰의 노력이 베드로에게 깨달음의 은총을 가져다주고, 베드로를 성화의 지름길로 인도했을 것입니다. (그냥 제 맘대로 묵상이라,, 제대로 묵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
사흘 전에 제 코 한 가운데 종기가 났습니다. 덕분에 코가 벌겋게 되어서 보기 흉합니다. 벌건 자국이 가라앉기를 기다리지만 날이 갈수록 코 전체로 붉은 기운이 퍼지고, 아파서 만질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직 곪은 것도 아니어서 짜낼 수도 없습니다. 얼굴 한 가운데가 벌겋게 되어 있으니 이만 저만 속상한 게 아닙니다. 거울을 보면서 얼굴 한 가운데에 난 종기가 꼭 제 마음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을 사탄 같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주위에는 사탄을 감각적으로 체험한 분들이 몇 분 계십니다. 그 중에서 제가 알고 지내는 어떤 수도자의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그 분이 어떤 성직자 한 분을 아주 미워했답니다. 수도자들과 성직자들만 참여하는 성령세미나에서 그 분은 당신 마음 속에 있는 마귀가 몸을 마비시키는 체험을 하셨답니다. 지도 신부님으로부터 안수를 받고서야 마귀의 눌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답니다. 그 분은 미움을 통해서 실제로 마귀가 내 안에 들어왔구나, 하는 것을 생생하게 깨닫고, 그 후로는 절대 미움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작은 일에도 먼저 사과하고 화해하며 사신다고 합니다.
마음 속에 있는 사탄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것도 큰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한 영혼의 유익을 위해서 일부러 마습을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마음 속에 사탄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순간 순간 제 때에 알아차리기는 얼마나 어려운지요. 얼굴 한 가운데 난 종기처럼 쉽게 알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곪기를 기다려서 짜내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몸 속에서 자라는 종기라면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알아차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알아차린 후에는 벌써 몸 안에 많은 부분이 상한 후가 되겠지요. (제 마음 안에서도 그렇고, 제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제 영혼을 맑게 닦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영혼에 난 종기와 같은 사탄이 쉽게 드러나도록, 그래서 제 영혼이 치유가 안될 만큼 손상되는 일이 없도록. 제 영혼을 오직 예수님께서 다스리시도록,......
“예수님, 사탄아 물러가라, 라고 베드로에게, 저에게 말씀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제 마음 속에 있는 사탄을 알아차리는 은총이 얼마나 큰 은총인지 깨닫게 해 주세요. 그 깨달음을 통해서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화의 길로 저를 인도해주실 것을 믿어요. 일곱 마귀에서 벗어나서 어떤 제자들보다 순수하고 용감하게 당신을 사랑했던 막달라 마리아를 조금이라도 닮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니 예수님, 자주 제 마음 속에 있는 사탄을 일깨워주세요. 제가 이해하지 못할 상황에서 그런 말씀 하셔도 속 좁게 화 내지 않을께요. 사탄이 드러나게 된 것이야말로 은총의 기회임을 깨닫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게 도와주세요. 제 영혼의 많은 부분이 상하기 전에 늘 서둘러 깨우쳐주세요. 당장은 무안하고 괴롭겠지만 언젠가는 깊은 회개의 은총을 허락해주시리라 믿고 기다릴께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둠의 일에 가담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십시오 (에페 5,11)
**** 오늘 어느 본당에서 강의를 듣고 왔는데, 강사 선생님께서 그러시더군요.
기도 중에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데, 무질서한 애착,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먼저 알아주지 않고 스스로를 변명하는데 급급했던 일들, 칠죄종의 뿌리들을 끊임없이 인정해나가는 것이 정말로 어렵다구요.
어떤 신학자는 스스로의 비천함을 인정하는 것은 행주를 씹는것, 거름덩어리를 씹는 것처럼 견디기 힘든 일이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족함을 성령께 온전히 맡겨드리면, 바오로 사도처럼 겸손되이 자신의 비천함을 인정할 수 있다구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악의 뿌리들을 인정할 때, 진정한 치유가 일어나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신다고 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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