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신앙 자료

파티마의 성모발현

김레지나 2008. 8. 28. 22:18

 


- 파티마 성모님 -




1. 발현


1917년 5월 13일은 토요일이었다. 그날 정오경, 한줄기 밝은 빛이 아이들을 비추었는데, 그들은 코바 다 이리아의 나무 위에서 찬란한 모습의 어떤 부인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이 첫 발현 때, 그 부인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그리고 전쟁의 종식을 위해 기도 하라고 이르시면서, 매달 13일에 다시 오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후, 발현은 6월 13일과 7월 13일에도 일어났다. 네 번째 발현일인 8월 13일에는 어린이들이 지방 당국으로부터 방해를 받고 코바 다이리아로 가지 못했으나 19일에 그 부인을 만났다. 9월 13일, 부인은 전쟁이 끝나도록 로사리오를 바치라고 이르셨다. 끝으로 10월 13일, 그 "부인"은 당신을 "로사리오의 모후"라고 알려 주시고, 기도하고 보속하라고 다시금 이르셨다. 그날, 놀라운 천상적인 현상이 일어났다. 태양이 빙빙 돌면서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쳐박히는 듯한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어린이들은 첫 발현날인 5월 13일처럼 일찍이 그 곳을 향하였다. 약 3만 명의 대군중들이 어린이 주변에 몰려 있다가 신비로운 이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어린이들이 코바 다 이리아에서 본 환시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1930년 10월 13일이다. 레이리아의 주교는 오랜동안 조사 검토한 뒤에 코바 다 이리아에서 로사리오의 성모 공경을 허가했던 것이다. 발현 얼마 뒤에 두 어린이는 선종하였다. 발현은 보았으나 말씀은 듣지 못했던 프란치스코는 1919년 4월 4일에 선종했고, 동생 히야친타는 1920년 2월 20일에 하느님 품에 안겼으며, 유일한 생존자인 루치아는 수녀가 되었다.



 


- 발현을 목격한 세 어린이 -





파티마의 어린이들에게 동정 마리아께서 발현하신 것은 세계 제 1차 세계 대전 중인 1917년 여름이었다. 레이리아 교구의 작은 마을 주민들은 대개가 가난한 사람들이고, 또 소농이었기 때문에 매일같이 들과 가축들을 돌보아야만 했다.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어린이들도 양치는 일을 맡고 있었다.


루치아 도스 산토스는 10세였고, 그녀의 나이어린 사촌 동생 프란치스꼬(7세)와 히야친타(9세)가 곧 그들이다. 그들은 루치아의 책임 아래 양을 쳤는데, 자주는 아니지만 들판에서 무릎을 꿇고 로사리오 기도를 즐겨 바쳤다고 한다. 1916년 여름에는 한 천사가 몇 차례 발현하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오른쪽부터 루치아, 프란치스꼬, 히야친따. 프란치스꼬와 히야친따는 성모님을 만난 후 2-3년 만에 일찍 죽어 파티마 대성당 안에 안장되어 있다. 이 두 아이들은 후에 복자로 추앙되었다. 루치아는 그 후 수녀가 되어 아직도 파티마의 한 수녀원에서 살아계신다. 지금 연세가 93세(2001년 현재) 가량 된다.



 


- 순례하시는 성모상 -




2. 메시지


파티마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실 때 조그마한 참나무 위에 서 계셨다. 그 참나무를 베어 발현하셨을 때의 모습대로 꼭 같은 모양의 성모상을 세개 조각하여 전 세계의 분쟁지역을 순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한국전쟁 때 방문하시어 최전방까지 순례하셨다. 파티마에 발현하신 성모님은 공산화 되어가는 러시아와 공산당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라고 당부하셨다. 이 말씀에 따라 공산주의에 대적해 기도로써 싸우는 군대라는 뜻으로 푸른군대가 창설되었다. 이 사진은 파티마 성모발현을 축하하는 행사에 전 세계에서 모여든 순례자들이다.



파티마의 공적인 메시지는 루르드의 메시지와 거의 같다. 어린아이들을 통하여 마리아는 조인들을 위한 기도와 로사리오 기도 그리고 보속 행위를 하라고 요구하셨기 때문이다. 10월 13일의 말씀은 이렇다: "나는 생활을 개선하고 죄로 인하여 우리 주님을 슬프게 하지 말며,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도록 신자들을 권고하기 위하여 왔다. 나는 이곳에 나를 위한 성당을 원한다. 사람들이 그들의 태도를 개선한다면, 전쟁은 곧 끝날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비밀"도 일러주셨는데, 푸치아가 이중의 몇 가지를 전달하였다. 아마도 추측하건데, 머지 않은 장래에 또 다른 전쟁이 있으리라는 예언과 함께, 티없이 깨끗하신 마리아 성심에 관한 공경이 주 내용인 듯하다. 그러나 루치아가 받은 마지막 비밀은 요한 23세 교황님께 맡겼다.


루르드에서처럼, 파티마의 "발현"은 수많은 순례자가 몰려들게 하였다. 1917년 여름부터 시작된 순례는 놀라운 숫자에 달하였는데, 그들중에는 포르투갈인들도 있었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도 많았다. 1931년 5월 13일, 발현에 대한 교회의 공식 인정이 있은 다음부터는 순례자들이 수백만에 이른 것이다. 교황님들도 파티마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비오 12세, 바오로 6세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가 파티마를 순례하고 기도하였다. 교황님들의 이런 관심이 순례자의 수를 더욱 많게 하였고, 발현 장소에 성전을 짓게 된 계기가 되었다. 순례자들은, 이 한적한 곳에서, 마리아께서 어린이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다시금 묵상하며 마리아 어머니의 말씀을 실행하기로 다짐하는 것이다.



 


-기도하시는 교황님 -




3. 파티마와 교황


성모님이 발현하신 그 장소에 조그마한 경당을 세웠다. 그 경당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시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 비오 12세: 세상을 마리아 성심에 봉헌하심.


1942년 10월 31일, 비오 12세는 파티마의 성모 발현 25주년을 기하여 모여든 순례자들에게 라디오-메시지를 보냈다. 성모님께 감사와 충성을 드리고 기도하라고 권하신 뒤, 교황은 세상을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에 봉헌하신 것이다. 이것은 파티마 사건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1946년 5월 13일, 비오 12세 교황은 파티마 성모상 대관을 위하여 라디오-메시지를 보냈다. 여기서 교황은 "파티마의 장관(壯觀)"은 "티없이 깨끗하신 여왕이시며,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모성적인 자애로운 성심의 활동"이라고 하시고, 마리아의 끊임없는 보호가 포르투갈에 내릴 것이라고 하셨다. 또 교황은 마리아가 천상적이며 우주적인 여왕이심을 찬양하시며, 파티마 발현의 중요성을 역설하셨다.


- 바오로 6세: 인간 가족을 성모님께 봉헌하심.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3회기 폐막식에서(1964년 11월 21일), 바오로 6세는 마리아께서 만국 공의회와 교회를 축복해 주시며, 이 세상의 끝없는 수평선에서 눈을 돌리지 않도록 복되신 동정녀께 열렬히 기도하자고 말씀하시고, 이 천상 어머니께 전 인간 가족을 봉헌하셨다. 마리아께 대한 봉헌의 쇄신을 당부하셨다: 1967년 5월 13일, 코바 다이리아의 성모 발현 50주년을 기하여, 바오로 6세는 파티마로 가서 기도와 평화의 순례를 하셨다. 그때 교황은 복되신 동정녀 공경과 본받음에 대한 권고를 전 교회에서 보내셨는데, 이 권고의 제목은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이다. 여기서 교황은 교회의 어머니의 티없이 깨끗하신 성심에 대한 봉헌을 새롭게 하라고 모든 신자들에게 촉구하셨다.



- 요한 바오로 2세: 파티마의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부합된다.


1982년 5월 12일, 요한 바오로 2세는 파티마를 순례하시고, 성모 발현 65주년을 기념하였다. 이때 교황은 동정 마리아의 중재하심에 감사드리고, 세상의 만백성을 마리아의 티없이 깨끗하신 성심께 새롭게 봉헌하셨다.


1982년 5월 13일, 파티마의 성모 첫 발현일을 즈음하여 교황은 발현장소에서 미사를 거행하신 후, 75세의 가르멜 수녀이며, 발현을 증언했던 세 어린이 중의 유일한 생존자인 루치아에게 성체를 영하여 주셨다. 이때, 교황은 파티마의 메시지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부합된다고 역설하였다. - 마리아 사전 - 최정오 역편 / 마리아회 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