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담는 그릇
텔레비전에서, 분당에서 ‘천상의 집’을 운영한다는 한 여자 분을 보았다. 그분은 수년 전부터 십여 명의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자신이 마련한 빌라에서 묵게 하고 있다. 낮에는 천상의 집을 위한 엄청난 운영비를 마련하려고 한 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그밖의 모든 시간에는 노인들을 위해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을 하신다. 빌라 주민들이 혐오시설이라고 자꾸 항의하는 바람에 새 건물을 지어 이사하려고 땅을 사두었다고 했다. 건물 지을 돈이 부족하다면서도, 나가라고 하는 빌라 주민들이 원망스러웠을 텐데도, 그 여자 분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나가라고 해서 참 다행이에요. 더 좋은 시설 만들어서 할머니 할아버지 모실 생각을 영영 못할 뻔 했어요.”
그 힘들고 험한 일을 하면서도 연신 싱글벙글 웃는 모습이 정말 놀랍고 존경스러웠다.
기자가 힘들지 않으시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저에게 그 힘든 일을 하면서 왜 그리 행복해하냐고 늘 물어요. 저는 정말 행복해요. 제가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 일인지 다른 사람들은 몰라요. 그런데 저는 알아요. 제가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분의 어머니와 남자 형제 한 분은 ‘근위축증’이라는 병으로 돌아가셨고, 그분도 7년간 같은 병으로 고생하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고 하셨다. 병명이 ‘근위축증'인 것으로 보아 몸을 못 움직이는 병이 아닌가 싶다. 7년을 못 움직이고 가족의 수발을 받으며 지내야 했으리라. 그러니 병이 나은 지금 육체적으로 아무리 힘이 들어도 고맙고 행복한 정도가 보통 사람들이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할 수 있는 손과 발이 그 분에게는 매일의 기적이고 축복으로 여겨졌을 테니까.
잊혀지지 않는 시의 한 구절이 있다.
"사랑하는 것도 자기네 능력입니다."
나는 정말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것도 자기네 능력인 것과 마찬가지로 행복을 느끼는 것도 자기네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 능력은 살면서 각자 겪게 되는 모든 경험들과 생각들의 양과 질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해마다 고등학교 졸업자격 시험을 본다. 가끔씩 인터넷에 문제가 올라오곤 하는데, 모두 서술형인데다 얼마나 철학적이고 어려운지 내가 제대로 답할 수 있는 문제는 하나도 없었다. 그중에 ‘사람이 인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라는 문제가 있었다. ‘행복은 늘 우리의 생활에 실재하지만 각자의 행복을 담는 그릇만큼의 양만 인식할 수 있다’고 잠깐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또한 행복을 담는 그릇은 고통을 담는 그릇에 비례해서 커질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천상의 집'을 운영하는 분이 보여주듯이 큰 고통을 겪어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는 행복들이 있다. 암환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고 정신적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남다른 고통을 겪을수록 남들이 미처 모르는 행복을 인식할 수 있고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 열 개를 갖고 있는데도 하나 더 가진 사람을 보면서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심지어 열 개의 행복을 가진 사람이 자기 것과 다른 종류의 행복을 갖고 있다고 하여 다섯 개의 행복을 가진 사람을 괴로워할 만큼 질투할 수 있다. 그러나 큰 고통을 겪어 본 사람들은 그런 어리석은 비교를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아무리 적은 행복을 갖고 있어도 고통의 크기만큼 커지고 채워지는 행복을 담는 그릇이 있으니까.
(지금 한창 치료 중이고, 힘들어하시는 환우님들, 같이 힘냅시다. 우리가 겪는 고통의 그릇만큼 행복을 느끼는 그릇도 커진답니다. 지금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치료가 끝난 후에는 더더욱 행복해지시리라 믿습니다. 건강한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만큼. 그지요?
우리도 분당의 그 분처럼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건강하게 밥 먹는 것도, 애들과 남편에게 밥을 해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신나고 행복한 일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요. 그런데 저는 알아요. 그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정말로 엄청 행복해요.”라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2코린 1,4)
행복을 담는 그릇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고통을 담는 그릇이 하나
행복을 담는 그릇이 하나
고통의 그릇이 작으면
행복의 그릇도 작다.
고통의 그릇이 커지면
행복의 그릇도 함께 커진다.
행복의 그릇이 작으면
제 아무리 많은 행복을 갖고 있어도
넘쳐버릴 테니 느낄 수가 없다.
행복의 그릇이 커지면
남보다 적은 행복을 갖고 있어도
뻥뻥 튀겨서 가득 찬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살다가 고통이 너무 크다고 느껴질 때는
행복을 느끼는 능력도 덩달아 커지고 있음을
꼭 잊지 말고 힘을 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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