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8년

잃을 것인가, 얻을 것인가

김레지나 2018. 11. 1. 13:07

잃을 것인가, 얻을 것인가

 

    


   저는 말기 암환자입니다. 암이 횡경막 신경을 마비시켜 중증 호흡 장애가 생겼고 항암 후유증으로 심부전도 앓고 있습니다. 전이 재발이 잘 되는 성질의 암이라 폐와 간과 늑막 등에 전이된 암 덩이들이 여러 해 내내 쉬지 않고 커지고 퍼졌습니다. 견갑골, 갈비뼈, 척추, 요추 등등에도 많이 퍼졌는데, 최근에 골반과 꼬리뼈 등의 암이 통증을 일으켜 방사선 치료도 받았습니다. 만약 골절이 되면 꼼짝 없이 누워서 지내야 한다고 합니다.

제 상태가 더 심해지면 지금 있는 요양병원에서는 지낼 수가 없을 테고 어느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야할지 고민입니다. 작년에 호스피스 진료도 받았는데, 섬망증이 심하거나 다인실을 사용하기 힘든 상태의 환자들이 1인실을 사용해야 해서 대개의 환자들은 다인실에 입원해야 한다고 합니다. 전체 말기암 환자 중에 입원형 호스피스 이용률은 2017년 기준 17.3%에 불과하고 이용 기간도 평균 23일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침 성당 주보에서 교구가 설립 운영하는 호스피스 병원 신축 소식을 읽고 정말 반가웠습니다. 그 절실함을 잘 알기에, 꼭 후원을 해야겠다 생각하던 참에, 2년 전에 청구하지 않았던 입원 보험금을 생각해냈습니다. 보험사에서 제가 신청한 항목으로는 주다 말다 한데다 실사 받는 것도 성가셔서 그냥 접어두고 있던 보험금이었습니다. 제가 장기 입원한 적이 별로 없고, 보험 약관을 읽어도 잘 이해가 안 되어서 새로 신청하면 얼마를 받게 될지도 몰랐습니다.

   ‘적어도 오백만 원은 후원하고 싶은데, 얼마가 나올까? 뜻하지 않게 많이 나오면 받은 돈의 50%를 봉헌할까?’

   그렇게 마음먹고 청구 서류를 냈더니, 보험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청구한 기간 외에 다른 해의 해당 보험금까지 다 계산해서 주겠다는 겁니다. 저도 이전의 보험금을 받지 못한 걸 잊어버리고 있었고, 청구서류를 내도 주지 않던 보험사가 서류도 내지 않은 기간의 보험금까지 알아서 주겠다니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천만 원을 받았습니다.

   그제야 알아보니, 그동안 제가 계산 방식을 잘 몰라서 놓친 보험금이 상당했습니다. 살짝 억울했지만, 아무튼 하느님께서 제일 좋도록 타이밍을 맞추시고 도와주신 것이라 믿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오백만 원을 봉헌해야 하나, 천만 원을 봉헌해야 하나? 처음에 오백이 목표였고, 50%는 그냥 생각으로만 한 번 해봤을 뿐인데..... 에라. 모르겠다. 간만에 통 크게 쏘자.’

며칠 후에 호스피스 병원 신축 기금으로 칠백만 원을 보냈습니다. 아는 신부님들께 치료비가 없는 딱한 이들 있으면 알려달라고 연락도 해두었습니다. 또 해외선교 하시는 신부님 계시는 동네가 심각한 수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백오십 만원을 보냈습니다.

   ‘에효. 이 돈이면 구닥다리 텔레비전도 바꾸고, 제대로 된 책상도 사면 좋겠고.... 쓸 데가 얼마나 많은데.......나한테는 일 억 같은 큰돈인데.’

   나머지 백오십만 원은 어디다 쓸까 고민만 하다가 꽤 시간이 지났고, 흐지부지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숨 쉬고 움직이는 게 불편해서 잠깐 거리인 병원 식당도 다니는 게 힘겹습니다. 그래서 올해 봄에 중고 경차를 샀는데, 차 전 주인이 설치해놓은 후방카메라 각도가 아래로 향해 있어서 무용지물이었습니다. 환우 영이 씨가 차를 한 번 얻어 타더니, 남편이 아이나비 직영점을 한다면서 봐주겠다고 했습니다. 전에 네비게이션 가게에 물어보아도 별 방법이 없다기에 기대를 안 했었는데, 영이 씨 남편이 새 카메라로 교체해주고 선도 깔끔하게 정리해주었습니다. 영이 씨는 평소에도 제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에게 신세를 갚는다고 몇 가지 선물을 하기는 했어도 영 미안한 마음이 남았었는데, 또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무엇을 선물할까? 보답으로 가게 광고를 해드릴까?’

 

   그 주일에 병원이 속한 성당 말고 읍내 다른 성당에서 미사참례를 했는데, 신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당에 어르신들 모시고 다니는 버스와 봉고차에 네비게이션과 후방카메라를 설치해달라는 의견이 들어왔습니다. 어르신들이 버스에서 내려서 뒤로 돌아가시면 차량 봉사 하시는 분이 반응하는 데 시간이 걸려 위험하답니다. 견적을 뽑아보니 백오십 만원이라는데, 후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영이 씨한테 신세 갚을 생각을 하던 참이라 더욱 저 들으라는 소리가 분명했습니다.

   ‘헐! 이쯤 되면 남은 백오십 내놓으라는 협박이지 뭐야. 이 시골 본당에 십시일반 모금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 큰돈을 누가 내리라고 백오십을 한 번에 부르신대? 하느님도 참. 기어이 천만 원을 채우라 이거지? 벼룩의 간을 빼먹는 분 같으니. 하느님한테 정식으로 한 약속도 아니구먼, 적당히 넘어가실 줄을 몰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실 때에 그렇게 정확하게 끝자리를 맞춰서 표징을 삼게 하신다는 일화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돈을 내놓으라고 하실 때도 그런 ‘신공’을 발휘하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얄짤없는 하느님이 원망스러워도 당할 도리가 있겠습니까. 속 넓은 제가 이왕이면 기분 좋게 당해드리기로 하고 오후에 성당 사무실에 전화해서 봉헌하겠다고 했습니다.

 

   영이 씨한테 견적을 받아보니, 차 두 대에 팔십만 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70만원이 남는데, 그럼 00성당에도 전화해서 버스에 네비 있냐고 물어봐서 후원하겠다고 나서야 하나? 이거야 원.’

   로사 선생님한테 전화했습니다.

   “선생님, 70만 원 깎은 거는 제 능력이잖아요. 그럼, 70만 원은 제가 좀 짠해서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주신 걸까요? 아니면 그것도 내놓아야 할까요?”

로사 선생님이 푸하하 웃었습니다.

   “글쎄.... 그냥 레지나 맛있는 거 사먹어.”

   제가 안도하며 말했습니다.

   “그렇죠? 저 보고 싸게 해준 거니까 제가 써도 되겠지요? 하하하. 인터넷 쇼핑할 때 이삼천 원 더 싸게 사려고 몇 시간씩 고물 컴퓨터 앞에서 낑낑대는구만. 그래도 하느님께서 ‘네 봉헌 내가 뜻하는 것이고 나를 기쁘게 한단다.’하고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기뻐요. 하느님을 얄미워할 수가 없다니까요.”

 

   “레지나. 이번 일 글로 쓰면 재미있겠네.”

   “무슨 말씀이세요? 저 다시는 안 써요. 머리에서 김이 나고 숨이 턱 막히는 일인데. 저 진짜로 많이 아프거든요.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로 만들어놓고 하느님은 제가 불쌍하지도 않나 봐요.”

   선생님과 신나게 깔깔대며 하느님 흉을 보았더니 통증이 다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5 분도 채 되지 않아 퍼뜩 기억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보험금을 받은 후로 ‘살짝 맛이 가서’ 이미 여기저기 봉헌했다는 사실입니다. 본당 신축 기금, 본당의 날 후원, 주일 점심 나눔 후원 등등. 계산해보니 꼭 70만원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제가 잊고 있던 봉헌까지 다 계산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역시 하느님은 재미있는 분이셔요.’ 하고 감탄하고 싶었지만 하느님이 자꾸 오버하실까 봐 꾹 참고 말씀드렸습니다.

   ‘누가 전지하신 분 아니랄까 봐 돈 뺏으면서 폼 내시기는.’

   ‘난생 처음 큰 돈 봉헌한 건데, 자랑할 것도 아니고 무슨 글을 써?’

   그래도 한 번은 하느님께 여쭤봐야 할 것 같아서 글 쓸 때마다 하던 버릇대로 성경을 집어 들었습니다.

   ‘이번 일과 어울리는 말씀이 나오면 글 쓰고 안 나오면 안 쓴다.’

 

   펼쳐진 곳은 탈출기 말씀이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이 이스라엘인들을 뒤쫓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두려워서 모세에게 말합니다.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어 이렇게 만드는 것이오? ‘우리한테는 이집트인들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나으니, 이집트인들을 섬기게 우리를 그냥 놔두시오.’하면서 우리가 이미 이집트에서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소?“

   그러자 모세가 백성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들 마라. 똑바로 서서 오늘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루실 구원을 보아라.”(탈출 14,11-13)

 

   정말이지 말씀은 제 마음의 빛입니다. 저는 더욱 환해진 마음으로 끄덕였습니다.

   “맞아요. 주님. 제가 벼룩의 간을 빼먹는 분이라고 한 말 취소할게요. 제가 하느님께서 빼앗아가셨다고 꽁알댔지만 실은 저와 이웃의 구원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도록 이끌어주신 거지요. 제가 잃은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을 얻은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 생활이 차라리 나았다고 불평하였지만 구원으로 이끌어주셨지요. 저도 세상 것을 우선순위로 삼지 않을게요. 이토록 친절하게 당신의 현존을 일러주시고, 제 구원을 위한 작은 봉헌을 하도록 이끌어주셔서 고마워요.”

 

   우리가 재물과 건강을 잃으면, 마치 하느님께서 우리가 응당 누려야할 것을 빼앗아 가신 것처럼 불평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의 것을 빼앗아 가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신다는 믿음이 있으면, 우리가 겪는 어떠한 상실도 우리 구원을 위한 출애굽 사건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일로 저는 주님께서 저를 위해 이루실 구원을 보았고, 앞으로도 볼 것입니다. 저의 구원은 죽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하루하루 새롭게 얻는 선물입니다. 세상 편에서 보면 잃는 것들이 영원한 생명 편에서 보면 얻는 것이 될 수 있음을 믿을 때, 우리는 아파도 웃을 수 있고 고생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원래 제 것이라고 우기고 싶은, 실은 제 것이 아닌 것들을 기쁘게 하느님 앞에 내려놓아야겠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2018년 10월 31일 엉터리 레지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