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회개
우선 제 이야기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제가 주님을 만나 회개한 이야기를 먼저 간단히 드리고 나서 오늘밤 여러분과 나누고자 했던 ‘진정한 회개’에 대한 묵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이야기는 콜롬비아로부터 시작합니다. 저는 콜롬비아의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아주 어린 나이인 14세에 가톨릭 신앙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그 당시 60년대에 유행하던 온갖 새로운 움직임을 받아들이면서 완전히 이교도나 다름 없이 살며 모든 종류의 뉴에이지 사상을 받아들였고,실제로 그리스도교를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20세에 결혼을 하면서 독일로 이주하여 배우와 작곡가가 되기위해 함부르크 대학에 다녔습니다. 6년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일을 하며 TV나 영화배우로서 활동하다가, 후에 뉴욕에 있는 소니음반사와 전속계약을 하면서는 전세계를 다니며 콘서트를 기획하고 음반을 출시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계속 돈과 명예, 향락등을 추구하며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면서, 점, 미신, 주술, 별점과 같은 여러분이 알만한 모든 것들, 가톨릭 언어로 말하자면 온갖 어두움의 영과 관련된, 뉴에이지 사상들을 끊임없이 받아들이며 하느님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 후, 1997년, 저의 온 삶을 바꿔버린 사건이 생겼습니다. 1997년 크리스마스에 콜롬비아의 제 고향을 방문하였다가, 그곳에서 콜롬비아 반군에 의해 납치를 당한것입니다. 그들은 저를 정글로 끌고가 6개월 동안 동굴에 가두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그들에게 사형선고를 받았고 살아나올 희망은 전혀 없었습니다.
첫 15일동안 그들은 저의 손을 묶고 얼굴에 후두를 씌운채로 강금하였으므로 저는 그 동굴에서 끔찍한 상황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던 15일째 되던 날, 저는 하느님에 의해 밤새 지속된 신비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한 그 체험은 저를 완전히 바꿔 놓았고 그 체험을 한 이후로 저는 결코 예전의 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매우 긴 여정이었던 그 신비체험을 오늘밤 다 이야기 할 수 없으므로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대략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제가 겪은 체험은 사람이 죽었을 때 겪는 것과 같았습니다.
첫 부분은 양심조명 (인식의 밝힘) 으로서 저는 의식이 깨어있는 채로, 제자신의 어린시절부터 시작하여 저의 전 생애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서 저의 삶에 대한 심판을 받았습니다. 저는 지옥을 판결받았습니다. 주님께서 는 저로 하여금 지옥을 체험하게 하셨고, 그 다음 자비를 입은 상태인 연옥을 겪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주님의 자비가 충만한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이 체험이 시작되기 바로 전까지,ㅠ저는 매우 좌절하고, 황폐한 상태이었으므로 이 체험이 쉽지 않았습니다. 게릴라들은 저를 죽일 예정이었고, 저는 살아날 희망을 전혀 가질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날 밤,그들은 많은 돈을 요구하며 그 돈을 받고 나면 저를 죽이겠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저의 나머지 모든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하였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그들은 결국 저를 죽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완전히 절망적인 밤이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쌓아놓은 온갖 자만심, 허영심, 허세등이 완전히 무너지고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신비체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그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미 하느님으로부터 아주 멀리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자신의 세살의 유아시절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제가 태어난 고향집의 뒷마당에서 막대기를 들고 화분에 있는 꽃들을 망가뜨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정부가 하지 말라고 야단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는 너무도 놀랐고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당시 제 나이가 47세였습니다. 그런 제가 저의 유아시절을 완벽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깨어있는 상태였고 동굴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는데도 동시에 유아시절의 저로 완벽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마치 평행선상의 두 현실을 살고 있는 듯 한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놀라고 당황했습니다. 본능적으로 동굴을 나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밖에서 지키고 있는 게릴라들이 총을 쏠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방법으로 저는 전 생애를 현실과 같이 다시 살았습니다.
그 체험중에 매우 고통스런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저의 죄로 인한 고통이었습니다.
저는 죄를 믿지 않았었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캘리포니아에 저를 방문하시면, 저의 삶에 대해 많이 걱정하시며, 저처럼 살다가 죽으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종교에 세뇌당했다고 놀리곤 했었지요. 그리고는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철학과 사상들을 떠벌렸습니다. 가여운 어머니는 평생 저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셨습니다. 제가 납치를 당했을 때 저의 어머니는 그해 1년전에 돌아가시고 안 계셨습니다.
그 체험을 통해 저는 저의 죄로 인한 고통의 과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고통이 아니라 영적인 고통입니다. 매우 깊은 고통으로서 여러분에게 결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또한 저의 삶에서 행한 좋은 일들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좋은 일을 하는 부분에서는 고통이 없이 지나갔지만, 죄를 짓는 순간을 볼때는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각기 다른 죄로 인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더욱 신비한 일은, 그 체험이 있고 나서 저는 어떤 비젼안에 있었습니다. 첫번째 체험을 하게 되었을때 저는 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무언가 알아내려 노력했습니다. 혹시 저에게 열이 있는건지, 독벌레들에게 물려 환상을 보는 것은 아닌지, 혹은 내가 미쳐가는건지, 죽어가고 있는 건지… 그러나 그것은 제 생각을 너머서는 일이었으므로 결국 그 상황에 자신을 맡길수 밖에 없었습니다.
두번째 부분의 체험이 시작됬을 때, 제 자신이 어떤 높은 산위의 풀밭에 얼굴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완벽한 고요함의 상태로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전에는 결코 경험해 보지 못한, 완벽한 기쁨, 완벽한 평화, 완벽한 자유를 느끼게 했습니다. 멀리 앞을 바라보자 저 먼 곳에 더 높은 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산 꼭대기에 너무도 고귀하고 찬란한 빛의 도시를 완벽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밤이었습니다. 저는 그 도시의 안과 밖을 정확하게 보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도시를 결코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모습이 너무도 고귀하고 웅장했다는 것 과 제가 그 곳에 가 있었어야 함을 알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두개의 산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멀리 동굴안에 있는 제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영혼이 몸을 떠나는 유체이탈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저는 여전히 동굴안에 있는 자신과 산위에 있는 자신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목소리는 너무도 엄청나서 마치 모든 곳에서 나는 소리와 같았고, 동시에 제 안에서 들리는 소리같기도 하였습니다. 그 목소리는 사랑과 동정이 가득찬 목소리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참을 수 없었고 견딜 수 없었으므로 그 소리로 부터 도망치고만 싶었습니다. 주님을 거부한 것이죠. 그리고 그 순간 제가 깨달은 것은 제 안에 그 어떤 참 사랑에 대한 감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많은 자선 단체에 속하여 많은 자선을 했었고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돕는데 앞장서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양심조명을 체험하며 저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음을 깨달았고, 모든 것들을 허세와 허영심으로자신의 영광을 위해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에게 말씀하시고 계신 그 진정한 사랑이 제 안에 하나도 없었습니다.
곧 주님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침묵하시자 그 산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제자신이 두렵고 끔찍한 안개가 끼어있는 바다위에 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직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살면서 지옥이 없다고 모든 사람들과 입씨름을 하곤 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온갖 철학과 사상을 이용해 입씨름을 하며 결국 지옥이 없다고 상대를 설득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옥의 꼭대기에 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제가 그곳에 잠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곳에 잠기자 그 안개처럼 보이는 모든 입자가 심판 받은 영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탄과 같이 된 인간이었습니다. 겉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은 사탄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알게된 끔찍한 부분중의 하나가 영혼이 완전한 영적세상으로 들어갔을때, 연옥이라도, 구원으로 향하게되었다면 우리는 계속 목소리를 갖고 있게 됩니다. 우리의 목소리는 영적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옥으로 떨어진다면 목소리를 잃게 됩니다. 지옥으로 가는 영혼은 깊은 분노와 미움을 표현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을 더욱 분노하게 하였으므로 동물이나 맹수와 같은 소리를 냈습니다. 그런데 가장 알 수 없는 일은 제가 그들이 제게 말하려고 하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옥의 체험은 매우 길었습니다. 책으로 쓰자면, 지옥의 한 영혼에 관한 것만으로도 백과사전 시리즈 만큼 쓸 것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제게 말씀하셨고, 제 자신이 다시 그 산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다시 백년을 더 살 수 있다해도 그 체험을 통해 제 안에 흘러 들어온 많은 것들의 최소한도 다 나눌수 없을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인류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가톨릭 신앙에 대해 말씀해 주시고는 제가 연옥의 상태인 호수에 있게 하셨습니다. 그 호수앞에는 바위가 있었습니다. 그 바위가 호수와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호수가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바위가 어디에 있는 건지, 그 호수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단지 저는 호수 안에 있었고 그것은 연옥의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의 33년간 지었던 죄 가운데에 서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영으로서, 살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들과 개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그 각 영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 말이 이상하게 들릴것이라는 걸 압니다만,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우리는 영을 볼 수 없지만 우리의 영혼은 그 영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실제적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대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제가 지은 모든 죄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매우 고통스러운 체험을 할 기회를 주셨습니다.그것은 죄의 모든 과정과 범위였습니다. 제가 호수에 있던 한 영을 볼때마다, 제가 그 죄를 지을 때의 유혹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혹에 제가 동의하는 것, 그리고 그의 결과로서 우리 가족과 다음 세대와, 전 교회와, 연옥 영혼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았으므로, 말할 수 없이 너무도 고통스러웠으며 그 누구도 그 고통을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만일 여러분이 이 고통의 최소한이라도 알 수 있다면, 평생 매일 매일 연옥영혼을 위해 기도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또한 주님께서 말씀해 주신 ‘영혼의 재정’ 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연옥영혼을 위해 기도를 쌓을 때마다, 사실은 자신을 위해 기도를 쌓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자신이 나중에 연옥을 가게 되었다면, 자신이 쌓아놓은 그 기도로 인해 구원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몇천배로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은 자비로우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일종의 ‘영혼의 재정(경제)’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승리의 교회(천국), 고통의 교회(연옥)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한몸입니다. 우리모두가 한몸으로써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함께 영적 전쟁, 방어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 때까지 천사, 성인, 고통받는 연옥영혼, 우리 모두가 함께 싸우는 것입니다. 그 싸움은 지금 바로 살아 있는 우리와, 앞으로 태어나 살아갈 사람들를 위한 것입니다. 그 싸움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세계를 볼수없고, 들을 수 없으므로 쉽게 그것을 잊고 살지만 그것은 현실입니다. 우리의 적을 직접 볼 수 없지만, 만일 우리가 영적세상을 보게된다면, 그 순간 죽고 말것입니다. 견디어 낼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우리가 은총의 상태에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가르침에 따라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지만, 그 가르침을 흘려보낸다면 나중에 저의 체험처럼 그 결과를 맞게 될것입니다.
저의 그 고통스러운 체험중에 제가 어린시절로 돌아가, 초등학교 시절의 각기 다른 상황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착한 행동을 할때에 받는 은총을 보았고, 초등학교 시절임에도, 제가 저의 가족이나 아이들에게 행했던 수치스러운 죄가 이미 제 삶에 표시되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저의 앞길을 정확하게 결정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아렸을 때 부터 그것들이 쌓아지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주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가 아주 어릴적부터 하는 결정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아주 어릴적부터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결정하며, 그 결정이 매우 심각한 결과를 낳는 것이었습니다. 미워할지를 결정을 하고, 용서할지 안할지를 결정하고,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을 결정합니다. 어린나이에도 그러한 결정을 인식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톨릭신자들은 너무도 많은 것을 알고 있으므로 가장 놀라운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첫영성체를 하게 될 때, 우리는 하느님의 전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세를 받을 때, 원죄와 조상으로 부터 오는 악을 몰아내지요. 그리고는 완전한 성사생활을 통해 믿음 생활로 들어갑니다. 첫영성체, 견진성사를 거치며, 우리는 놀라운 성령의 힘이 있는 영역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됩니다. 영혼은 나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성체를 하게 될 때, 모든 것을 이해하고, 모든것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체를 영하고 죽게 된다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주님앞에 나아가야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첫영성체를 하게 되는 사람이 죄가 무엇인지 완전히 알 수 있도록 확실히 해야합니다. 교회가 그것을 확실히 하고 세례를 줄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초등학교 시절, 8, 9, 10세의 어린시절에 이미 죄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행동하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때 저는 충분히 인식을 하며 행동하고 있었고 제 행동에 대해 완전히 책임이 있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성인들의 삶에 대해 읽으며 경각심을 키울때가 있습니다. 성녀 아빌라의 데레사에 대한 저서를 읽어보면, 성녀가 지옥에서 아이들을 보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주 어린아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당히 어린 아이들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웠을겁니다.
주님께서 그 바위에 저에게 어떻게 하셨는지 계속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바위를 바라보도록 하셨습니다. 제가 바위를 바라보자 눈이 부셔 눈을 뜰 수 조차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가장 놀라운 빛 가운데 계셨습니다. 죄의 상태에 있었던 저는 그분을 바라본다는 것이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신비체험 내내 저는 그분으로 부터 계속 도망치려 하였습니다. 아무것도 보고싶지 않았고, 듣고 싶지 않았고, 아무것도 알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모든 과정을 겪도록 두셨습니다. 그리고는 빛 안에 계신 주님께서 저에게 천천히 호소하기 시작하셨습니다그러자 저는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육체를 가진 여러분과 저처럼, 사람을 보듯 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웅장한 빛안에 계셨습니다.
어쩌면 제가 보았던 주님의 모습은 저의 죄의 상태로 인해 가장 작은 부분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제가 영원히 바뀌기에 충분했습니다. 주님을 뵌 이후 저는 결코 그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었습니다. 저의 뼛속 구석구석까지 완전히 바뀌고 만것입니다. 주님을 뵙자 아주 아주 작은 것들마저도 아주 명확해졌고, 모든 답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채워지지 않은 아주 작은 감정도 모두 완벽하게 충족되어졌습니다. 모든것, 그야말로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현재와 같은 삶으로 되 돌아온 후 저는 예전과 같이 살아보려 했지만, 그럴수 없었습니다. 이전의 제 삶은 세상을 숭배하고 있었고, 제게는 가장 큰 신이었던 돈을 숭상하고 있었으며, 모든 권력, 사람을 숭배하고 제가 원하고 바라는 모든 것을 숭배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주님을 만난 이후에는, 제 마음안에 제가 알아야 할것은 오직 실제하는 것, 진리뿐이었고, 그것만이 제가 숭배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제가 영원히 숭배해야 할 오직 한분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었습니다. 제 눈으로 직접 참 보물을 목격한 것입니다.
저는 온갖 세상적인 보물을 찾아 다니던 사람이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많은 것을 쌓아 놓고 있었으며. 제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돈이 있었고 제가 꿈꾸지도 못했던 것들을 이루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덕분에, 저는 그 납치를 당하는 체험을 하면서 저의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들이 모든 것을 가져갔습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저의 동료들에게 살면서 제게 일어난 일 중 가장 좋은 일은 납치되어 그들에게 모두 뺏긴 일이라고 말하면, 그들은 제가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가장 큰 사탄은 돈이었기 때문입니다. 돈 그 자체가 사탄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좋은 것으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이 돈을 사탄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일은 제게 일어난 가장 좋은 일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체험을 겪고 보았으므로, 오늘이라도 사람들은 저에게 많은 세상적인 보물을 제 옆에 가져다 줄 수 있 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에 손도 대지 않을 것입니다. 제 눈으로 진짜 보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생의 매 순간, 그것이 저의 마음안에 있습니다. 그것을 절대로 잃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얼마나 모든 사람들이 제가 보았던 예수님의 아주 최소한의 작은 부분이라도 실제로 보아서 이 삶이 끝났을 때, 예수님과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그것이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 알기를 바라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이 삶을 평생 주님앞에 무릎꿇고 살게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삶에 마지막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살면서 겪는 그 어떤 시련도, 수고도, 그 어떠한 어려움도 결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떠한 세상적인 보물에도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것도 여러분을 기쁘게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앗아가는 어떤 근심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 무슨일이 있더라도, 마음안에 참 기쁨, 참 희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갈바리 언덕에 있던 예수님과 함께 있던, 제자 요한과 거룩한 여인들이 그끔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겪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때문에 갖게 되는 놀라운 지혜입니다. 그것이 우리들에 대한 하느님을 완전히 이해 할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지혜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안에 있는 우리에게 그것을 그것을 주셨습니다 .
주 예수님을 통해 저는 많은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고통스러웠던 것 중 하나가 예수님께서 팔을 벌리고 저를 초대하고 계셨지만 저는 그 호수에서 일인치도 움직이지 못하고 마비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왜 주님을 향해 움직일 수 없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제 안에 그분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분이 제안에 계시지 않는 이유는 제가 단 한번도 그 누구에게 조건없는 참 사랑을 준 적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평생, 저는 제자신 만을 위해 살았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오직 제자신에 대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분을 향해 갈 수 없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셨고 어떻게 주님을 향해 갈수 있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어떻게 그분의 자비에 의탁할 수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배울 수 있는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당신을 눈을 통해 보도록 하셨습니다. 가장 순결한 끝이 없는 경이로운 바다였습니다. 그것을 가까이 보았을 때 그것이 수백억의 주님의 영이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많은 심판받은 영혼을 보았다고 말씀드렸지요. 연옥에도 매우 많은 영혼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수천만의 수천만의 수천만의 수천만의 주님의 영광에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것이 모두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바라 볼 때 여러분 개개인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개개인은 절대적으로 유일무이하며 누구도 똑같지 않습니다. 개개인의 사람, 그것이 제가 주님의 영광 안에서 본 것입니다. 각자 다른 그 모든 사람이 나이가 없었으며 완벽했습니다. 가장 고귀한 광경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미래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받은 약속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 광경은 너무도 너무도 놀라웠습니다.
그러한 모든 아름다움 가운데 주님께서 저에게 어떻게 그분께 의탁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제가 그분을 향해 어떻게 갈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성모님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이 가르침이었습니다.
저는 천국에 저의 천상의 어머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말씀드린대로 저는 14세에 가톨릭에서 멀어진 후 성모님에 대해 전혀 관심도 갖지 않았고 교회를 떠난 33년간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모님에 대해서 전혀 몰랐습니다. 가장 순결하고, 가장 겸손하며, 가장 놀라운 권위를 가진, 가장 아름다운 분앞에 제가 서 있었습니다. 그것은 정확하게 제가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저에게는 한점의 겸손함도, 순결함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분을 바라볼 수가 없어 물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당신이 저의 어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마치 아기가 되어 모태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분과 영적인 탯줄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주님께 향하는 모든 것은 성모님의 모태를 통해 갔습니다. 또한 천상의 것이 저에게 올때도 성모님의 모태를 통해 왔습니다. 그리고는 성모님께서 제가 어떻게 주님께 의탁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저의 모든 죄 가운데 서 있었으므로,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저는 저의 각기 다른 죄로 인한 고통을 동시에 겪고 있었습니다. 그 고통을 설명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저는 33년간 지은 모든 죄가 현존하는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믿기조차 어려운 놀라운 권위와 가장 순결하고 큰 겸손함을 가진 가장 고귀한 사람 앞에 있는다는 것이 어떠할지를 상상해보십시오. 성모님은 저에게 ‘‘하느님께서 너를 사랑하신다. 너를 용서하신다.너는 할 수 있다. 하느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 라고 말씀하시고 계셨고 그 호수에 있던 각기 다른 어둠의 영들은 그 반대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영적인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끊임없이 저에게 믿을 수 없는 놀라운 당신의 사랑을 저에게 퍼부어 주었습니다. 놀라운 모성적인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모님을 통하여 저는 천사들의 군대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제 편에서 싸우고 있는지, 그리고 제가 모태에 생겨나는 순간부터, 제 평생동안 어떻게 저와 함께 하였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온 삶 안에서 어떠한 영적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우리 모두의 삶안에서 이 영적전쟁이 어떻게 24시간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셨는데, 그 전쟁은 우리가 마지막 승리를 할 때까지 쉬지않고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성모님을 통하여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모님을 통하여 기도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았습니다. 기도의 신비였습니다.
성모님께서 저에게 매우 강력한 어떤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이렇게 십자가를 팔을 들어 높이 올렸을때, 제가 정말 하느님의 은총지위에 있다면 이 근처에 있는 사탄들이 이 금속십자가를 바라보지도 못합니다. 이것을 단순한 물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골고타 언덕의 십자가 위의 계신 예수님을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에는 시간과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의 상태에 있으므로 그들은 십자가위의 예수님을 보게됩니다. 그들이 바로 십자가의 발아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성모님의 메달을 목에 걸고 있다면, 그리고 정말로 하느님께 대한 충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진정한 믿음을 말 합니다, 그렇다면 사탄은 이 메달을 처다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바로 성모님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정확하게 이 십자가가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은총지위에 있지 않다면, 이 십자가를 아무리 들어 올려도 사탄은 그저 하나의 물건을 볼 뿐입니다. 영적인 아무것도 보지 않습니다.
성물은 오직 여러분이 믿음에 충실한 생활을 할 때만이 영적 힘을 갖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는 묵주기도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묵주기도는 여러분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장 놀라운 힘을 가진 강력한 무기입니다. 매우 매우 매우 많은 영적전쟁의 결과물 이기 때문입니다. 묵주기도는 모든 순교자의 피로써 이루어 낸 것입니다. 우리는 세대를 거친 영적전쟁을 통해 묵주기도를 얻어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가 묵주기도의 성모송을 기도할 때마다, 우리가 정말로 기도하고 있는 그 의미를 이해하고 정말 하느님께 신실하고 은총지위에 있다면,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께 나타난 그 수태고지를 기도하는 순간에, 삶안의 모든 주변에 있는 사탄들이 실제로 그 순간에 있게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각 성모송을 외울때 마다 말입니다. 사탄이 얼마나 그것을 참을 수 있을것 같습니까? 그들은 도망치고 말것입니다. 참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묵주기도를 의식도 하지 않고 마음으로 하지 않을 때, 혹은 은총지위에 있지 않을 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럴때 사탄은 기도하고 있는 내용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마음을 다해 기도한다면, 자신이 무엇을 기도하는지 이해하고 믿는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무엇인지를 안다면 사탄도 여러분이 이해하는 것을 이해하고, 여러분이 보는 것을 보고,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을 알게 되므로, 여러분은 사탄을 없애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육화, 바로 그것이 지옥의 가장 큰 고문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에게 예수님의 육화만큼 끔찍한 악몽은 없습니다. 사탄들을 고문하고 싶다면 예수님의 육화를 상기시키십시오. 성모송을 시작하기만 해도 이미 지옥은 고문이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묵주기도를 모두 하였을 때 어떨지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올바르게 기도했을때 말입니다. 여러분이 각 신비를 기도할 때 마다, 어둠의 영을 바로 그 장소에 있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다해 묵주기도를 할때, 세번째 네번째 성모송만 하여도 이미 주변의 사탄들은 달아나고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악령이 들렸다거나 뭐 그런게 아니라면요. (ㅋㅋㅋ)
그것이 바로 성모님이 제게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또한 성모님께서 십자가의 길의 놀라운 힘을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했던 말을 이해하신다면, 십자가의 길이 얼마나 힘이 있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동네를 다니며 십자가의 길을 해보십시오. 제가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여러분이 정한 영적방어 계획에 따라, 예를 들어 매일 3시를 정한다든지, 40일 동안 동네를 걸어가며 십자가의 길을 기도한다면 그것이 어디든지, 그 지역을 가장 깨끗하게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의 집을 깨끗하게 하고 싶다면, 물론 여러분이 은총지위에 있어야 합니다, 각 방이나 집안 구석구석을 다니며 묵주기도나 십자가의 길을 기도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제 말은 어떤 미신적인 기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모님께서 저에게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것을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저의 어린시절을 보여 주셨습니다. 당시 저는 학교 밴드에서 트럼펫을 연주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주간에 연주를 하였었지요. 저는 밴드의 선두 트럼펫 연주자 였습니다. 당시 10살 혹은 11살밖에 되지 않았지요. 성주간에 연주를 하는 것으로 제가 받은 은총은, 제가 비록 개구장이였고, 연주에 집중도 하지 않고 연주하면서도 온갖 짓궃은 짓만 하였는데도, 주님께서는 제가 성주간에 그 연주를 하는 동안 매우 큰 은총을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또한 제가 어렸을 때 종교행렬에 참여한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특별한 기념행사에 저의 삼촌 손에 이끌려 묵주기도를 하는 성모신심 행렬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나 삼촌에게 이끌려 참가했던 신심행렬 때마다 너무도 큰 은총과 보호를 받았으므로 나머지 후에 저의 인생에 많은 커다란 위험에서도 그 은총으로 보호를 받았습니다. 공동체기도는 놀라운 보호를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마다 우리의 적으로 부터 매우 많은 영역을 확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동체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공동체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한 신비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성전의 살아있는 반석입니다. 우리가 하나가 될 수록 힘이 더욱 강해져서 더욱 어둠의 힘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기도하는 것은 완벽한 행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며 서로 사랑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 그것을 하는 것입니다. 공동체안에서 함께 기도한다는 것은 완벽한 일치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신심 행위를 통해 기도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탄은 이 거룩한 전통을 무너뜨리기 위해 몹씨도 바쁩니다. 우리에게는 많이 알려진 신심행위들이 있습니다. 사탄은 그것을 없애려 합니다. 오늘날의 많은 가톨릭 신앙중 많은 부분이 지나치게 현대화 되고 있음으로 인해 사탄은 가장 핵심적인 것을 없애고 있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거리에서 하는 신심행렬에 참가하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공개적으로 하는 기도를 부끄러워하구요. 가톨릭 신자중에 식당에서 음식을 앞에 두고 기도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교도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식당에서 음식을 축복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을 가져다 주는 것인지 안다면 놀랄것입니다. 그 장소에 하느님을 모셔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단순한 기도로서 몇천배의 축복을 가져와 그 식당에 있는 사람을 구원할 수도 있습니다. 어디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몇번이나 길을 가다가 성당을 지나칠 때 성호를 긋고 지나갑니까? 그렇게 했을때, 그것이 복음전파가 되어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모셔올 수 있는것입니다. 그러한 행위는 작지만 영적으로는 아주 큰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교회의 가장 큰 공격은 모든 전통을 흩어버려 모든 거룩한 것들을 없애버리려 하는 그것입니다. 개신교와 같이 전통이 없는 텅 빈 성전을 만들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귀중하고 거룩한 전통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교회안에서 행하는 전통적인 문화와 신심들은 거룩한 것입니다. 그것들은 세대를 거쳐 믿음을 영적으로 표현하는 거룩한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전통들이 함께 우리를 믿음으로 인도합니다. 그 안에는 하느님을 이해하는 언어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각 전통을 통해 각기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공동체 혹은 개인적인 삶의 모든것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모든 언어들을 없애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보호하고 확실하게 보존하도록 해야 합니다.
성모님께서 저에게 교회의 교계제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순종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33명의 교회박사가 있습니다. 슬프게도 제가 가톨릭 신자들에게 33명(2016년 현재는 36명)의 교회박사중 한명이라도 아느냐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교회박사가 무언지도 모릅니다.
성모님께서 천국에는 매우 매우 많은 수백만의 성인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천국에 있는 모든 사람이 성인입니다. 몇 명이 시성이 되었나요? 그럼 여러분은 시성된 사람은 제한되어 있는데 어떻게 천국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나? 하고 되물을 것입니다.
우리는 가톨릭신자만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요. 주님께서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구원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정글에 사는 원주민은 하느님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고 하느님에 대해 아는바도 없지만, 그들의 마음안에는 선 혹은 악을 행하고 그것을 알 수 있는 지식(양심) 이 이미 들어있습니다. 그 원주민이 자신의 마음에 들어있는 양심에 따라 선한 행위를 하고 살다 죽었을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전에 나아가면 즉시 예수님이 주님이라는 것을 알아봅니다. 그는 사랑에 따라 살아었고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그 원주민의 차이는 우리는 훨씬 더 많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것처럼,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이 돌려주어야 한다.” 라고 예수님은 가르치십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제가 받은 것은 인류 전체가 받은 것중에 가장 큰 책임을 받은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가톨릭 신앙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모든 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 하나도 빠진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체로 인해 나머지 인류를 위한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체를 영할때마다, 사실 우리는 그 모든 사람들을 위해 성체를 모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성체를 영할 수 없지만, 우리가 성체를 모심으로써 그들을 먹이는 것이기 떄문입니다. 성체를 모실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성체를 모시는 것이죠. 나머지 인류는 우리의 성체로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또한 그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가톨릭 신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70년이 넘도록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아브라함이 그 나이에 가서 아브라함으로 선택되었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아브라함으로 창조되었고 태어난 것입니다. 신비한 하느님의 방법으로 자신의 사명을 그 나이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나안 혼인 잔치 때에 성모님께서 했던 말을 상기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아직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씀하셨죠. 때가 있습니다. 날짜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정확한 계획이 있습니다.
모세는 50세가 넘어서도 위대한 선지자가 되지 않았습니다. 살인까지 했지요. 그러나 그는 이미 위대한 선지자로서 태어난것입니다.
여러분이 나이 60세에 가톨릭 신자가 되었더라도, 여러분은 가톨릭 신자로 창조되었고 그렇게 태어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성체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속의 영혼들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창조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주님께서 “당신께서 제게 주신 사람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우리가 누구인지 그 신비를 이해한다면, 자신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안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의 구원을 위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성체를 영하러 올 때마다 주님께서는 영혼을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성체를 영하게 되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그리스도화 시키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즉시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피를 이용하여 영혼을 사십니다. 여러분이 성체를 모시는 순간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십니다. 그 영혼을 들어올리십니다. 그 본당 근처에 누군가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데, 여러분이 그 성당에서 성체를 영하거나, 성체조배를 하고 있다면 겟세마니 동산에 있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증거하는 것이되어 주님께서 자살하려는 그 영혼을 파괴하려는 사탄을 멈추게 할 수 있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체를 모시거나 성체조배를 함으로써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이 그토록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체를 영하고 성당을 나설때 사탄이 달아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영향을 볼 수는 없습니다만 예수님 앞에 가면 모두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대전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보물은 우리의 믿음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영혼들을 주님에게 이끌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더욱 믿음을 가질수록 더 많은 영혼을 데려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톨릭 신자가 죽었을때 가장 끔찍한 악몽은 낭비한 모든 성체를 보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이 여러분은 아침에 일어나 바로 근처에서 미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로 바쁘게 뛰어나갔습니까? 바로 근처에서 참 양식을 먹을 수 있었는데 여러분의 작은 삶에서 독과 같은 것들이 더 중요했습니까? 여러분의 하루를 더 강하게 할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성체를 통해 좀 더 사랑할 수 있었고 용서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영혼을 구할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가톨릭 교회에 매일미사가 있는것이 우연인것 같습니까? 우리가 아직도 매일미사가 있다는 것은 주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는 더이상 매일미사가 없는 곳도 있습니다. 은총을 잃어버린것이죠. 저는 전세계 가톨릭 교회를 다니는데, 어디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은총을 완전히 잃어버린 곳이 있습니다. 성당이 문을 닫고 나이트 클럽이 된 곳도 있고 콘도미니엄이 된 곳도 있습니다. 신자들이 미사를 보기 위해 먼 곳까지 가야합니다.
멀리 않은 곳에 매일 미사가 있는 곳에 살면서 그 한시간동안, 영혼을 구하고 자신을 강하게 하는 대신 편하게 배 두드리며 누워서 끔찍한 드라마나 시청하고 있다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좀전에 신부님께서 하신 강론에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지요. “오늘이 마지막인것 처럼 살아라.” 그것은 가장 큰 가르침인것을 아셔야 합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말하곤 합니다. 가장 중요하고 큰 피정은 장례식이다. 사람들이 ‘저는 침묵피정을 갈겁니다’..등등 말하곤 합니다. 그것들도 다 좋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피정은 장례식입니다. 그것이 진짜 깊은 영성피정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러냐구요? 현실과 마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례식에 가게되면, 그다음 차례가 자신임을 느낄겁니다.
여러분도 죽습니다. 오늘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우리는 좀 우둔합니다. 우리는 마치 삶이 계속될 것처럼 삽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잊고 삽니다. 우리는 성서의 이 말씀을 흘려 듣곤 합니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이 있다.” 라고 성서는 말합니다.
제가 질문을 하나 드리죠. 오늘밤 여러분이 죽는다면 무엇이 여러분의 보물입니까? 오늘밤 무엇이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합니까? 사람입니까? 평생 가졌던 꿈입니까? 돈을 가지고 싶습니까? 두려움이나 분노입니까?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죽음을 맞을 때 마지막을에 맞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그곳으로 갈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톨릭 신앙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성체인것입니다. 왜냐구요?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에 촛점이 가 있다면 여러분은 진정한 보물안에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 본당에 속한 신자라고 합시다. 여러분은 잠자리에 들기 전 잠자기 바빠서 성모송을 외지도 못할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잠자리에 들기전 짧은 기도를 할 때, 여러분의 기도를 이 본당의 감실에 가져다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감실이 여러분의 영적인 집이 되기 시작할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영혼은 그 영적인 집에 익숙해 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시간이 있을 때마다 본당의 감실에 계신 주님을 만나러 가게 되지요. 성체현시가 없어도 괞잖습니다. 감실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감실은 닫혀 있지만 주님은 그곳에 계십니다. 그곳에 가서 주님과 함께 머물러 있게 되지요. 그렇게 자신의 영혼에게 집이 어디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영혼이 그것에 익숙해지면 조금씩 조금씩 여러분에게 있어서 감실이 여러분의 참된 보물이 될것입니다. 그러다가 죽음을 맞았을때, 그영혼은 즉시 감실아래로 가게 될것입니다. 무엇을 보게 될까요? 철금속 혹은 나무상자가 아니라 여러분이 항상 찬미를 드리고 기도들 드린 그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현존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여러분의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매우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오늘밤 여러분의 보물이 사람, 돈, 세상적인 것과 같이 지금의 자연적인 삶의 것이라면, 여러분은 결코 초자연적인 상태로 되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초자연적인 삶을 시작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는 초자연적인 삶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받아들이질 못합니다. 이 세상의 자연적인 삶만을 살려하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성체를 모실때만 초자연적인 삶을 사는 척합니다. 고백성사 보는 것도 겁을 냅니다. 누군가로부터 자극을 받거나 하고 싶을 때만 가끔씩 기도를 할 뿐입니다. 그것이 초자연적인 삶을 겨우 체험하게 할 뿐입니다. 우리는 항상 초자연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람이 되려면 이중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정말로 이 세상에서 벗어났을 때,하늘나라로 로케트처럼 날아가고 싶다면 지금 준비해서 작은 날개가 자라나게 해야합니다. 날아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날아갈 수 있는 방법은 이 자연적인 삶을 내려놓아야합니다. 등에 봇짐을 맨 새를 본적이 없지 않습니까? 만화에서만 볼수 있지요. ㅋㅋ 새는 아무런 짐도 지지 않고 날아갑니다. 우리도 영적인 비둘기가 되어 날아가야 합니다. 짐이 없어야합니다.
그 때가서 어떻게 이세상의 모든 짐을 내려 놓겠습니까? 지금 시작해야합니다. 오늘밤 떠나야하는데 아직도 짐을 지고 있다면 떠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장 큰 근심은 세상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상의 삶의 것, 그것은 영혼에게 악몽과 같은 것입니다.
한가지 말씀드리죠. 제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저를 구해주셨다는 것밖에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는 아주 많은 영혼에 대한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얼마나 많은 영혼이 떠나지 못해 이곳에 있는지 볼 수 있다면, 그 순간 성인이 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결코 그들과 같이 되고 싶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세상에 멈추어져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여러분은 믿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지금 죽는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즉 낮은 영적세상을 빠져나갈 만큼 강하지 못하다면 이곳에 걸려 멈춰지고 맑것입니다. 이곳을 빠져 나가기 위해 상당한 기간이 걸리게 됩니다. 아주 아주 천천히 이곳으로 부터 빠져나갑니다. 인식이 이 세상의 삶에서 풀지 못한 각각의 것들을 다 풀어야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말하는 것은 심판받아 지옥에 가는 영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은 가지 않았지만, 천국으로 오르지 못한 영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가 성서와 교리를 통해 영적인 언어로 항상 가르치고 있는 그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옥에 대해 더이상 말하지 말아 주세요’’죄에 대해 강론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강론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이 알아야 하는 문제 입니다. 여러분은 교리를 알아야 하고 계명을 알아야 하며 선과 악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사제에게 맡겨버릴 건가요? 성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 사람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하느님께 순종하여야 하고 백프로 하느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사제의 강론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를 따라야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진리는 항상 여러분과 저에게 말하여 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사에 참례할 때마다 듣는 말씀은 영적인 언어로서 모두 영원한 삶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항상 구원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가 순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순종하지 않고 죽는다면, 그것들을 무시하고, 웃음거리로 만든다면, 너무도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수백만의 셀 수 없는 영혼들이 이곳에 멈추어져 있습니다. 종교인, 사제, 수녀, 거룩해 보이는 사람들이 이곳에 멈추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믿지 못할 것입니다. 왠지 아십니까? 그들은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기 떄문입니다. 아마 영적인 가난함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종교인들은 가난, 순명, 순결 들을 서약합니다. 사람들은 가난이란 모든 물질적인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진짜 영적 가난함이란 자신의 피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즉 가장 중요한 소유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피는 온갖 욕망으로 끓고 있습니다. 만일 하느님앞에서 가난을 서약한다면, 더 이상 그 욕망을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피가 끓을 때마다 그것을 포기 하는 것이죠. 그것은 이미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매일의 큰 전투입니다. 그 피는 항상 본인에게 돌아오려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시시때때로 계속 하느님께 그것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의 그 결과는 너무나 귀한 것이죠. 그것이 바로 우리가 보는 썩지않는 몸입니다. 성인들의 썩지 않는 몸이 바로 위대한 가난함의 예입니다. 모든 성인들의 몸이 썩지 않는 건 아니죠. 그것이 그 성인들이 영적으로 가난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셔서 하느님의 방법으로 교회를 통해 우리를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그 몸이 썩지 않는 첫번째 이유는 오직 성체로 인해서만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영적 가난은 그리스도와 같이 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말할 때 사람들은 불편해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죽음을 그려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지금 죽는다면, 여러분은 이곳을 나갈 수 있을지를 알것이기 때문입니다.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밤 열시쯤, 제가 식당에서 나와 운전을 하며 길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옆쪽에 한벽이 있는게 보였습니다. 벽을 고치기 위해서인지 시멘트가 발라져 있었고, 아직 고르지 않은 상태여서 울퉁불퉁했습니다. 그 곳에 갑자기 사람의 얼굴 같은것이 보였습니다. 어쩌면 시멘트의 울퉁불퉁한 면으로 인해 잘못 본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벽면은 여러 모양이 보여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저는 좀더 가까이 가 보았습니다. 그러나 잘못 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곳에 사람이 있었습니다. 영혼이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양복을 입은 거리에 있는 일반 사람처럼 나타났습니다. 그는 저를 바라보았고 아주 품위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놀랍도록 매우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결코 상상도 할 수 없는 아주 아주 깊은 슬픔이었습니다. 그러나 고귀하고 거룩한 슬픔이었습니다. 그는 저의 눈을 깊이 바라보더니 “제 이름은 안토니오입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라고 놀랍도록 거룩한 눈으로 아주 천천히, 그러나 시름 깊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 후로 매일 안토니오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해하기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아마 안토니오가 아는 어떤 사람이 그 근처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는 매우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절망적인 상태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큰 슬픔을 가지고 있었지만 신비로운 평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만.
우리도 언제라도 안토니오처럼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누구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도 없이 아무도 우리를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할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두렵게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두려워할지 몰라요.” 라고 저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두렵다면 차라리 좋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영혼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책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혼은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있지요. 우리의 영혼을 돌보고 가꾸어 우리의 삶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리의교회가 가장 큰 은총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때때로 사람들이 저에게 물어봅니다. 성체조배를 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은가요? 저는 성체조배를 하고 싶은데, 한시간 정도, 구일기도를 하고, 묵주기도를 하고 성서를 좀 읽고.. 그러고 나면 나머지 시간은 너무 참기 힘들어서 졸곤 합니다. “
여러분이 매우 중요한 사람을 방문한다면 옷을 차려입고, 어떤 사람은 양복도 새로 사지요. ..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나서는 잠이 활짝 깨어서 밤을 지새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고작 사람인데도 말입니다. 여러분이 성체에 계신 분이 주님이라는 것을 진실로 안다면, 어떻게 졸음에 빠질수가 있을까요? 뭔가 잘못 된것이지요. 뭐가 잘못된거냐구요? 성체안에 실제로 주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사실이므로 부정할 수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느냐구요? 주님앞에 무릎꿇고 말씀하십시오. “주님, 간청합니다. 당신이 성체안에 살아 계신다는 것을 마음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은총을 주십시오. 그리고 저에게 성체를 목말라 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십시오.” 우리가 그것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신실해지고 그래야 결국 우리가 영적으로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영적으로 될 수 있도록 자신을 재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종교적이라고 생각해서 영적인 줄 알고 있습니다. 많은 종교행위를 하는 것이 영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묵주기도를 하고 몇시간 씩 성서를 일고 순례를 가고 해도 전혀 영적이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적인것은 마음이 진정으로 바뀔때만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매일 더욱 더 거룩해져 가는 것입니다.
(..계속)
'밭에 묻힌 보물 > 마리노 레스트레포 강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시련중에 굳건하게 서기- 마리노 레스트레포 (0) | 2017.05.29 |
---|---|
[스크랩] 부활 - 마리노 레스트레포 (0) | 2017.05.29 |
[스크랩] 감사 - 마리노 레스트레포 강연 (0) | 2017.05.29 |
[스크랩] 하느님께 의탁한다는 것 - 마리노 레스트레포 강연 (0) | 2017.05.29 |
[스크랩] 마리노 레스트레포 - 죽음의 이해 - 1 (0) | 2017.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