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권고 : 의지를 자기 소유로 주장하는 악에 대하여
주님이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말아라.”(창세2.16,17) 그는 낙원에 있던 모든 나무 열매를 따먹을 수 있었고 순명을 거스르지 않았을 때까지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기 의지를 자기 소유인양 권리 주장을 하며 주님이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선으로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악의 꾐에 빠져 계명을 거슬러 따먹은 나무 열매는 그에게 악을 알게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벌 받아야 마땅합니다.
제 2 권고는 우리 삶의 근본적인 안건을 아주 강한 어조로 다루며 모든 악의 시초인, 첫 사람의 원죄로부터 시작합니다. 인간은 창조주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되었고 그 분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도록 불림을 받았습니다.
[전능하시고 지극히 거룩하시며 지극히 높으시고 지존하신 하느님,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임금님, 당신의 거룩한 뜻에 따라 당신의 외 아드님을 통하여 성령과 함께 모든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창조 하셨사오며, 당신의 모습과 유사하게 만드신 우리들을 낙원에 두셨사오니, 당신 자신 때문에 당신께 감사드리나이다.(1회칙 23.1)]
첫 인간이 낙원에서 거칠 것 없는 평화 중에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지존하신 분의 모습으로 창조됨에 기인합니다. 인간은 지존하신 분으로부터 모든 능력과 힘을 부여 받았고 또 그분의 피조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창조주께 감사드려야 마땅합니다. 하물며 그분의 모습과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니 얼마나 더 그분께 합당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과 인간의 유사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자유 의지 입니다. 인간은 이 능력으로 하느님의 모습을 세상에 분명히 보여 주어야 합니다.
“예” 와 “아니오”를 말하는데 있어서 인간의 의지와 하느님의 의지가 장단이 잘 맞을 때, 인간은 자신이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하고 하느님의 완전한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가장 잘 드러내게 됩니다.
인간의 모든 능력, 의지조차도 인간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은 하느님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 열매만은 따먹지 말아라”고 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시고 후에 그 자유 제한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체적으로 허락된 것과 허락되지 않은 것을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지존의 모상임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 열매만은 따먹지 말아야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은 것에 대한 유혹을 거부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허락하시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순명이란 인간 의지의 주인이 인간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계명을 거역하지 않는 동안은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었습니다. 순명을 거스르지 않을 때까지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죄의 원인은 순명을 거스르는데 있습니다. 불순명은 죄 입니다. 어떤 죄든 불순명에서 기인합니다. 인간이 범하는 모든 죄는 곧 그 같은 불순명입니다. 성인은 말 합니다.
[자기의지를 자기 소유인양 권리 주장하며 주님이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선으로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인간이 죄 가운데 있을 때에 첫째, 자기의지를 자기 소유인 것처럼 권리주장하고 둘째, 주님이 자기 안에서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선으로 자기 자랑을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의지를 자기의 것인 양 소유함.
인간은 완전한 소유가 불가능 합니다. 그리고 자유의지에 있어서 우리가 이것만은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원하는 대로 자유로이 결정 할 수 있다면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참 주인입니다.
그러면 죄는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누구에게 심판 받을 필요도 없이 모든 것을 스스로 자기 마음대로 결정 할 권리가 있는데 어떻게 죄가 성립 되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첫 사람 아담이 하느님과 같이 되려고 했던 그 유혹의 씨앗이었습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절대적 권리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비와 사랑을 베푸시는 위대한 독지가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참조 2첼라노77)
하느님은 세상 만물의 주님이시고,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모든 피조물에게 각각 그 한계를 지어 주시는 주님으로 존재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자유의지 위에 군림하시는 주님이 되시도록 해 드릴 때 인간은 그분께 가장 큰 영광을 드리게 됩니다. 창조주 하느님의 절대적이고도 본질적인 요구는 인간을 통해서, 모든 피조물을 통해서 당신이 그들의 소유주이시며 주님이심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지배권을 부인하며 제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자기 의지의 소유주가 되고 싶어 하는 죄의 본질과 관련하여 성인은 “자기주장의 돈주머니를 간직하고 있다면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2첼라노140) - 유다의 배반에 비유
[하느님 때문에 자기의지를 포기(2회칙10.2)]하는 것을 순명이라 합니다.
[죄를 범한다는 것은 단지 계명을 어긴 것]이라는 견해는 죄의 본질과 의미를 모르고 그로 인한 엄청남 재난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것입니다. 죄는 하느님께서 주인이심에 이의를 제기하려는 인간의 시도 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자기의지의 주인이요, 소유주가 되어 하느님께서 어떤 규정이나 지시도 내릴 수 없도록 하여 자기를 하느님의 자리에 올려놓으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만물의 절대적 주인이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안에 도사리고 있는 사악함의 뿌리를 분명하게 의식하고 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그저 한두 계명을 어겼다는 생각에 그치거나, 하느님 권리에 대한 침해라기보다는 삶에 따르기 마련인 수많은 행위나 사고 중의 하나라고 지나쳐 버리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님이심을 반박하는 것이 죄악이며 불순명 이므로 성인의 말대로 [하느님 때문에 자기의지를 포기하면(2회칙10.2)] 그러한 순명과 마음의 가난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주님께서 자기 안에서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선을 자기 것인 양 자랑함.
인간은 위대한 독지가이신 하느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2체라노77) 그분은 우리를 존재로 부르셔서 우리에게 모든 재능을 주셨고, 우리 힘을 보존해 주시며, 우리에게 활동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선을 가지고 우리자신을 칭송과 영예의 높은 왕좌에 올려놓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제 18권고에서 모든 좋은 것을 주 하느님께 되돌려 드려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을 때 인간은 [하느님 보물 창고의 도둑(2체라노99)]이라고 하셨습니다.
성인께서는 인간이 이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제2 권고의 마지막 말씀과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악마의 꾐에 빠져 계명을 거슬러 따먹은 나무 열매는 악을 알게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벌 받아야 마땅합니다.”
모든 유혹의 핵심은 언제나 같습니다. “너는 하느님처럼 될 것이며, 너희는 누구로부터도 간섭 당할 필요가 없으니 너희가 원하는 대로할 수 있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이때 인간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으리라는 망상으로 오히려 악마의 종이 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과의 생명력 있는 유대 관계를 잃어버리고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맙니다.
[아담이 자기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섬기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그의 자손들이 그분을 더 이상 섬기려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들의 원수인 악마와 육신을 섬기기 시작 했습니다.(성 안토니오 강론집87)]
주님으로부터 자신을 단절 시키게 되면 온갖 암흑과 의혹을 만나게 마련이고 점점 더 멀어지고 맙니다.(우리 삶의 체험들 ~~)
성인은 우리를 아집과 교만한 자기주장의 결과에서 비롯된 모든 속박에서 해방시키고자 하십니다. 항상 새로이 하느님 앞에 겸손하게 머물며 그분께 모든 것을 되돌려 드려야 합니다. 우리 삶에서 하느님을 우리 주님으로 인정함으로서 그분을 현양하면, 하느님 안에서 우리의 행복을 찾게 됩니다.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입니다.]
http://blog.daum.net/su-clara/12649901 에서 모셔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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