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교구 성소국 '신앙의 해' 신앙체험수기 최우수상 수상작
고통 한 가운데서 만난 임마누엘 하느님
인천교구 성소국이 신앙의 해를 맞아 개최한 신앙체험수기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이은숙(아녜스, 46, 인천 주안3동본당)씨의 수기 '신앙의 해를 맞이하면서'를 2회에 걸쳐 게재한다.
이씨는 수기를 통해 간암 말기로 시력과 청력을 잃은 오빠를 돌보는 어려움 속에서 신앙의 힘으로 주님 사랑을 체험한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담아냈다. 이씨는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사는 오빠는 우리 가족에게 더 큰 주님 사랑을 전해주는 천사와 같은 존재"라며 "글을 통해 고통 속에 있는 많은 이들이 주님 안에 살며 용기를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얼마나 큰 기쁨을 맛보며 살까요? 우리는 기쁨도 경험하지만 고통도 많이 겪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고통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참된 기쁨이 온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 또한 어려움이 더하면 더할수록 주님과 가까워지는 신비를 맛보았습니다. 제 신앙의 성장을 도와준 저희 오빠와 엄마를 통해서 말이죠.
저희 오빠는 문턱 높은 서울대를 나왔습니다. 학창시절엔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대학에서도 장학금을 받으며 수재(秀才)란 소리를 들으며 지냈습니다. 이후 행정고시를 2차까지 무난히 통과하면서 내로라하는 기업에서 러브콜(?)도 받았었지요.
그때 오빠와 저는 틈틈이 시각장애인선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오랫동안 봉사를 하면서 시각장애인들의 어려운 생활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때 저희보다 더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도록 하시면서 일찍이 당신의 신비를 일깨워주고 계셨어요.
오빠는 고 3때부터 신장이 좋지 않았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혈액투석을 해야 했습니다. 급기야 오빠는 저희 엄마 신장을 이식받는 대수술을 했습니다. 저희는 하느님 안에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오빠를 보며 기쁨을 맛보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뜻은 어디에 있었는지…. 저희 식구에게는 더 큰 시련과 고난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모든 식구가 그분만을 바라보며 하루도 빠짐없이 미사 참례와 묵주기도를 하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어느 날 새벽, 오빠가 그만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왼쪽 몸에는 마비까지 왔습니다. 매일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날이 이어졌습니다. 오빠는 몸이 점점 더 나빠져 혼자 대소변을 해결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저희 식구는 그럴수록 더욱 하느님을 찾았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기쁨과 은총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찾으면 찾을수록 이상하게도 고통은 커져만 갔습니다. 날이 갈수록 오빠의 신장은 나빠졌고 오빠는 하루가 멀다하고 쓰러졌습니다. 하루 4~5번씩 해야 하는 복막투석의 고통도 따랐습니다. 그 와중에도 오빠는 제 아이와 성당 학생들을 집으로 불러 무료로 공부를 가르쳤습니다. 그중에는 예비신학생 모임을 나가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또래와 함께 오빠의 과외 시간을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에게 저녁밥을 챙겨주며 하루하루 지냈습니다. 그러던 2009년 어느 날, 아이들과 과외를 마치고 식사를 하는데 며칠 전 받았던 오빠의 검진결과를 통보받았습니다. 결과는 간암. 정말이지 기도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 믿음과 신앙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주님, 당신만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얼마나 더한 믿음을 지녀야 당신 뜻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당신이 가신 길, 몇 번이고 넘어지신 그 길을 생각하며 또 한 번의 고통을 이겨냈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굳은 믿음으로 확신을 갖고 말입니다."
이후 오빠는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에 몇 번이고 실려갔습니다. 오빠는 수십 차례에 달하는 극한의 고통을 넘기며 7차례에 걸쳐 암시술과 수술을 받았습니다. 세 번째 수술 후 오빠는 청력을 잃었습니다. 다섯 번째 수술 후에는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오빠는 안 들리고 안 보이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안과를 방문한 날, 의사 선생님께서는 '빛 감지가 안 되니 회복이 어려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뒤로하고 집으로 오던 저는 오빠의 말 한마디를 듣고 차를 계속 몰기 힘들 정도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말은 지금도 제 귓가에 생생하게, 가슴 속 깊이 남아 있습니다.
"하느님이 얼마나 감사한 분인 줄 아니? 나는 그분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에 무척 감사드린다."
그 순간 저는 '인간적인 것에서만 만족하고 살았구나. 눈이 있고 귀가 있어도 볼 줄 모르고 들을 줄 모르고 살았구나'란 것을 느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주님께 감사하는 오빠를 보며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오히려 주님께 감사하다니, 그것을 아는 것이 진정한 주님 은총이구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데 주님께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래, 내가 미리 걱정하고 있었구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오빠와 함께 계시는데…. 나는 오빠에게 어떻게 위로를 해줄 수 있을까?'
오빠는 이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하루 4시간 넘게 하는 오빠의 투석을 도왔고, 먹여주고 닦아주었습니다. 묵묵히 오빠 곁을 지키며 오빠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척척 들어주고 돌봐주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성모 마리아를 떠올렸습니다. 한평생을 주님 위해 바치신 우리 엄마, 이제 예수님이 가신 길 함께 걸으시네.
간암 말기에 시력과 청력까지 잃은 오빠. 그런 오빠가 잠 못 이루며 묵주기도를 몇백 단씩 바쳤는데도 밤새 아파서 기도를 조금밖에 못 했다고 할 때면 성한 내 몸이 얼마나 죄스러운지 모릅니다. 오빠는 하루종일 누워서 기도만 하면서 기도 중에도 때론 어두운 마음이 생긴다면서 어찌할 줄을 몰라합니다. 주님께 너무 죄송하다면서요. 그런 오빠를 보면서 잡생각속에 기도를 드리는 제가 진짜 기도를 하고 있는지 반성이 듭니다.
오빠는 최근 한 달간 중환자실에서 지냈습니다. 간암 말기라 혈관이 터져 몇 번의 색전술로 위험한 고비도 넘겼지요. 신부님께서 병자성사를 주러 오셨을 때 오빠는 맥박도 없고 의식도 없었어요. 신부님께서는 저희도 알아 들을 수 없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병자성사를 주셨어요. 그런데 오빠가 신부님의 성사에 맞춰 크고 똑똑한 말투로 "아멘"을 외치는 거예요. 저와 엄마는 놀라 서로 얼굴만 쳐다봤어요. 분명 하나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오빠가 어떻게 대답했을까?
다음날 의식이 돌아온 오빠에게 '신부님께서 병자성사를 주신 것 아느냐'고 물었더니 오빠는 "예수님께서 왔다가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멘'이라고 답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오빠는 "여기 중환자실에 사탄이 있는 것 같은데, 묵주만 꼭 쥐고 있으면 오지 않는다"고 하면서 저에게 묵주기도의 위력을 전해줬습니다.
오빠는 병실에 있는 동안 냉담 중인 환자들을 주님 품으로 많이 이끌었습니다. 고통이 심해 말도 못하는 오빠는 그저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정말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말만 했대요. 복음전파에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진심이 느껴졌는지 같은 병실 냉담교우가 회개하고 다시 성당을 나간다고 전해줬습니다.
오빠는 조카들에게도 "공부도 중요하지만 성경을 자주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성경안에는 지혜가 들어있어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면서 성경의 중요성을 늘 일깨워 줬습니다.
저에게는 "아녜스야, 무엇이 먼저인지를 생각하고, 항상 기도 먼저 바쳐라.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땐 '아버지'라고 하지 말고 '아빠'라고 불러봐라. 모든 걸 들어 주시는 아빤데…" 라고 말하며 웃음 지었습니다. 오빠의 말에 저는 조용히 동요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굳은 믿음만 있으면 모든 상황이 기쁨으로 변합니다. 오빠가 퇴원한 후 엄마는 식사할 틈 없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빠의 기저귀 갈아줍니다. 식사는 물론, 4시간마다 하는 투석과 주사를 놓는 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입니다. 밤을 꼬박 새우다 보면 보호자도 지치고 힘이 듭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은 미사 때 성체성사와 성체조배의 힘으로부터 나옵니다.
우리는 미사에 참례하는 길이 얼마나 큰 은총으로 향하는 길인 줄 모르고 지냅니다. 우리 식구는 한번 미사에 참례하려면 이른 아침부터 오빠 투석을 돕고, 씻기고, 밥 먹이고, 옷을 입힙니다. 그러면 2시간은 족히 걸립니다. 뇌출혈로 손과 발이 부자연스러운 오빠의 신발 신기는 데만 30분 넘게 걸리기도 합니다. 어렵게 성당에 도착하면 무척 기쁩니다. 성당에 와 있다는 그 자체, 주님을 모신다는 기쁨에 그야말로 감동이지요. 예수님을 모신다는 기쁨이란 이루 말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흥겨운 일인데 이렇게 좋은 미사참례의 기쁨을 사람들은 왜 모를까요?
엄마는 매일미사를 한 번도 거르신 적이 없습니다. 오빠 또한 거동을 못하기 전까지 매일미사에 열심히 참례했습니다. 저 또한 근심기도 중에 주님을 만나고, 그 근심이 기쁨으로 변화될때 제 마음이 하얀 깃털이 되어 가벼운 마음이 됩니다. 걱정하지 말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믿으십시오.
기도 없이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고통을 당하면 당할수록 주님과 더 가까워진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얼마 전 오빠가 너무 힘들어하며 고해성사 드리는 것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빠가 병상 중에 꾸었던 꿈 이야기를 해줬어요.
유리창이 깨져있는 지하 단칸방에 할머니와 아기가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오빠는 선뜻 지갑의 돈을 꺼낼지 말지를 망설였대요. 꿈에서 깨어난 오빠는 재물을 버리지 못했던 마음에 하느님 앞에 죄인이라며 부끄러워했어요.
얼마 전 장애연금을 받은 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빠는 '십일조는 주님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고 하면서 주님의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천국의 집을 짓고 재물을 쌓아둬야지 이 지상의 것은 있다가도 없어진다고 하면서 말이죠.
그때 알았어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가슴 한구석에 까만 점하나만 있어도 못 견뎌하며 성사로 주님께 다시 나아가려 합니다. 그런데 저는 온통 까만점으로 뒤덮여 있는데도 그걸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 길로 곧장 고해성사를 드렸습니다. 주님께선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어요. 저희의 고통을 대신하고 저희를 위해 죽음까지 맞이하셨죠.
신앙의 해는 지금 이 시대에 교회 안에서 절실히 필요한 결정임이 틀림없습니다. 교황님 뜻을 따라 우리 신앙인은 회개하고, 복음선포와 성사, 기도의 필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빠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장애인입니다. 암 투병과 복막투석으로 손과 발의 거동은 불편합니다. 수십 군데로 전이된 암과의 사투 속에서도 오빠가 기쁨과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영원한 생명으로 향한다는 분명한 신앙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 생명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저는 모든 걸 주님께 맡길 때 비로소 영원한 생명, 곧 구원에 이르는 길이 주어진다는 지혜를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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