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 사랑의 십자가 ^^* ♥♡*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지난 한 주간 동안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을 많이 느끼셨나요?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많이 깨달을수록 잘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은 우리 신앙생활에서아주 중요합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오늘은 전례에서 두 장면의 복음을 듣게 됩니다. 우리가 행렬을 시작하기 전에 듣게 되는 복음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던 군중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2천 년 전 어느 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자,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고대하던 메시아가 오신다고, 그래서 그들이 갈망하던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이루어 주리라고 굳게 믿으며, 예수님을 열열이 환영하며 목청껏 외쳤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 그런데 막상 미사가 시작되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오늘 미사 중에 듣게 되는 긴 복음은 수난 복음이라 합니다. 이 구절은 인간을 위해서 아니 나를 위해서 당신의 생명까지도 다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그 사랑이신 분을 배반하고, 죄인 취급하며 조롱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는 인간들의 비열하고 악한 모습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그래서 한없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감동과 구세주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인간의 불신에 대한 아픔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악을 써가며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치는 그 군중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불과 이틀 전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하고 환호하며 예수님을 맞아들였던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저는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에 갈 준비도 되어 있고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라고 장담하던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형제 자매님,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적인 삶의 문제는 인간을 이기적으로 바꾸어 버리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나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들도, 세례성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활의 규범으로 삼고 살아갈 것을 약속한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나 생활 가운데서 현실이라는 핑계로 얼마나 자주 말씀을 외면하고 또다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현실에 전혀 굴하지 않으시고 성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현실적 사건들을 당신의 자유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죽지 않으실 수 있었지만 당신이 벗으로 삼아주실 사람들(요한 15,13-17 참조), 곧 나를 사랑하시기에 십자가의 죽음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것이 아버지의 뜻임을 믿었고 또 아버지께서 보살펴 주시리라 믿었기에 순종하셨습니다. 형제 자매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겸손과 순종이라는 아름다운 말로써 노래합니다. 즉, 예수님은 하느님과 같은 분이시만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을 온전히 낮추어 인간이 되셨고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사랑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하느님께서 그분을 드높이 올리셔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기에, 하늘과 땅 위와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다고 합니다. 형제 자매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십자가를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십자가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또 십자가를 받아들일 때 어떤 결과를 얻게 되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현실적인 사건들 안에서의 자유와 하느님의 보호에 대한 신뢰 곧,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십자가를 극복하고 영광에로 나아갈 수 있는 진정한 힘임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십니다.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그러므로 우리에게 아무리 무거운 십자가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해 생명까지 다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한다면 그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갈 수 있고 극복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 미사를 봉헌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에 올바로 응답하지 못하고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일들을 깊이 반성합시다. 그리고 맞이할 한 주간 곧 성주간 동안 하느님의 도우심을 믿고 가족과 이웃들을 더 잘 사랑합시다! 그러면 일주일 후에 더욱 기쁘게 복된 부활절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구대교구 산격성당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t*
의 십자가 ^^* ♥♡*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지난 한 주간 동안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을 많이 느끼셨나요?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많이 깨달을수록 잘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은 우리 신앙생활에서아주 중요합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오늘은 전례에서 두 장면의 복음을 듣게 됩니다. 우리가 행렬을 시작하기 전에 듣게 되는 복음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던 군중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2천 년 전 어느 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자,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고대하던 메시아가 오신다고, 그래서 그들이 갈망하던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이루어 주리라고 굳게 믿으며, 예수님을 열열이 환영하며 목청껏 외쳤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 그런데 막상 미사가 시작되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오늘 미사 중에 듣게 되는 긴 복음은 수난 복음이라 합니다. 이 구절은 인간을 위해서 아니 나를 위해서 당신의 생명까지도 다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그 사랑이신 분을 배반하고, 죄인 취급하며 조롱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는 인간들의 비열하고 악한 모습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그래서 한없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감동과 구세주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인간의 불신에 대한 아픔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악을 써가며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치는 그 군중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불과 이틀 전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하고 환호하며 예수님을 맞아들였던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저는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에 갈 준비도 되어 있고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라고 장담하던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형제 자매님,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적인 삶의 문제는 인간을 이기적으로 바꾸어 버리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나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들도, 세례성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활의 규범으로 삼고 살아갈 것을 약속한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나 생활 가운데서 현실이라는 핑계로 얼마나 자주 말씀을 외면하고 또다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현실에 전혀 굴하지 않으시고 성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현실적 사건들을 당신의 자유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죽지 않으실 수 있었지만 당신이 벗으로 삼아주실 사람들(요한 15,13-17 참조), 곧 나를 사랑하시기에 십자가의 죽음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것이 아버지의 뜻임을 믿었고 또 아버지께서 보살펴 주시리라 믿었기에 순종하셨습니다. 형제 자매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겸손과 순종이라는 아름다운 말로써 노래합니다. 즉, 예수님은 하느님과 같은 분이시만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을 온전히 낮추어 인간이 되셨고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사랑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하느님께서 그분을 드높이 올리셔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기에, 하늘과 땅 위와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다고 합니다. 형제 자매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십자가를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십자가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또 십자가를 받아들일 때 어떤 결과를 얻게 되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현실적인 사건들 안에서의 자유와 하느님의 보호에 대한 신뢰 곧,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십자가를 극복하고 영광에로 나아갈 수 있는 진정한 힘임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십니다.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그러므로 우리에게 아무리 무거운 십자가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해 생명까지 다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한다면 그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갈 수 있고 극복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 미사를 봉헌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에 올바로 응답하지 못하고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일들을 깊이 반성합시다. 그리고 맞이할 한 주간 곧 성주간 동안 하느님의 도우심을 믿고 가족과 이웃들을 더 잘 사랑합시다! 그러면 일주일 후에 더욱 기쁘게 복된 부활절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구대교구 산격성당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t*
'강론 말씀 (가나다순) > 박영봉 신부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주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아가페, 필리아, 에로스 (0) | 2016.04.30 |
---|---|
지상천국은 가능할까요? 죽기까지 사랑하라 (0) | 2016.04.30 |
기쁨을 더 크게 누리기 (박영봉 안드레아 신부님의 강론입니다.) (0) | 2016.01.27 |
참된 기쁨을 누리자! 카나의 기적 (0) | 2016.01.27 |
행복을 볼 수 있는 신앙의 눈 (박영봉 안드레아 신부님의 강론입니다.) (0) | 2016.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