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5년

'남김 없이' 받았으니

김레지나 2015. 8. 8. 22:35

공지영의 책 <수도원 기행 2>에서 꽤 많은 부분을 옮겨 적었다.

작가가 하느님과 만나는 장면은 눈물이 날만큼 감격스러웠다. 

'아, 하느님께서는 내게도 그렇게 구체적인 사랑을 알려주셨었지.'

그 멋지고 재미난 사랑을 알리고 싶어 큰맘 먹고 타이핑을 했다.

지인들과 환우들에게 그 내용을 보냈다.

 

미사에 갔다.

성체를 모시면서 울컥 눈물이 났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챙기십니까?'

'감사합니다.'

 

소나기가 말끔하게 닦은 들과 흰 구름띠를 두른 산은 참 아름다웠다.

행복한 마음으로 펜션 주차장으로 들어섰는데,

'와지끈 ~'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아주머니가 주차장에서 작은 수레로 일하시다가 벌레에  물려 약을 바르러 잠깐 집에 들어가신 참이었단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길이 약간 오르막인데다 내 차가 높아서 수레가 보이지 않았던 거다. 

수레가 차 아래 깔리면서 워셔액통이 깨져버렸다.

 

 

긴급출동 서비스를 받았다.

다행히 다른 곳은 이상이 없었지만

차 고치느라 돈과 시간을 써야한다는 생각에 심난했다. 

오늘 내가 하느님과의 만남을 추억하며 하느님을 위해 옮겨 적은 부분에는

공지영 작가가 하느님으로부터 운전 코치를 받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우울해졌다.

 

책 내용은 이랬다.

    < 운전을 하는 와중에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그냥 도와달라고 말한 것이었다. 그냥 가볍게 한 기도였다. 낭떠러지도 아니고 지하주차장에서 차 표면을 조금 긁힌 들 뭐 그렇게 큰일이 있겠는가. 폭탄을 실은 것도 아니고 그 차가 설사 거기서 부딪쳐 쿵쿵거린들 무슨 일이 있겠는가. 게다가 내 운전 경력은 그때 이미 이십 년이 다 되어 가고 있는데. 그리고 그 기도도 그냥 해 본 적이었는데. 그런데 이분은 내 옆에 바싹 붙어서, 마치 내가 정말로 두려움에 사로잡힌 아이라도 되는 듯,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하며, 전능하신 분이 나의 창조자가, 이 세상의 주인이, 우주의 경영자가, 세상의 전쟁을 보고 가슴 아파하기에도 벅찰 그분이, 그 지하주차장 가는 일이 무슨 나라를 구하러 가는 일이라도 되는 듯.

   지하주차장에 도착해 차를 세우고 나는 보이지 않는 그분을 우러러 보았다. 그분은 어린아이처럼 만족한 듯했다. 그리고 내가 장한 일이라도 끝마친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계신 듯 느껴졌다. 그리고 그분은 나를 도왔다는 것을 기뻐하시는 듯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래, 이건 내가 지어낸 내 마음속의 내 말이 아니었다. 내가 미친 게 아니었다. 나는 어떤 누구를 두고 이렇게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이렇게까지 사랑한 적도 없고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런 행위, 이런 단어를 이런 상황에서 뱉은 것은 내가 아닌 게 너무도 분명했다. 이건 사랑이었다. 누가 봐도 그랬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구나. 그 사랑은 구체적이구나. 아아, 사랑이라는 게, 사랑을 한다는 게, 사랑을 받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이 부분은 빼는 게 좋겠다는 사인을 주신 걸까?

하긴 특별한 경험에 대한 동경은 대개의 경우 바람직하지 않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지.

 

나는 하느님께 투정할 기분도 나지 않았다.

간만에 하느님 사랑에 취해 들떠 있던 맘이 다치니 무안하기도 했다. 

'하느님, 공지영 작가에게는 그토록 친절하게 운전을 염려해주셨으면서

 제가 그런 이야기를 읽고 신나서 여러사람들에게 전한 날,

 왜 하필 오늘!

 차를 망가뜨리게 하셨어요?

 제가 뭘 잘못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요?

 물론 저는 기적이나 표징을 아무 때나 구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아시다시피요. 충분히 알고 있다구요.

 근데, 이번에는 제게 뭔가 꾸지람하는 사인을 보내신 것만 같아서 걱정되기까지 합니다.'

  

 저녁을 대충 차려 먹고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이 책 때문이니, 이 책으로 속상한 맘 달래주세요.'

 

  펼쳐 보니 이런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더 좋은 일'이 있으려고 그러겠죠."

 '흥! '더 좋은 일'은 무슨 좋은 일?'

 삐딱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건강이 나빠지는 것보다야 수억 배 낫지. 

 하지만 어쩌면 나도 S언니처럼 통증조절이 안 되어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될지도 몰라.

 하느님의 뜻은 자주 우리 바람과 다르게 이루어지거든.'

 가라앉은 기분은 여전했다. 

 

  한 페이지를 더 펼쳐보았다.

  "나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신은 그분 뿐입니다."

 '바로 그거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바치셨는데,

  이미 당신의 목숨을 바쳐서 내게 사랑고백을 하셨는데,

  그것으로 이미 '남김 없이' 온전한 사랑을 받았는데,

  사소한 불편이 생겼다고 해서

  주님 사랑의 '남겨놓은' 부족함이 새로 생기는 건 아니야. 

  그 어마어마한 사랑 외에 뭘 더 바란다는 말이냐

  내가 영적으로 젖먹이인 것도 아니고.'

 

 나는 금세 회개했다. ㅎㅎㅎ

 

 "예, 주님, 사랑합니다.

  큰 것이 작은 것에 가려질 수는 없는 법이니,

  큰 사랑을 작은 불편이 가려서는 안 되지요.

  당신의 무한한 사랑에 비하면

  세상의 어떤 고통도 먼지만큼 작을 겁니다.

  이미 제게 주신 사랑과 돌봄을 기억하면서 

  앞으로 어떤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여전히 설레는 맘으로 주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주님이 저를 만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치셨는데,

  저도 주님을 사랑하는 데 지치지 않겠습니다.

 

  이제 알겠습니다.

  주님께서 주시고 싶어하시는 '더 좋은 것'은

  '영원한 생명', '영원한 사랑'이지요?

  저는 이미 받아 누리고 있구요.

 

  그런데요. 주님!

  당신의 사랑을 알면서도

  저는 당신이 그립기만 합니다.

  뵙고 싶습니다.

  다시, 또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