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별난 신앙체험

기도의 응답

김레지나 2015. 7. 12. 20:04

별난 신앙 체험

 

기도의 응답 ②

 

  두 집안의 아내들 사이에 잦은 왕래가 시작되었습니다. 병이 발병한 순서로 따져서는 데레사의 남편인 제가 1년 이상 대선배이기 때문에, 후배인 아타나시아는 데레사에게서 혹시 투병중의 여러 유익한 경험들을 얻어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타나시아 내외분이 발병 선배인 저를 만나기 위해 기어이 제 집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낯선 사람 만나는 것을 몹시 어려워하는 나는, 모처럼 옷을 갈아입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피치 못할 사정 때문인지 그 약속은 아타나시아 쪽에 의해 지켜지지 않았고, 그 후로도 안식구들 사이에만 이런저런 소식과 왕래가 교환되었을 뿐, 정작 당사자인 남편들, 두 집안의 환자들은 영영 만날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교촌면에는 환자들이 산책하기에 딱 알맞은 옥녀봉이라는 야트막한 야산이 하나 있습니다. 발병 후 나는 서울 화곡동에서 공기가 좋아 뵈는 고촌의 어느 아파트로 이사를 왔고, 시간만 있으면 일주일에 서너 번씩 가까운 옥녀봉으로 한 시간 남짓한 산책을 가곤 했습니다. 테니스장이 있는 공원길로 올라가서 고촌중학교 뒤로 뚫린 숲길을 따라가다가 곧장 옥녀봉으로 항하는 동쪽 산기슭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 능선을 보통 걸음으로 왕복하면 대충 한 시간 남짓이 걸리는 코스여서, 우리 같은 환자나 노인들에게는 여간 고마운 산책로가 아닙니다.

 

제 기억이 확실하다면 5월 초순경의 어느 화창한 봄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날도 저는 감편한 하이킹복 차림으로 옥녀봉 정상을 거쳐 능선을 따라 내려온 후, 산책로 동쪽 끝의 시멘트 농로가 내려다보이는 산자락 끝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작은 묘지 앞을 지나 산자락을 막 타고 내려가는 순간입니다. 눈앞 평지에 외롭게 서 있는 한 남자가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흰 벙거지를 깊이 눌러쓰고 지팡이를 짚은 여윈 몸매의 그 사람은, 해바라기를 하는지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한가한 시골 농로에 우두커니 서서 동쪽 들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산기슭을 다 내려와 농로에 이른 나는 이제 피할 수 없이 그 남자와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그 남자는 얼굴이 수척하고 창백하여 누가 보더라도 투병 중인 중증 환자임이 분명했습니다. 더구나 흰 벙거지를 머리 위로 깊숙이 눌러쓰고 있어서, 나는 내 경험에 비추어 이 중년 남자 역시 암 투병 중에 있구나 하고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 머리털이 빠지기 때문에 그 모습을 감추기 위해 흔히 암환자들은 벙거지나 헌팅캡 같은 모자를 머리 깊숙이 눌러 쓰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잘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일이 거의 없던 제가, 그날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그 환자에게 먼저 말을 건네게 되었습니다.

“산책 나오신 모양이군요, 혹시 암투병 중이 아니십니까?”

낯모르는 사람에게 처음 던진 질문치고는 내 질문은 너무 당돌했고 조금은 예의를 벗어난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상대편 남자는 별로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암 투병 중입니다. 헌데 제가 암 투병 중인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저도 암 투병 중이거든요. 위암으로 진단이 나서 위를 통째 들어내는 대수술을 받았고, 항암 치료를 끝낸 지도 벌써 2년이 넘는 것 같습니다.”

“위암이라고 하셨습니까? 저도 실은 같은 위암인데...”

“증상이 어느 정돕니까? 초기입니까, 아니면...?”

“3기말입니다. 저도 위를 통째로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위암의 병증까지 서로 비슷해서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위로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심히 딴 생각을 하던 저는 머리에 갑자기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다시 실례를 무릅쓰고 그 남자를 향해 당돌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혹시 발병 전의 직업이 어느 항공 회사 여객기 조종사가 아니셨습니까?”

“맞습니다. 조종사였습니다.”

그런데 대답과 함께 저를 마주보던 그 사람은 불현 듯 낯빛이 밝아지며 저에게 급하게 되물었습니다.

“아, 그렇다면 선생님은 소설을 쓰신다던 데레사 자매분의 바깥양반 되시는 분 아닙니까?”

“맞습니다. 데레사 남편입니다. 아내가 자주 얘기를 해서 언젠가 한번 만나 뵙고 싶었는데 오늘 이렇게 우연찮게도 여기서 만나 뵙게 되는군요.”

반갑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지만 들길에서 우연히 만난 우리 두 위암 환자들은, 간단한 인사말과 더불어 어색하게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병에 관해 서로 위로의 말 외에는, 우리는 직업도 다르고 오늘이 또 첫 대면의 어려운 자리여서 더 이상 주고받을 말들이 말들이 없어 잠시 머뭇거릴 뿐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만 헤어질 생각으로 제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혼자 산책을 나오실 정도라면 그동안 병세가 많이 호전된 것 아니십니까?

“아닙니다. 혼자 나온 게 아니라 아내랑 같이 나왔습니다. 돌미나리를 뜯는다며 아내는 저쪽 들녘에 있습니다.”

남자는 말을 끝내고 논을 사이에 둔 저쪽 들녘으로 아내를 부르기 위해 손을 흔들며 목소리를 높여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쇠약해진 몸으로 큰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었는지 사내는 손만 흔들 뿐 난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아내 쪽에서 이쪽의 수상한 낌새를 발견하고 한 손에 무언가를 든 채 빠른 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저의 집을 방문해서 아타나시아와 저는 구면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보자마자 반색을 했습니다.

“어머나, 선생님이시군요. 데레사 자매님은 동행하지 않으셨나요?”

“예, 요즘은 무릎이 아프다고 해서 집사람은 떼어놓고 저 혼자 나오곤 합니다.”

“당사자 두 분이 먼저 말씀들을 나누셔서 제가 새삼스레 소개드릴 필요는 없겠죠?”

“예, 그렇게 됐습니다. 이렇게 우연히 만나 뵌 것도 별로 나쁘지 않군요.”

 

웃음과 함께 우리는 다시 오던 길을 되짚어 옥녀봉 능선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즈음의 저는 건강이 조금 좋아져서 걸음도 빨라졌을 뿐 아니라 숨도 별로 가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안드레아 형제는 그동안 병세가 악화되었는지 산오르기가 몹시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느린 걸음으로 두 분과 보조를 맞추자, 아타나시아 내외분도 재빨리 그 눈치를 채시고는 마치 제 등이라도 떠밀 듯 이렇게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먼저 올라가세요. 저희는 쉬엄쉬엄 올라가겠어요.”

 

결국 이것이 안드레아 형제분과 저와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만남과 헤어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좀 엉뚱한 고백이긴 합니다만, 저는 지금도 돌아가신 안드레아님의 성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만큼 같은 종류의 중증 암환자로 서로에게 관심과 안쓰러움은 느끼고 있었으나, 개인적인 사생활에 관해서는 서로 알려고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2008. 2. 참 소중한 당신)

 

기도의 응답 ⓷

 

다시 여러 달이 지났습니다. 어느날 성덩을 다녀온 데레사가 우울한 얼굴로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안드레아 형제의 암 투병이 점점 어여워지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통증도 심해지고 암이 재발한 것 같기도 한데, 어느 부위에 얼마만큼 재발되었는지 알 수 없어 병원에 다시 입원하여 정밀 진단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단 결과가 궁금하던 차에 기어이 최악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암이 척추 부위의 임파구로 전이되었는데, 지금껏 의사들이 통증의 원인을 찾지 못하다가 암이 크게 자란 지금에야 그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암환자에게 치명적인 것은 암의 발견과 다른 장기로의 전이도 문제지만, 그 재발과 전이를 뒤늦게 발견하여 치료할 시기를 놓쳐 버리는 것입니다.

 

그 후 아내의 입을 통해 가끔 들려오는 안드레아 님의 투병 생활이 내게는 점점 불길하고 암담하게만 들려왔습니다. 급기야 그분은 치료 효과가 미미한 고통스러운 화학 항암 치료를 포기하고, 섭생과 요양을 중심으로 한 자가 치료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유일한 희망이던 병원의 약물치료를 포기하고 온몸을 병마에 맡긴 채, 몸이 스스로 병마와 싸워 이겨주기를 기다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환자로서는 대단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중대한 선택입니다. 아마도 안드레아 님이 이런 결심을 하게 된 데는, 그 선택을 결행할 만한 독실한 신앙심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동안 안드레아 님은 ‘자기원’이란 곳을 찾아 그곳에서 어느 정도 통증은 억제할 수 있었지만, 다른 소화 기관에 암이 재발하여 음식을 전혀 들지 못하고 링거에 의존하여 투병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음식을 들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저는 더 이상 안드레아 님에게 희망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하늘이 원망스럽고, 누군가에게 부글부글 원망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렇게 온갖 병마로 고통스러워할 바에야 창조주는 무슨 취미로 인간을 창조했는가,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인간을 내려다보는 것이 혹시 조물주의 취미라도 되는 것은 아닌가.

 

사실 사람은 나이 60세가 지난 이후로는 몸이 노쇠하고 회복 능력이 뒤쳐지는 탓으로 하루도 쉼 없이 어딘가가 아프거나 고장이 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느 날은 허리가, 어느 날은 눈병이, 어느 날은 치통이, 어느 날은 치질이, 어느 날은 무릎이, 어느 날은 복통이.... 저는 이러한 노쇠 현상에 화가 나서 제 소설 어딘가에 이런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몸은 고통을 가득 실은 수레와 같은 존재다.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은 고통 받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인간의 태어난 자체가 고통의 시작인 줄 알고 계셨다면 조물주는 애초에 인간을 창조하지 말았어야 옳다. 그 고통을 알고도 인간을 창조했다면, 고통에 대한 모든 책임은 창조주 하느님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매우 오만하고 즉물적이며 사려 깊지 못한 앙탈인 줄 잘 압니다. 그러나 고통이, 그것도 참을 수 없는 격통이 단 1분도 쉬지 않고 24시간 지속적으로 우리들을 공격해 온다면, 사람이면 누구라도 이런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는 못 견딜것입니다. 곁에서 이 고통을 지켜봐야 하는 인간적인 연민과, 우리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창조주 하느님의 온당한 해답이 없다면, 신을 믿지 않는 저 같은 소설가로는 당연히 내뱉을 수 있는 저항이며 항변일 것입니다.

 

추운 겨울날로 기억됩니다. 드디어 그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기다렸다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마치 예상한 소식을 사후 추인하는 기분으로, 저는 그 통보를 집에서 들었습니다. 암이라는 무서운 병마와 정면으로 당당히 맞서 싸우시던 안드레아 님이 드디어 지루한 도로의 싸움을 포기하고, 스스로 삶의 의지를 접고 고통 없는 평화와 안식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데레사를 통해 안드레아의 부음을 처음 듣는 순간, 저는 아무런 느낌도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제 주위에서는 여러 친지와 친구들이 바로 이 암이라는 질병으로 무수히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암 발병이 시기적으로 저보다 훨씬 늦은데도 불구하고, 병증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악화되어 저를 훨씬 앞질러서 먼저 간 친구들도 있습니다. 일단 암으로 진단되면, 누가 먼저고 누가 뒤랄 것도 없이 불시에 죽음으로 불려 가는 것이 암의 특징이 아닌가 싶습니다. 암이라는 질병의 공포와 난해성이 바로 이 불가해성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2008. 03. 참 소중한 당신)

 

기도의 응답 ④

 

이제 드디어 제가 꾼 신기한 꿈 이야기를 토로할 차례입니다. 안드레아 님의 부음을 들은 지 아마 이틀이나 사흘쯤이 지난 어느 날 새벽녘일 것입니다. 잠에서 막 깨어난 나는 새벽 잠자리에 그대로 누운 채 여명이 터오는 머리 위 창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방금 꾼 새벽꿈 한자락이 너무나 뜻밖이며 신기하고 오묘해서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동안 멍한 상태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휴식은 충격 때문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심상치 않은 꿈이어서 충격과 놀라움도 물론 컷겠지만, 한편으로는 절대자인 막강한 누군가로부터 뜻밖의 축복이나 은혜를 입은 듯한 묘한 행복감이 온몸에 충만했기 떄문입니다. 다는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저는 꿈을 꾸면 가끔 흑백으로 꿀 때도 있지만 대부분 천연색으로 꿉니다. 그날 새벽에 꾼 꿈 역시 천연색의 신비하고도 거룩하ㅕ 아름다운 꿈이었습니다. 꿈을 꾸고 안 후 저는 한동안 마음이 훈훈해서, 잠자리에 누운 채 이런저런 생각과 행복감에 잠겨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날 저는 며칠 전 부음을 들은 안드레아 님의 행복한 사후 행적을 꿈속에서 매우 흐뭇하게 즐거운 기분으로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그언데 뒤이어 제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은 어째서 이런 꿈이 하필이면 저한테 찾아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꿈 내용이 나쁘거나 불길하기라도 했더라면, 저는 또 그 불길함을 저 홀로 해소하고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불편과 어려움을 겪어야 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 꿈은 행복하다는 표현외에는 덧붙일 말이 없었습니다. 오직 축복과 따스한 행복만이 꿈속 온 누리에 가득했을 뿐입니다.

 

꿈의 주인공은 며칠 전 유명을 달리하신 아타나시아의 남편 되시는 안드레아 님이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분의 얼굴만 잠깐 비친 것이 아니라, 그분의 돌아가신 후의 짧은 행적에 관한 동영상의 일부분이었습니다. 거듭 밝혀드립니다만, 저는 가톨릭 신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나이 70세가 되는 지금까지 성탄절 같은 날 구경삼아 개신교 예배당이나 성당을 남의 잔치 구경하듯 참관한 일은 있지만, 그곳에서 예배를 보거나 각종 의식에 참여하여 함께 기도를 드리거나 찬송가 따위를 읊조린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천주교에서 말하는 천당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하늘나라에는 천사도 많고 지옥에는 악마도 많다고 들었는데 그들이 어떻게 생겼으며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전혀 모릅니다. 자세히는 모른다고 했으니 조금은 알고 있다는 뜻으로도 들릴 텐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적 요소가 가미된 여러종류의 문학 작품과, 유럽 여행 중 우연히 들른 바티칸, 노트르담, 쾰른, 요크 등의 대성당에서 벽화나 천장화를 통해 그들의 모습들을 얼핏얼핏 건성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저는 그날 꿈속에서 신비하고 평화로우며 참으로 거룩한 가톨릭 특유의 천상 세계를 만났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실제로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하늘 높은 곳에 앉아 계신 가브리엘 대천사의 자애로운 존재도 의식했으며, 온 누리에 가득 퍼져 울리는 은은하고 감미로운 하늘나라의 주악을 듣기도 했습니다. 약간 분홍색이 가미된 투명한 우윳빛 하늘과 땅 사이의 신비하고 거룩한 공간도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놀랍고 신기한 일은 그 광활한 무한 적막의 공간 속으로 한 남자가 흰옷을 입은 채, 꼿꼿이 직립한 자세로 마치 한 조각 가벼운 깃털처럼 두둥실 하늘 높이 떠올라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무도 일러주는 사람이 없었건만 저는 그 남자가 며칠 전에 유명을 달리한 안드레아 님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예전에 잠시 농로에서 보았을 때처럼 여전히 수척한 몸에 피부색이 창백한 병자의 행색이었습니다. 그러나 표정만은 여전히 맑고 고요하고 편안해서, 병자라기보다는 지상의 모든 탐욕과 미련 따위를 털어버린 탈속한 도인과 같은 지고지순한 모습이었습니다. 먼 지상에서 올려다보는 나를 그는 높은 천상의 공간에서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내 주위에도 안드레아 님의 승천하는 모습을 나만이 증인이 되어 가만히 지켜보며 전송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옛 로마 시대의 원로원들이 입었던 것 같은, 흰 자루처럼 통으로 된 옷을 입은 안드레아 님은 천사들의 부축도 없이, 아무런 손짓이나 날갯짓이나 몸짓도 없이 여전히 아주 느리게 편안히 선 자세로 주악이 울리고 가브리엘 대천사가 기다리는 저 높은 하늘나라로 천천히 승천하고 있었습니다.

 

(2008. 04. 참 소중한 당신)

 

기도의 응답 ⑤

 

그런데 안드레아가 하늘 중간쯤에 이르렀을 무렵입니다. 제 눈에 문득 지금껏 보지 못한 이상한 물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래로 편안히 늘어뜨린 안드레아의 오른손 끝에 무언가 검은 물체들이 가늘고 길게 매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에 저는 이 물체가 실이나 거미줄 같은, 지상에서 딸려 올라간 이물질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 물체는 한 자 정도의 길이를 지닌 끊어진 여러 개의 길고 가는 쇠막대 비슷한 것들이었습니다. 거리가 너무 멀어 실처럼 가늘게 보였을 뿐이지만, 사실은 여러 개의 가늘고 긴 물체들이 끝과 끝을 맞문 채 아래로 늘어뜨린 안드레아의 오른손 끝에 기다랗게 지상 가까이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흡사 강력한 자력을 지닌 지남철이 땅에 있는, 가는 쇠붙이들을 자신의 자력을 이용하여 하늘로 길게 끌어 올리는 듯한 형국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아무런 설명이 없었지만, 이 기이한 검은 쇠막대 형태의 물건들은 이내 내 머릿속에 암시적으로 그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지상에서 누군가가 저지른 온갖 형태의 죄악과 질병, 재앙, 고통 등의 무수한 죄과물들이었습니다. 헌데 천국으로 승천 중인 안드레아님은 자기 혼자만 천상으로 승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온갖 궂은 죄과와 재앙, 온갖 질병들을 모두 거두어 천국으로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거두어 올라간 지상의 죄과와 재앙, 온갖 질병들은 천국 어느 한곳에 모아져서 하느님의 은총과 사함을 받고 모두 그 죄과가 소멸한다는 것입니다.

 

쇠막대처럼 생긴 그 물체는 이제 안드레아님의 손끝에서 지상으로 한없이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래쪽의 어떤 쇠막대는 방향과 힘을 잃고 지상으로 다시 추락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제게도 뒤늦게 다급한 소망이 떠올랐습니다. 암 투병중인 나 역시 암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불현듯 제 죄과와 질병도 안드레아 님에게 위탁하고 싶어진 것입니다. 지상에 남겨진 가까운 사람들의 죄과와 재앙을 안드레아 님이 지금 모두 거두어 가서 소멸시키는 것이라면, 제 몸의 질병도 그분에게 부탁하여 소멸시켜 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심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지상에 있는 제 몸에서 가늘고 긴 쇠막대 비슷한 것이 빠져나와 길게 늘어진 다른 쇠막대들의 맨 끝으로 천천히 딸려 올라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감격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으며, 한편으로는 여간 다행스럽지 않았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저 같은 사람의 재앙과 질병까지 거두어 갈 정도라면, 그분은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죄과와 재앙들을 거두어 가시는 중이라고 말입니다. 이제 저는 긴 행렬의 끝에 간신히 매달려 올라가는 저의 쇠막대에만 온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것은 당장이라도 자력의 힘이 약해져서 아래로 가볍게 떨어져 내릴 것도 같고, 힘들기는 하지만 어찌어찌하여 안드레아 님이 끝까지 거두어 주실 것 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저는 아직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즈음에는 이미 안드레아 님이 천상의 너무 높은 곳까지 올라가 계셨고, 줄줄이 이어진 쇠막대의 길이가 지상에까지 너무 길게 늘어져 있었으며, 무엇보다 제가 바로 그때 잠에서 막 깨어났기 때문입니다.

 

이상으로 저는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을 가진 어떤 독실한 가톨릭 신자분이 사후에 제 꿈속에서 어떤 모습과 어떤 행동으로 나타났는가를 대충 밝힌 셈입니다. 한 가지 덧 붙일 일은 가브리엘 대천사와 제 꿈과의 우연하지 않은 일치입니다. 저는 가브리엘 대천사를 영국의 대문호인 존 밀턴의 ‘실락원’에서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하도 오래전에 읽은 어려운 작품이라 내용은 전혀 기억에 없지만, 제 머릿속에 입력된 가브리엘 대천사의 모습은 흡사 불교에서 숭상하는 관세음보살과 비슷한 분으로 비쳤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유족들에게서 확인한 일은, 고인이 되신 안드레아 님은 물론이고 그분의 유족들인 아타나시아와 두 자녀분들도 안드레아 님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지극 정성으로 가브리엘 대천사의 기도문을 낭송했다는 것입니다. 그 많은 천사장들 중에서도 유독 가브리엘 대천사가 제 꿈속에 나타난 것은 이렇게 되면,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닌 유족들의 지극한 기도에 대한 대천사 가브리엘의 응답이 아니었던가 생각됩니다.

 

이것으로 하찮은 제 꿈 이야기를 접도록 하겠습니다. 또 한번 이 자리를 빌려 안드레아 님의 하늘나라 승천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2008. 05. 참 소중한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