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5년

<온유>와 <지식>

김레지나 2015. 5. 24. 20:47

오늘 미사에서 성령칠은 카드를 뽑았다.

내가 뽑은 은사는 (지식)이고, 열매는 (온유)이다.

 

처음으로 카드 뽑기 전에 처음으로 원하는 것을 잠깐 청했었는데,

그대로 되었다.

'드디어 <온유>가 뽑혔구나. 바라던 대로 <지식>을 더욱 풍성히 주시겠구나.'

음하하하.. 아이, 좋아라.

 

‘지식’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게 해준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믿어야 할 것과 믿어서는 안 될 것을 분별하는 은혜이다.

이 은사를 통하면 영혼이 처한 상태나 믿어야 할 것과 믿지 말아야 할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알게 해준다.

물질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지 말고 모든 사건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보려고 노력하면 이 은사가 활발해진다 

 

.온 유 를 통해서 인류의 구원이 왔다. 온유는 순명이다. 우선, 성모 마리아가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으로 초대받았다. 요셉과 약혼한 상태였던 마리아는 남자를 모르는 여자였는데, 하루는 천사가 느닷없이 나타나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요즘 표현으로 자신은 ‘미혼모’로, 아이는 ‘사생아’로 몰릴 것이 뻔한데도, 마리아는 온유의 답변을 하였다.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루카 1,38 참조)
이 순명의 고백으로 인류의 구원이 시작되었다.


예수님 역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셨다. 사실 예수님도 육신을 입은 몸이었기에 박해가 고통스럽고 죽음이 두려웠을 터. 그래서 피땀을 흘리시며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마태 26,39)라고 절규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온유의 기도를 바치셨다.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 

온유는 바로 순명을 뜻한다. 순명은 하느님의 지혜가 자신의 지혜보다 높다는 것을 알기에 기꺼이 그분 명령에 따르는 것을 말한다. 이때 온유는 부드러움을 통해서 강함을 드러낸다. 가장 온유한 사람이 가장 힘 있는 사람이다. 온유한 사람이 가장 위대한 일을 한다. 
또한 평화를 얻으려면 온유해야 한다. 예수님은 평화를 얻는 비결로 온유를 제시하셨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8-29).
우리는 대부분 분주하고 힘들고 평화롭지 못한 삶을 산다. 고생하고 수고하며 산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에게 “너희가 내 멍에를 메고 내 온유를 배우면 평안해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명처방이다. 고생과 짐 대신에 ‘멍에’를 메라고 하셨다. 여기에 비밀이 있다. ‘고생’과 ‘무거운 짐’, 여기에 대비가 되는 것이 ‘멍에’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온유와 겸손’이다. 그러니까 ‘고생’과 ‘무거운 짐’은 온유하지 않은 사람 곧 ‘내 뜻’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에게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반면에, ‘멍에’는 스스로 지지 못한다. 누군가가 지워준다. 그렇기 때문에 ‘멍에’는 상징적인 표현으로서 ‘아버지 뜻’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멍에를 지는 것은 바로 ‘온유’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난리법석을 떨고 내팽개친다. 온유가 바로 열쇠인 것이다. 




 

성령칠은 (이사야 1~3)에 관한 해석

 

슬기(지혜)

하느님의 사랑을 세속의 사랑보다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지혜

하느님을 공경하고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여러가지 조건들에 관심을 갖게 하는 은혜 

 

통달(깨달음)

구원의 진리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은혜

교리의 어려운 점들을 알아들을 수 있고 믿음의 이치를 잘 판단해그대로 따를 수 있는 힘

 

의견(일깨움)

선과악을 분별하고 구원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능력

의견을 통해 구원문제에 대해 어떤 방법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지 분별할 수 있다

 

지식(앎)

교리와 성사의 뜻을 잘 알아듣게 하는 은혜

지식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믿어야 할 것과 믿지 말아야할 것을 분별할 수 있다

 

용기(굳셈)

신앙생활에 장애가 되는 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은혜

우리가 가진 신앙의 힘으로 죄악과 악마와 용감히 싸우고 나아가 순교로써 신앙을 증거할 수 있는 것도 용기 때문이다

 

효경(공경)

하느님께 대한 자녀로서의 사랑을 증진 시키는 은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참 아버지로 모시고 아버지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은혜

 

경외 (두려워하는 마음)

우리의 잘못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을 상할까 염려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은혜

 

 

아홉가지 열매 (갈라 5,22~23)에 관한 해석

 

사 랑 :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아가페적인 사랑
            즉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스스로 바치는 사랑입니다

기 쁨 : 기뻐해야 할 일이 없어도 흘러 나오는 샘솟는 기쁨으로
            하느님의 사랑, 구원의 현존을 체험하면서 느끼는 기쁨입니다

평 화 : 세상 풍파 속에서도 유지되는 평화로써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릅니다

 

인 내 : 비록 일이 지연되는 경우라도 실망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때를 기다리는 힘입니다

친 절 : 이웃의 어려움을 알고 따뜻하고 우호적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선 행 : 주님께서 주신 재산, 시간, 재능을 관대하게
            다른 이를 위하여 사용합니다

 

진 실 : 거짓이 없이 신뢰할 수 있고 착수한 일을
            끝까지 완수하는 충실성을 의미합니다

온 유 : 자제된 힘, 약자에 대해서도 부드럽게 대할 수 있는 힘입니다

절 제 : 육정을 눌러 주님의 주권 하에 복종시키는 힘과 권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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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공동체 성화 위해 베푸는 7가지 은혜
견진성사 통해 개별로 받게 되는 칠은
지성·의지와 관계된 다양한 은사 존재
성령 은총, 풍요로운 신앙생활에 도움
발행일 : 2015-05-24 [제2945호, 4면]

 ▲ 성령이 제자들에게 내려온 성령 강림을 계기로 사도들은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다. 그림은 베첼리오 티치아노의 ‘성령 강림’. 1570년 경 작품. 유화. 베네치아 구원의 성모성당.
성령 강림 대축일이 되면 많은 본당에서 성령 칠은을 뽑으며 저마다 뽑은 은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단순한 뽑기로 각 사람에게 내리는 은사가 갈리는 것은 아니다. 사도들이 성령의 은총을 풍성하게 받고 세상에 파견된 것처럼 성령의 은사를 기억하고 특별히 자신이 뽑은 성령의 은사를 삶에 반영해 신앙생활을 풍요롭게 하고자 마련된 행사다. 내가 뽑은 성령의 은사는 어떤 뜻일까. 성령칠은의 의미를 알아본다.



성령칠은은 개인과 공동체의 성화를 위해 성령이 베푸는 7가지 은혜다.

성령의 은사는 이사야서(11, 2~3)에서 유래한다.

성령의 은사를 처음부터 일정한 숫자로 국한한 것은 아니다. 후에 라틴 교부들이 성령의 은사를 요한묵시록의 일곱 천사나, 오병이어의 기적, 진복팔단 등과 연관시키며 7가지 은사로 해석한 것이다.

사도 바오로 역시 성령의 은사를 언급했는데(1고린 12,7~10), 성령의 은사 중에서도 공동 이익을 위한 특별한 은총인 ‘카리스마’를 강조했다. 그러나 초대 교부들은 성령의 은사와 사도 바오로가 말한 카리스마를 구별하지 않고 모두 성령의 은사로 여겼다.

성령칠은은 특별히 견진성사를 통해 받게 된다. 성령칠은의 종류는 인간 지성과 관련 있는 ▲슬기(지혜) ▲통달(깨달음, 이해) ▲의견 ▲지식, 그리고 인간 의지와 관계 깊은 ▲용기(굳셈) ▲효경 ▲경외심(두려워함)이다.

‘슬기’는 하느님과 하느님에 관한 것을 올바로 판단하고 실천하도록 돕는 은사다. 일상의 모든 것을 하느님의 관점에서 판단하게 해준다. 이 은사를 북돋우려면 개인의 이익이나 욕구로 사물을 보지 말고 신앙 가르침과 하느님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통달’은 진리를 깊이 통찰해 잘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성경의 의미나 교리를 깨닫도록 해주고 상징과 표지 안에 감추어진 영적 실재를 보게 해준다. 이 은사가 잘 활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성령강림 때 사도들이 마리아와 기도했듯이 마리아와 함께 기도해야 한다.

‘의견’은 하느님을 믿는 이들이 마땅히 해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올바로 판단하게 한다. 인간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나 예상치 못한 위급상황을 풀어내도록 도와준다. 이 은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깊은 겸손으로 자신의 나약함과 무지를 인식하고 성령의 인도를 청해야 한다.

‘지식’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게 해준다. 이 은사를 통하면 영혼이 처한 상태나 믿어야 할 것과 믿지 말아야 할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알게 해준다. 물질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지 말고 모든 사건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보려고 노력하면 이 은사가 활발해진다.

‘용기’는 신앙생활 중에 찾아오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덕을 실천하게 해주는 힘이다. 이 은사는 하느님을 열렬히 섬기게 하고 유혹과 장애를 이겨내도록 돕는다.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며 욕심을 버리는 것이 이 은사를 활성화하는 길이다.

‘효경’은 자녀로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자녀인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해주는 은사다. 이웃을 용서하고 진실히 사랑하게 해준다. 이 은사는 모든 이를 하느님의 자녀로 의식하면서 대하고 하느님의 작품인 세상 만물을 존중하도록 힘써 불러일으킬 수 있다.

‘경외심’은 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두려움이다. 이 은사는 죄를 피하게 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으로 이르는 희망을 품게 한다. 이 은사는 영혼의 구원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노력하면 북돋을 수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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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칠은


지혜 안에 있는 정신은 명석하고 거룩하며 유일하고 다양하고 섬세하며 민첩하고 명료하고 청절하며 분명하고 손상될 수 없으며
선을 사랑하고 예리하며 자유롭고 자비롭고 인자하며 항구하고 확고하고 평온하며 전능하고 모든 것을 살핀다.
또 명석하고 깨끗하며 아주 섬세한 정신들을 모두 통찰한다.

지혜는 어떠한 움직임보다 재빠르고 그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한다.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어서 어떠한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지혜 7,22-27)
‘성령칠은’
1.지혜(슬기, 구원에 필요한 일에 끌리어 맛들이게 하는 은혜)
2.통달(깨달음, 지력이 미치는 데까지 믿음의 오묘한 이치를 깨닫게 하는 은혜)
3.의견(마땅히 행해야 할 선과 피해야 할 악을 분별하는 은혜)
4.굳셈(육신, 세속, 마귀와 싸우면서 순교까지 할 수 있는 은혜)
5.지식(영생을 얻기 위해서 믿어야 할 것과 믿어서는 안 될 것을 분별하는 은혜)
6.효경(하느님을 참 아버지로 알아 사랑하게 하는 은혜)
7.두려움(하느님의 전능하심 앞에 경외감을 갖고 죄를 범하여 하느님의 뜻을 거스를까 두려워하게 하는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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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

성령의 열매 9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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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얻으려면 온유해야 한다

 

■ 히말라야 삼목의 생존지혜

캐나다의 퀘벡에는 긴 산맥이 있다. 이 산맥은 동쪽과 서쪽의 모습이 판이하게 다르다. 서쪽에는 여러 나무들이 울창한 반면 동쪽에는 오직 히말라야 삼목만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 기이한 경관은 사람들에게 줄곧 수수께끼였다.

이 태고의 수수께끼는 한 부부에 의해서 풀렸다. 1983년의 어느 겨울날, 결혼 생활이 위태로워진 부부는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여행을 하기로 했다. 만약 여행을 통해 변화가 없으면 과감히 헤어지기로 약속했다.

두 사람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큰 눈이 내렸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아내가 놀란 듯 목소리를 높여 남편에게 말했다.

“이제 알겠어요. 왜 동쪽에는 히말라야 삼목 외에는 살 수 없었는지.”

“동쪽의 히말라야 삼목은 적당히 휘어지기 때문이에요. 동쪽은 눈이 많이 오고 바람이 거세게 불어, 휘어질 줄 모르는 나무는 결국 부러지거나 꺾여서 죽고 말았던 거예요. 서쪽은 당연히 눈이 적고 바람이 많이 불지 않으니 다른 종류의 나무들이 살 수 있었던 거고요.”
이 말과 동시에 두 사람은 무언가 깨달은 것처럼 서로를 바라보다 뜨겁게 포옹했다. 남편이 말했다.

“그동안 내가 잘못했소. 나는 내 고집만 부릴 줄 알았지, 당신 생각을 받아들이고 양보할 줄을 몰랐소. 내가 휘어질 줄 몰랐기 때문에 서로 힘든 시기를 보냈던 거요.”

아내도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니에요. 나 역시 나만 알아달라고 했던 걸요. 우리 이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휘어질 줄 아는 부부가 되기로 해요. 그럼 적어도 서로의 고집만 피우다 부러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히말라야 삼목은 휘어질 대로 휘어져서 하중을 견뎌 생존하였다. 이 삼목처럼 휘어져서 기운을 흐르게 하는 사람이 최후의 생존자가 된다. 이들은 비굴한 게 아니라 부드러운 사람이다. 온유한 사람이다. 이들이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이다.


■ 우리를 구원한 온유

온유를 통해서 인류의 구원이 왔다. 온유는 순명이다. 우선, 성모 마리아가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으로 초대받았다. 요셉과 약혼한 상태였던 마리아는 남자를 모르는 여자였는데, 하루는 천사가 느닷없이 나타나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요즘 표현으로 자신은 ‘미혼모’로, 아이는 ‘사생아’로 몰릴 것이 뻔한데도, 마리아는 온유의 답변을 하였다.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루카 1,38 참조)

이 순명의 고백으로 인류의 구원이 시작되었다.

예수님 역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셨다. 사실 예수님도 육신을 입은 몸이었기에 박해가 고통스럽고 죽음이 두려웠을 터. 그래서 피땀을 흘리시며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마태 26,39)라고 절규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온유의 기도를 바치셨다.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

이로 인해 결국 구원이 완성되었다. 이 기도를 통해 인류의 구원이 온 것이다.


■ 온유의 영성

‘온유의 영성’의 핵심은 무엇인가.

온유는 바로 순명을 뜻한다. 순명은 하느님의 지혜가 자신의 지혜보다 높다는 것을 알기에 기꺼이 그분 명령에 따르는 것을 말한다. 이때 온유는 부드러움을 통해서 강함을 드러낸다. 가장 온유한 사람이 가장 힘 있는 사람이다. 온유한 사람이 가장 위대한 일을 한다.

이는 현대적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인이 갈구하는 카리스마와 리더십의 비밀이 바로 온유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한 똑똑 하는’ 사람과 ‘한 성격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이들은 잘해 봤자 자신의 역량만을 발휘할 뿐이다. 하지만 온유한 사람은 자신을 통해서 무한지혜와 무한능력이 흐르기 때문에 무한대로 간다. 이를 깨달아야 한다.

나 자신을 성찰하건대 내 뜻은 생각이 짧고 또 나는 능력도 시원찮다. 그런데 온유를 통하여 내 안에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엄청난 지혜와 능력도 흐르게 된다. 신비 그 자체다.

또한 평화를 얻으려면 온유해야 한다. 예수님은 평화를 얻는 비결로 온유를 제시하셨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8-29).

우리는 대부분 분주하고 힘들고 평화롭지 못한 삶을 산다. 고생하고 수고하며 산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에게 “너희가 내 멍에를 메고 내 온유를 배우면 평안해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명처방이다. 고생과 짐 대신에 ‘멍에’를 메라고 하셨다. 여기에 비밀이 있다. ‘고생’과 ‘무거운 짐’, 여기에 대비가 되는 것이 ‘멍에’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온유와 겸손’이다. 그러니까 ‘고생’과 ‘무거운 짐’은 온유하지 않은 사람 곧 ‘내 뜻’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에게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반면에, ‘멍에’는 스스로 지지 못한다. 누군가가 지워준다. 그렇기 때문에 ‘멍에’는 상징적인 표현으로서 ‘아버지 뜻’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멍에를 지는 것은 바로 ‘온유’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난리법석을 떨고 내팽개친다. 온유가 바로 열쇠인 것이다.

사람들이 평안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내 뜻대로 살기 때문이다. 사업을 한다고 치자. ‘내 뜻’에 집착하는 사람은 스케줄이 안 맞고 계획대로 일이 안 되면 잠도 안 오고 성질도 내기 다반사다. 이는 자기 뜻만 고집하는 사람들이 겪는 현상이다. 하지만 그럴 때 ‘내 뜻’ 대신에 ‘멍에’ 곧 ‘아버지의 뜻’을 지고 살면 삶의 차원이 확 달라진다.

내가 내 뜻만을 내세우며 스스로 짐을 지고 살아가자면 아등바등 너무 힘들다. 마음가짐이 안절부절 못하고 조바심이 나고 잠이 안 온다. 결과에 대해서 불안한 것이다. “잘 되어야 되는데, 잘 되어야 되는데” 하고 말이다.

한편 아버지가 지워주는 멍에를 메고 살면 마음이 편하다. 말아 잡숴도 좋고 삶아 잡숴도 좋고 망해도 좋고 흥해도 좋고…. 아버지가 지워주신 것이니까 아버지가 결과를 책임지지 않겠는가.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있으니까 망해도 좋은 일이 일어나는 거고 흥해도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안정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어깨에 올라가 있는 것이 짐이 아니라 멍에로 전환되는 순간 위대한 반전이 일어난다. 짐은 사라지고 순식간에 평화가 임하는 것.

이를 진즉부터 묵상해왔던 나는 ‘온유기도’를 잘 바친다. 잠이 안 오고, 걱정이 태산일 때, 나는 이렇게 온유의 기도를 바친다. “에이 난 몰라요! 저 그냥 잘래요. 주님이 다 알아서 하세요!” 그러면 마음이 그렇게 편해질 수가 없다.
 
*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4년 6월 1일,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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