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우선 오늘밤 저희를 이끌어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교님께서 와 계시고 또한 많은 여러분이 계신 이 너무나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사실 저는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 지 조차 잘 모르겠습니다만 주님께서 제 삶을 통하여 주신 이 경이로운 일들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이런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므로 이것이 저에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해보겠습니다.
제가 오늘밤 이곳에 와서 증언하고자 하는 모든 것은 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주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의 이야기는 오직 그동안 체험했던 인간적인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가 여러분을 주님께로 이끌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 오늘밤 , 아니 언제나 주님만이 우리 마음속의 주인이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작하기전에 주님의 말씀을 듣도록 주님께 청하고자 합니다. (에베소서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양을 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의 온각 영적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고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앞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이미 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이 영광스러운 은총에 대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죄에서 구출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풍성한 은총으로 우리에게 온갖 지혜와 총명을 넘치도록 주셔서 당신의 심오한 뜻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보다 시작하기에 더 좋은 말씀이 어디 있겠습니까.
간단하게 저의 배경과 제가 이곳에 서게 된 이유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소개에서 잠깐 들으셨겠지만 저는 콜롬비아에 있는 커피를 생산하는 안데스 산 위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저의 가족은 스페인에서 이주해온 카톨릭이었고 저는 대가족에서 자랐습니다. 저희 10 식구들과 고모 삼촌을 포함하여 15 -16 아이들이 함께 자란 아주 대가족에서 자랐습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며 재미있는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전통적인 교회의 가치관을 가진 그 곳에서 14살까지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제가 14살 이던 1960년에 당시 인구가 2백만에서 현재 8백만이 된 콜롬비아 수도인 보고타로 이주하여, 그 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세 전에 결혼을 하며 독일로 이주했습니다. 독일 함브르크 대학에서 연기자와 작곡가가 되기 위해 아트를 전공하였고 현재 29세 32세인 저의 두아들을 그곳에서 낳았습니다. 그리고 6년후인 1977 년 미국으로 이주 하였습니다.
미국에서는 2년동안 뉴욕에서 살았으며 그 후 현재까지 제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로 이주 하여 tv, 영화등 연기자 로 일하였고 뉴욕의 소니 음반사에서 일하며 많은 음악을 녹음하였고 밴드를 결성하여 많은 나라를 다니며 홍보했습니다.
고향을 떠난 후 저는 교회의 모든 전통과 가치로부터 부터 멀어지기 시작했으며 대신 당시 60년대 유행하던 여러가지 뉴에이지 사상에 젖어들었습니다. 그 시대에 히피, 마약, 동양철학등 많은 새로운 것들이 나타났습니다. 또한 미스테리 과학, 메타폴 , 마술, 이교사상, 정신철학등은 저희세대에 커다란 새로운 사상으로 떠 올랐습니다.
그 사상들은 결혼, 사회, 전통등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특히 교회나 종교는 그당시의 히피등과 같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시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음악과 예술에 젖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여러 사상들은 저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 왔습니다. 음악과 예술, 모든 형태의 미스테리 과학 등, 저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였습니다.
독일에 가서도 저는 계속 그런 사상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결국 점점 저는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고, 이미 크리스챤 사상에서는 아주 멀어져 이미 윤회사상을 믿고 있었습니다.
제가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였을 때 그 곳은 저에게 또 다른 뉴에이지 중심도시로 다가왔고 모든 앞서가는 새로운 사상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을 작은 파라다이스로 생각하고 그 곳에서 이미 말씀드린 그 모든 사상들을 실행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미 그것들에 노예가 되어 있었으므로 저의 집은 풍수, 음양사상과 중국과 일본의 유행하는 동양사상의 물건들이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저희 집에는 소파가 북쪽을 향해 놓여 있었고 침대는 남쪽을 향하도록, 거울이 입구에 있고 오른쪽에 크리스탈을 놓는 등, 우주의 에너지같은 것들이 제 인생을 좌우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점, 타롯점,, 카드 점 미래보기, 점성술,, 촛불의 힘을 믿는 등, 모든 것이 저의 삶의 일부가 되어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의 나라와 제가 몇 년동안 모든 나라를 방문하면서 알게 된 모든 미신, 풍습을 행해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게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것들의 노예가 되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오히려 많은 것을 얻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바보가 되었지만 제자신은 제가 쿨하다고 여겼습니다.
사탄은 아주 약삭빠릅니다. 최악이었던 것은 제가 저의 가족을 방문하였을 때입니다. 저는 모든 일에 성공하고 있었으므로 제가 하는 모든 것들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친척들은 카톨릭신자들이였으므로 그와 같은 것들에 익숙치 못했습니다. 제가 친척들을 방문하였을 때 ‘이리 와서 크리스탈을 좀 봐 , 이리와,봐’ 하고 말하며 따라하라고 하면 그들은 성호를 긋고 달아나곤 했습니다. 마치 악마가 집에 온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가 저의 친척을 볼 때마다 그 때 일을 사과하곤 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그런식으로 놀랍게도 그런 어둠속으로 걸어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가장 밝은 빛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탄은 아주 영악해서 천사의 빛처럼 옷을 입고 우리를 조정하고 그에게 다가가면 절대 빠져 나올수 없도록 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저는 어둠의 자녀였습니다.
1996년 저의 형제 중 한명이 콜롬비아에서 사망하여 장례식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은 제가 태어난 곳에서 1시반 반 정도 떨어진 근교로서 그는 저희 어머니와 여형제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 후에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대부분 시간 저는 고향을 떠나 있었지만 감사하게도 마지막 두 달을 어머니와 함께 지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 해의 3년 전에는 암으로 아내를 잃었고, 동생이 바하마에서 사고로 죽었으며, 마지막으로 저의 아버님이 노환으로 돌아 가셨습니다. 4년 동안 5명을 잃은것이죠.
저의 나중에 여러분과 나눌 신비한 체험에서 주님께서 제 삶의 이 특별한 사건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인간성은 매우 굳어져 있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우리가 죽음에 대한 고통을 느끼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이상 집에서 tv를 보고있는 그사람을 볼 수 없고 온 세상이 산산조각이 난 듯 느껴지며 고통에 기도를 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친지를 잃을때 은총을 갖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생각하게 되며 또한 하느님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되는 기회가 되므로 사실 그것은 은총입니다. 평생을 괴롭히던 친지가 죽었을때도 형제자매가 장례식에 모여 화해의 기회를 갖는 등의 각기 다른 은총의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죽는다는 것을 잊고 살아갑니다. 관에 있는 죽은 사람을 보며 비로소 ‘아! 나도 죽을 것이지’ 하고 느낍니다. 어느정도 그것이 현실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사실 제 경우에는 아무런 은총을 받지 못했습니다. 윤회를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육체를 가지고 오직 한번의 삶의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더해지는 크리스챤으로서의 은총을 거부한 것입니다. 저는 말도 되지 않는 사상들로 오염되어 있었으므로 친지들이 윤회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을 떠나보내며 그들과의 관계를 잘라냈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한가족이라는 아름다운 진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죽지 않고 이곳의 삶이 계속된다고 여겼습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는데 저는 그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너무도 슬픈 사실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캘리포니아로 돌아갔고 일년 후에 크리스마스를 저의 여형제들과 지내기 위해 다시 콜롬비아로 돌아왔습니다. 저의 한 누나는 다음엔 자신이 죽을 차례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4년간 6개월 간격으로 저희 가족들이 죽자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누가 다음 차례일지를 생각해습니다. 모두가 의심스러웠습니다. 누군가 심한 기침이라도 하면 다음 차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누나는 질병이 있었으므로 자신이 다음 차례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누나는 저에게 함께 성당에 가서 아기예수님 구일기도에 참석하자고 했습니다. 콜롬비아에서는 이신심이 대단합니다. 예전에는 전 카톨릭지역에서 지키던 이신심이 지금은 많이 사라졌습니다만 아직도 콜롬비아와 필리핀등 일부 지역에서 지키고 있는 이 신심은 매우 아름다운 신심으로 사실 저는 제가 다니는 곳마다 이 신심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께 기도하는 이 신심을 아이들을 포함하여 온 가족이 함께 모이게 합니다. 구일기도는 16일에 시작하여 예수님이 탄생하시는 날 끝나며 마지막 날 아기예수님이 말구유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매일 밤 아이들을 데려와 함께 찬양하며 예수님을 뵙게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신심입니다.
저는 누나와 함께 성당엘 갔지만 사실 저는 성당에 대한 모든 것, 아기 예수님등 아무 것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영적인 모든 것이 함께 혼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저의 누나와 동행해주기 위해 그 곳에 갔습니다.
그 성당의 신부님은 이 신심에 대해 소개하며 이 기도를 통해 아기 예수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저는 ‘오 좋은 기회네. 이 아이로부터 뭔가 얻을수 있겠네..”하고 생각하며 누나에게 “이 애기가 얼마나 기적을 일으키는데?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저희 누나가 온갖 기적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저는 아기예수님께 저의 삶을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지금의 저의 모습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저의 계획은 달랐습니다. 저의 누나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아기 예수님과 저만의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아기예수님께 많은 돈을 가지고 은퇴하게 해 달라고, 그리고 제가 보았던 인도네시아 섬으로 가서 최소한 세여자에 둘러싸여 왕처럼 마지막 생애를 살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것이 다신론자다운 저의 기도였습니다. 저의 인생은 완전히 망가져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느님께 드린 기도였다니 상상이 가시겠지요. 저는 누나에게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누나는 “믿음을 가지고 해야한다” 고 계속 저에게 말하였고, 저는 “알았어, 알았어 ” 하고 대답했습니다. (웃음) 저는 아기예수님이 그렇게 해 줄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과연 그분은 저의 기도를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입니다.
그 다음날인 크리스마스에는 저의 친지들을 방문하기위해 좀 떨어져 있는 저의 고향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한 밤중에 저는 저의 한 조카를 데리고 저의 삼촌댁에서 밤을 지내기 위해 차를 몰고 떠났습니다. 바로 구일기도를 끝낸 다음날인 12월 25일이었습니다. 저희가 농장 게이트에 도착했을때 문이 잠겨있었으므로 저는 조카에게 내려서 게이트를 열라고 하였습니다. 조카가 내리자마자 곧 6대의 차가 숲속에서 튀어 나왔고 가면을 쓰고 무장을 한 사람들이 저와 조카를 체포하였습니다. 그들은 저와 조카의 손을 뒤로 묶고 후드를 씌운 채 차 뒷자석에 앉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6대의 차가 저의 차를 포위하고 매우 빠르게 도심을 달렸습니다. 어느 정도 타운을 벗어나자 그들은 차를 세우더니 그들 중 네명이 저를 내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명은 저의 조카를 데리고 차를 몰고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들이 그날 밤 조카와 제차를 숲속에 버렸지만 해를 끼치지는 않았다는걸 알았습니다.
그들은 저를 가축을 묶는 로프로 저의 허리를 묶고 한사람은 앞에서 또다른 한사람을 뒤를 잡고 저를 끌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밤새도록 숲속을 걸어갔습니다. 저는 이게 무슨 일인지, 그들이 저를 총으로 쏘려하는건지 제 차를 훔치려는건지 제 조카를 죽인것은 아닌지..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지만 겁에 질려 아무것도 묻지 못했습니다.
저는 정말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밤새 걸었습니다. 해가 뜰 무렵 그들은 숲 속에 집처럼 여겨지는 곳에 저를 집어넣었습니다. 저는 눈을 가리고 있어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루종일 저를 그곳에 둔 채 문을 잠그고 가버렸습니다. 1997 년12월 26일 이었습니다. 저는 묶여 있었고 후드로 가려진 채 겁에 질려 감히 아무 것도 하지 못했고 움직이지도 못했습니다. 밤이 되자 그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저를 끌어내어 차 뒷자석에 앉게 했습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군과 경찰이 저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저를 다른 곳에 숨기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차를 운전하여 갔습니다. 그리고는 차에서 내려 다시 아주 한참을 걸어갔습니다. 많은 습기와 정글에서 들을수 있는 동물과 새소리로 아주 깊은 정글임을 알수 있었고 저는 무서움에 떨며 걸었습니다. 간혹 그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들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전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한참을 걸어간 후에 그들은 저의 눈을 가렸던 것을 풀더니 저를 숨길 곳을 보여주었습니다. 제 앞에는 약간 경사진 언덕 같은곳에 집처럼 보이는, 정글의 슾격으로 인해 뼈대만 남은 듯한 동굴 같은 곳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저를 그 곳에 내동댕이 치자, 제가 그 곳에 들어가며 넘어졌을때 뭔가 위로 날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박쥐의 분비물이었습니다. 또한 바닥에도 박쥐의 분비물들이 있었습니다. 그 분비물로 부터 갖은 벌레같은 것들이 제몸으로 올라와 여기저기를 물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 납치사건과 이 무시무시한 동굴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동굴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바로 이곳에서 저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이렇게 주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왜 저를 캘리포니아 하이웨이에서 부르시지 않은겁니까?” (웃음) 하지만 주님께서는 유머감각이 있으십니다. 그것이 제가 정신차리도록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겁니다. 그 곳에서 처음 이틀은 그들이 하루에 한번씩 먹을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먹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저의 유일한 바램은 죽는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도 저와 같이 그 동굴에 잠깐이라도 있을 수 있다면 여러분도 죽고 싶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것은 큰 두려움이었으며 현실이라고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악몽을 꾸고 있으며 언제라도 깰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계속 되었습니다.
셋쨋날, 저는 이미 탈수되었고 죽어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제안에서 뭔가가 희망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쩌면 도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큰 소리를 지르자 그들 중 한 사람이 와서 제 다리를 잡고 동굴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그리고 후드를 벗겼습니다. 제가 제대로 볼 수 있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동굴에 있던 내내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므로 오랫동안 아무것도 보지 못하였고 저의 눈꺼풀은 벌레에게 물려 부어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정도 시력을 회복하자 해가 지는 것이 보였고 한줄기의 빛이 동굴을 비추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제가 동굴안을 보았을때, 그들이 저를 총으로 쏘아 죽인다고 할지라도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동굴 안에는 거미줄이 모든 곳에 커튼처럼 쳐있었고 그곳에 커다란 거미가 매달려 있는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무슨일이 있던지간에 도망치고만 싶었습니다. 그 안으로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않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제가 제대로 일어설 수 조차 없었습니다. 계속 묶여 있었음으로 인해 저의 피순환은 엉망이 되었 있었고 도망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저는 동굴에 쳐넣어 졌습니다.
말씀드린대로 저는 16일을 동굴에 있었습니다. 저는 하루에 한번씩 그들이 가져오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먹었는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아무튼 저는 먹기 시작했고 기력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많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만일 제가 움직이면 동굴 안에 동물들이 놀라서 움직이게 되어 동굴이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15일째, 사실 저는 납치된 날로 부터 날짜를 세려하였지만 21일 이후에는 다 잊어버렸습니다. 15일째 그들은 저를 밖으로 끌어냈고 많은 게릴라에게 둘러 쌓여졌습니다. 그들은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군인이 아닌 걸 알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14살에서 21살쯤 보였고 그 중 한명이 사령관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한 30 -40쯤 되어보였습니다. 그는 주위를 돌며 그들 앞에서 큰 제스쳐를 해가며 저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제게 많은 보상금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들은 제게 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저는 돈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몇 년동안 제가 TV나 영화에 나오는 제가 돈을 벌어놓았을것 이라고 생각해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상주의자라고 주장하지만 일반 범죄자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저는 그들과 지내며 그들이 일반적인 도둑일뿐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살인을 하는 등, 정말 무서운 일을 자행하고 있었습입니다.
그날 사령관이라는 자는 저의 여형제들의 이름과 주소를 보여주며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을 알고 있으니 만일 제가 도망가거나 보상금을 내지 않으면 그들을 죽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동굴로 데려온 6명이 저를 그들에게 팔았다고 말했습니다. 저를 마치 물건처럼 두 그룹이 정글안에서 거래를 하였고 첫 그그룹은 저를 동굴에 가두고 게릴라들을 기다리고 있었던것입니다. 게릴라들은 이틀째 오기로 하였었지만 15일째 나타났고 제가 그들의 얼굴을 알고 있었으므로 보상금을 받는 순간 저를 총살할 것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저에게 동굴로 돌아가도록 명령하더니 어느정도 안심을 했는지 다시 저를 불러 이번에는 손을 앞으로 묶은 후 다시 동굴로 돌아가도록 명령했습니다. 저를 팔아넘긴 6명이 떠나가자 동굴에 있는 저를 게릴라군이 지켰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죠, 동굴로 돌아간후 처음 15일이 무서웠다면 그날 밤은 가장 무서운 밤이었습니다. 도망칠 희망은 전혀 없었고 정글안에서 죽을것이고 아무도 찾을수없는 정글안에 묻히게 될것이며 결코 돌아오지 않는 저를 기다릴 저의 아들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이러니한것은 저는 대부분 고향을 떠나 살았는데, 콜롬비아로 돌아온 지금 납치되어 정글에서 죽게 되리란 것을 생각하면서 저의 내면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때 저는 제 내면에서 무언가 저의 이런 어려움을 지탱할 수 있는 것을 불러오려고 애썼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동양철학, 점성술, 마술 제가 그동안 해 왔던 뭔가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메타볼릭, 점성챠트, 크리스탈 리딩 온갖 것들을 불러왔습니다.
저는 33년동안 교회와 하느님은 떠나 대죄 중에서 살며 더이상 죄라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저의 작은 왕국의 작은 왕이었고 모든 세상이 저의 종이었습니다. 제가 세운 자만심이라는 빌딩을 짓고 그것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작은 왕국 작은 왕은 재로 변했버렸습니다. 제자신이 아무것도 아니었고 아무것도 저에게 남은 것은 없었습니다. 저의 안에서 저를 지탱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저의 어린시절의 교회, 학교, 집을 생각하며 기도를 해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주의기도 조차 생각해 낼수가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기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더욱 괴로왔습니다. 텅빈 공허함만을 느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바닥에 떨어졌다고 말합니다만 저는 바닥 더 아래에 있었습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에 바로 하느님이 계십니다. 저는 그 순간 주님의 신비 체험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에 저는 그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무엇인지 전혀 깨닫지못했습니다.
제가 여러분과 첫째로 나누고 싶은 체험은 인식의 밝힘(illumination of conscious) 이라고 불리우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의미나 표현방법은 잘 모릅니다. 그 의미는 여러분 스스로 생각하십시오.
저는 깨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저의 온 생애를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선 저의 약 3살때의 자신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제자신이 태어난 집의 페티오에 있었고 저의 손에는 막대기가 들려 있었습니다. 보통 스페니쉬 가정의 페티오에는 화분이 있지 않습니까.. . 저는 빠르게 그곳을 돌고 있었고 그곳에 있는 식물들을 막대기로 두드리며 망가뜨리고 있었으며 가정부인지 누군지가 저를 부르며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는 매우 두려웠습니다. 왜 제가 전 생애을 보고 있는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제가 자신을 보고 있는지 어쩌면 무엇엔가 물린 독으로 인해 환각상태인지, 아니면 이런 비극적인 상황으로 미쳐가고있는 건지… 그리고는 저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3시간전쯤 전 생애를 말씀하시고 돌아가신 것을 기억해 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죽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 처럼 죽기 전 제자신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내면 깊은 곳에서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크고 심각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계속 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면서도 계속 저의 생애를 보았습니다.
저는 저의 약 11살 12살 쯤을 보며 제 생애에서 정말 처음으로 말할수 없는 너무나도 큰 죄의 고통을 느꼈습니다.
저는 14살 전까지는 고백성사를 보았습니다. 아마 죄를 통회했었을 겁니다. 정확하게 그렇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그 당시 확실히 죄에 대한 고통을 느끼지는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느낀 그 고통은 저의 영혼에 너무 깊었고, 또한 마음에 아주 깊이 느꼈으므로 결코 여러분에게 그것을 표현할 수 조차 없습니다. 그것은 겨우 11살 12살에 지은 죄를 보고 느낀 고통입니다. . 제가 그 다음 18살 20살, 30 그당시 47살이었던 저의 그다음을 상상하실수 있겠습니까? 결코 저의 영혼이 겪은 그 고통을 여러분에게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대죄중에 있는 사람이 저와 같은 체험을 한다면 아마 죽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그런 체험을 하면 죽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는 저는 어떻게 된 것인지 잘 모릅니다. 기절한건지 죽은건지 잠을 잔건지 알수 없지만 그다음에 주님을 보았습니다.
저는 풀밭에 얼굴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한쪽을 보았더니 멀리 산위에 있는 도시에서 빛이 나고 있었습니다. 그런 빛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또 한쪽 끝 편에는 제 몸이 동굴에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때 제가 생전 처음으로 정말 살아있는 느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제 자신이 가볍게 느껴지고, 기쁘고, 모든 근심과 고통과 두려움등 모든 것으로 부터 해방된 것을 느꼈습니다. 제 생애에 결코 느껴본 적이 없는 기쁨의 상태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완전히 살아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느끼는 살아있다는 느낌. 저 구석에 있는 제 몸, 그 곳으로 돌이 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즉시 제 안에서 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죠…제가 결코 어떻게 해도 제가 들은 그 목소리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주님께 드리는 찬미 소리를 함께 다 모아도 제가 들은 그 목소리의 아름다움에 비할 수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목소리는 제 안으로부터 그리고 모든 곳으로부터 나오는 듯 했습니다. 우리가 철학서나 시등을 읽을때 하느님이 그런 방법으로 표현한다고 하지요. 하느님은 우리에게 꽃들을 통해, 물을 통해 ,나무를 통해, 우리자신을 통해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는 안에서 또하나는 살아있는 것에서 그것은 거대한 아주 거대한 사랑의 현존, 자비의, 긍휼의 그러나 결코 꿈도 꿔보지 못한 그 이상의 현존입니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제가 너무도 두려운 수치심을 느끼는 상태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누구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이 가장 끔찍한 대죄 중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목소리를 저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자신이 너무 불결하여 그토록 아름다운 목소리를 감당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그러고는 제 생전 처음으로 지옥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언제나 지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논쟁을 하곤 했었습니다. 대죄 중에 있는 사람이 우선 논쟁하는 것은 지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아실겁니다. 자신에게 편리하기때문입니다. 그렇지않다면 자신을 바꾸어야 하니까요. 그러므로 제가 선택한것은 지옥은 없다는 것이었고 모든 사람과 그것에 대해 논쟁했었습니다.
제가 이 비젼에서 처음 깨닫게 된 것은 지옥이었습니다.
수치심에는 거룩한 수치심이 있습니다. 그 수치심은 회개하게 하며 잘못을 깨닫도록 합니다. 그러나 또다른 수치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싸움, 자만심, 이기심 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이 그 안에 있습니다. 저는 제가 누구인지를 알고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너무도 큰 사랑과 동정심으로 가득한 존재 앞에서 그 자비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수치심이 커 갈수록 주님의 자비는 커갑니다. 저의 수치심과 주님의 자비가 그 곳에 동시에 있었습니다. 제가 제 자신의 수치심으로 움츠러들어 잠기자 주님께서 저를 잡아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와 같이 대죄중에 있다가 죽은 사람이 처음 하는 행위는 우선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의식과 후회로 존재하는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적인 사탄을 깨닫습니다. 또한 그가 자신의 파트너임을 깨닫고 그 사탄을 역시 미워합니다. 그리고는 그 어둠의 마지막에 하느님을 미워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그 어둠 속에 영원히 가둡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체험한 지옥에 대한 정확한 표현입니다. 이 모든 것은 모두 자만심, 이기심, 허영, 등 때문이며 너무도 자기중심적으로 살며 결코 사랑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한 적이 없다면 사랑이신 주님의 자비를 받아들일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저에게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3-4일을 아무것도 먹지않고 지냈다면 수프 한그릇을 주어도, 먹기도 전에 쓰러지고 맙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영혼도 영적으로 살찌우지 않으면 하느님의 빛이 왔을 때 쓰러지고 맙니다. 어둠으로 기어가게 됩니다. 살아있을때 결코 빛을 향해 가본 적이 없으므로 빛을 받아 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비극입니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이 지옥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직 우리를 구원하고 싶어하십니다. 구원하여 천국으로 데려가고 싶어 하십니다.
오늘밤 제가 증언하고자 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우리가 상상해본 적도 없었던 자비입니다. 가장 큰 적은 우리자신입니다. 제가 그 곳을 통해 증거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자신으로부터 구원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파트너일뿐입니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사탄을 선택했고 자신의 삶 안으로 받아들인 것은 바로 자신입니다. 사탄은 많은 유혹을 하며 다가옵니다. 그러나 바로 자신이 “네” 라고 말하고 받아들인것입니다. 가장 큰 적은 자기 자신입니다. 주님의 현존안에서 주님은 우리를 자신으로 부터 구원하시고자 하시며 적으로부터 구하고자 하십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느님을 이해하도록 하기위해 일주일 동안이라도 들려 드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중 몇가지를 나누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들려주신 이야기중 하나는 인류에 관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인류의 가장 어두운 시기 가운데 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영적인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제 자신이 수치심의 상태로 들어갈수록 주님께서는 더 자비로워지셨던 것과 같이, 우리 인류에게도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세상은 너무도 물질적으로 되어버려 영적으로는 너무도 어두워졌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더욱 밝아지셨습니다. 주님은 너무나도 자비로우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버리고 싶어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사랑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주님께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빛을 내고 계시며 하느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보다 이 육체안에 살면서 성인으로 될 수 있는 더 좋은 기회가 없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지옥으로 향하는 영혼들에게 지금보다 더 위험한 적이 없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영혼의 경제학’ 같은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설명드리죠. 세상은 은총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빛으로 향해 가는 사람들은 나머지 사람들이 저버린 은총을 다 가져갑니다. 어떤 가족이 모든 구성원이 어두움에 있더라도 단 한사람이 회개를 하여 하느님께 가까이 가면 그사람이 나머지 사람이 버린 은총까지 모두 가져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 자신을 구원하여라, 그러면 너와 너의 가족이 구원받으리라. 왜냐하면 그 사람이 나머지 가족의 등불이 되어 이끌기 때문입니다. 그사람이 나머지 은총을 모두 가졌기에 가족 가운데 빛을 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십니다. “성인(saint) 이 되어라” 어떤 사람들은 항상 말하곤 합니다. “ 하느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어.” 그에 대해 제가 오직 말해 줄 수 있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오직“성인이 되어라” 입니다. 우리는 우리 가족을 전부 회개시키려고, 세상을 바꾸려고 너무나 많은 걱정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바꿀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영혼을 잃은 자들에 속하게 될뿐입니다.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성인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근본인 현실을 잊어버렸다고 하셨습니다. 천국은 우리가 성인이 되어야만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옥에 가지 않는 한 연옥을 통해 우리의 의지와 상관 없이 성인이 되는 것보다 우리의 자유의지로 이세상에서 성인이 되어 천국에 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오늘 만일 “ 나는 성인이 되기로 했어” 하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웃을 것입니다. 또 성인전을 읽고서는 마치 외계인에 관한 것처럼 “와우! 이것좀 봐”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소화데레사처럼 작은 꽃이 되어야 하고 우리 모두가 그 모든 성인들 처럼 되어야 합니다. 모두가 말입니다. 왜 나라고 안됩니까. 그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그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어느 때보다 지금만큼 성인이 될수 있는 좋은 기회가 없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매우 중요한것을 잊어버리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두가지 피조물로서 태어난것입니다. 하나는 영혼으로 불리우는 영과 몸으로 불리우는 육입니다. 하나는 점점 자라서 죽지만 하나는 점점 자라서 영원히 삽니다. 하느님의 빛 혹은 사탄의 어두움안에서 영원히 삽니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떤지 아십니까? 우리는 오직 죽어버릴 피조물을 살찌우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온세상이 걱정하는 것은 육체입니다. 이 육체는 우리가 하느님에게 믿음을 둘 때 보물을 담는 질그릇이 됩니다. 동시에 우리가 잘못 사용하였을 때 사탄이 죄의 분비물을 버리는 쓰레기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하느님이 선물로 주신 이 아름다운 육체로 곧바로 천국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이 육체가 소중한지 아십니까? 이 육체가 가장 아름다운 도구로 하느님께로 향할 수 도 있고 동시에 이것이 잘 못 사용하였을때 가장 끔찍한 악몽같은 삶으로 이끌어 영원한 멸망으로 갈 수 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삶 안에서 구원이 되어야하며 이순간 깨어있지 않고 졸게 되면 사탄이 다가와 우리의 영원한 삶은 죽은 후에 시작되는 것이라고 믿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실은 영원한 삶은 어머니의 모태에서부터 시작되며 우리는 지금 이순간 영원 안에 서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우리의 영원한 삶에 반영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이 지금 수많은 깨어있지 못한 영혼들로 차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자신의 육체에만 키우는데 관심을 두고 있어서 영혼 안에 있는 영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영혼들은 사랑할 줄 모릅니다. 그들은 동정심을 모릅니다. 용서를 할 줄 모릅니다. 그들은 오직 자기 중심적이며 자신만을 사랑합니다. 그들이 깨어있지 않은 영혼들입니다. 그들은 죽음을 맞이하면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 연옥, 지옥, 그리고 이 물질 세상이 영원 안에서 이 시간에 동시에 존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원죄로 인하여 영에 대해 눈이 가려져 그것을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있는 참 신앙은 영적인 세계가 사실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러한 신앙을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토마에게 “보지 않고도 믿는자는 행복하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지 않고도 믿음은 참으로 가장 큰 은총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세계가 사실임을 믿는다면 이곳에 모인 사람 중에 오늘 자정에 살아있으리란 확신을 하는 사람은 손들라 하면… 없을것입니다.. 여러분은 어쩌면 죽을지도 모릅니다. 살아있을지도 모르구요. 왜냐면 이 생명은 여러분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생명은 창조자의 것이죠. 우리는 피조물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바로 오늘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내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내일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자만심이 많습니다. 감히 내일 죽을 것을 걱정합니다. 주어지지도 않은 걸 가지고 말입니다. 그것 또한 우리가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을 바르게 삶으로써 주님께서 내일을 허락하신다면 내일 더 나아질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영원 안에서 현재를 살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의 적은 우리로 하여금 미래나 과거를 보기를 원합니다. 왜냐구요? 우리가 주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면 그건 바로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우리가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살지 알지 못합니다. 은총을 받을 수 있는 때는 바로 이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매일 우리는 서둘러야 합니다. 우리는 바로 이순간 이 곳에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깨달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안에서 우리는 이 순간에 있는 것입니다. 현재 이순간, 깨어있으십시오. 성서에는 가장 중요한 이 정보로 채워져 있습니다. 깨어 있어라. 깨어있어라.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 이순간 이곳에 있는 여러분의 육체가 이 그자리에서 죽게 된다면 여러분의 영혼은 바로 그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영원안에 서 있는것입니다.
차이점은 이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영역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여기에 두 영역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느님의 영역이고 또하나는 사탄의 영역입니다. 중간영역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는 차지도 덥지도 않은 것을 뱉겠다고 하셨습니다. 미지근한 것은 갈 곳이 없습니다. 미지근한 영혼은 뭔가 잘못됬다고 생각되면 신앙과, 걱정과 부족한 것을 얻고자 빛으로 향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이쪽 저쪽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러다가 빛과 어둠을 구분조차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영혼을 소비합니다. 그것이 미지근한 영혼의 운명입니다. 예전의 저처럼 엉망이었다면 차라리 쉽습니다. 주님의 자비에 의해 빛으로 끌어내 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미지근한 영혼은 이쪽저쪽을 왔다갔다 합니다. 그것은 마치 결혼한 남자가 아내와 정부를 가지고 있는데 마지막에 누구를 사랑하는지 몰라서 왔다갔다 하다가 둘다 잃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가를 깨닫는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자신이 밝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많은 것들이 주님의 은총이었음 아는것은 좋은 일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님을 , 우리의 비참함을, 우리의 죄를 깨닫는다면 진리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비참함 가운데 영광을 받으시며 우리가 그것을 깨닫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죽는 방법을 배우기 위하여, 우리의 비참함을 깨닫고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있는 주님께서 보여준 이 신비한 체험을 다 말씀드리지는 못하지만 이 전체 체험은 8 시간 정도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며 시간을 측정할 수 없을므로 시간으로 설명 드리기는 불가능합니다. 이 체험은 기억이나 제 지성을 통한 것이 아니라 제 안으로 흡수된 것과도 같습니다. 만일 지성을 통한 것이라면 이렇게 여러번 간증할 수 없을 것이고 저는 벌써 지쳐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 간증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렇게 제 안에서 흘러 나옵니다. 그것을 제가 오늘밤 여러분에게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주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삶과 연결되는 우리의 현재의 삶안에 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영원한 삶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죽어가는 삶에 촛점을 맞추게 되면 우리는 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매우 중요한, 아주 중요한 교훈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영원한 삶을 주기 위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이해하고 크리스챤의 삶을 이해한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삶을 주셨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것은 어둠이 아니라 빛안에서의 영원한 삶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빛의 도시의 시민으로 불리운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귀중한 선물입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가 빛의 도시의 시민임을 생각해야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생각인지요. 우리는 지상에서 순례를 하고 있는것입니다.
또 한가지 주님께서 저에게 묵상하도록 하신 것은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물었을때 이 왕국은 이세상의 왕국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속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왕국은 어디입니까? 이곳이 아닙니다. 이 삶을 잠시 거쳐가는 것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이 물질적인 삶을 보여주셨는데, 이 삶은 영원안에서 한 순간입니다. 이 순간동안 수많은 영혼들이 떨어져 나갑니다. 우리가 이세상에 너무 집착하며 이곳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의 영혼의 적은 우리로 하여금 창조주를 흠승하지 못하도록 피조물을 숭배하게끔 합니다. 우리는 이 피조물, 우리자신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그리고 쉽게 피조물이 스스로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피조물의 본연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전쟁을 일으키고, 삶이 비극이 되어가며 우리 자신이 창조자가 되어버렸지만 아무 것도 제대로 되는 것이 없어 보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이 피조물임을 깨달아야한다고 하십니다. 주님만이 창조자이십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때 주님께 “당신이 만드신 피조물이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씀하십시오. “저의 창조주가 되시어 저의 하루를 창조하여주십시오.” 하고 청하면 주님은 창조를 멈추지 않으시고 우리 삶의 매순간을 창조하실겁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매우 중요한 것을 보여주셨는데,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죄로 인해 결함을 가진 육체는 , 육체안에서 고쳐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번 육체를 떠나면 죄로 인한 결함은 고쳐질수가 없습니다. 대신 우리는 정화 되어야 합니다. 정화(연옥)는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입니다.
제가 체험한 연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경험으로서 가진 개념이므로 좀 형편없는 예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좀 인간적인 예입니다만,..제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우리의 친지, 가족이 죽었다고 합시다. 그사람과 대립이 있어 사이가 좋지는 않았습니다만, 그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마음이 편치 않고 그 사람과 사이를 회복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고 그 사람은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면 그와의 관계로 인한 우리의 마음은 너무도 큰 공허함과 외로움과 매우 큰 슬픔을 느낄것입니다.
그런 것이 반대로 일어난다고 보시면 됩니다. 영혼이 육체를 떠나 내면에 평화와 하느님이 안 계시게 되면 정화를 거쳐야 하며 자신의 삶은 떠나갔으므로 자신은 더이상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할 수 없으므로 너무도 큰 슬픔을 느끼며 자신이 내버린 모든 은총을 알게 됩니다.
육체를 떠난 영혼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이 버린 모든 은총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이곳에서 은총에 은총을 더하며 삽니다. 우리는 은총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너무도 자비로우시며 우리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것을 아십니다. 우리가 영에 있어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는 것을 그분은 알고 계시므로 모든 은총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나 영이 육체를 떠나면 영은 진리를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더이상의 은총은 없습니다. 정의(심판) 의 시간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정의(심판)의 시간이 되어 우리자신과 하느님 사이에서 평화를 잃게 되어 하느님과 떨어져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너무도 큰 고통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잡고 우리를 하느님에게로 오도록 허락하시지만, 우리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입니다. 살면서 사랑을 하지 못한 행위로 인해 하느님으로부터 너무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대한 큰 미스테리가 하나 있습니다. 성베드로의 서신에서 하느님에게 천년을 하루와 같다고 표현하였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묵상하면 큰 미스테리입니다. 우리는 매일 같은 해 같은 달아래 잠을 자고 잠을 깹니다. 그리고 새로운 날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우리는 하느님의 날의 하루, 우리의 삶을 삽니다. 시간은 환상입니다. 정말 환상과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제한적인 삶안에서 시간을 정해 놓았습니다.
연옥에 있는 영혼은 여전히 우리 인간의 시간을 따라 다른 차원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육체를 가졌을 때 있었던 일들에 잠겨있기 때문에 여전히 육에 따라 삽니다 . 그들은 여전히 물질세계와 매우 가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랑하지 못한 행위의 결과로서 빛을 잃어버린 영혼을 느끼고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빛입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영원한 빛의 샘이며 빛은 하느님입니다. 영혼의 잃어버린 빛은 되찾아져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매일 매일은 하느님의 날이고 은총의 날입니다. 그러나 사탄에게 내주면 사탄의 날이 될수도 있고, 우리의 마지막 날에 우리는 파산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를 거부하는 많은 것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의 자비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된다면 우리는 매우 고통스런 연옥을 거치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지금 받고 있는 은총에 대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해주셨습니다.
매순간 우리의 적은 우리의 은총을 어떻게 훔쳐가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미사참례를 하러 가서 자리에 앉아 집중을 하고 있다가 순간 복음을 읽혀지고 난 후 내용이 기억이 안납니다. 여러분은 무슨복음이었지? 어떤 제자? 예언자?...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왜냐구요. 우리의 적이 그 순간을 훔쳐갔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여러분 혹은 누군가를 망쳐버리기 위해 집중력을 빼앗아 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깨어있어야 합니다. 성바오로는 말합니다. “ 사탄의 불타는 화살” 사탄이 여러분에게 블타는 화살을 쏘아댈 때 여러분이 멀리 있기 때문입니다. 가까이 있다면 찰싹 때렸을겁니다. 화살을 맞는다면 사탄으로부터 멀리 있는것이므로 좋습니다만 여전히 화살을 맞습니다. 깨어있으십시오. 계속 화살을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방법으로 복음의 은총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미사에 참석했을때 복음이 읽히고 그 읽힌 복음은 봉헌된 성체안에서 말씀이 육으로 살아납니다. 미사가 얼마나 힘이 있는지 아십니까? 우리는 그 복음 말씀을 잘 들어야합니다. 그 복음의 말씀이 몇분후 성체가 봉헌될때 육으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게 될 그 은총을 도둑 맞을수 있고, 우리가 받아야 할 은총이 약하게 되거나 사라집니다. 영성체를 통해 예수님이 얼만큼 오시느냐, 얼마나 우리안에 예수님이 계시는가는 얼마나 많이 영성체로 모셨는가 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치유시켜 줄 예수님의 몸을 모셔야 합니다.
주님은 저를 카톨릭교회로 부르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종교, 교리, 믿음, 철학 그 어떤것에 의해 심판받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로 불리움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카톨릭 교회가 가장 많은 달란트를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카톨릭은 모든 진리를 가진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100명이 사는 한 마을이 있습니다. 한사람은 부 라는 달란트가 주어졌습니다. 나머지 99명은 그 달란트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부의 달란트를 받은 한사람이 나머지 99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그는 나머지 99 명을 부자로 만들라는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부자로 만들면 그들은 돈을 관리할 달란트가 없기 때문에 보물을 모두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바로 카톨릭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달란트를 받은 우리가 나머지를 먹여살려야 합니다. 카톨릭은 모든 진리와 보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나머지 사람들을 먹여살려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인류의 모든 사람들을 카톨릭으로 개종시켜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사람의 마음을 바꾸십니다. 누군가를 이 달란트를 주기위해 은총을 주고 싶으시다면 주님께서 그 사람을 데려오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통해 그 일을 하실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부르심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부르심은 양손에 모든 보화를 들고 주님께서 주신 무기로 적을 물리치는 전투를 하는 것입니다. 지상의 전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형제를 보호하고 우리가 가진 보물을 가지지 않은 불쌍한 그들에게 우리의 보물을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책임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그러한 것을 잃어버렸다고 하셨습니다. 33년동안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잃어버렸고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달란트를 땅에 묻은 자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보여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 네가 나누어야 했던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잃어버렸는지 아느냐? 너는 네가 나누어야 했던 은총을 사람들로부터 빼앗은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것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약 매일 우리가 받는 성체안에 있는 예수님의 능력을 안다면 우리는 부를 가지게 된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부유함을 가지고 나가 불쌍한 자를 먹였야 합니다. 우리가 밖에 나가서 무엇을 하느냐구요?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성체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거리에서 운전하고 가다가 쓰레기 옆에 있는 외롭고 슬픈 얼굴을 한 사람을 만나면 신호등에 멈추어 서야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회입니다. 성체를 통해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님께 물어보십시오. “주님 이 자녀를 보십시오. 동정과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 기도하고 음식을 주십시오. 그를 위해 일하십시오. 사랑을 베풀고 자선을 하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어디를 가든 우리안에 있는 보물을 가지고 해야할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어떻게 그 모든것을 잃었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14살때 저는 자신안에 허영과 허세와 자만심을 지어놓고 고백성사를 놓쳐버렸습니다. 저는 또다른 인간에게 죄를 고백한다는 사실이 웃기는 얘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손실이었다고. 저는 자만심으로 인해 성체 다음으로 가장 큰 은총을 중단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성체는 최고조입니다.
그러나 고백성사는 매우 큰 은총입니다. 사탄은 자만심의 왕임을 아십시오. 그러므로 정말로 정말로 사탄을 내쫒고 삶에서 몰아낼 수 있는 것은 겸손입니다. 사탄은 겸손을 건들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사탄을 쫓아내고 싶다면 겸손해지십시오. 여러분이 천사들과 성인들에게 둘러싸인 거룩한 사람 주위에 있고 싶다면 그사람은 겸손한 사람 옆에 서있는 것입니다. 바로 천국 안에 서있는 것입니다. 천국, 연옥, 지상..모든것은 일직선상에 동시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겸손한 사람은 이미 천국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의 옆에 서있으면 여러분이 거룩함을 주위에 갖게 되는것입니다. 사탄은 겸손함에는 손을 쓸수가 없습니다. 사탄은 없애버리고 싶으시다면 여러분이 상처입힌 사람에게 용서를 청하는것입니다. 사탄을 그것을 참을 수 없어 합니다.
주님께서 제가 사탄에 의해 왜 그렇게 자만심이 생겼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성체를 모시기 전에 고백성사의 은총을 사탄이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 , 상상해 보십시오. 마귀는 그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절대로 참을수가 없는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앗아갑니다.
사탄의 군대를 아실겁니다. 성 요한이 계시록에서 3분의 1의 천사가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각기 다른 품의 천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불순종의 군대로 줄을 서 있습니다. 그들은 불순종을 수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반역과 죄를 수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군대, 하느님의 천사, 덕의 수호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군대가 맞서는 전투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볼 수 없지만 그들은 우리 주위에 항상 있습니다. 항상 우리에게 말하고, 무엇보다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어떤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떤 장님이 인도하는 개를 데리고 이곳을 들어온다고 합시다. 이곳에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을 도와 길을 내어주며 그사람이 이곳에 있을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영적인 세상에서도 우리에게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 향해 갈 때 우리는 수호천사에게 안내를 받습니다. 이렇게 걸으면서 말입니다. (장님 흉내) 모든 주님의 천사들은 우리가 바른길로 가도록 안내합니다. 우리가 장님에게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탄의 영역으로 걸어간다면 추락한 모든 천사들이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도록 확실히 안내합니다. 정확하게 그렇습니다.
고백성사에 대해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고백성사를 더이상 하지 않은 것은 저에게 중재자가 필요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개신교회에 갔을때“ 와 이사람들은 곧장 예수님께로 가는구나!” 하며 기뻐했고, 제가 대햑을 가서 이교도를 만났을때 “아 하느님은 사람이 아니라 우주의 힘이구나. 더 ㄴㅏ은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더 편리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주님께서 저에게 고백성사를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제가 잊고 있었던 것은 만일 주님께서 중재자를 둘 필요가 없었다면, 제자들도 뽑지 않았을 것이고, 주님을 낳기 위한 성모님도 선택하지 않았을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하느님 자신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아 나는 예수다. 하늘의 문을 열겠다. 내가 너희 모두들 귀양살이에서 구해 주겠다. 내가 너희가 사람이 되는 법을 알려주겠다. 완전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주겠다. 너희 자신으로서 죽어라.” 라고 했을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느님이시니까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우리 중 한사람이 되기를 택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어떻게 우리자신이 죽어야하는 지를 보여주고 우리자신으로 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비참함으로부터 하느님께로 돌아가야합니다. 이 비참함이 우리를 하느님께로 데려갑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개념입니다. 십자가의 의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 나무에 내려놓아라. 십자가에 너희를 못박게 하여라. 너희를 굴욕적으로 만들고 침뱉게 하여라. 뺨을 맞고 가시관을 씌우게 하여라.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상처받고 있는 너희가 누구더냐? 네가 누구냐? 우리는 부서질 진흙일뿐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십자가의 반대 (팔을 앞으로 안은 모양)로 하고 나는 더이상 아무도 믿지 않아, 나는 너무 많이 상처 받았어. 나는 더이상 열 수 없어. 나는 더이상 사랑할 수 없어. 모든 사람이 나를 배반했어. 라고.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열어라! (팔을 벌린 모양)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혀라. 그들이 하는 대로 두어라. 내가 가르쳐준 것을 보아라. 그것은 십자가의 길이다. 그것이 구원이다. 포기하고 너희의 고통과 치욕과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대로 하는 것을 보고 배워라. 그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입니다.
누가 고통과 고난을 따릅니까. 아주 적은 사람만 그러합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매우 좁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피와 가시관 길이며 매우 어려운 길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승리를 말하고 싶어하며 예수님의 부활과 구원만 을 말하고 싶어합니다. “우리 구원 받았네, 우리 구원받았네, 찬송하여라, 주님을 찬미 하여라.” 하고 말합니다. ( 주:마리노는 그의 책에서 개신교의 문제점을 그렇게 지적함) 그러나 우리는 갈바리, 고통을 말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고통으로 가는길이 치유이며 정화임을 말하고 싶어하지 않습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고백성사는 웃기는 일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겠다고 말하였다. 땅에서 묶으면 하늘에서도 묶일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것이다. 그렇게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주님께서는 성서에 씌여진 것이 고백성사라고 말씀하셨고 그것은 성서에 써있고 우리가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것을 거부했던것입니다. 저는 중재자가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제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사제와 하느님과의 관계는 둘만의 문제이며, 우리가 고백성사를 보러갈때 우리는 사탄을 그의 군대와 함께 감옥에 넣는 것이며 고백성사는 사탄의 감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고백성사를 보러갈때 우리는 죄사함의 축복을 받는 것이며, 그것은 구마와도 같습니다. 우리는 마귀의 구속으로 부터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신부를 신경쓸 것 없습니다. 신부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부는 하느님으로부터 도유를 받은 사람이며 성령을 통해 마귀를 구속하고 마귀에게 명령하는 것입니다. 빛의 왕국에 속하는 이 피조물이 무릎을 꿇고 회개하고 있으므로 너는 힘이 없으니 물러가라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그다음에 일어나는 것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그다음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주님을 따르던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피를 마시고 내살을 먹어라 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하며 화가나서 일어나 가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갈것이냐 라고 하셨을때 그들은 남았습니다. 그이유는 우리가 성체의 기적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에게 상처를 남깁니다. 우리가 죄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도 상처는 남아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죄로 인해 상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상처를 고쳐야합니다. 보속의 행위가 무엇입니까? 가장 큰 보속의 행위는 성체입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이 우리안에 옵니다. 우리는 죄로인해 영혼이 상처입고 망가진 것을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우리의 영혼을 살찌워야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단지 빵으로서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귀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채우고 새롭게 하여야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것을 잘 유지해야 하며 버려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오래 이 은총을 가질수록 더욱 치유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마귀는 우리의 죄의 상처을 통해 숨을 불어넣을 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백성사를 하고도 여전히 자신의 죄에 얽매입니다. 왜일까요? 자신이 고백한 죄에 대해 내적인 평화를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이미 용서하시고 잊으셨는데 자신은 그렇지 못한것입니다. 왜 자신은 잊지 못할까요? 그것은 마귀가 아직도 여러분의 상처를 통해 숨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 상처를 치유할까요? 성체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살과 피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지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며 여러분을 어디로 이끄십니까? 주님은 여러분을 사랑으로 이끄십니다. 자선과 모든 성령의 은사로 이끄시므로 여러분은 참으로 죄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고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하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때 여러분은 참된 하느님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성체로부터 옵니다. 성체를 통하여 여러분이 치유되고 자신이 곧바로 천국으로 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결국 성인이 될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이 호수안에서 물이 허리까지 잠겨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주님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직접 대면할 수 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물안에 잠겨버리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저의 원수의 현존을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볼 수가 없었습니다.. 말씀드리죠. 저는 어떤 방법으로도 여러분에게 제가 본 것을 표현할 수 가 없습니다. 결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단지 이렇게 말씀드리죠. 저는 여러분 어느 누구도 주님의 현존 안에서 대죄상태에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꿈도 못 꿔본 가장 끔찍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
저는 주님이 주신 고백성사의 은총을 통해 죄사함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제 죄의 수호자인 사탄의 군대에 묶여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교회를 주시고 악으로부터 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무기인 교회의 보화를 주셨지만 저는 그것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베드로 사도에게 주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땅에서 묶인 것을 풀게 할 열쇠를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의 현존 앞에서 사탄에게 묶여 있었습니다... 죄를 용서받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백성사를 하고 바로 죽으면 저와같이 주님의 현존앞에서 마귀에게 묶이는 일은 없습니다. 마귀가 현존하지 않습니다. 마귀가 주님에게 무슨 말을 하기 위해 현존하는게 아닙니다. 제 자신이 마귀의 영역에 있은 겁니다. 저는 사탄에 영역에서 주님을 본 것입니다. 이렇습니다. 저는 사탄을 이렇게 보았습니다.
주님은 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징대로, 제자신과 같은 언어로, 제자신의 인지에 맞게 저에게 드러내 보이셨으므로, 저는 그곳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성령의 큰 은총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게되면 우리는 가장 큰 은총, 성령을 받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매일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것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누가 말하여주지 않아도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이 모든 것을 보여주므로 우리에겐 우리 삶에서 했던 모든 일에 대한 책임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웃, 부모 ,대통령,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돌릴수 없습니다. 우리 삶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자신이 져야합니다.
그 곳에서 제가 본것는 저의 죄 간통, 간음죄를 사탄의 면전에서 보았습니다. 사탄은 인간처럼 보였지만 저는 그들이 타락한 천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제가 간통죄를 지었던 모든 여성의 얼굴, 간음죄를 지었던 모든 여성의 얼굴, 폭력 ,거짓말, 욕심, 그러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자신의 모든 죄를 한꺼번에 보았습니다. 저는 제 자신의 죄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매우 끔찍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저에게 멀리 있는 바위를 바라볼 수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제가 그 바위를 보았을때 매우 아름다운 빛을 보았습니다. 아주 부드럽게 매우 천천히 주님의 형상이 사람의 형상으로 되는것을 보았습니다. 주님이 저에게 나타나셨을때, 저는 오직 “가장 위대한 변모(revealation)’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하느님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느님이 우주의 에너지, 우주의 힘, 얼바나 등 사람이 아닌 다른 것으로 생각했었지만 저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신성의 사람 그러나 여전히 사람인..
저에게 있어서 예수님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굉장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믿기가 어려웠을겁니다. 사실 저에게 있어서 주님이 사람이라는, 그것은 너무도 놀라운 최고의 변모였습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주님을 어떻게 표현하겠느냐고 묻습니다.
어떤 어린아이가 여러분에게 달려와서 그림을 하나 보여줍니다. 그림을 보고 도통 알수 없어 묻습니다. 이게 누구냐? 어린아이는 말합니다. 예수님이야. 그러면 여러분은 예수님이라고 믿어줍니다. 누구라도 사랑으로 예수님을 그린다면 예수님을 그린 것입니다. 가끔 제가 크리스챤 공동체나 교회 같은곳에 초대되면 사람들이 성상이나 성화에 대해 묻습니다. 저는 말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는 하느님이 살아계신 하느님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가 기도하는 하느님이 귀먹고, 말못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느님이 아닙니다. 이교도의 신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성상은 제가 제 눈으로 본 살아있는 예수님을 표현한 것이며 예수님은 사람으로 살아계시고, 그리고 바로 이곳에, 여기에 서 계십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십니다. 여러분이 만질수 있는 사람으로 계십니다. 신적인 인간이긴 합니다만… 그분은 우리와 아주 가까이 계십니다. 그것을 우리는 결코 믿지 못합니다. 정말 우리와 가까이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있는 주님께 말씀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의 기도를 확신해야합니다.
그것이 제가 뵌 주님입니다.
저는 그분 안에서 저의 전 생애를 보았습니다. 저는 그분 안에서 모든 피조물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들을 저는 결코, 결코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모든 것을 그분 안에서 보았습니다. 그 분 안에 너무도 아름다운 빛이 있고, 아름다운 얼굴이 있는데 나이가 없습니다. 동시에 저는 아기예수님을 뵈었으며 좀 더 큰, 좀 더 나이든 모든 얼굴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점점 열렸다고 표현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끝이 없는 순결의 바다를 보았습니다. 이 바다를 표현하자면, 여러분이 잔디밭에 누웠을 때, 그 잔디가 잘 다듬어져 있으면 여러분은 녹색의 바다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촛점을 맞추고 각 잔디의 포기를 보면 각각의 포기를 봅니다. 제가 그 순결의 바다를 보았을때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각각의 수백만 수천만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얼마인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동시에 저는 성령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순수한 영혼으로 창조된 피조물, 즉 우리에게 왔을때 천사라고 불리우는 피조물, 그리고 성인이라고 부르는 육체를 통해 정화된 모든 영혼이 주님의 현존앞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가운데 성모님이 오셨습니다. 여러분이 보기를 꿈꾸는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 여러분 중 어떤분은 그분의 현존을 보았다고 압니다만, 그 현존은 죽은 것이 아닌 실제이기 떄문이죠. 저는 성모님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정말 큰 선물입니다. 저는 저의 천상의 어머니를 갖고 있다는 것을 몰랐었습니다. 제가 14살에 보고타에 있는 저의 집을 떠난 이후로 저는 묵주기도를 하지 않았으며 성모님에 대해 듣지도 않았고 사실 성모님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저는 천상의 어머니를 몰랐습니다. 그분은 정말 가장 큰 선물임에도, 저는 그분이 저의 어머니 인줄은 몰랐을 뿐더러 제가 아기로서 그분의 모태에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때 저는 사탄의 영역에 서있었기 때문에 그분을 잃을까봐 두려웠습니다. 성모님께서 저를 잡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저와 항상 함께 계셨으며 결코 저의 곁을 떠난적인 없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토록 오래 어둠속에 있는 저를 저버리신적이 없으셨습니다. 저는 그분을 잃을까봐 두려웠습니다. 저는 제가 영적인 탯줄로 그분과 연결되어있음을 느꼈습니다. 저에게로 부터 나오는 모든 것이 성모님을 통해 주님께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으로 부터 오는 모든 것이 성모님을 통해 저에게로 왔습니다. 그것은 마치 완전한 문, 혹은 대문 같았습니다. 성모님은 저에게 모든 아름다운 것들과 원죄에 대한 것을 보여주셨는데 우리가 원죄로 인해 지상의 어머니로부터 태어나서 죽게 되는 과정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은 그것을 잘 깨닫지 못하고, 별로 신경 쓰지도 않지만 우리모두는 그런 과정을 겪고 왜 우리가 태어나서 죽는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저는 성모님이 새로운 이브이며 그리스도안에서의 새로운 피조물인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런 것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저는 교리를 알지 못했었습니다.
또한 저는 예수님께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새로운 아담임을 알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새로운 이브로서 예수님안에서 영원히 살 것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우리의 본향으로 되돌려 놓으신 것입니다. 제가 오직 성모님에 대해서만 말하여도 체험이 너무도 많지만,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심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저를 심판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주님의 현존안에서 맞게 되는 모든 죄는 주님께서 용서하십니다.
우리가 거치는 모든 죄, 제가 제 삶안에서 지은 모든 죄는 지옥에 귀결됩니다. 저의 영혼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제 자신이 어둠에 속해 있었고 제 자신이 어둠이었기 때문에 저의 영혼은 어둠의 무게를 버틸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온 생애가 어둠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그중 두가지 죄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번째는 간음입니다. 주님께서 21세의 저를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함브르크 대학의 카페테리아에 있었습니다. 그곳에 저는 독일 여배우와 앉아있었습니다. 저희둘은 독일 크래식 연극의 두 중심 배우였습니다. 그 연극은 많은 성적 묘사가 있었습니다. 저희는 무대에서 성적 장면을 연기하는게 좋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셨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어떻게 옷을 입었었던간에 불순결은 불순결입니다. 저희는 이런 저런 예술적인 옷을 입었었습니다. 주님의 눈에는 불순결은 불순결이었습니다. 그것뿐입니다. 우리는 지성적으로 합리화를 시켰지만 저는 결혼을 한 사람이었으므로 저는 그 여자와 간음을 한 것입니다. 그것뿐 아니었습니다. 무대에서 저는 모든 관객을 잘못 인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사람 모두에게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그것을 보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의 결과는 다른사람에게 미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영혼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책임은 굉장히 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 계산을 해야합니다. 빛(light)으로 향할수 있을때 더 늦기전에 정산을 하여야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혼배를 하게 되면 두사람이 하나가 됩니다. 똑같은 일이 반대방향으로도 일어납니다. 우리가 간음이나 간통을 하면 그쪽으로 하나가 됩니다. 저주의 몸이 됩니다. 저는 그 여배우와 한몸이 되어 두개의 머리 네개의 팔 네개의 다리가 되어 괴물같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예전에 숭배했던 신의 형상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신상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괴물을 보았을 때, 저와 그 여자, 사탄은 제가 그 여자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모습으로 영원을 머무리란 느낌을 갖게 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이상입니다. 가장 고통스런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몸을 구부렸습니다. 앞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 자신안에서 천국으로 부터 경이로운 중재가 저를 구하기 위해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성모님으로부터 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또한 저의 성령을 통해 저의 수호천사가 중재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분이 대죄에 빠지기 전에 두 군대사이에 큰 전쟁이 일어납니다. 하느님의 군대는 우리가 대죄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우리를 구하기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자신이 타락한 군대편이 되어 자신의 편인 하느님의 군대를 방어하여 자신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현존에 있으며 그 하느님의 군대가 대죄에 빠지지 않도록 중재하고 있으며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받도록 중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 중재를 받았고 조금 일어나 바위를 바라보았고 그 곳에 흡수되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저를 용서해 주시고 사탄의 영역에서 저를 떼어놓으셨습니다. 저는 큰 기쁨에 넘쳤습니다. 그러나 결국 다시 물안에 빠지고 또다른 저의 죄를 보았습니다. 또 다른 죄로 인해 그렇게 계속 되었고 더 상태가 나빠졌습니다.
혀의 죄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대죄에 있을때 영혼의 상태는 매우 약하게 되어 사탄이 혀를 이용해 여러분 주위사람들을 휘젓게 합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깨어나서 입을 열기만 하면 사람들을 휘젓습니다. 주위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등 끔찍한 일을 혀로 합니다. 여러분은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을 책임져야합니다. 여러분의 말은 실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말하는 것이 살아서 일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그러합니다. 우리의 말은 실제가 됩니다. 말은 사람들에게 좋던 나쁘던 영향을 미칩니다.
사실 이 혀가 소중한 보물같은 것입니다. 이 혀를 이용하여 아름다운 치유와 동정심과 사랑과 희망을 모든사람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그 같은 혀로 욕하고 파괴할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좋던 나쁘던 모든 말을 책임져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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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님께서 저를 제 육체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가 죽었었는지 기절했었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미스테리입니다. 결국 저는 제몸으로 돌아왔습니다. 회개하여 다시 감옥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동굴에 있었습니다. 동물들이 주위에서 날고 있었고 다시 끔찍한 악몽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음날 게릴라는 저를 동굴밖으로 끌어냈습니다. 그리고는 5달 반동안 그들과 함께 정글에 있었습니다.
저는 완전히 바뀐 인간이 되어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제가 당한 고통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끔찍한 고문도 당하며 필사적으로 견뎌야 했고 살아남을거라고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변해있었습니다. 제가 그들을 볼때마다 사탄의 감옥이 어디 있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유없이 저를 공격했습니다. 저는 그들에 대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이 더 걱정되었습니다. 저는 주님께 제발 제가 고백성사를 보고 죽게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에게 저를 방어할 수 있는 무기가 있는데도 다시 저의 모든 죄를 가지고 주님께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4달 반동안 그들은 저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45일동안 저는 죽음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이 로프를 가져오면 저는 목매달아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밤에 칼을 갈면 그들이 나를 찔러 죽이려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총을 들면 나를 쏠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 게릴라가 와서 우두머리에게 제가 가족에 의해 발견될 수 있도록 길에서 죽여달라고 부탁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용히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길로 나갈 시간이 없으니 정글안에서 죽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저는 정글에서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주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매일 매일 당하는 고통을 저의 죄의 보속으로 봉헌했습니다. 저는 주님의 자비를 믿었지만 제자신이 더 걱정스러웠습니다. 다시 주님의 현존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가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큰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마지막 날, 저는 그 범죄자들에 의해 길로 나갔습니다. 수염은 길었고 6달동안 같은 옷을 입었고 누더기가 되었습니다. 침대에서 자본적도 없고 샤워를 한적도 없었습니다. 저는 삐쩍 말랐고 거지꼴이었습니다. 길로 나가자 그들은 저에게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똑바로 걸어가라고 명령했습니다. 저는 결국 죽임을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걸음은 제 생애에 가장 긴 걸음이었습니다. 저는 주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주님, 제가 이 길에서 죽어야 한다면 머리에 총을 맞아 즉시 죽게 해주십시오. 라고. 저는 피를 흘린 채 아무도 찾지 않는 길에 버려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총을 쏘지 않았습니다. 제가 길 코너를 돌며 옆눈으로 보니 그들이 숲속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저는 제 의지를 잃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오랫동안 인질로 있다보니 혼자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들이 돌아와 명령해 주기를 바랄 정도였습니다. 혼자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길이 두려웠고 계속 아주 오랫동안 한없이 걸었습니다. 한참을 걷다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한참후에 오래된 버스가 보였습니다. 길은 더러웠습니다. 그 버스가 몇미터 앞에 섰습니다. 한 여성이 버스에서 내려 숲속으로 가는 것을 보았는데 저는 그녀가 게릴라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재빠르게 버스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버스문은 제 면전에서 닫혔습니다. 제가 숲에서 나온 동굴에서 사는 미친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의 팔굼치, 다리 무릎를 이용해 버스문을 억지로 열고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그 오래된 버스 뒤는 비어있어고 뒤 창문을 깨져서 먼지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뒷자석 중앙에 앉아 운전수를 보았습니다. 운전수는 운전을 하며 거울을 통해 제가 무슨 짓이라도 하고 있는지 살펴 보고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힐끗 힐끗 저를 처다보았습니다. 저는 그곳이 어디인지도 몰랐고 아무것도 물어볼수도 없었습니다.
그 후에 어떤일이 있었을지 상상할 수 있으시겠지요. 타운으로 돌아가 경찰이 오고 저는 저의 가족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저의 상태가 회복되기까지는 한참이 걸렸습니다. 회복이 된 후 제가 처음 한일은 프란치스칸 수도원으로 고백성사를 보러간 것이었습니다. 고백소 앞에서 줄을 한참 기다린 후 제차례에 되었습니다. 고백소 안 긴수염이 있는 거룩한 신부님이 계셨습니다. 저의 고백성사는 오래, 아주 오래 걸렸고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와’ 하고 들여다 보았습니다. 아마 방이 울려서 그들이 제말을 다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그들은 질려서, ‘오 우리는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웃음)
신부님은 저에게 사죄경을 해 줄테니까 계속 할 필요는 없어요…하고 만류했습니다. “아니에요.. 신부님 아직 안 끝났어요.” 그러자 신부님은 “ 사죄경을 지금 한다니까..” 그리고 신부님이 죄를 사하자 저는 바깥에 있던 사람들에게 계면쩍게 손을 흔들며 나왔습니다.
저는 저의 죄를 이 거룩한 곳에서 수만명이 있는 곳에서라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주님께서 죄는 사탄이며 우리는 죄인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저는 사탄을 가두었고 저는 기뻤습니다. 저는 거의 그들이 불에 타는 것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 또 하나, 또하나….거의 군대를 저는 가두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나올때 저는 무척 기뻤고 매우 가벼워진 느낌이었습니다.
그후에 받은 첫 성체는 여러분에게 표현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상상도 못할 가장 큰 경험이었습니다 . 주님께서 꿈꿔보지도 못한 큰 체험을 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 안에 계신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카톨릭이라는 사람이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밀이었습니다. 미사중에도 저는 서 있다가 옆사람이 하는 소리를 슬쩍 기대어 듣고 따라하곤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알아채고 말하는 것을 멈추기도 했습니다. (웃음)
저는 교회를 나가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교리도 찾아 읽었습니다. 기도모임에 나가기 시작했지만 거의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에게도 저의 체험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주님과 저 사이의 큰 비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누구도 그것을 믿을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고백신부에게조차 말하지 않았습니다.
2년후 저는 콜롬비아로 돌아갔고 성주간이었습니다. 성지주일날, 저는 정오 미사에 참석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안으로 들어갈수 없어 정문을 바라보며 바깥에 서 있었습니다. 제대 위에는 커다란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갑지가 어지러움을 느꼈습니다. 저는 제가 기절하려는 줄 알았습니다. 그 순간 바위 위에 보이셨던 주님과 같은 주님을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제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나누어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안돼! 안돼! 안 할 거야. 절대로 안할거야.” 하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 나 같은 죄인이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다니 말이 돼?“ 대죄를 지었던 사람이고 평생 문자 그대로 교회, 신부, 크리스챤의 모든 것을 비웃으며 박해했던 제가 사람들 앞에 서서 “저는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주님이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라고 하면 사람들이 저에게 토마토, 돌멩이 뭐 이런것들을 막 던지는 상상을 했습니다. 저는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기도모임, 작은 모임들을 통해 주님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체험으로 열어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간증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제 말을 녹음하기 시작했을 때 저는 겁이 났습니다. 그사람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 알수 없었습니다. 마치 뭔지 모르는 것을 감시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주님께서는 저의 모든 시간을 가져가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두 아들은 성인으로 성장하였고 저의 아내는 92년에 돌아갔으므로 저는 주님의 부르심에 대답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주님은 제가 잃어버린 돈을 찾도록 헐리우드로 돌아가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제가 인질로 잡히기 전의 생활로 돌아가지 않도록 이 생활로 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데리고 많은 곳에 가셨습니다.
저는 이 사명을 홍보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점점 더 초청이 많아졌습니다. 4년동안 저는 21개국을 다녔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묻지 마십시오. 설명하기 어렵습니다만 그렇게 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어떻게 이일을 해야할지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많은 대학, 고등학교, 세미나 , 종교단체, 평신도 단체 등 온 세계 모든 종류의 카톨릭 단체를 다녔습니다.
주님이 저를 어떻게 돌보셨는지 말씀드리죠. 한번은 멕시코 가장 가난한 지역에 간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치통을 앓고 있어서, 울퉁불퉁한 길을 달리는 차안에서 몹씨 아팠습니다. 저는 다음날 고백성사 미사가 끝나면 강연을 해야했으므로 주님께 “주님 이번에는 못할것 같습니다” 라고 말씀드렸읍니다. 볼이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물론 보험도 없는데다가 주머니에는 1달러 밖에 없었고 가난을 천명한 두 프란치스칸 신부님과 함께 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한밤중에 그 두명의 신부님과 수도원에 도착하자, 문이 열리고 한 신부님이 나오셔서 “평신도는 이곳에서 잘 수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두 신부님은 서로를 처다보더니 “마을에 당신을 재워줄 수 있는 한 여성의 집을 알고 있어요. 그곳으로 갑시다.”하였습니다.
그 곳에 가니 한 작은 여성이 나왔고 저를 2층으로 안내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아팠습니다. 다음날 저는 아주 일찍 일어났습니다. 고통으로 잠을 거의 잘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용히 있었고 화장실이 어디 인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아침이 되니 그여성이 문을 열고 화장실 위치를 알려주고는 자기는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제가 부엌으로 가는 길에 그 곳이 치과인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여성이 치과의사인걸 알았습니다.
그녀는 저의 온 입안을 다 고쳐주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유머입니다. 제가 이틀후에 수도원으로 다시 갔을때 그 곳 원장 신부님은 자신이 한 말을 기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몹씨 걱정하며 사과를 하였습니다. 저는 그것이 주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저를 보살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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