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간직하십시오.
사도행전 1:1
이곳에 계신 여러분 모두를 보게 되니 제가 처음 주님의 눈을 통하여 보았던 끝이 없는 순결의 바다가 생각이 납니다. 매우 깊은 바다였습니다. 저는 호수에 서 있었고 바위를 향하고 있었으며 저는 빛으로 인해 눈을 뜰 수 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그 빛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제가 33년 동안 지었던 대 죄 가운데서 어두움 안에 있었기 때문에 주님을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바라볼 수 없었을 때 성모님께서 저에게 오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제가 지은 죄를 가르키시며,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지는 않으시며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 것이 네가 아니다. 저것은 죄 이다. 너는 죄인이다.” 그리고는 “회개하는 죄인을 하느님을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그러니 너는 회개하고 주님께 용서를 청하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따라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신께 의탁(신뢰) 합니다. Jesus, I trust in you!” 성모님께서는 저에게 이 것을 매우 여러번 반복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언제 어디서든지 그 목소리를 듣습니다. “예수님 당신께 의탁합니다.” 그것은 내 마음에 심어져서 제가 두렵거나, 너무 피곤하여 힘이 들때 등 항상 그 목소리를 듣습니다. 어제 이곳에 올때도 저를 포함한 세명이 32시간동안 운전을 하여 공항으로 가야했습니다. 저는 운전을 하면서 힘이 들어 거의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예수님 당신께 의탁합니다.” 하고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그것은 마치 엔진을 가동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자비의 예수님 이미지에 대해 자주 강연을 하고 있지만 게릴라에게 납치되어 그 신비 체험을 할 당시에는 자비의 예수님에 대해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로 돌아왔을때 저는 교회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했으므로 모든 것을 배워야했습니다.
당시 저는 LA에 있는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성당에는 한 할머니가 항상 뒷자리에 무언가 많은 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분이 저를 불러 저의 이름을 물어보았습니다. ‘마리노’ 라고 대답하자 : “응, 성모님 이름이네..” 하더니 상본을 하나 주겠으니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꺼내보라고 하였습니다. 그 것이 주님이 원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자비의 예수님 상본을 저에게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상본 아래에 있는 “예수님 당신께 의탁합니다” 라는 문구를 보고는 저는 몹씨 놀랬고, 또한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이 저에게 천사를 보내어 제가 과거의 생활로 돌아가지 않도록 성모님이 하신 말씀을 상기시키는 것인가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 두 달 후에 다시 성당안 에서 큰 자비의 예수님의 이미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파우스티나 성녀의 사진이 밑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사가 끝난후 저는 신부님께 이 수녀가 누구냐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신부님을 저를 이상하다는 듯이 보고는 “파우스티나 성녀 이잖아요!” 하고는 바쁜 일이 있는지 가버리셨습니다. 그리고는 성당 밖으로 나갔을때 바깥에 사람들이 트럭에서 묵주며 여러가지 성물과 액자사진등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가까이 가서 “파우스티나 성녀가 누구에요?” 하고 물었더니 그들은 한심하다는듯이 “자비의 예수님 신심이요”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정보를 얻어내어 파우스티나 성녀의 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 것을 읽으며 정말 길에서 친구를 만난 느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호수에서 “네가 어두움 안에 있으므로 나를 볼 수가 없다. 문은 열려있으나 너는 나의 삶속에서 나의 사랑으로 사랑한 적이 없으므로 들어올수가 없구나” 라는 것을 저에게 명확하게 이해하게끔 하셨으며 그러나 제가 그 곳으로 가려해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저에게 사랑에 대해 가르쳐 주셨으며 어떻게 우리 삶 안에 주어진 은총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촛불과 같습니다. 우리가 촛불에 불을 붙여 계속 다른 사람의 촛불에 불을 붙여 주어 모든 사람에게 퍼져 나가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삶에 주어진 빛을 항상 간직하면서 다른사람이 불이 없거나 꺼졌을때 우리가 불을 붙여줘야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삶이 빛이 되어야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항상 빛을 증오하므로 “훅!” 하고 그것을 불어 꺼 버리려고 합니다. (웃음)
-중략-
저의 체험에서 제가 저의 죄로 인해 느꼈던 고통은 여러분에게 결코 결코 표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중에 살면서 가끔 자신의 한 일에 대해 작은 고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크게 맘 상하게 했거나 , 커다란 실수를 했거나, 무언가 매우 잘못된 결정을 해서 되돌이킬 수 없이 삶을 망쳐버렸을 때, 우리는 고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그것에 대해 진정한 고통을 느낀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 우리는 상황을 바꾸어 버리고 덮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덮어버립니다. 우리의 고통을 부정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첫번째 본능은 고통을 멈추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진통제가 가장 인기있는 약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어떠한 고통도 원칠 않습니다. 고통을 멈추는 것이라면 우리는 얼마가 들더라도 사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고통을 피하려고 하는 것은 가장 큰 실수 입니다. 우리가 잘못한 것에 대한 고통을 느끼는 것만이 우리가 올 바르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잘못했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바르게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잘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못했음을 느끼지 못한다면 결코 바르게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잘못할 때마다 그것을 부정하고 잘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잘못된것을 잘한것으로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천성입니다. 인간의 천성은 잘못된 것을 잘 된것으로 만듭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결코 우리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병에 걸려 우리의 죽음을 통보받았을 때 처음 우리의 반응은 “받아들일수 없다” 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코 죽지 않을 것처럼 행동합니다. 우리는 죽을 운명이지만 그것은 육체의 죽음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의 치유는 이 죽을 운명 (mortality)을 치유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 죽을 운명을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극복해야합니다. 죽음(육의) 은 실제로 일어납니다. 그 순간이 실제로 옵니다.
저의 형제중 한명은 43세에 자살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하느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저의 조카가 새벽 5시에 그 사실을 알려왔을 때, 짐작하시겠지만, 저는 너무도 놀라고 머리속은 백지가 되었습니다.
제가 회개하여 주님께 돌아왔을 때 저는 주님께 동생에 대해 계속 여쭈었습니다. “저의 동생에게 무슨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제가 콜롬비아 한 타운에서 저의 미션을 하고 있는 중에 나이든 아주머니가 울며 저에게 와서 자살한 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때 저는 주님께 말했습니다. “이 분에게 제가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제자신의 동생에 대한 답도 알지 못하겠는데요..” 그러자 갑자기 제 자신으로부터 놀라운 말들이 흘러 나왔습니다. 제 말을 들으며 이 아주머니는 주님으로 부터 치유를 받았으며 말할 것도 없이 제자신도 치유를 받았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자살하는 사람의 99 퍼센트가 제 자신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대죄를 짓는 조건에는 세가지가 있음을 아시죠? 세가지 조건이 성립을 안한다면 죄를 물을수 없습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억압하고 집착하게 만드는데, 그 이유는 어머니 모태에서 부터 혹은 전 대 (조상) 로부터 내려오는 상처와 고통을 갖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완벽하게 공정하고 정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살한 사람에 대해 그 사람만에 의해 살인죄(자살)를 행한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많은 것들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저의 동생이 그와 같은 경우였습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큰 문제가 있었고 성질이 강했으며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것은 그가 행한 행동에 대한 심판이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들 중에 인식을 가지고 자신의 생명을 끊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드뭅니다.
확실한 것은 그들은 육체의 삶을 스스로 끊었으므로 나머지를 보상해야 합니다. 그들은 연옥의 가장 낮은 단계에서 시작합니다.
-중략- (연옥에 관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은총 중에 하나는 우리의 목소리이며 이것은 매우 심오한 것입니다. 영혼이 지옥에 떨어질 때 우선 잃어버리는 것이 목소리입니다.(짐승의 소리가 난다고 함) 연옥영혼은 목소리를 갖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우리보다 톤이 훨씬 높으므로 우리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톤은 사랑을 말합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무아경에 있지 않는한 천사의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그 소리는 완벽한 사랑의 소리이며 다른 주파수를 갖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소리를 듣는다 해도 우리는 그 주파수(?) 를 견딜 수 없어 죽게 될 것입니다. 무아경에 있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연옥영혼은 우리보다 앞선 빛의 해(다른 삶의 단계)를 살고 있는 것이며 우리가 어머니의 모태로 돌아가길 원치 않는 것과 같이 그들도 이 삶으로 결코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직 완벽한 영광에는 있지 못하지만 이미 완벽한 영적세상 안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지상의 삶을 풀어야합니다. 그것이 매우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인식의 밝힘을 통한 죄의 고통입니다. 우리모두는 우리 삶의 마지막에 이것을 맞을 것입니다. 우리 인류가 어떤 시기에 동시에 이것을 겪게 될 것이라는 예언도 있습니다만 (가라반달, 메쥬고리예) 그 때 우리가 살아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우리 모두는 죽음의 순간에 이것을 겪을 것입니다.
사람이 콤마 상태에 있을때 영혼이 육체를 떠나면 이 인식의 밝힘을 지나게 됩니다. 이렇게 말하죠. 영혼이 육체를 떠날때 영혼이 아직 육체와 닿아있는한 그 영혼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일단 육체를 떠나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완전한 진리 안으로 막 들어갔으나 아직 육체를 완전히 떠나기 전 마지막 순간에 매우 많은 영혼들이 회개하여 구원을 받습니다. 그 순간 모든 친지들의 기도, 조상들의 선행, 교회의 기도, 크리스쳔 만이 아닌 모든 인류의 영혼등의 모든 구원의 경제 (ECONOMY)가 함께 와서 그 영혼을 구원합니다. 그러면 그 영혼은 정확히 누구의 기도, 무엇으로 인해 자신이 구원 받았는지 알게 됩니다. 그러면 그 영혼은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자신을 위해 기도한 사람에게 은총을 되돌려줍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죽어가는 사람이나 다른 영혼을 위해 기도하면 얼마나 많은 은총을 받게 되는지 믿지 못할 것입니다. 기도를 받는 그 사람은 즉시 은총을 되돌려 주고 축복을 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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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 이웃에게 선행을 행할 때 그의 천사들은 우리를 축복합니다. 하느님의 영인 천사들은 빛이므로 우리가 이웃을 위해 선행을 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빛을 얻게 됩니다. 마지막에 우리가 빛으로 가득 찼을때 우리는 영원한 빛 안으로 녹아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빛으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지상의 귀양살이에서 우리는 죄로 다가가면서 빛을 잃게 됩니다. 사탄은 우리에게서 빛을 앗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새롭게 사랑의 불을 붙여 불이 활활 타오르도록 빛을 지켜야합니다. 바로 사랑이 그 불을 붙이고 타오르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사랑하고, 동정심을 갖고 용서할 때 고통 안에 있는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우리의 죄를 속죄하고 보속할 것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의 부분입니다. 우리가 우리 교회에 주어진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총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이곳에 살아 있는 동안에 우리가 속죄해야 할 모든 죄를 갚을 수 있는 놀라운 것들이 우리의 교회 안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니다.
그것을 할 순간이 우리가 살아있는 날 중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그 뜻은 우리의 삶은 바로 오늘임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살 날이 얼마가 있더라도 우리의 삶은 하루 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날은 오늘, 바로 지금임을 깨달아야합니다. 우리가 행동을 취해야 할 때는 나중이 아닌 바로 지금임을 이해 한다면 바로 지금이 결심해야 할 때 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한 순간에 무에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한 순간에 창조되었으므로 우리의 삶도 한 순간에 변화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심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완전히 변화하겠다’하고 결심한다면 그 순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늦기 전에 바로 이 순간에 행동하십시오. 이 순간에 사랑하고 용서하며 이 순간에 동정심을 가지십시오. 그렇지 않고 “용서할 수 있을지 좀 두고 보겠어’한다면 그것은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할 수 있을지.. 그것이 좋을지 한번 노력해 보는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한다면 명백하게 정직한 것이 아닙니다. (웃음) 이 순간 사랑을 망설인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 그것을 하도록 부르고 계십니다. “나는 지금 하느님을 따르겠어”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죄를 끊고 거짓말하지 않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싶어. 내 마음안에 기쁨과 평화를 가지고 싶어. 내안에 하느님의 지혜를 가지고 하느님께서 내 안에서 일하셔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어.”하는 그 모든 것이 순간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금 해야합니다. 그러면 참된 치유가 일어날 것입니다.
참된 치유는 결심으로 일어납니다. “낫고 싶으냐?””네 주님””네가 나았다.”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와 나눈 대화를 기억하시죠? “무엇을 원하는냐?” “주님 낫게 해주십시오.” “네가 나았다.” 그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순간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고통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죄에 대한 고통을 느끼게 해달라고 말씀드려야합니다. 고통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깊고 힘들지만 동시에 치유의 선물을 가져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인식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하려는 생각(연옥) 은 좋은 생각이 아닐겁니다.
제가 연옥의 호수에 서 있었을때 그것은 참혹한 것이었고 바위에 예수님이 계신것을 알았을때 호수안으로 잠겨 도망치려고 하였습니다. 저의 전 신비체험은 제가 주님으로부터 도망치려하는 것이었고 주님께서는 저를 잡으려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주님을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주님을 보고 싶지도 말씀을 듣고 싶지도 않았고 그것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저의 과거의 모든 것이 끔찍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참고: 처음 이야기한대로 잘못을 덮고 싶고 피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과 수치심에 연결된다고 여겨짐)
제가 그 곳에서 주님으로부터 도망치려하였을때 본 것은 제가 33년간의 대죄로 인한 악령 가운데 있음을 보았습니다.
제가 회개하여 신앙으로 돌아와서 성서를 보기 시작 했을때 예수님이 무덤에서 악령들린 자를 만난 장면을 읽게 되었습니다. 약령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옷을 벗은채 뛰어나니다가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름을 묻자 ‘군대’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떤 성서는 수천명 혹은 오천명 이라고 묘사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돼지에게 들어가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이 구절은 악마론과 악령의 행동과 용서를 설명하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영’은 ‘도구’가 없는 한 우리 가운데서 행동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그들의 명령을 들고 행동할 수 있도록 이성이 있어야합니다. 즉 오직 인간뿐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악령들은 급한 나머지 돼지에게 들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합니다. 실제적인 몸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돼지에게 들어가자 돼지는 무언가 몸으로 들어오니 그것을 벗어나려 몸부림치고 악령은 그것을 조절하려 하면서 물 속으로 뛰어들어게 됩니다. 그리고 영은 더이상 도구가 없으니 지옥으로 갑니다.
그것이 바로 고백성사를 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고백성사를 보게 되면 악령은 몹씨 절규합니다. 그들은 여러분을 떠나기 싫어합니다. 정확하게 싸이코파트 같습니다. 싸이코파트는 여자를 납치하여 그 여자를 죽일 것임에도 미친듯이 그여자를 사랑합니다. 체포되어 수갑을 차고 가면서도 그 여자를 계속 처절하게 뒤돌아 봅니다. (마리노의 흉내: 마리노는 배우였습니다.ㅎㅎㅎ)
악령이 바로 그처럼 합니다. 악령은 우리를 파괴시키길 원하면서 악마적인 사랑을 합니다. 여러분이 고백성사를 보면 악령은 우리가 회개하지 않도록 하려고 모든것을 잡고 늘어지려 합니다. 그러나 일단 고백성사를 보고나면 그들은 즉시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언젠가 제가 뉴욕의 세인트 패트릭 성당에 고백성사를 보기위해 줄을 서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정오미사 전이었습니다. 저는 미국 동부 순회로 인해 매우 피곤하였고 또다시 곧 떠나야할 상황이었습니다. 고백소 양옆에는 한 줄씩 두줄로 사람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덩치가 몹씨 크고 매우 공격적인 남자가 사람들 줄을 무시하고 나와 고백소 문 앞에 섰습니다. 뉴욕이니 놀랄 것도 없지요. 완전 뉴욕 스타일..(ㅎㅎㅎ) 아무도 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는 기도를 하며 줄에 서 있었습니다. 고백소에서 사람이 나오자 그 남자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가 장궤를 하자 고백소가 다 흔들렸습니다. ㅎㅎ 그가 큰소리를 고백을 시작했고 소리가 커서 저는 듣고 싶지 않아도 내용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고백소 안의 남자 옆에서 연기가 나선형으로 나왔습니다. 저는 처음에 전기로 인한 불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냄새가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줄 서 있던 다른 사람들을 보아도 그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악령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자 그 연기가 큰 공처럼 되더니 끔찍한 큰 얼굴이 되어 제게 와서 저에게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너를 파괴해버릴거야. 너의 삶을 끔찍하게 만들겠어…” 그 목소리는 고백소안에 있는 남자의 목소리와 같았습니다. 저는 너무도 놀라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것이 다시 제자리로 갔을 때 갑자기 제가 “너는 그 사람을 놔주게 될거다.등등..”하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고백소에 들어갈 차례가 되어 고백성사를 마치고 나왔을때 왠지 저는 그것을 모두 잊고 있었습니다. 저의 고백에 온 주의를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사중 성체를 모시기 위해 줄을 섰을때 제 옆의 줄에서 뭔지 질질 끊고 있는 느낌의 걸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옆을 보자 옆줄 제 앞으로 그 남자가 울며 줄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성체를 모시자 그의 뒤로 투명하고 빛이 나는 마치 거미줄 같이 생긴 하얀색의 무언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매우 이상했습니다. 정말 이상했지만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저는 모릅니다만 그곳에 그의 온 개인적인 과거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그 사람의 개인적인 것이므로 보고 싶지 않다고 느꼈으므로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자 조금 후에 신부님이 저에게 “눈을 뜨시오”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ㅎㅎㅎ
제가 호수에서 저의 죄를 보았을 때 저의 죄에 수천의 악령이 있었습니다.
성서에서 ‘수천의 악령’ 이라고 나오는 것에 대해 현대 신학자들은 그것이 실제 수천이 아니라 히부르어의 과거 표기법에 의한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실은 그들은 말 그대로 수천입니다. 왜냐구요. 제가 직접 보았습니다. 저의 33년의 삶 안에 수천의 악령이 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저의 죄 하나를 볼 때마다 모든 죄의 유혹의 순간이 재현되었고 제가 고백성사를 보지 않음으로 인해 저의 삶 자체가 죄였습니다. 저는 저의 모든 죄의 행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그날의 죄의 모든 것이 완전히 표시가 됩니다. 입은 옷, 냄새 등등.. 그날의 냄새, 색, 같은 옷을 입었을때 우리는 다시 그 영역으로 들어갑니다. 사탄이 그것을 표시해 두었고 우리의 감각적인 기억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보속은 그 모든 것으로 부터 해방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들, 감각(?)들로 부터 해방되는 것이며 우리는 그것이 가능합니다.
그렇게 사탄은 자기의 영역을 표시합니다. 그리고 사탄은 영혼을 가지고 서로 싸웁니다. 마치 도둑들과 같이 함께 모든 것을 다해 훔친 것을 가지고 서로 싸우듯이 말입니다. 첫번째 악령이 와서 자기 영역을 표시해 놓으면 다른 악령들이 주위에 모여듭니다.
저는 그 호수에서 모든 죄의 행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9살에 지은 죄에 대해 사탄은 그 모든 것을 그들의 방법으로 표시해 놓았기 때문에 제가 14세가 되었을 때 다시 쉽게 그 죄를 짓도록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는 것은 그저 어떤 냄새 혹은 색깔, 소리등 어떤 감각적인 것을 던지는 것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모든 작은 것까지도 변화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완전히 새롭게 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기 위해 여러분이 할 일은 그것을 결심하고 하느님께로 가서 그것을 원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마음을 변화시키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긍정적 사고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리노는 믿음안에서가 아닌 긍정적 사고와 같은 뉴에이지를 포함한 현대철학을 부정적으로 생각함)
제가 말하는 것은 신앙 안에서 마음을 변화시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앞에 나아가 “주님 제가 거룩해지고 싶습니다””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의 집으로 가고 싶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저에게 원하는 것을 압니다. 저의 갈 곳을 압니다.”하고 말하는 것이 우리가 할 다 입니다.
솔로몬을 보십시오. 하느님으로부터 가장 좋은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주신 사람들을 다스리도록 지혜를 주십시오” 하고 하느님께 오직 그것만을 청했으나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시지 않았습니까?
솔로몬과 같이 하느님께 그것을 원한다고 말하십시오. “저는 제가 거룩해지는 것만을 원합니다. 나머지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하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거룩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 때만이 우리가 기쁨과 평화를 느낄수 있습니다. 오직 그 때만이 진정한 사랑을 느낄 때입니다.
여러분이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 살아있지 않는 한 여러분의 마음은 돌과 같이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을 하기 시작하면 누군가 슬플때 함께 슬퍼하게 되며 누군가 미소지으며 행복하다면 함께 행복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이해하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고통을 거부하지 말아야 함을 이해해야합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우리의 죄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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