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파파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응답하라 2014 한국교회 (8) 어떻게 순교하시겠습니까?‘나의 영광’ 찾는 바리사이와 같은 신앙 벗어던지고

김레지나 2014. 8. 27. 16:16

교황 방한, 응답하라 2014 한국교회 (8) 어떻게 순교하시겠습니까?

‘나의 영광’ 찾는 바리사이와 같은 신앙 벗어던지고
‘주님 영광’ 위해 투신하는 현대적 순교영성 살아야
발행일 : 2014-08-10 [제2907호, 17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에는 ‘순교’라는 단어가 딱 한 번 나온다. 제1장 교회의 선교적 변모 제24항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순교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온 생애를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에서다. 「복음의 기쁨」 제5장 성령으로 충만한 복음선포자 제263항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비롯하여 역사의 흐름을 함께한 수많은 우리 형제자매들을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들은 기쁨으로 충만하고 지칠 줄 모르는 용기와 열정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어려움에 적극적으로 맞섰습니다’도 순교를 암시하는 항목이다. 제24항은 ‘제자’가 되기 위한 요건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과 순교로 온 생애를 바칠 것을 제시하고 있다.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례로 서울 광화문에서 시복되는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는 「복음의 기쁨」에서 규정한 제자와 복음 선포자의 모습을 삶으로 실천한 순교자들이다.



124위 시복식 순교영성 되살리는 계기로

103위 성인 시성 청원인이었던 윤민구 신부(수원교구 손골성지 전담)는 하느님의 종 124위의 시복식을 앞두고 “일부에서 ‘순교자들에게 시복시성의 영광을 드린다’고 하는데 허황되고 우스운 얘기”라며 “교회가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하는 이유는 살아 있는 신자들이 순교자들의 신앙과 삶을 배우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민구 신부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교황님의 방한과 이번 시복식을 한국교회가 순교 신심을 되살리는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순교 신심을 되살리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말은 한국교회의 순교 영성이 약화됐거나 단절됐다는 사실을 배경에 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박해시기를 포함해 초기 한국교회 역사를 평생에 걸쳐 연구한 김진소 신부(호남교회사연구소 명예소장)는 순교 영성이란 물질보다는 정신, 육체보다는 영혼, 현세보다는 내세, 오래 사는 것보다는 영원히 사는 것을 추구하는 영성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번에 시복되는 초기 순교자들은 성경 속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그대로 따라 실천했다는 면에서 순교 영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국교회 순교영성은 단절됐다?

그러나 김 신부는 “한국교회의 순교영성은 단절됐고 그 시기는 1880년 이후부터 시작해 1900년 경부터 단절의 정도가 심화됐다”며 “순교영성의 변화와 단절은 한국교회가 선교와 신앙의 자유를 얻는 과정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고 밝혔다.

조선과 프랑스가 1886년 맺은 ‘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프랑스 선교사들에게 선교의 자유가 주어진면서 선교사들의 수가 늘어났다. 1895년에는 조선대목구 제8대 대목구장인 뮈텔 주교가 고종을 만나 고종으로부터 병인박해에 대한 유감의 뜻을 전달 받으면서 신앙의 자유를 공인 받게 됐다. 신자들에게 주어진 신앙의 자유는 1899년 ‘교민조약’으로 법적인 확인을 받기에 이른다.

김진소 신부는 1886년 조불조약으로 선교사들이 늘어나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가 격상되면서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박해시대에 향유하지 못했던 성사 중심으로 바뀌었고 그에 따라 성직자에 의지하는 수동적, 형식적 신앙으로 흘러갔다고 설명했다.

신앙의 자유를 얻은 신자들은 박해시대 겪은 고통을 ‘양대인’(洋大人)이라 불리며 조선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의 힘에 의지해 보상 받으려는 심리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김 신부는 특히 일제 강점기에 일제에 의한 또 다른 박해를 두려워한 교회의 지도자들이 일본 총독부의 통치에 순응하고 협조하면서 세속화의 길을 걸었고 한국교회의 순교영성은 더욱 자취를 감췄다고 강조했다. 주일미사, 성사, 교무금 등 형식적 신앙 개념만이 남게 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김 신부는 「복음의 기쁨」 제93항 “영적 세속성은 신앙심 뒤에, 심지어 교회에 대한 사랑의 겉모습 뒤에 숨어서 주님의 영광이 아니라 인간적인 영광과 개인의 안녕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주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셨습니다”를 순교영성을 상실한 한국교회의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조항으로 꼽았다.

조선대목구의 보좌주교였던 드브레 주교(한국명 유세준)가 1923년 「조선의 가톨리시즘-조선교회의 발전과 그 기원」에서 조선교회에 이미 세속화의 물결이 들어왔다고 지적한 부분은 김 신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순교영성, 다른 형태로 지속됐다?

한국교회의 순교영성이 단절됐다고 본 김 신부와 달리 조광 교수(한국교회사연구소 고문)는 “순교영성이 단절된 적이 없다”며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후 신앙 때문에 순교를 강요 당하던 상황이 끝나 박해시대 영성 실천과 동일한 형태로 신앙을 증거하지 않아도 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즉,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신자들은 애덕행위 등을 통해 순교영성을 실천하려는 노력을 했으므로 순교영성은 단절이 아니라 지속됐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교회가 현대 사회의 흐름에 따라 물량주의, 업적주의, 금전만능주의 등 세속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분위기로 일정 부분 흘러간 것은 사실이라고 해도 순교자들이 신앙을 증거했듯이 오늘날 신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신앙을 증거했기에 교회의 외적 성장도 가능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숙 교수(영남대 국사학과) 역시 “한국교회는 어려운 때일수록 예전 순교자들을 기념하면서 그 어려움을 극복해 왔고 교회 내 개인주의, 물신숭배, 영적 세속성 등의 경향도 순교영성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정숙 교수는 1925년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시복식 당시 서울, 대구, 원산교구의 주교들이 발표한 경문에 “매일매일을 하느님 자녀로 잘 살고 선종하면 그것이 우리가 치명에 이르는 길입니다”는 문장이 있다고 소개하며 일제시대 순교영성이 자취를 감췄다는 김진소 신부의 견해와는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윤민구 신부는 한국교회 순교영성이 단절됐다고는 보기 힘들지만 약화되고 형식화 된 것은 사실이라면서 “성지순례를 오는 신자들이 끊임없이 있다는 것은 순교영성이 살아 있기 때문인데 성지에서 드러나는 신자들의 모습은 순교신심을 제대로 사는 것인지 의문이 들게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예로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책자에 성지 방문 확인 도장을 받기 위해 승용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책자를 한 사람이 모아 도장만 받아가는 행태를 꼬집었다. 윤 신부는 “과거처럼 신앙에 대한 박해자가 없는 시대여서 목숨까지 바치면서 신앙을 지키겠다는 순교영성이 사그라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순교영성, 되살려야 한다

한국교회 순교영성이 견해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단절됐거나 약화 혹은 변화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날 특히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식을 목전에 두고 있는 한국교회가 순교영성을 어떻게 되살리고 현대화시킬 것인지가 한국교회의 과제다.

「복음의 기쁨」 제43항은 ‘예전에는 매우 효과적인 교회의 규칙이나 규범들이 이제는 사람들의 생활을 지도하는 데에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교회도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규칙이나 규범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순교영성을 되살리는 방법도 새롭게 모색해야 함을 암시한다.

한국교회사연구소는 연구소 설립 50주년을 맞아 순교사를 포함한 한국교회사 교육과정을 본당의 예비신자 교리와 주일학교에 도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연구소는 공개대학과 연구발표회 등을 통해 순교의 역사를 알리는 데 힘써 왔지만 본당 차원까지 교회사의 저변 확대가 안 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했다.

김진소 신부도 교구 단위의 순교자 현양 단체의 활동으로는 순교영성을 되살리고 뿌리내리게 할 수 없다며 본당마다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레지오 마리애, 꾸르실료, 메리지 엔카운터 등과 같이 본당 단위의 순교자 현양 단체가 조직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신부는 “수십 년 전부터 본당 단위 순교자 현양 단체의 조직을 건의했지만 성직자들의 이해 부족으로 전혀 실현되지 못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김 신부는 “신자들이 순교자들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의 죽음보다는 삶인데도 한국교회는 대동소이한 순교자들의 죽음의 역사만을 가르치고 있다”며 “순교영성이 신자들에게 체화 되려면 생생하고 생동감 있는 순교자의 삶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교회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조광 교수는 발터 카스퍼 추기경(전 교황청 일치평의회 의장)이 현대적 순교개념을 ‘그리스도교적인 동기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위해, 자유를 위해, 그리고 정의를 위해 투신하고 목숨을 바치는 것 또한 순교’라고 말한 바 있다며 “민주주의의 올바른 방향 제시, 공정한 경제발전을 위한 가르침, 사회적 불평등의 척결, 약자의 우선적 선택과 존중, 문화적 소외지대 척결과 편견 극복을 위한 노력에서 순교정신의 계승성을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