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온라인 공간에서 한 ‘사회참여적 수업 내용’이 화제가 됐다.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김유정 신부가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시국미사와 박창신 신부 강론 내용을 두고 교리신학원 강의에서 한 수업 내용이다. 복잡해보이는 사회 참여에 대한 가르침을 문답식으로 풀이한 강의의 최대 미덕은 논리의 간결 명료함과 구체성, 그리고 적절한 비유와 은유였다. 몇 가지를 발췌, 새삼스레 소개한다.
문: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요?
답: 「간추린 사회교리」라는 책이 있는데, 복음적 시각으로 사회 문제를 식별하고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에 대한 교황청 문헌을 모은 것입니다. 간추렸는데도 612쪽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책 전체가 ‘교회는 사회와 정치 문제에 관여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개인교리’만 교리이고 ‘사회교리’는 교리가 아닌 줄 아는 것이 문제입니다.
문: 성직자가 정치에 개입하지 말라는 항목이 교리서에 있다는데요?
답: 정치에 가장 깊숙이 개입한 성직자가 누구인지 아세요? 우리나라에서는 김수환 추기경님을 꼽을 수 있지요. 하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정치에 깊이 관여하신 분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입니다. 폴란드의 공산 정권이 무너지고,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의 공산주의가 해체되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하셨죠. 박신부님의 강론이 지나친 정치 개입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요한 바오로 2세와 성모님께도 뭐라고 하세요. 성모님도 파티마에 발현하셨을 때, ‘러시아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잖아요? 그것은 정치 개입 아닌가요?
김 신부는 “그래도 좀 조용히 신앙생활할 수 있게 교회가 이런 일에 휘말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한 학생의 말에 다시 이렇게 답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흔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흔들고 계시는데 묵주기도 5단, 10단 하는 걸로 내 신앙의 자세가 끝나는 걸까요? 예수님이 물으십니다.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 가겠느냐?”
그는 이어 덧붙인다.
“정치가 더럽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적 정신으로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깨끗한 정치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적인 정신으로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입니다.”
“나를 성당 안에 가두지 말라!”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제4장 전체에서 교회의 사회교리에 따라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실천할 것을 촉구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은 항상 구체성을 띠기 때문에 4장 전체를 정독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한국 사회의 논란이 되는 많은 정치적, 사회적 사안들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내리는데 부족함이 없다.
교황은 분명히 말한다.
“누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나 콜카타의 데레사 복자의 메시지가 들리지 않도록 이를 성당 안에 가두어 버려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누구도 종교를 개인의 내밀한 영역으로 가두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183항)
교황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
“종교는 국가 사회 생활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말라고, 국가 사회 제도의 안녕에 관심을 갖지 말라고,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에 대하여 의견을 표명하지 말라고, 그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
교황은 현세의 문제들에 대해서, 아주 “세부적인 것으로 들어가지는 않더라도, 구체적인 가르침을 회피할 수 없다”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일반론’을 경계하고 그 가르침들이 “복잡한 현 상황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게 실천적인 결론”을 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교회의 사목자들은 인간 생활과 관련되는 모든 것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있다”고 확언한다.(182항)
그 어느 누구도 종교는 결코 “사적인 영역에 국한되어야 하고 오로지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도록 준비하기 위해서만 종교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며 “정의가 정치의 목적”이라고 한다면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서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183항)
교황은 이처럼 분명한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흐리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왜 그토록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듭니까? …왜 그토록 분명한 것을 구름으로 가립니까?”(194항)
교황은 그러면서, 태도가 분명하지 못한 교회 지도자들에게 경고한다.
“정통 교리의 옹호자들은 가끔 수동적이라거나 특권층이라는 지탄을 받으며, 무참한 불의의 상황과 그 불의를 지속시키는 정치 체제와 관련하여 공모자라는 비난을 받습니다.”(194항)
한국교회 쇄신의 과제 ‘사회교리에 무관심’
지난 6월 가톨릭신문이 교황 방한에 대한 한국교회의 응답으로서 교회 쇄신에 대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과 관련된 항목은 크게 세 가지였다.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항목으로서 ‘교회의 사회교리에 대한 무관심’(14.14%)과 함께 ‘평신도들의 미성숙하고 개인주의적인 신앙’(19.74%)과 ‘성과 속을 분리하는 신앙과 삶의 유리’(13.49%)도 소홀할 수 없는 쇄신의 과제로 지적됐다.
교회의 사회교리에 무관심한 것은, 앞서 언급한 김유정 신부의 말을 빌면, ‘사회교리’는 교리가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태도이다. 교회의 ‘사회교리’가 간추렸는데도 612쪽에 달하는 이유는 그만큼 중대한 가르침이며, 믿는 이라면 반드시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하는 교회의 공식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사회와 정치 문제에 관여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대목에서 교황은 다시 한 번 촉구할 것이다.
“…왜 그토록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듭니까? …왜 그토록 분명한 것을 구름으로 가립니까?”
가톨릭신문의 설문조사 당시, 김유정 신부는 한국교회의 긴급한 쇄신 과제로 사회교리에 대한 인식 부족과 성과 속의 구분 문제를 꼽았다.
“아직도 한국교회에서 사회교리는 일부 관심 있는 신자들이나 접하는 분야로 남아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사회교리를 알면 사회를 보는 눈과 관점이 명확해지고 신앙도 성숙해진다. 성과 속의 구분 문제도 사회교리에 대한 인식 부족과 관련이 있다.”
성염 전 교황청 주재 한국 대사는 “사실 사회교리를 실생활에서 적용하고 살려는 노력은 부담이 되는데, 성당에 와서 위로와 마음의 평화만을 얻길 원하는 요즘 신자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며 “교황 방한이 사회교리를 우리 신앙의 기본 자세로 받아들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명백한 가르침, 교회는 사회참여를 해야 한다
지난 10여년간,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 표명이 수시로 이뤄졌고, 이에 대한 비난과 판단 역시 수시로 이어졌다. 그러한 입장 표명은 주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쌍용자동차와 4대강 개발 문제로부터, 제주 강정, 용산, 밀양, 국정원, 그리고 세월호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사회적 논란이 일었던 이슈들의 모든 현장에서 발생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국가정보원의 불법적인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정의구현사제단 뿐만 아니라, 군종교구를 제외한 전국 모든 교구의 사제단이 시국선언에 동참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여기에는 남녀 수도자들 대부분과 평신도들도 합류했다.
이처럼 사제단의 시국에 대한 입장 표명이 각종 집회, 연쇄적이고 장기적인 길거리 시국 미사 등으로 이어질 때마다 이에 대한 반감과 비난이 나타나곤 한다. 이는 정부, 여당의 정치권으로부터 일부 언론, 그리고 교회내 일부 인사들과 신자들의 반감의 표시로 나타난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 참여에 대한 반감과 공격의 논리가 사회교리의 가르침을 부정하는 이른바 성속 이원론에 바탕을 둔 정교 분리의 이론이라는 점이다. 때로는, 교회의 공식 가르침과 교황의 메시지까지도 성속 이원론에 바탕을 둔 정교 분리의 그릇된 원칙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왜곡, 악용된다. 원칙이 왜곡된 이러한 주장은 종종 “사제는 정의구현을 할 수 없고, 신자만 할 수 있다”는 희한한 논리로 귀결된다.
사제단의 사회 참여를 물리적으로까지 공격하는 한 단체의 공동대표는 한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회 정의(활동)은 신부가 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교황과 한국의 최고위 성직자들이 “천주교회 법에는 신부가 정치활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일렀다”고 말했다. 그는 “종교와 정치는 반드시 분리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이 단체는 시국미사 장소에 나타나 물리적으로 미사를 방해함으로써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평신도 신학자 주원준 박사는 이처럼 교회 안에서도 사회 참여에 대한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현상을 염두에 두고, 신자 5백만 시대의 다양성에 대해서 성찰했다. 주 박사는 교회의 몸이 비대해진 만큼 여러 가지 차원의 다양성이 나타나게 마련이며, 종종 빚어지는 갈등 역시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다양성의 표현일 수는 있다고 말하면서 양적 민주화가 대안은 아닌 만큼 신학화 작업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다양성의 인정에도 불구하고, 즉, 어떤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 의견의 충돌, 견해의 조정을 위한 대화와 타협 등의 과정의 당위성을 인정하더라도,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교회가 세상 속에 살아가며, “언제나 세상을 바꾸고 가치를 전달하며 이 지구를 이전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곳으로 물려주려는 간절한 열망”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한 열망의 실현을 위한 노력이 곧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이며, ‘정의를 위한 투쟁’에 교회가 참여해야 할 권리와 의무가 인정되는 지점이다. 구원은 개인적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고 교황은 말한다. 그래서 “구원은 사회적 차원을 지니고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개별 인간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도 구원”하신다. (「복음의 기쁨」 178항)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회와 정치 참여에 소홀할 수 없다. 갈등 없이 편안하기만 바랄 수는 없다. “참다운 신앙은 결코 안락하거나 완전히 개인적일 수 없기”(「복음의 기쁨」 183항) 때문이다.
교황 방한, 응답하라 2014 한국교회 (7) 나를 성당 안에 가두지 말라
“교회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서 있을 수 없다”
발행일 : 2014-08-03 [제2906호, 13면]
▲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 제4장 전체에서 교회의 사회교리에 따라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을 실천할 것을 촉구한다. 4대강 사업 저지 천주교연대가 2011년 3월 낙동강 화원유원지에서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모습.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