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의 호소
얼마 전 운영하던 회사가 경영난을 겪고 있는 박상근(가명·58)씨 본당에서 맡은 직책도 다 내놓았다. 사목위원까지 지낸 그였지만 교무금도 내기 어려워진 마당에 단체 활동은 언감생심이었다. 회사에 관한 소문이 돌면서 수군거리는 신자들의 모습은 그에게 상처가 됐다. 평소 친분이 있던 사목자와 수도자들과도 관계가 멀어졌다.
김서현(가명)씨는 소공동체 모임은 물론 신부님의 사목 방문 소식만 들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다섯 식구가 살고 있는 단칸방은 손님을 초대할 수 없을 정도로 비좁았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손님을 대접할만한 여유도 없다. 게다가 같은 구역 신자들이 만나면 꺼내는 부동산, 자녀교육 등의 이야기에 김씨는 전혀 공감할 수 없다. 되려 이질감과 자괴감을 느끼고 돌아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는 “누가 막는 건 아니지만 구역반 모임이나 본당에서의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겠다”며 “돈이 없으니깐 신앙생활도 어렵다”고 고백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이 교회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결코 가난한 이들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중산층 이상 신자들과의 모임에 참여하는 사제와 수도자는 많지만 가난한 이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찾기 쉽지 않다. 한 고위성직자는 지난해 한 복지시설을 방문해 가난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보다는 그곳 봉사자들과 함께 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신자에게서 가난한 이들과의 선약을 취소하고 다른 신자들의 초대에 응한 사목자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이처럼 사회로부터 소외 받는 가난한 이들이 자리는 교회에서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가난한 신자들은 주일과 관계없이 생업에 종사한다. 하루 12시간 이상 중노동을 하고 쉬는 날은 한 달에 고작 2~3번 남짓이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성당에 갈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살아간다. 반면 교회 내 이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는 눈에 띄지 않는다. 전국 본당 중에서 불과 몇몇 곳만 직장인 미사와 구역반 모임, 같은 직종 간의 모임을 마련하고 있을 뿐이었다. 가난한 이웃을 “나 자신과 하나”(「복음의 기쁨」 199항)로 여기고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와 달리 이들의 삶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는 셈이다.
본당 사목자의 자문협의회인 ‘사목협의회’를 비롯 소공동체모임 봉사자 구성만 보더라도 가난한 이들의 자리가 없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들 단체 봉사자 대부분이 중산층 이상이다. 한 사목자는 “물질적인 수준과 교회에 투자하는 시간이 비례하기 때문에 중산층 이상 신자들을 봉사자로 뽑을 수밖에 없다”며 가난한 이들을 선택할 수 없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더 이상 가난하지 않은 교회로 남게 할 것인가.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것”을 사명의 첫 자리로 삼은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이들을 찾아 가버나움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선포했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 밖으로 나섰다. 일부 사목자들은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에 근거해 “가난한 이들이 편안해지려면 사목자들이 움직여야 하고 가난해져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정성환 신부(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장)는 “봉사하는 이들과의 친교만 있고 가난한 이들을 찾아 나서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며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이고 구체적으로 내어주는 삶을 통해 그들이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한다면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가난한 이들의 해방의 길에 동행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이들과 멀어지고 있는 한국교회에 방향을 제시한다. 전문가들은 “교황 방한 이후 가난한 이들에게 편안한 교회가 되기 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교황이 지난해 성 목요일 로마 한 소년원을 찾아 발씻김 예식을 하고 있는 모습.【CNS】
중산층이 된 교회
한때 핍박 받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투신 했던 교회는 고도의 성장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그 사이 신자는 500만으로 늘었고 본당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문제도 발생했다. 가난을 주창했던 교회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게 됐다. 교회의 증산층화는 각종 연구와 조사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가톨릭신문이 2007년 본지 창간 80주년을 맞아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교회 신자의 월평균 소득은 일반국민에 비해 17.8% 높았다. 일반국민의 경우 305만원(통계청 자료)이지만 교회 신자들은 360만원이었다. 직종도 신자 중 사무직 비율이 29.2%, 생산·단순 노무직, 기능직 종사자는 11.4%에 달했다. 일반국민이 사무직 14.1%, 생산·단순 노무직, 기능직 종사자 32.7%로 확인된 통계청 자료(2006년)와는 대조적이었다. 이 조사는 또 신자들의 사회의식도 보여준다. 사회문제에 대체로 보수적인 성향을 보였으며, 사회참여에 대한 열의도 낮았다.
교회의 중산층화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강신모 신부(의정부교구 선교사목국장)는 지난해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중산층 신자 수가 짧은 기간 동안 급증하는 사태에 앞서 교회의 관심은 그들에게 우선적으로 쏠리게 된다”며 “여전히 가난한 신자들이 존재하지만 그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를 제대로 못하게 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지적은 교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가난한 이들은 특수사목의 대상이 됐고, 본당에서는 이들이 설 자리가 사라졌다. 교회가 중산층화 됨에 따라 일부 사제와 수도자의 생활수준 역시 고급 스포츠를 즐기고 최신 전자기기를 소유하는 등 중산층 이상의 문화를 영위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또한 교회 소유의 한 병원에서는 1인실과 2인실 등 상급병실이 40% 이상 운영되고 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택이 아닌 병원 측의 수익을 위한 선택이다. 가난하고 소외 받는 이들은 교회 병원에서도 외면 받는 처지인 것이다.
서울대교구 시노드 후속문헌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는 “갈수록 중산층화 되어가는 우리 교구의 현실 속에서 가난한 이들과 교회가 멀어져 가는 상황”이라며 “사제와 수도자는 소박한 삶을 영위하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모습을 지녀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가난한 이에게 참다운 관심이 필요하다
즉위 직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첫 미사에서 “예수를 증거하지 않으면 우리는 교회가 아니라 동정심 많은 비정부기구 (NGO)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예수를 증거하는 일은 교회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스스로가 가난해짐으로서 가능하다. 이는 가난한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교회의 창립자인 그리스도에게 돌아가자는 의미다.
교회의 가난은 가난한 이들을 선택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일하지만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지 않는 상태에서 베풀어온 자선과는 다른 의미다. 아시아의 주교들이 1974년 발표한 선언문처럼 “우리는 그들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바람이 무엇인지 배우고, 소외와 무기력에 빠지게 하는 구조와 환경을 변화시킴으로써 그들의 바람이 현실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창준 신부(서울 한남동본당)는 “누구나 물질적인 부유함을 추구하지만 교회가 가난을 추구하는 일은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라며 “그렇지만 가난한 이웃과 함께하고 기쁜 소식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 할 때 교회는 신앙의 원동력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진심으로 가까이 있는 것에서 출발 할 때에야 비로소 가난한 이들의 해방의 길에서 그들을 제대로 동행할 수 있다”(「복음의 기쁨」199항)라고 말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스로 가난하고 검소하게 살아가는 교황은 더 나아가서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갔다. 소년원에서 발씻김 예식을 했고 얼굴이 혹으로 뒤덮인 남성에게 입을 맞췄다. 밤이면 사제 복장으로 노숙자들을 만나러 나가곤 했다. 그에게 가난한 이들은 단순히 결여되거나 결핍된 존재가 아니다. 부자와 권력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복음의 담당자들이며, 사회와 교회 안에서 능동적인 참여로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위력을 가진 자들이다.
이러한 교황의 생각은 교회 안팎으로 확산되고 있다. 교황의 자선담당 보좌관 콘라드 크라예프스키 대주교는 지난해 교황의 77번째 생일에 노숙자 3명을 초대했고, 지난 1월 초 새로 임명된 추기경들은 금욕적이고 청빈한 교황에 영향을 받아 검소한 복장을 선택했다. 바로 프란치스코 효과다.
오는 8월 교황의 방한 이후 한국교회에도 프란치스코 효과가 불어오기를 기대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정성환 신부는 “교황께서는 먼지를 뒤집어 쓴 교회가 더 좋다고 말씀하지만 한국교회는 오히려 진흙을 밟지 않기 위해 징검다리를 만들고 있다”며 “복음으로 돌아가려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한국을 다녀가신 이후에 가난한 이들에게 편안한 교회가 되기 위한 논의가 이뤄지고 방향이 세워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이를 위한 선택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을 통해 “가난한 이들이 품위 있게 살고 아무도 배척당하지 않도록, 창의적인 노력이나 실질적인 협력을 하지 않고 안주할 때, 아무리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정부를 비판하더라도 공동체 와해의 위기에 직면한다”(207항)고 우려를 표명했다.
교황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의 우선적 선택은 공동선의 실현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인간 존엄성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가난을 양산시키는 구조를 개선하려는 도전이기도 하다. 따라서 가난한 이를 위한 우선적 선택은 결국 모든 이를 위한 선택인 셈이다. 이 선택이 없이는 교회의 사회 참여는 정당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교황 방한에 앞서 지난 6월 한국을 방문한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사무총장 마리오 토소 주교가 강연 중 한 대목은 가난한 이를 위한 선택 즉, 모든 이를 위한 선택에 임하는 그리스도인의 마음가짐을 알려준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기쁨이 자신 안에만 머문다면 참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서 벗어나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이 있는 삶의 변두리로 나아가 그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놓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