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8일 저녁 11시께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사옥 앞에서 경찰에 가로막히자 영정을 들어보이며 항의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
정치인·언론인·교수들 잇따른 ‘막말’ 행진에
“눈물 닦을 휴지 한 장 뽑아준 적 있나
제발 이제 가만히 좀 놔둬라” 호소
“왜 이리들 잔인하십니까. 도대체 얼마나 더 죽어야 후련하시겠습니까….”
세월호 참사로 꽃 같은 자식을 잃고 비탄에 젖은 유가족들이 정치인과 언론인, 대학교수 등의 ‘막말’에 가슴을 치고 있다. 특히 최근 며칠 사이 김시곤 전 <한국방송>(KBS) 보도국장의 ‘교통사고 비교’ 발언, 김장겸 <문화방송>(MBC) 보도국장의 ‘유족이 깡패’ 발언, 김호월 홍익대 교수의 ‘유가족이 무슨 벼슬 딴 것처럼 쌩난리친다’는 페북 글 등이 잇따라 알려지면서 유가족의 분노가 더욱 커지고 있다.
앞서 김호월 홍익대 겸임교수는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이 세월호 주인인가? 왜 유가족은 청와대에 가서 시위하나? 유가족이 무슨 벼슬 딴 것처럼 쌩난리친다. 이래서 미개인이란 욕을 먹는 거다. 세월호 유족에겐 국민 혈세 한 푼도 줘선 안 된다. 만약 지원금 준다면 안전사고로 죽은 전 국민 유족에게 모두 지원해야 맞다”고 막말했다.
이번 참사로 안산 단원고에 다니던 딸을 잃은 최아무개씨는 “아무리 우리(유가족들)가 자식을 지켜주지 못한 죄인들이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은 일을 한 적은 없다. 제발 이제 가만히 좀 놔눠라”고 호소했다.
역시 자녀를 잃은 김아무개(49)씨도 “가슴을 후벼 파는 것도 모자라서 이젠 도끼로 내리찍느냐. 죄없이 죽어간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이라면 더이상 초상집에 박수치는 일을 좀 그만하라”고 울먹였다.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일주일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김소현(36·여)씨는 “그 사람들이 여기 한 번이라도 와서 유족들의 눈물 닦을 휴지 한 장이라도 뽑아준 적이 있느냐. 영정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아들 딸을 보고 있는 부모 심경을 눈꼽만큼이라도 헤아린다면, 스스로 자식들 보기 부끄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 학생들도 분노하기는 마찬가지다. 안산 경안고 3학년 김혜성(18)군은 “우리 사회의 몇몇 집단 혹은 개인이 유가족들에게 보이는 태도는 우리가 무엇을 상실했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이 갖춰야할 책임·양심·공감이라는 최소한의 마음 가짐을 지니지 못한 사람들의 행태”라고 비판했다. 김군은 지난 9일 안산 시내 2천여명의 고교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촛불 추모제’ 자유발언에서 “세월호 사건을 보고 경악했고, 희생자에 슬퍼했고 사회 모습에 분노했다. 우리는 그동안 우왕좌왕하는 해경, 앵무새 언론, 무능한 정부의 모습을 보았다. 저는 유가족을 빨갱이라 몰고 있는 추악한 사회 그리고 언론과 정부를 믿지 않는다”고 밝혔다.
희생자와 유가족을 비하하는 막말이 끊이지 않자, 일부 유가족들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비하글을 수사해달라”고 경찰에 요청했다.
안산단원경찰서는 13일 온라인 게시판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을 비하하는 글을 게재한 혐의(명예훼손)로 황아무개(30)씨 등 누리꾼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황씨는 지난달 30일 오전 10시28분께 ‘일간베스트’ 홈페이지 게시판에 ‘유가족이 대단한 벼슬인지 알고 지껄이는 쓰레기다’는 등의 글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최아무개(72)씨는 같은 날 황씨가 올린 글을 ‘유가족 대표는 국민 60%가 박근혜 대통령을 목숨 바쳐 지지한다는 사실을 까먹었다’는 제목과 함께 인터넷 포털 ‘박사모’ 카페에 소개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은 이 외에 명예훼손의 여지가 있는 글 50여건을 추가로 확인하고 수사중이다.
한편, 부산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세월호 사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대국민 서명지 5만장을 이날 오전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원회’에 전달했다. 부산 지역 80여개 시민사회단체들로 꾸려진 ‘세월호 희생자 범부산 시민 추모위원회’는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부산 지역 40여곳에서 5만623명의 서명을 받았다. 문제열 집행위원장은 “부산역 분향소에만 4만여명 이상이 찾는 등 추모 열기가 뜨겁다. 유가족의 절박한 마음에 공감해 그분들의 손과 발이 되는 마음으로 서명을 받았고 앞으로도 계속 서명지를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합동분향소 조문객은 이날 오후 50만명을 넘어섰다. 합동분향소를 찾은 서울 관악구 신림중 3학년 류슬기(15)양은 “오늘이 개교 기념일이라 조문하러 왔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죄송하다. 무능한 정부와 해경의 대처로 언니·오빠만 희생돼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안산/김기성 김일우 김지훈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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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 상처에 위로는커녕 소금 뿌린 ‘막말’들… |
잇단 망언과 참사 뒤 숨은 사람들
권은희 한기호 지만원 정미홍 김호월 등등…
국정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 책임자 남재준
일당 5억 ‘황제 노역’ 허재호도 슬그머니 묻혀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을 때, 황당한 행태와 발언으로 민심의 분노를 자극하거나 피해자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이들도 적지 않다. 고위공직자나 정치인들 가운데 상처를 어루만지기는커녕 덧낸 이들이 많았다.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찍힌 동영상에 밀양 송전탑 반대 시위에 참가한 여성이 등장한다며, 실종자 가족 가운데 선동꾼이 있다고 주장해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같은 날 한기호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세월호 참사를 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제부터는 북괴의 지령에 놀아나는 좌파 단체와 좌파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이 정부 전복 작전을 전개할 것이다”라고 썼다. 해당 글이 논란이 되자 그는 “북한이 이번 참사 수습을 무능한 정부 탓이라고 비난한 것이 사실”이라며 “여기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는데 문제가 있나?”라며 ‘종북색깔론’을 고수했다. 권 의원이 사실관계가 밝혀지자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한 것과 달리 한 의원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다.
지난달 22일 보수 논객 지만원(72)씨는 “국가를 전복하기 위한 봉기가 바로 북한의 코앞에서 벌어질 모양이다. ‘시체 장사’에 한두 번 당해봤는가? 세월호 참사는 이를 위한 거대한 불쏘시개다”라고 막말을 내뱉었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정부의 무능한 대처 등에 대한 시민들의 문제 제기를 왜곡한 것이다.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인 정몽준 의원의 막내아들(19)은 지난달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벌어진 실종자 가족들의 반응에 대해 “대통령에게 소리 지르고, 총리에게 물세례하고, (…)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도 미개한 것 아니겠냐”는 글을 올려 정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했다.
정미홍 정의실현국민연대 대표도 지난 4일 세월호 희생자 추모집회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일당 6만원을 받고 동원됐다고 허위주장했다가 다음날 사과한 바 있다. 김호월 홍익대 겸임교수는 유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 밤샘 시위를 벌인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이 세월호 주인인가? 유가족이 무슨 벼슬 딴 것처럼 난리친다”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다. 김 교수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을 상대로 한 야당의 특별감사 추진에 반대하며 ‘지식인 선언’에도 참여했고, 지난해 안전행정부의 정책자문위원을 맡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몰상식한 공직자의 추태도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 놨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16일 세월호 사고 대책본부가 꾸려진 진도체육관에서 의전용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어 ‘황제 라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서 장관의 이런 행동에 “계란 넣어 먹은 것도 아닌데…”라며 두둔해 결과적으로 비난을 부추겼다. 송영철 안전행정부 국장은 지난달 20일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다 피해자 가족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공직을 떠났다. 지난달 18일에는 한 해경 간부가 세월호 승객 구조 과정에서 해경의 초기 대응이 적절했는지 묻는 취재진에게 “80명을 구했으면 대단한 것 아니냐. 해경이 못한 게 뭐가 있느냐”고 말해 해경의 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 참사 수습의 최종 책임이 있는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두 번씩이나 “안보실은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며 면피성 행보로 여론의 비판을 샀다.
국정원 ‘간첩증거 조작’ 남재준 ‘황제노역’ 허재호 슬그머니 묻혀 세월호 참사로 국민의 관심과 비판에서 멀어진 이들도 있다. 국정원의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의 책임자인 남재준 국정원장은 세월호 참사 뒤 ‘퇴진’을 요구하는 야당의 공세나 여론의 압박으로부터 비켜났다. 지난달 14일 검찰이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한 뒤 서천호 국정원 제2차장이 사표를 제출했고 청와대는 지체 없이 사표를 수리했다. 이어 다음날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셀프개혁’을 또 한번 국정원에 주문했을 뿐, 정치권에서 요구한 ‘남재준 해임’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같은 날, 남 원장도 국정원에서 대국민사과문을 읽어내려가며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대통령과 남 원장의 기자회견 뒤 야권과 시민단체의 반발이 커지려는 찰나, 다음날인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면서 남 원장은 ‘참사’ 뒤로 숨어버렸다. 400억원대의 벌금과 세금을 내지 않고 일당 5억원짜리 ‘황제 노역’을 살았던 허재호(72) 전 대주그룹 회장도 여론의 관심권에서 밀려난 경우다. 하지만 광주지검 특수부는 허 전 회장의 재산 해외도피와 배임 혐의 등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검찰은 대주그룹 계열사였던 대한시멘트 등의 자금 2750억여원을 대주건설에 담보 없이 빌려줬던 혐의(배임) 등을 수사하고 있다. 검찰은 또 허 전 회장이 2002년께 ㅅ철강 대표 남아무개(72)씨 등 지인들의 명의를 빌려 대주그룹 계열사였던 대한화재 주식을 차명으로 신탁하면서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도 조사중이다. 김경욱 기자, 광주/정대하 기자 da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