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박영봉 신부님

*♥**♥* 먼저 믿어보자! *♥*-믿기 위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알기 위해서 믿는 것입니다.”

김레지나 2012. 8. 27. 19:58

*♥* 먼저 믿어보자! *♥* (박영봉 안드레아 신부님의 강론입니다.)


- *♥* 먼저 믿어보자! *♥* -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지난 한 주간 동안 예수님의 사랑을 맛보고 그 사랑에 앙갚음(?)을 해보셨나요? 그래서 많이 행복하셨나요? 형제 자매님, 저희는 어제 긴 방학을 마치고 신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피정을 하고 월요일부터 정상적인 수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온 신학생들을 보니까 반갑기도 하고 방학이 끝났구나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 형제 자매님, 요즘 주일 복음은 요한복음 6장의 성체에 대한 가르침이 계속 낭독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복음은 생명의 빵인 성체성사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형제 자매님, 복음서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첫째 부류는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하며 예수님을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냥 막연한 유대인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었다고 복음서는 전하고 있습니다(요한 6,60 참조). 그들은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라고 말하던 유대인들처럼 모든 것을 인간의 지식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내가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는 것은 참 좋은 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한다니 내가 식인종이 되어야만 영생을 누릴 수 있다면 그렇게는 못하겠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이해를 도와주시기 위해서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라고 당신의 승천을 미리 언급하십니다. 즉 당신이 주시고자 하는 몸은 우리와 같은 살덩어리가 아니라 부활하신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을 떠납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영적인 목마름이 아니라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다닌 사람들이었기에 영적인 것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형제 자매님, 신앙의 세계는 인간의 지식을 초월하는 것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믿는 것입니다. 둘째 부류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끝까지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라고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형제 자매님,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말은 이들이 “믿어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말씀처럼 “믿기 위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알기 위해서 믿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는 흔히 알아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성적 사고도 분명히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어야 하는 모든 것을 이성으로 다 알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복음은 우리가 먼저 믿을 때 그 내용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이 보내신 분임을 믿었기에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음을 깨닫게 된 것이었습니다. 결국 생명의 빵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모시는 성체가 인간의 지성에 바탕을 둘 때는 결코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신비로 남겠지만, 인간의 지성을 초월하는 신비임을 믿고 받아들일 때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이 된다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이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십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 각자도 베드로 사도와 같이 용기 있고 신념에 찬 응답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아직 ‘생명의 빵’ 즉 ‘성체성사’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부족합니다. 예수님을 첫 자리에 모시기 위해서 다른 것을 버릴 용기가 부족합니다.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인내가 부족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형제 자매님, 그런데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고, 남편은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왜 사도가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남녀를 차별하기 위해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당시 유다사회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속한 종들처럼 남편의 재산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사도는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라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 상호 간의 평등과 존경을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단순히 결혼한 부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실제로 살 때 즉, 우리 가정이나 내가 속한 공동체가 참된 사랑의 보금자리가 될 때 우리는 성체성사를 제대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예수님은 분명히 당신의 계명 곧 "서로 사랑하여라."는 당신의 계명을 실첨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나타내보이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요한 14,21). 우리도 먼저 서로를 잘 사랑하고자 노력할 때 형제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나아가서 성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뵙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우리도 성체를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을 믿고 또 안다고 떳떳하게 고백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주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우리에게 당신의 몸까지 다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리고 그 성체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사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것을 알 수 있도록 가족들과 이웃들을 더 잘 사랑할 것을 결심합시다. 그 결심이 작심삼일이 되지 않고 한 주간 동안 계속 실천하게 된다면 분명히 성체성사의 신비를 더 깊이 깨닫게 될 것이고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큰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양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관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