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의 앙갚음?? *♥* (박영봉 안드레아 신부님의 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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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앙갚음?? *♥* -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지난 한 주간 동안 행복하셨나요?
저는 올림픽에서 최선을 다하는
우리 선수들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을 보면서
우리도 저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가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남을 이기기 위해서 치열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서 치열하게 살아야겠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형제 자매님,
오늘 제1독서에서 지혜는 지각없는 우리를 초대하며
“너희는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셔라.
어리석음을 버리고 살아라. 예지의 길을 걸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혜가 요구하는 예지의 길은 무엇일까요?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더 구체적으로 초대해주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예수님은 단순한 빵과 술이 아니라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내어주신다고 합니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당신의 진심이 담긴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하며
서로 말다툼까지 했다고 합니다.
사실 그렇죠?
자기 살을 먹으라고 내준다면 자신은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인간의 지식이 아니라
참된 예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흘러야 합니다.
그런데 당신의 몸이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욱 더 예지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어리석은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고 말씀하십니다.
형제 자매님,
예수님의 몸을 먹는 사람이 예수님 안에 머물고
예수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신다는 것은
예수님과 그 사람이 온전히 하나가 될 때 가능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몸을 먹는 사람은 예수님과 완전히 일치하기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과 꼭 같은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당신의 몸까지 다 내어주십니다.
도대체 예수님께서 왜 이러십니까?
작은 것 하나라도 얻으려면 당연히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사랑으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 이익을 쫓으며 살아가는 우리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다 주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사랑은 사랑하는 상대방을 위해서 내 것을 내놓게 만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당신이 가지신 어떤 것이 아니라
당신의 몸 곧 당신의 생명까지 다 내어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인간이 무엇이기에 예수님께서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십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내가 특별히 잘난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먼저 예수님께 뭔가를 해드린 것도 아니고…
그런데 한 가지는 알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혹은 이성에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뭔가를 베풀어주었는데
그 상대방이 내 마음을 몰라주거나 내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우리의 마음이 참 아픕니다.
내가 한 행동에 사랑이 깃들어있지 않았다면 마음이 아프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나를 사랑해주셨는데
내가 그런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 매우 마음 아파하실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온전히 사랑으로
당신 몸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도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제2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권고 곧,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라는 말씀을 우리가 실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사랑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의 사랑을 잘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그 예수님의 사랑을 닮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 강론을 준비하는데 갑자기 복자 메리 요아킴 수사님이 생각납니다.
메리 요아킴은 결혼을 며칠 앞두고 약혼녀와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약혼녀와 산책을 하다가 산위의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보면서
“내가 저 수도원에 들어가면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묻자
약혼녀가 “너는 3일도 못 견디고 나올 거야.” 라고 대답을 합니다.
누구든 자신에게 상처를 주면 꼭 앙갚음을 해야 하는 성격을 가진 그는
약혼녀의 판단이 잘 못됐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입회를 합니다.
수도생활을 하면서도 앙갚음을 하는 성격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해드린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자신을 끝까지 사랑해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그 하느님의 사랑에 앙갚음을 합니다.
표현이 맞지는 않지만 사랑의 앙갚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는 결국 하느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방법으로 형제들을 잘 사랑하면서
수도생활을 훌륭하게 마쳤고 복자품에 올랐습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온전히 무상으로 베풀어주시는 예수님 사랑의 결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미사를 봉헌하면서
이토록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려야하겠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사랑에 앙갚음(?) 하기 위해서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 또 사랑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보고
잘 사랑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도 생각하고 꼭 실천할 것을 결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와 은총을 구해야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더 큰 사랑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하양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관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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