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박영봉 신부님

*♥* 나는 무얼 바라나? *♥*

김레지나 2012. 7. 31. 15:32

*♥* 나는 무얼 바라나? *♥* (박영봉 안드레아 신부님의 강론입니다.)


- *♥* 나는 무얼 바라나? *♥* -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지난 한 주간 동안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면서 그 사랑을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형제 자매님이 먼저 실천해 보셨나요? 그래서 형제 자매님도 가족들도 모두가 행복하셨죠?!^^* 형제 자매님, 저는 목요일부터 오늘까지 3박 4일간의 마리아폴리에 참석하고 오후 늦게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강론을 이렇게 늦게 올리고 있습니다. ㅠㅠ 이번 마리아폴리에서는 약 1,200명이 함께 생활을 했는데 무엇보다도 가정에서 직장에서 자신을 희생하면서 사랑한 사람들의 경험담이 크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그 경험담을 들으면서 나도 저렇게 해 봐야지! 혹은 저렇게 사랑할 수도 있구나! 저런 상황에서도 사랑할 수 있을까? 등등의 반응을 보이면서 자신들도 사랑해봐야겠다는 결심들을 하게 됩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자기 희생과 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그런 사랑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행복하게 만들고 나아가 이웃에게 그 사랑이 전해진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형제 자매님, 오늘 우리가 전례에서 들은 바오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나에게 안겨주신 희망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그 희망을 성취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형제 자매님, 우리는 매일 바쁘게 살아갑니다. 나와 내 가족의 배고픔을 해결해 줄 한 덩어리의 빵을 얻기 위해서 바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엔 좀 더 나은 빵을 구하기 위해서 역시 바쁘게 살았습니다. 이제는 그 빵을 즐기면서 먹을 수 있기 위해서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어떻게 하면 먹을 빵에 대한 걱정 없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을까하고 궁리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한 많은 사람들은 이 기막힌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예수님을 그들의 왕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으니 그분이 왕이 되면 그들은 먹는 것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고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피해 산으로 가셨습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는 이 복음의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이 그들이 생각했던 빵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우리 역시 복음 속의 사람들이 범했던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니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드리는 기도의 내용을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께 감사드리거나 그분을 원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 주십사 기도하고 그것이 이루어 질 때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하느님을 원망하곤 합니다. 그러니 복음 속의 사람들과 무엇이 다릅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은 우리를 피해 또 어디론가 가셔야 합니다. 형제 자매님, 그러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고자 한 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요한복음을 통해서 듣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공관복음의 그것과는 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만)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친히) 나누어 주셨다” 바로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당신 몸을 내어주신 것과 같은 묘사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몸을 주시고자 원하셨습니다. 즉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현세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물질적인 빵만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날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하나 사람들은 그 보다 못한 것을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분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았습니다. 이 약속이 우리에게 주신 희망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희망을 바라보며 그것을 성취할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로 사랑의 삶입니다. 뭐 다 아는 얘기를 새삼스럽게 하느냐고요? 예, 세 살 먹은 아이도 다 아는 거지만 팔십 살 먹은 노인도 실제로 지키기는 힘든 일이죠. 형제 자매님, 그래서 바울로 사도도 거듭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이러한 삶이 그리스도께서 당신 몸까지 내어주시며 보여주신 사랑의 삶이고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영원한 삶을 성취하는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힘든 일이라도 그 일이 가져다줄 결과가 좋은 것임을 안다면 그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을 느낍니다. 내가 행하는 사랑의 결과가 영원한 생명임을 믿는다면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면서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강한 존재입니다. 내가 지난 주간에 가족들을 잘 사랑하는데 실패했다 하더라도 다시 용기를 내어서 잘 사랑하도록 노력해봅시다. 요즘 우리를 괴롭히는 이 무더위도 쫓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양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관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