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투병일기-2012년

★♠ 믿음, 사랑, 의탁 (쉬는 교우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김레지나 2012. 6. 15. 22:06

 

믿음, 사랑, 의탁

                                                                (쉬는 교우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인터넷 신앙 카페의 묵주기도 모임에서 이번 주 기도지향으로 정해진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를 떠나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어 그들이 주님 안에서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해주세요.”입니다.

 

  쉬는 교우들 중에는 성당 공동체에서 상처를 받아 신앙을 잃어버린 경우도 있을 테고, 심각한 죄에 대한 화해성사를 볼 용기가 없어서 성당에 나가기를 미루고 있는 경우도 있을 테고, 착하게 살면 됐지 굳이 성당에 나갈 필요는 없다며 편리한 신앙관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성당에 나가는 시간이 아까워서 쉬고 있을 수도 있고, 세례 '자격증?'을 땄으니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죽으면 된다는 경제적?인 생각으로 버티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한 주간 쉬는 교우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제가 냉담을 오래 했었다는 사실을 접한 지인들의 다양한 반응이 기억나서 피식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제가 서툴게나마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느님을 사랑하게 된 기쁨을 전하고 다니기에, 더욱 제 냉담의 이유를 궁금해들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제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냉담했을 것같이 안 생겼는데?”하셨고(제가 모범생처럼 보이나부죠? 하하.), 어떤 분은 진지하게 “앞으로 하느님 이야기할 때 냉담했었다는 이야기는 빼고 해. 그건 간증에 마이너스야.”라고 걱정해주시기도 했습니다.

 

  묵주기도 모임을 같이 하고 있는 분들과 처음 오프라인 모임을 가진 날, A님이 제게 냉담했던 이유를 물으셨습니다. 제가 “글쎄요. 그냥 게을러서요.”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으니까, 곁에서 P님이 변호하듯이 “냉담은 했지만 신앙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요?”하셨습니다. 저는 “네, 쉬는 중에도 믿음이야 있었지요...”하고 대답했습니다.

 

  집에 와서 그 대화를 되짚어보니 제 대답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당에 안 나갔으면서 하느님을 떠났던 게 아니라니, 말이 안 되는 대답을 했네. 부모님을 찾아보지도 않고 안부 전화도 안 드리고 지내면 부모님이 안계신 듯이 잊고 산다는 증거일 텐데 말이야.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했으니까 성당에 나가지 않았던 거고. 하느님이 자잘한 집안일들보다 더 나중 순위였으니, 하느님과의 거리는 한참이나 멀었던 거지.’ 

 

  몇 년 전에 감명깊게 읽었던 책, <성심의 메시지> 중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나를 믿는 영혼은 많으나,

   나의 사랑을 믿는 영혼은 많지 않구나.

   또 나의 사랑을 믿고 있는 영혼들 중에

   나의 자비에 의탁하는 영혼들은 아주 적다.

   나를 하느님으로 아는 영혼은 많이 있으나,

   아버지처럼 나를 완전히 신뢰하는 영혼은 많지 않다.”

 

  저는 냉담 중일 때에도 하느님을 창조주로 믿었고, 빨리 냉담을 풀어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지내긴 했지만, 영영 눈 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만 요령껏 지내보려는 '종의 영성' 중에서도 가장 저급한 영성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같은 사람들 때문에 “나를 믿는 영혼은 많으나, 나의 사랑을 믿는 영혼은 많지 않구나”하고 안타까이 탄식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을 잊고 지내던 때에, 하느님의 친구로서의 영성, 애인으로서의 영성이 있으리라고 꿈엔들 상상이나 해보았겠습니까? 암 투병을 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가슴으로 만나고 난 후에야, 냉담 중이었기에 신앙인으로서 이웃에게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놓쳤던 것을, 하느님께 긴 세월 등돌리고 살았던 것을 진정으로 아프게 뉘우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십년이 넘게 냉담했던 핑계 중 하나는 바로 ‘아이들 키우느라고 힘들어서’입니다. 큰 아들이 어릴 적부터 낯가림이 심해서 낯선 장소에 가면 몸을 뒤집어가며 울곤 했습니다. 서울에 살던 때에, 가끔 기차를 타고 광주로 다녀야 했는데, 그때마다 아들이 심하게 울어서 객실에서 쫓겨나 연결 통로에서 네 시간 넘게 아들을 안고 서있어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친구집에도 반모임에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한 번은 성당 입구에서 아들이 크게 울어서 어떤 분이 “이런 애 있으면 안 나와도 돼요.”라고 하셨습니다. 또 어떤 분은 “애가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성수를 뿌려보라”고도 했습니다.^^ 그후로도 한동안 성당 유아실에서 미사참례를 할 때면 아이들 때문에 도무지 미사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들이 잠도 잘 자지 않고 까탈스러워서 평일에는 집안일 할 엄두를 못내고 남편이 있는 주일에 한꺼번에 해야 했기 때문에, 미사참례가 힘들게만 여겨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성당에 나가는 것을 자꾸 미루게 되었고, 핑계거리는 늘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저처럼 다른 일들을 우선으로 삼느라고 성당 나가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쉬는 교우들에게 가끔 해드리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까운 분에게 전해들은 실화입니다.

  가구점을 운영하는 신자부부가 있었는데, 주일이면 성당에 나가 미사참례하고 봉사활동을 하느라 가게를 닫아야하는 날이 많았답니다. 가구점 손님은 일요일에 많이 오기에 하느님 때문에 손해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겠지요. 어느 주일에도 성당에서 봉사할 일이 많아서 가게 문을 닫아야 했는데, 다음 날 가게에 한 사람이 와서, “어제 가게 문을 닫으셨던데, 여기 이 가구랑 똑같은 가구가 건너편 집에도 있길래 34만원 주고 샀어요.(정확한 가격은 기억 안 나지만 34만원이라고 해두지요.)라고 하더랍니다. 부부는 ‘다른 집에서 샀으면 그걸로 말 일이지 왜 아침부터 와서 염장을 지르지?’하고 마음이 상했는데, 그날 오후에 한 손님이 혼수 가구로 340만원어치를 사갔답니다. 부부는 하느님께서 딱 열 배로 갚아주셨음을 알아차렸고, 주일에 가게 문 닫는 것을 속상해하지 말고 기쁘게 봉사하라고 하느님께서 격려해주신 것이라며 기뻐했답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값없이 베풀어주신 수많은 은총을 입었던 기억 덕에, 이젠 하느님께서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우리 사랑과 희생을 후하게 갚아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가구점 부부에게 이 세상에서 열 배를 갚아주신 하느님께서 하늘나라에서는 우리의 수고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후하게 갚아주실 것을 압니다. 

 

  자비로운 하느님께 우리의 신앙이 하느님을 믿는 신앙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신앙으로 성숙되도록, 하느님을 사랑하는 신앙에서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하는 신앙으로 완성되도록,  우리의 걸음걸음에 필요한 은총을 베풀어주시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너희들에게 나를 다시 한 번 알려주어야겠다.

  내가 특별히 사랑하고 있는 너희 영혼들에게

  내가 너희들이 지니고 있는 것 외에 다른 것을 더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하여라.

  그저 가지고 있는 것만 다오.

  너희들은 모두 나에게 매인 몸이 아니더냐?

  가진 것이라고는 가련, 궁핍, 나약밖에 없고

  다 털어내어 보았자 허물과 죄악뿐일지라도

  그것만이라도 나에게 바치고 나의 마음만 신뢰하여라.

  그러면 나는 너희를 용서하고 사랑할 것이며,

  은총을 내려 너희를 거룩하게 할 것이다.”

                  (요세파 수녀님의 <성심의 메시지> 중에서 - 가톨릭 출판사)

 

                                                  2012년 6월 15일 엉터리 레지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