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성경 묵상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려는 노력이 기도입니다. 마르코 12,28ㄱㄷ-34

김레지나 2012. 6. 7. 14:53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28ㄱㄷ-34
그때에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28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내리사랑’이라고 합니다. 이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적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무슨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리사랑을 도덕적 의무로 규정하는 일은 없습니다. 부모로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굳이 의무로 규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려면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실천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부모에 대한 효도를 의무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가 무슨 자격이나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당신의 자녀이기에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억제할 수 없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하느님의 본능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려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려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려면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려는 노력이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로 하느님께서 나와 똑같이 당신의 자녀인 나의 이웃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이웃을 떠나서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고, 하느님을 떠나서는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흘러나와 나를 거쳐 이웃에게로 흘러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