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송봉모 신부님

미움이 그친 바로 그 순간

김레지나 2012. 4. 11. 21:53

미움이 그친 바로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것 두 가지를 들라면 그것은 죄를 안 짓는 것과 내게 상처준 사람을 용서하는 일일것이다. 옛말에 은혜는 바위에 새기고 원한은 냇물에 새겨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사람들 대부분이 원한은 바위에 새기고 은혜는 냇물에 새긴다. 사람은 무엇에 집중하는 가에 따라 모습이 변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밤낮으로 미워한다면 어느새 그 사람과 닮게 된다는 것이다. 마귀 운동장에서 놀지 않으려면 미움이라는 악순환에서 뛰쳐나오는 수 밖에 없다. 내게 잘못을 저지른 상대방의 뉘우침을 기다리면서 마귀 운동장에서 헤맬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운동장을 뛰쳐 나오는 것이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 곧 원한 뒤에는 복수심이 따라온다. 그리고 복수가 있는 곳에 평화가 공존할 수 없다. ‘악을 선으로 갚는 일은 하느님다운 일이요, 선을 선으로 갚는 일은 인간다운 일이다. 선을 악으로 갚는 일은 악마다운 일이요,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짐승다운 일이다.

한 순간의 분노를 참으면 백가지 슬픔을 면할 수 있다. 화가 나면 열까지 세고, 상대방을 죽이고 싶으면 백까지 세라. 용서하기로 결심한 다음에는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자. 이렇게 종교적 행위로 용서하겠다고 결심한 다음에는 구체적으로 하느님과 예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한다. 원수를 용서하게 해 달라고, 상처의 아픔을 낫게 해 달라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 가슴의 응어리를 주님의 자비와 관대함으로 바꾸어 달라고 청해야 한다. 외부환경이 변할 때 내 태도도 달라질 거라는 생각은 환상이요 착각이다. 주변을 바꾼다고 늘 부정적으로 판단하던 나쁜습관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펜을 바꾼다고 해서 글씨체가 바뀌지 않듯 새직업, 새집, 새 배우자를 얻는다 해서 내적 태도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 태도를 지님 사람은 어디에서 누구와 살아도 늘 부정적인 것이다. 기쁜 소식은 이것이다. 당신의 태도만 바뀐다면 나쁜 소식이 기쁜 소식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내게 상처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것은 순전히 내 상처의 치유를 위해서다. 용서한다고 해서 꼭 상대방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다 똑같은 유형일수는 없으므로 서로 다른 유형끼리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5-3=2
이다 2+2=4다 오해(5)할 때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고 세 발(3)만 물러서서 보면 이해(2)가 된다는 것이다. 이해(2)와 이해(2)가 만나면 사랑(4)이 된다는 것이다. 손가락 지문이 다 다르듯이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독특하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사람은 이러해야 한다는 식으로 내 관점에 끼워 맞추려 해서는 안된다.

 

다음에 계속 ~